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과학과 미켈란젤로의 영혼>(미술문화)에서
메디치 가와 인문주의
코시모가 경제와 정치 외에도 문학, 학문, 철학, 예술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이탈리아에 행운을 가져다주었다.
코시모는 지성인이었고 예술에 대한 취향이 있었다.
그는 라틴어에 능통했고 수박겉핥기였지만 그리스어, 히브리어, 아라비아어를 익혔다.
그는 프라 안젤리코의 깊은 신앙을 나타낸 그림, 프라 필리포 리피의 사악한 소행을 묘사한 판화, 기베르티의 고전양식의 릴리프, 도나텔로의 조각, 알베르티의 고상함, 브루넬레스코의 장려한 교회, 미켈로조의 자제된 건축의 힘, 제미스토스 플레토의 이교도적 플라톤주의, 피코 델라 미란돌라와 피티노의 신비적 플라토니즘 등을 좋아했다.
이들 모두는 코시모의 후원을 받았다.
코시모는 요아네스 아르지로풀로스를 피렌체로 오게 해서 자녀들에게 고대 그리스 문학과 언어를 가르치게 했고 자신은 피치노로부터 12년 동안 그리스어와 로마어를 배웠다.
그는 고전 문헌을 수집했으며 그의 선박들은 그리스와 알렉산드리아로부터 많은 고전 사본들을 운반해왔다.
니콜로 데 니콜리가 고대 사본을 구입하는 일에 온 정열을 다 쏟을 때 코시모는 그로 하여금 죽을 때까지 메디치 은행으로부터 무제한으로 돈을 가져다 구입할 수 있게 했다.
코시모는 마흔다섯 명의 필사자들을 고용해서 자신이 살 수 없는 사본에 대해서는 필사하도록 했다.
이렇게 수집한 것들을 그는 상 마르코 수도원이나 피솔레 수도원에 보관하거나 자신의 도서관에 보관했다.
니콜리가 1437년에 사망했을 때 그가 사본을 구입하는 데 쓴 돈이 6천 플로린(15만 달러)에 달했고 갚지 못한 돈도 꽤 되었다.
코시모는 자신이 수집한 사본들을 교사나 학생들에게 돈을 받지 않고 열람하게 해주었다.
메디치 가문에 의해서 그리고 이 시기에 인문주의자들은 종교에 대한 관심에서 철학으로, 천상에 대한 관심에서 지상에 대한 관심으로 마음을 돌리게 되었고 예술에 관한 이교도의 풍부한 사고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들은 고전 문화에 대한 연구를 우마니타umanita라고 불렀는데, 인문학humanities이란 뜻이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헌을 통해서 그들은 인체의 아름다움, 인간의 모든 즐거움과 고통, 유혹에 약한 이성의 권위 등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인문주의인 것이다.
코시모는 1445년에 플라톤의 아카데미를 설립하고 그곳에서 플라톤을 연구하게 했고 피치노로 하여금 플라톤의 저작을 번역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