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우의 <폴록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드 쿠닝의 ‘인간’이미지 탐구
드 쿠닝의 첫 개인전이 1948년 이간(Egan) 화랑에서 열렸다.
그의 전람회는 성공적이었고, 평론가들은 “열정과 기교의 유일한 집중 … 무서운 에너지, 묘기, 요염 …”이라며 그의 그림들을 칭찬했다.
드 쿠닝만이 홀로 폴록의 위대한 적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전람회가 열리고 며칠 후 모마에서는 그의 그림 한 점을 구입했으며 사람들은 그에 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드 쿠닝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폴록은 의기소침해졌고 드 쿠닝에 대한 시기심도 그만큼 커졌다.
드 쿠닝의 개인전이 끝나고 8번가에 있는 잭 레스토랑에서 그를 위한 파티가 열렸을 때 폴록은 “대포처럼 들어왔다”, “잭슨은 모든 사람들에게 마구 빈정거렸고 아무도 그의 기분을 전환시킬 수 없었다.
그는 가까운 친구들에게까지도 빈정거렸는데 그가 그렇게 심했던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모든 사람들은 두려움으로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가 무엇이든 집어들어 누구에게 던져버릴지 알 수 없었다”고 바지오츠는 전했다.
폴록은 다시 고키에게로 다가갔는데 그때 고키는 벽에 기댄 채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칼로 연필을 뾰족하게 깎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마주보면서 아주 위험한 순간에까지 이르렀는데 고키의 눈총은 ‘너 조심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고키는 결국 “미안하다. 폴록, 너와 나는 다른 종류의 예술가이다”라고 말했다.
“이때의 장면은 무대에서의 한 장면과도 같았다”고 바지오츠는 상세하게 기억했다.
바지오츠는 여러 사람들 속에서 커다란 소리로 “잭슨, 빌어먹을, 그만두지 못해!”라고 소리쳤고 폴록은 자신의 말을 고분고분 들었다고 첨언했다.
드 쿠닝은 사람을 주제로 그림들을 그렸다.
그는 “한때 나는 사람의 모습을 붉은색이나 파란색으로 그리면서 그러한 그림들이 아주 아름답다고 생각했고, 이제는 사람들을 살색으로 칠할 때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고백하면서 “미술은 어떤 한 가지 방법에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난 그렇게 하는 것이 정말이지 웃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그렇게 안 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오늘날의 회화를 항상 부분적으로 르네상스와 연계해서 생각했다.
회화의 상스러움과 다육질의 요소들은 특히 서양적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우리는 지금 서양문명을 타고 세계를 두루 여행하고 있다고 했으며 이렇게 말한 적도 있었다.
“난 내가 동양예술에 관해서 조금밖에 모른다고 시인한다.
그러나 그 이유는 내가 찾고 또 말하려고 하는 것들을 동양예술에서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동양의 아름다움에 대한 아이디어는 ‘여기에는 없다’이다.
여기 이 상태 안에는 부재한다.
부재하기 때문에 그것이 훌륭한 것이다.
내가 절대주의와 순수주의(purism), 그리고 사물의 모습들이 전혀 없는 추상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1947년부터 드 쿠닝은 고키처럼 입체주의와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의 개인적인 합성을 시도했다.
또 그는 분석입체주의 화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색을 제거하는 작업에 열중했다.
그는 단순한 검정색과 흰색으로 사람의 모습을 그림으로써 인간적인 점을 드러내려고 했다.
그의 그림에서 꽉 찬 형태는 루벤스와 렘브란트의 화법을 응용한 것이었다.
<발굴 Excavation>(94)은 그의 복잡하고 조밀한 방법을 잘 설명해준다.
이 작품은 1950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소개되었다.
그때 비엔날레에서는 유럽 예술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졌으며 최우수상은 앙리 마티스가 수상했다.
그가 흰색으로 드로잉하고 검정색으로 그린 동력주의 추상화는 1950~51년에 그린 <나이트 스퀘어 Night Square>였다.
드 쿠닝은 다른 예술가와는 달리 새로운 회화방법을 찾아내어 그러한 방법으로 새로운 표현주의를 창조하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