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쾌락이란?

 

 

 

 

잘 알려진 쾌락주의자 존 스튜어트 밀은 이런 생각에서 고급 쾌락과 저급 쾌락을 구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름지기 인간은 사색과 진리 탐구, 우정과 정치 활동, 개성의 계발 같은 것을 포괄하는 고급 쾌락을 추구해야 한다. 인간에게는 쾌락의 양보다 질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종류를 가리지 않고 쾌락을 추구하는 인간은 기껏해야 따뜻한 잠자리와 배부른 식사에 만족하는 동물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를 쾌락주의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은 곧 ‘행복’과 ‘만족’이라는 다른 개념을 같은 것으로 혼동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참 행복은 고급 쾌락이 충족될 때 온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고급 쾌락을 추구하려는 노력이 비록 절망과 좌절로 가로막혀 있을지라도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인간으로 사는 것이 낫고, 만족해하는 바보보다 불만스러워하는 소크라테스가 낫다”고 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돼지가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까닭은 세계 전체를 볼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고급 쾌락을 맛본다면 돼지는 그것이 더 나은 것임을 이내 알게 되리라. 고급 쾌락은 으레 그 양은 적더라도 질은 더 높다.
밀은 이러한 구별을 내세우면서, 사람들은 어떤 행동, 노력, 삶의 방식이 훨씬 더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으며 또 보람이 있는 것으로 여긴다면서 직감의 작용을 인정했다. 사랑, 탐구, 예술, 우정, 개성 따위가 모두 사라져버린 사회를 끔찍하게 여기는 까닭은 그곳이 비정하고 무의미한 곳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고안된 생지옥이 스스로 재생산을 거듭하면서 존속하는 것을 보노라면, 인간이 자신의 삶을 열어가는 것이 아니라 시시포스의 이미지를 여전히 재생하는 데 가깝다는 걸 느낀다. 우리의 삶은 시간을 들여 이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것들을 추구하는 일로 채워진다. 우리의 삶은 세상에 펼쳐지는 풍경과는 대비되게 무척 의미심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인간은 쾌락과 더불어 의미 있는 활동을 추구하는 존재임을 인정하는 바로 그 순간, 쾌락주의를 벗어나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밀은 이 대목에서 줄타기하듯이 균형을 찾으려 한다. 그는 인간의 삶에서 쾌락을 초월하는 선이란 있을 수 없다는 쾌락주의의 견해를 포기하지 않는 가운데 인간의 어떤 노력은 다른 노력보다 더 의미가 있다는 사상을 받아들인다. 더 고급 형태의 쾌락에 관한 그의 이론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두 번째 사고 실험을 통해서 밀의 묘책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이 시나리오가 어떤 종류의 쾌락이건, 즉 고급이건 저급이건 그것만이 인간이 삶에서 찾으려 하는 전부란 말인가? 쾌락은 하나의 정신 상태이며, 느낌일 뿐이다. 물론 이러한 느낌은 다른 어떤 것에서도 발생하며, 의미 있는 활동에 참여하는 데서 비롯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쾌락주의자가 주장했듯이 행위보다 느낌이 중요하다면, 다른 방법으로도 그런 느낌이 생기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자신의 삶을 좋은 것으로 여길 것이다. 두 번째 사고에 관한 실험은 이 시나리오에 따라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신경심리학자들이 우리가 원하는 경험을 하게 해주는 놀라운 장치를 만들었다고 가정해보자.
이 실험장치를 켜기만 하면 우리는 바라는 대로 고급 쾌락을 경험할 수 있다. 체 게바라와 정치 이야기를 하고, 『미들마치Middlemarch』를 쓰고, 칸트나 파스칼과 더불어 무한함에 관해 생각할 수 있다고 하자. 물론 그 어느 것도 실제로 일어나는 건 아니다. 우리는 단지 머리에 음극판을 붙인 채 암실에 누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장치에 연결되어 있는 한, 우리가 알 수 있는 실상이란 아무것도 없다. 그저 환각으로 느끼는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제 자신에게 물어보라. 이 실험장치에 매달린 채 흘려보낸 삶을 과연 최선의 삶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밀의 주장이 옳다면, 그것은 최선의 삶이다. 여러 말 할 것 없이, 고급 쾌락을 온전히 누리게 만드는 프로그램을 임의대로 선택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실험장치에 매달려 보내는 삶은 하나의 공허한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그런지를 확인하기 위해, 우리가 실험장치에서 풀려난 뒤 그 모든 것이 ‘단지’ 경험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 때 과연 어떤 느낌이 들지 생각해보라. 극도의 실망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실망을 느끼는 이유는 실제로 그런 일들을 겪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경험을 했다는 인식이나 이해가 없다면 쾌락을 경험한 것이 아니다. 밀은 인간의 선을 나타내는 하나의신호를 인간의 선 그 자체로 보는 오류를 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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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孔子가 가장 존경한 왕은 누구였습니까?

 

 

공자孔子가 가장 존경한 주周나라의 문왕文王은 기원전 12, 11세기경에 생존했던 인물입니다. 문왕은 기원전 1600년부터 기원전 1046년까지 31대의 왕을 이어오며 실존한 것으로 알려진 상商나라(은殷나라라고도 함)를 기원전 12세기 멸망시킨 주周나라의 창건자인 무왕武王의 아버지입니다. 성은 희姬 이름은 창昌인 문왕은 죽은 후 시호를 추존하여 문왕으로 불리었습니다. 희창姬昌은 상나라 때 주周 지역을 다스리던 제후 계력季歷의 아들이었으며, 서쪽 제후들 가운데 우두머리인 서백西伯으로서 기산岐山 아래에 나라를 세우고 어진 정치로 백성의 신망을 얻었으나, 참소를 당해 유리羑里에 유폐幽閉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풀려나와 태공망太公望 여상呂尙(강상姜尙이라고도 함)을 등용하여 국력을 키웠습니다. 훗날 그의 아들 무왕이 상나라 마지막 왕인 제30대 제신帝辛(별명이 주紂)을 내쫓고 주周나라를 건립한 뒤 그를 문왕으로 추존追尊했습니다. 희창이 유리에 유폐되었을 때 유교儒敎의 고전인 <주역周易>의 괘사卦辭를 지었으며, 복희선천팔괘伏羲先天八卦를 연역演易하여 주역후천팔괘周易後天八卦를 지었다고 전해지나, 괘사나 효사爻辭는 점占의 전문가들 사이에서 생겨 고정된 것으로, 후대에 문왕을 찬미하기 위한 서술로 추정됩니다. 오늘날에는 주역이 기원전 403년 이후 사이에 체제가 갖추어진 것으로 보고, 문왕, 주공(문왕의 아들 무왕), 공자가 <주역>을 나눠지었다는 설은 근거가 부족하다고 봅니다.

공자는 삼황오제三皇五帝 신화 가운데 오제五帝의 마지막 군주였던 순舜임금이 우禹에게 천하를 물려주어 우가 세웠다는 하夏나라와 상나라의 문화에 비교하면 주나라의 문화가 “더욱 빛나는지라 나는 주나라를 좇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공자는 광匡 땅에서 위험에 봉착했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문왕이 이미 돌아가셨으니 예악문물禮樂文物이 이제 없지 않느냐? 하늘이 장차 이 문물을 없애려면 뒤에 죽을 자(공자 자신을 말함)가 이 문물을 전수받지 못할 것이다. 하늘이 이를 없애고자 하지 않는다면, 광 땅의 사람들이 어찌 나에게 해를 끼칠 수 있겠는가?

 

문왕에 대한 공자의 존경심은 다음의 말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누가 나를 기용한다면 나는 동쪽에 주나라를 다시 세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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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이 비뚤어진 사람은 생식기가 허하다

 

 

“한 일 주일 전쯤인가, 이불 빨래를 좀 하고 났더니 그때부터 당최 허리에 힘이 없네요. 그리고 속 쓰린 것도 여전한 것 같고, 오후엔 숨이 가브고 두통이 너무 심해요. 무엇보다 속을 후벼 파는 것 같아서 도통 뭘 먹을 수가 없네요. 그래서 더 기운이 없다 싶기도 하구요.”

<생긴 대로 병이 온다>의 저자 조성태는 그녀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고 인당(미간) 부분이 찌그러들고 입술이 비뚤어진 데다 입술 근처가 터지고 찢어지고 얼굴을 잔뜩 찌푸린 걸 보았습니다. 그가 목에 가래가 끼거나 가슴이 답답하면서 입이 마르지 않느냐고 물으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 참, 그리고 신물도 올라와요. 기지개를 켤 때 쥐가 나기도 하구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51세의 여자 이씨는 10년째 이런 증상으로 시달려왔다고 했습니다.

조성태가 보니 그 환자의 입이 비뚤어져 있었습니다. 여성의 입은 생식기와 관련이 있으므로 생식기가 허해서 이런 증상이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자식을 얻지 못하고 오십을 넘겼으므로 그 환자는 평소에 마음이 불편하여 속에서 자꾸 화가 치솟고 숨이 가빠지고 머리가 터질 것 같으며 신물이 넘어온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 환자에게 화담청화탕化痰淸化湯을 처방했습니다. 화담청화탕은 조잡嘈雜, 즉 명치 아래가 쌀쌀하면서 아픈 병증에 처방하는 약입니다. <의학정전醫學正傳> ‘조잡애기嘈雜噯氣’에는 “조잡증은 배가 고픈 듯하면서도 고프지 않고 아픈 듯하면서도 아프지 않으면서 오뇌하여 편하지 않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 환자는 화담청화탕을 복용한 후 두 번째 진료를 받으려고 와서 “약을 먹고 나니 혓바닥 갈라진 게 감쪽같이 나았어요. 입술 가장자리가 터지는 것도 괜찮아졌구요. 선생님, 한번 보세요” 하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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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시대는 무도無道의 시대였습니까?

 

 

공자는 예악禮樂 중시했는데, 유가儒家의 문화는 예禮와 악樂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예는 예의禮義 혹은 예절禮節을 말하고 악은 음악입니다. 예는 상하上下와 귀천貴賤의 신분과 등급 질서를 정해주고, 악은 위로는 임금에서부터 아래로는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을 화합하게 해준다고 하여 대단히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유가는 음악이 조화와 화합은 물론 백성을 온순하게 교화하는 기능을 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특별히 중요시했습니다.

<논어論語>에 공자가 예와 더불어 악을 나라를 다스리는 일과 제자를 가르치는 일의 근본으로 삼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 여럿 등장합니다. 공자는 란 군신, 부자, 형제, 부부, 친구 사이에 지켜야 할 공경과 질서를 말하는 것이지 단순히 의복과 의례 등의 형식을 가리키지 않으며, 악이란 나라와 백성이 서로 화합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단순히 종과 북을 울려 소리를 내는 것을 가리키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공자는, 군자의 음악은 온화하고 부드럽고 조화로워 세상의 만물을 자라게 하는 반면 소인의 음악은 어지럽고 살벌하며 조화롭지 못해 풍속을 어지럽게 할 뿐이라고 했습니다. 군자의 음악으로 나라를 다스리면 백성은 평온한 마음을 갖게 되어 포악한 짓을 하지 않는 반면, 소인의 음악으로 나라를 다스리면 백성의 풍속은 어지러워져 세상은 혼란스러워진다는 것이 공자의 주장입니다.

<논어>에 천하天下가 무도無道였다는 공자孔子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천하에 질서가 있다면 예악禮樂의 제정과 징벌에 관한 명령이 천자로부터 나오고 천하에 질서가 없으면 예악의 제정과 징벌에 관한 명령이 제후로부터 나온다. 제후로부터 나오기 시작하면 10세대를 지나 천하를 잃지 않는 경우가 드물고, 대부로부터 나오기 시작하면 5세대를 지나 천하를 잃지 않는 경우가 드물며, 대부의 가신이 정권을 잡게 되면 3세대를 지나 천하를 잃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 천하에 질서가 있으면 청지권력이 대부의 손에 있지 않게 되며, 천하에 질서가 있으면 백성이 정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잔소리를 하지 않게 된다.

 

춘추시대春秋時代 노魯나라의 태사太史인 좌구명左丘明이 공자孔子의 <춘추春秋>를 풀이한 책冊인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는 노나라가 정치적으로 혼란에 빠졌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노나라의 소공昭公이 진晉나라에 갔습니다. 그는 신하인 계손季孫에게 쫓겨나 제나라로 도망갈 정도로 왕권을 행사할 만한 실력이 거의 없었습니다. 진나라로 간 소공은 교외의 상견례에서부터 떠날 때의 선물교환에 이르기까지 예에 어긋남이 없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진나라의 제후가 여숙제女叔齊에게 “노나라 소공은 예를 잘 알지 않는가?” 하고 묻자 여숙제가 “노 소공이 어찌 예를 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반문했습니다. 이에 제후가 “교외의 의식부터 떠날 때의 선물의식에 이르기까지 예에 어긋나지 않은 사람을 어찌 예를 모른다고 하겠는가?” 하고 말하자 여숙제가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예가 아니라 형식적인 의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라는 것은 그것으로써 나라를 보존하고 정령政令을 실행하여 이를 통해서 백성을 잃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지금 정령이 대부의 손에 있습니다. ... 제후의 봉토公室가 넷으로 (두 부분은 계손季孫에게, 한 부분씩은 숙손叔孫과 맹손孟孫에게) 나뉘어 백성이 다른 사람들에 의탁해 살고 아무도 제후를 생각하지 않는데도, 소공은 자신의 미래를 계획하지 못합니다. 나라의 군주가 되어, 예의 본말을 돌보고 적용하는 데 힘쓰지 않고 사소한 일들에 대한 형식적 의식만 행하는 것을 높게 평가하니 그가 예에 익숙하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과 멀지 않습니까?

 

노나라는 세 대귀족인 계손季孫, 숙손叔孫, 맹손孟孫이 정권을 쥐고 있었습니다. 공자는 계손을 다음과 같은 품평을 <논어>에 남겼습니다.

 

그가 정원에서 64인으로 음악에 맞춰 춤을 추게 한다니 차마 그 무슨 짓인들 못하겠는가?

 

<논어>에는 공자의 다음과 같은 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어질지 못하면 예禮는 무엇하자는 것이며, 사람이 어질지 못하면 악樂은 무엇하자는 것이냐?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는

예禮를 가리켜서 “국가의 기본”, “통치의 수단”, “왕이 되는 근본 원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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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이 허옇게 되면 혈血이 부족

 

 

입술이 건조하면서 트고 벗겨지는 여성은 대부분 냉으로 고생합니다. 입술에 혈색이 돌지 않고 마르거나 트면 화장으로 감출 것이 아니라 일단 생식기에 이상이 없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비장에 이상이 있으면 입술이 트는 경우도 있습니다.

노인들의 경우 입술이 자꾸 마르는 것은 진액津液이 부족해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진액이란 체내의 정상적 수액의 총칭입니다. 세포 내 액intracellular fluid(체액body fluid 중 세포 내에 포함되어 있으며 체액의 약 65%를 차지함), 세포 외 액extracellular fluid은 물론 소화액이나 관절강腔액, 눈물, 땀, 요 등까지 포함됩니다. 세포 외 액은 조직의 간질間質에 있어서 직접 세포에 접해 있는 간질액과 혈관 내를 순환하여 전신의 간질액의 조성, 물리적 성질을 균일화하고 물질이나 열의 원격부로의 수송매체의 역할을 하고 있는 혈장으로 나뉩니다. 진액은 기氣에 의해 전신에 배포되나 일부는 혈중에 들어가 혈의 성분도 됩니다. 몸에 진액이 부족하면 여러 가지 증상이 동반됩니다. 두통과 어지럼증, 관절 통증이 찾아오며 감기 비슷하게 가래와 기침이 많아지고, 열이 훅 났다 식는 한열 증상도 나타나며 땀을 많이 흘리기도 합니다.

입술이 탈색된 듯 허옇게 된 것은 혈血이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특히 생리의 양이 많거나 생리 기간이 너무 길어졌을 때 입술색이 탈색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대는 서둘러 치료해야 합니다.

입술이 푸른 것은 몸이 냉冷하기 때문입니다. 몸이 차면 소화도 잘 안 되고 장이 나빠서 설사를 하게 됩니다. 한랭성 두드러기라 해서 추운 곳에만 가면 두드러기가 나서 고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성은 특별히 냉한 것이 좋지 않은데, 이것이 불임의 원인이 될 때가 있습니다.

입술이 붉은 것은 위열胃熱이라 하며, 배고프면 잘 참지 못하고 음식을 급하게 먹기 때문에 위장병에 걸리기 쉽습니다. 위胃에 열熱이 있는 병리상태를 위열이라 하는데, 평소에 중초위양中焦胃陽이 성盛하거나, 열사熱邪가 위를 침범하거나, 신열辛熱한 음식, 구운 음식이나 기름기가 많은 음식 등을 좋아하여 생깁니다. 입에서 냄새가 나며, 쉬이 배가 고프고 가슴앓이가 있으며, 소변이 적고 붉은색이며, 대변이 단단한 등의 증상이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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