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우의 <폴록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재니스 화랑에서의 폴록의 첫 전람회
리는 폴록과의 “타이틀 쟁탈전”에서 자신이 도저히 챔피언이 될 수는 없음을 알고서 폴록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유일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신이 낳은 자식입니다. 와서 그를 보살피세요.”
류마티즘으로 고생하던 스텔라는 며느리의 청을 받고 10월 중순에 스프링스로 왔다.
스텔라는 아들과 며느리 모두가 지쳐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어머니가 온 후로 폴록은 술을 마시지 않고 화실로 가서 종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1월 10일에 열릴 전람회를 목전에 두고 그는 조급해지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으므로 새로운 그림들을 그릴 수가 없었다.
폴록은 컬러를 사용했으며 홀리스틱 방법으로 그림들을 그렸다.
그는 검정색으로 그렸던 그림에 붉은색, 노란색, 파란색, 그리고 흰색을 칠하면서 <수렴현상 Convergence>을 그렸다.
또 그는 40년대 말에 사용한 물감 떨어뜨리기 기교를 사용했다.
그렇게 해서 모두 열두 점을 그렸는데 그것은 지난 해에 그렸던 그림들의 반도 안 되는 숫자였다.
여기서 폴록의 유명한 그림 <파란 막대기들 Blue Poles>(109)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그 그림은 폴록이 토니, 뉴먼과 함께 그림을 망친 적이 있었던 후에 그리기 시작한 작품인데, 이 그림을 그리고 나서 낮에 바라보니 기괴한 모습이므로 폴록은 그 그림을 없애려고 했다.
그러나 막상 없애려니 213㎝ 높이에 549㎝ 길이의 그림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캔버스는 벨기에에서 생산된 린넨으로서 50달러에 해당하는 비싼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 캔버스를 구제해보려는 의도로 그 위에 색들을 더 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에 차지 않았다.
그는 수주 동안 최소한 여섯 차례에 걸쳐 다른 색을 칠했으며, 리에게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폴록은 해결방법으로 여덟 개의 막대기들을 수직으로 더욱 힘 있게, 고른 간격으로 이미지화했다.
그림은 완성되었고 폴록은 친구들과 함께 그것을 포함한 열두 점을 전람회 전날 재니스 화랑으로 운반했다.
친구들이 그림을 벽에 거느라고 분주한 틈에 폴록이 사라졌고, 그가 다시 나타났을 때는 술에 취해 망치질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결국 새벽 네 시가 되어서야 그림들을 모두 벽에 걸 수 있었다.
전람회 첫날 클라인이 와서 “잭슨, 한잔하러 가자”고 말했는데 두 사람은 그날 돌아오지 않았다.
평론가들은 전람회에 와서 그림들을 둘러본 후 일제히 포문을 열었는데 칭찬이 자자했다.
『네이션』 『뉴욕 타임즈』 『뉴요커』 그리고 미술잡지들이 칭찬했다.
『아트 뉴스』는 1952년의 개인전들 중 폴록의 전람회를 두 번째로 꼽았는데 첫 번째는 미로의 전람회였으므로 미국 작가들의 전람회 가운데서는 가장 우수했다는 의미였다.
그런데도 폴록은 “오, 빌어먹을 놈들. 그 시팔놈들이 뭘 알아!”라고 화를 내었다는데 정말 폴록은 미로까지 능가하려고 했을까?
평론가들의 칭찬에도 불구하고 그림은 팔리지 않았다.
폴록은 재니스에게 자주 전화를 걸어 그림이 팔렸느냐고 물었고, 재니스는 한두 사람이 관심을 나타냈다고만 말했다.
볼티모어에서 온 미술품 수집가 한 사람이 그림을 한 점 사서 거실에 걸려고 했으나 그의 그림이 4인치가 더 길다고 사지 않았다.
전람회가 끝났고, 한 점이 팔렸을 뿐이었다.
그 그림은 작았고, 수수료를 제하고 폴록의 손에 들어온 돈은 1,000달러였다.
폴록은 그림을 더 팔아보려고 베티를 떨치고 나온 것이었는데, 이제서야 그의 그림이 팔리지 않은 것은 베티의 무능함 때문이 아니었음을 알 것 같았다.
아무도 폴록의 그림을 팔 수 없었다.
<파란 막대기들>에 관한 이야기가 아직 남아 있다.
전람회가 끝나고 재니스는 그 그림을 프레임에서 떼어 돌돌 만 후 그림들을 보관하는 곳에 넣어두었다.
일 년이 지나도록 그 그림은 팔리지 않은 채 자물쇠도 없는 창고에 방치되어 있었는데 리가 재니스에게 그림을 그렇게 보관하면 그림에 상처가 생긴다고 투덜거리자 그는 프레임에 붙여서 보관할 넓은 장소가 없다면서 그 그림을 스프링스로 돌려보냈다.
1954년 1월 <파란 막대기들>은 다시 재니스 화랑으로 운반되어 ‘오늘날의 아홉 미국 예술가들’ 전람회에서 다시 소개되었을 때 팔렸다.
미술품 수집가 프레드 올센이 토니의 권유를 받아들여 그것을 6,000달러에 구입한 것이었다.
토니는 코네티컷 주에 있는 올센의 집을 디자인해준 적이 있었으므로 그와는 잘 아는 사이였다.
재니스에게는 2,000달러의 수수료가 생겼고 폴록은 4,000달러를 받았다.
2년 후 프레드는 그 그림을 다른 수집가 벤 헬러에게 3만 2천 달러에 팔았으며 헬러는 1973년에 그 그림을 캔베라에 있는 오스트리아 국립 화랑에 200만 달러에 팔았다.
당시 그 금액은 미국 화가들의 그림 중 최고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