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급 쾌락이란?

잘 알려진 쾌락주의자 존 스튜어트 밀은 이런 생각에서 고급 쾌락과 저급 쾌락을 구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름지기 인간은 사색과 진리 탐구, 우정과 정치 활동, 개성의 계발 같은 것을 포괄하는 고급 쾌락을 추구해야 한다. 인간에게는 쾌락의 양보다 질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종류를 가리지 않고 쾌락을 추구하는 인간은 기껏해야 따뜻한 잠자리와 배부른 식사에 만족하는 동물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를 쾌락주의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은 곧 ‘행복’과 ‘만족’이라는 다른 개념을 같은 것으로 혼동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참 행복은 고급 쾌락이 충족될 때 온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고급 쾌락을 추구하려는 노력이 비록 절망과 좌절로 가로막혀 있을지라도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인간으로 사는 것이 낫고, 만족해하는 바보보다 불만스러워하는 소크라테스가 낫다”고 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돼지가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까닭은 세계 전체를 볼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고급 쾌락을 맛본다면 돼지는 그것이 더 나은 것임을 이내 알게 되리라. 고급 쾌락은 으레 그 양은 적더라도 질은 더 높다.
밀은 이러한 구별을 내세우면서, 사람들은 어떤 행동, 노력, 삶의 방식이 훨씬 더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으며 또 보람이 있는 것으로 여긴다면서 직감의 작용을 인정했다. 사랑, 탐구, 예술, 우정, 개성 따위가 모두 사라져버린 사회를 끔찍하게 여기는 까닭은 그곳이 비정하고 무의미한 곳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고안된 생지옥이 스스로 재생산을 거듭하면서 존속하는 것을 보노라면, 인간이 자신의 삶을 열어가는 것이 아니라 시시포스의 이미지를 여전히 재생하는 데 가깝다는 걸 느낀다. 우리의 삶은 시간을 들여 이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것들을 추구하는 일로 채워진다. 우리의 삶은 세상에 펼쳐지는 풍경과는 대비되게 무척 의미심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인간은 쾌락과 더불어 의미 있는 활동을 추구하는 존재임을 인정하는 바로 그 순간, 쾌락주의를 벗어나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밀은 이 대목에서 줄타기하듯이 균형을 찾으려 한다. 그는 인간의 삶에서 쾌락을 초월하는 선이란 있을 수 없다는 쾌락주의의 견해를 포기하지 않는 가운데 인간의 어떤 노력은 다른 노력보다 더 의미가 있다는 사상을 받아들인다. 더 고급 형태의 쾌락에 관한 그의 이론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두 번째 사고 실험을 통해서 밀의 묘책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이 시나리오가 어떤 종류의 쾌락이건, 즉 고급이건 저급이건 그것만이 인간이 삶에서 찾으려 하는 전부란 말인가? 쾌락은 하나의 정신 상태이며, 느낌일 뿐이다. 물론 이러한 느낌은 다른 어떤 것에서도 발생하며, 의미 있는 활동에 참여하는 데서 비롯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쾌락주의자가 주장했듯이 행위보다 느낌이 중요하다면, 다른 방법으로도 그런 느낌이 생기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자신의 삶을 좋은 것으로 여길 것이다. 두 번째 사고에 관한 실험은 이 시나리오에 따라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신경심리학자들이 우리가 원하는 경험을 하게 해주는 놀라운 장치를 만들었다고 가정해보자.
이 실험장치를 켜기만 하면 우리는 바라는 대로 고급 쾌락을 경험할 수 있다. 체 게바라와 정치 이야기를 하고, 『미들마치Middlemarch』를 쓰고, 칸트나 파스칼과 더불어 무한함에 관해 생각할 수 있다고 하자. 물론 그 어느 것도 실제로 일어나는 건 아니다. 우리는 단지 머리에 음극판을 붙인 채 암실에 누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장치에 연결되어 있는 한, 우리가 알 수 있는 실상이란 아무것도 없다. 그저 환각으로 느끼는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제 자신에게 물어보라. 이 실험장치에 매달린 채 흘려보낸 삶을 과연 최선의 삶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밀의 주장이 옳다면, 그것은 최선의 삶이다. 여러 말 할 것 없이, 고급 쾌락을 온전히 누리게 만드는 프로그램을 임의대로 선택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실험장치에 매달려 보내는 삶은 하나의 공허한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그런지를 확인하기 위해, 우리가 실험장치에서 풀려난 뒤 그 모든 것이 ‘단지’ 경험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 때 과연 어떤 느낌이 들지 생각해보라. 극도의 실망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실망을 느끼는 이유는 실제로 그런 일들을 겪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경험을 했다는 인식이나 이해가 없다면 쾌락을 경험한 것이 아니다. 밀은 인간의 선을 나타내는 하나의신호를 인간의 선 그 자체로 보는 오류를 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