<뒤샹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뒤샹과 아모리 쇼
1913년 2월 17일 뉴욕의 렉싱턴 애비뉴 25번가 305번지에 소재한 제69 기병대의 병기창에서 아모리 쇼Armory Show로 불리는 국제 현대미술 전시회가 개최되었다.
미술의 황무지 미국에서 처음으로 유럽의 모더니즘이 대거 소개되는 전시회였다.
쿤, 데이비스, 패츠 세 사람이 뉴욕의 ‘화가와 조각가들의 연합회’로부터 협력을 받아 돈을 주고 병기창을 한 달 동안 빌려 개최한 것이다.
거트루드 밴더빌트 휘트니가 병기창을 전시장으로 장식했는데, 휘트니는 훗날 휘트니 뮤지엄을 개관한 예술가이다.
아모리 쇼는 3월 15일까지 열렸으며,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아모리 쇼에는 앵그르, 도미에, 쿠르베, 코로, 마네와 대부분의 후기인상주의 예술가들인 고갱, 반 고흐, 세잔, 쇠라 그리고 루소, 드랭, 파생, 스공작, 마티스의 작품들이 소개되었고, 입체주의 예술가들로는 피카소, 브라크, 레제, 글레이즈, 피카비아, 뒤샹 삼형제의 작품이 소개되었으며, 상징주의 예술가들인 퓌비 드 샤반, 르동, 예언자the Nabis 그룹 예술가들의 작품이 소개되었다.
아모리 쇼는 프랑스 미술에 대해서는 잘 소개했지만 독일 표현주의에 대해서는 제대로 소개하지 못하고, 에른스트 루드빅 키르히너의 풍경화 한 점과 칸딘스키의 <즉흥> 한 점만을 소개했을 뿐이다.
시인 아폴리네르가 오르피즘으로 분류한 들로네와 쿠프카의 그림과 미래주의 예술가들의 작품은 소개되지 못했다.
조각부문에서는 로댕, 마이욜, 브랑쿠시, 그리고 렘브러크의 작품이 전시장 중앙에 전시되었다.
미국 예술가들의 작품도 수백 점 소개되었는데 아모리 쇼에 소개된 작품은 모두 1,650점이 넘었다.
카탈로그에 적힌 작품만도 1,046점이었고, 카탈로그에 적히지 않은 작품이 600점 이상이었다.
아모리 쇼는 많은 전설을 낳았다.
루wm벨트 대통령도 전시회를 다녀갔는데, 진보주의 사고를 가진 루스벨트는 전시장을 둘러본 후 마티스의 그림 앞에 서서 예술가는 사물을 보는 그대로 그려야지 일그러뜨려서는 안 되며 색을 통해서만 표현해야 한다는 진부한 소감을 밝혔다.
파리의 언론은 아모리 쇼에 관해 침묵하였다.
뒤샹은 “아모리 쇼는 파리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기론 언론이 그 전시회를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던 것 같고, 몇 줄만 언급했던 것 같다”고 상기했다.
파리의 언론은 미치광이 미국 사람과 러시아 사람들만이 마티스와 피카소의 그림을 사려 한다고 빈정거렸다.
『뉴욕 타임즈』에서도 아모리 쇼에 참여한 예술가들을 “무정부주의자들의 사촌들”이라고 논평했다.
비록 언론과 예술가들 연합의 간행물 『미술과 성장』이 비판의 글을 보도했지만 사람들의 호기심을 꺾지는 못해 관람자의 수가 십만여 명에 달했다.
아모리 쇼는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 후 뉴욕에는 사설 화랑들이 하나, 둘 늘기 시작했다.
연일 사람들이 피카비아의 <우물가의 춤들>과 뒤샹의 <계단을 내려가는 누드> 앞에 운집할 정도로 두 그림이 특히 미국인에게는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다.
어떤 사람은 무려 30∼40분 동안이나 뒤샹의 그림 앞에 서서 움직일 줄 몰랐다.
루wm벨트는 뒤샹의 그림을 관람한 후 인디언들이 사용하는 나바조Navajo 담요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언론은 뒤샹의 그림을 익살스럽게 표현했는데, 『이브닝 선』지에서는 “출퇴근 시간에 전철역의 계단을 내려가는 교양 없는 사람들”이라고 적었다.
미국 사람은 미술에서 누드가 계단을 내려간다는 것을 상식 밖의 일로 여겼다.
뒤샹의 그림은 입체주의만 우스꽝스럽게 만든 것이 아니라 모더니즘 자체를 우스꽝스럽게 만들려는 것처럼 평론가들에게 비쳐졌다.
아모리 쇼는 보스턴과 시카고를 순회했으며, 시카고의 미술학교 학생들은 마티스의 그림을 관람한 후 “추한 사도”라고 부르면서 그가 모더니즘의 나쁜 영향을 퍼뜨린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유럽의 모더니즘에 호의를 나타낸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전시회에 소개된 작품들 가운데 3분의 1이 유럽 예술가들의 작품들이었고 판매된 174점 가운데 123점이 유럽 예술가들의 작품인 것으로 보아 미국 사람이 모더니즘에 경의를 표했음을 알 수 있다.
전시회를 기획한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인 변호사 존 퀸은 법적인 문제를 무료로 봉사했으며, 드랭, 파생, 르동, 스공작, 자크, 레이몽, 그리고 그 밖의 유럽과 미국 예술가들의 작품을 5,808달러 75센트를 주고 구입했다.
두 번째로 많은 그림을 구입한 사람의 직업도 역시 변호사였는데, 아서 제롬 에디는 시카고에서 뉴욕으로 와서 작품들을 구입하면서 뒤샹이 출품한 네 점 가운데 <체스두는 사람들>과 <빠른 누드들에 에워싸인 왕과 왕후>를 구입했다.
레이몽은 네 점의 조각을 출품했는데 세 점이 팔렸고 자크 비용은 아홉 점을 출품했는데 모두 팔렸다.
뒤샹의 나머지 두 점도 곧 팔렸는데 젊은 화가 마니에르 도손이 <기차를 탄 슬픈 젊은이>를 구입했다.
전시회가 거의 끝날 무렵 샌프란시스코의 골동품상 프레데릭 토리가 전시회를 관람한 후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갑자기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어 뉴멕시코 주의 알부쿼크 역에 내려 월터 패츠에게 전보를 쳤다.
뒤샹의 <계단을 내려가는 누드>를 사겠음. 보관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