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진과 안중식


소림 조석진(1853~1920)과 심전 안중식(1861~1919)은 근대가 시작되는 역사적 상황 속에서 자신들의 예술적 위상을 세우지는 못했지만 조선왕조 최후의 화가들이라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그리고 근대미술을 이끈 첫 세대 작가들이 두 사람의 문하에서 수학했다는 데서 그들을 언급하게 된다.
훗날 대가로 성공하여 화단에 군림한 이상범, 김은호, 노수현, 이용우, 최우석, 박승무 등이 두 사람의 문하생들이었다.

삶과 예술에 있어 조석진과 안중식은 숙명적인 한 쌍이었다.
안중식이 1919년 타계하자 조석진은 슬픔을 토로했다.
“고인을 만난 후로 40년간을 형제같이 지내며 동고동락하였거니와 내가 고인보다 8년이나 더 살았는데 고인이 아무리 신체가 허약하였기로 이렇게 허무하게 돌아갈 줄은 몰랐다.”

두 사람의 청년시절 조선에는 근대 변혁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조일수호조규에 의해 부산(1876), 원산(1880), 인천(1883)의 세 항구가 개방된 후 조선에는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개항 이후 정부는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에 입각하여 기존의 유교적 지배이념과 정치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서양의 발달한 산업·군사기술 및 상공업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1880년 12월에는 통상과 외국문물 수용을 담당하기 위해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을 설치했다.
종래의 5군영을 2군영으로 통합하고 따로 신식군대 별기군別技軍을 신설하는 등 군제도 개편했으며, 농업학교와 관영회사를 새로 설립하는 등 각 방면에서 근대화 정책을 추진했다.
이듬해에는 청나라에 영선사領選使를 파견하여 군사기술을 도입했으며 일본에 신사유람단紳士遊覽團을 파견하여 명치유신 이후 근대화정책과 그 성과를 조사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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