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록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일레인은 드 쿠닝의 <여인>에 관해
일레인은 드 쿠닝의 <여인>에 관해 “그가 그린 흉포한 여인은 그와 동거중인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세 살 때부터 그에게 생긴 이미지였다”고 하면서 드 쿠닝이 어머니를 그림에서 사나운 여인으로 묘사했음을 암시했다.
일레인의 말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의 여인들은 네덜란드인이기보다는 미국인처럼 보였다.
여인이 신고 있는 구두, 드레스, 립스틱, 그리고 매니큐어를 칠한 손톱들이 그 점을 시사했다.
토마스 헤스는 <여인>에 관해 이렇게 적었다.
“시끄러운 파티에서 소녀처럼 … 그저 앉아 있거나 그냥 그곳에 있거나 또는 웃는 모습인데 이것은 미국에서 흔한 일이다.”
드 쿠닝은 “나는 단지 나의 생각대로 그렸을 뿐이다”라고 말했는데 <여인>은 그의 무의식 세계에 있던 이미지가 돌출한 것이었다.
1950년대에 그는 사람들에게 동성연애자처럼 보였는데 그도 그 사실을 알고 “내가 만일 아름다운 여인을 그린다면 그 그림이 나를 동성연애자가 아닌 것처럼 보이게 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드 쿠닝은 그림에서 다양한 색을 사용했는데 색채에 대한 아이디어가 생긴 것은 아이스크림을 제조하는 하워드 존슨즈 레스토랑에서였다.
그는 스물여덟 가지나 되는 아이스크림이 물감처럼 보이더라고 말했다.
그는 또 사람들이 자신의 미학을 쉽게 납득할 수 있도록 이렇게 설명하기도 했다.
“나는 화가들이 특별히 대단한 아이디어를 가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
몬드리안은 대단한 예술가이다.
그의 신조형주의적 착상을 보면서 당신은 순수조형성을 보겠지만 난 그것들이 웃긴다고 생각한다.
…
나는 마음속에 미술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그림을 그리지는 않는다.
나는 나를 매료시키는 어떠한 것들을 보게 된다.
그것들은 그림에서 나의 내용들이 된다.”
그는 지성인들에게서 나타나는 비지성적 행위들의 타당성을 시위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지성인들의 인식에 변화를 주려고 했다.
그는 “회화는 항상 죽어 있지만 난 그것을 염려하지는 않는다”고 말했으며, “당신이 만일 하나를 이해한다면 당신은 그것을 다른 것을 위해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나의 작업방법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드 쿠닝이 1963년에 헤스와 인터뷰한 내용이 『로케이션 Location』 잡지에 보도되었다.
“그림의 내용들은 얼핏 보는 것이며 마치 섬광과도 같다. 그것들은 아주 작고도 작은 내용들이다.”
그는 사람들이 그림을 처음 대할 때 그림의 내용이나 의미는 관람하는 사람들의 순간적 인식과 같다는 것을 역설하면서 그것을 섬광에 비유했다.
폴록보다 늦게 인정을 받은 그는 그래서 늦게까지 빈곤한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러나 일레인과는 애정이 있었으므로 다른 예술가들과는 달리 빈곤 속에서 두 사람은 더욱 가까웠는데 오히려 돈이 생기자 별거하게 되었다.
일레인은 “지독한 가난은 우리가 동거하는 데 중요했다”고 하며 “가난은 윌렘이 미술품 수집가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1954년에야 물러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