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샹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뒤샹, 반드시 프랑스를 떠나야 한다고 난 결심했습니다
전쟁 중이었지만 유럽의 예술가들을 위한 전시회를 미국에서 개최하기 위해 월터 패츠가 여름에 파리로 왔다.
아모리 쇼가 성공하자 그는 유럽 미술을 좀더 미국에 소개하고 싶어 했다.
그는 레이몽과 우정이 두터웠는데 레이몽은 그때 군인병원에서 의무병으로 복무하고 있었다.
패츠는 존 퀸의 후원으로 캐롤 화랑에서 열린 세 차례에 걸친 근래 프랑스 예술가들의 전시회를 관람한 후 캐롤 화랑에서 작품들을 구입했고, 마티스와 세잔의 그림들도 구입했다.
패츠는 재혼한 독일 태생 예술가 아내와 함께 파리를 활보했지만 프랑스 공무원들의 반독일 감정으로부터 불편한 일을 당한 적은 없었는데, 루wm벨트 대통령이 써준 추천서를 소지하고 있었기 때문이
다. 그는 뒤샹과 오랫동안 대화한 후 뉴욕으로 갈 것을 그에게 권했다.
전쟁이 발발하고 많은 예술가들이 징집되어 파리 시가는 텅 빈 느낌이었다.
자크 비용은 1914년 10월에 징집되어 전선에 배치되었고, 피카비아, 레제, 브라크, 글레이즈, 메쳉제, 그리고 그 밖의 예술가들도 전선으로 향했다.
브라크와 레제는 부상병이 되어 후송되었는데 브라크는 머리를 다쳤고, 레제는 가슴에 화상을 입었다.
아폴리네르는 이탈리아 국적을 가졌지만 프랑스 시민권을 신청한 상태였으므로 자원해야 했고, 그도 머리에 부상당해 후송되었다.
뒤샹의 친구 두무세와 트리부는 군의관으로 복무했으며, 뒤샹의 형수인 가비와 이본느, 그리고 동생 수잔느는 간호병으로 복무했다.
뒤샹은 1915년 1월에 징집통지서를 받았지만 신체검사 때 심장에서 약간 설렁거리는 소리가 난다는 판정을 받아 면제되었다.
실제로는 그의 건강에 이상이 없었으므로 다행스러운 판정이었다.
그는 면제판정을 받은 사실을 뉴욕으로 떠난 패츠에게 편지로 알리며 “그들은 내가 군인이 되기에 병이 너무 심하다고 합니다. 그들의 결정을 섭섭하게 생각해야 할 이유가 없음은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입니다”라고 적었다.
패츠는 답장을 보내면서 퀸이 캐롤 화랑에서 그의 그림을 두 점 구입한 사실을 알려주었다.
뒤샹은 4월에 패츠에게 보낸 편지에서 레이몽의 조각들과 자신의 그림 세 점을 그에게 발송했다고 알렸다.
그가 보낸 세 점의 작품은 <계단을 내려가는 누드 No.1>, <처녀로부터 신부에 이르는 길>, 그리고 <종이에 그린 커다란 드로잉>이었다. <종이에 그린 커다란 드로잉>은 <큰 유리>를 위한 첫 드로잉이었는데 현존하지 않는다.
뒤샹이 패츠에게 보낸 4월 2일자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반드시 프랑스를 떠나야 한다고 난 결심했습니다.
지난 11월에 당신에게 말한 대로 뉴욕에 거주할 생각인데, 이는 생활비를 내가 벌 수 있을 경우에 한해서입니다.
몇 가지 의견을 묻고 싶습니다.
첫째, 당신은 내가 작업에 몰두할 수 있도록 도서관이나 연구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웃지 마십시오.
난 문학학사 학위로 대학을 졸업했지만 영어를 할 줄 모릅니다.
그렇지만 도서관에서 견습원으로 2년 동안 일한 적은 있습니다.
둘째, 5월 말에야 떠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생각하기에 이때가 적당합니까?
아니면 9월까지 기다렸다가 떠나야 합니까.
나의 이런 계획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해서 당신이 편지에 당신의 생각을 따로 적어 보내주기 바라며, 내 계획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형들에게 알리지 말아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