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孔子가 가장 존경한 왕은 누구였습니까?

 

 

공자孔子가 가장 존경한 주周나라의 문왕文王은 기원전 12, 11세기경에 생존했던 인물입니다. 문왕은 기원전 1600년부터 기원전 1046년까지 31대의 왕을 이어오며 실존한 것으로 알려진 상商나라(은殷나라라고도 함)를 기원전 12세기 멸망시킨 주周나라의 창건자인 무왕武王의 아버지입니다. 성은 희姬 이름은 창昌인 문왕은 죽은 후 시호를 추존하여 문왕으로 불리었습니다. 희창姬昌은 상나라 때 주周 지역을 다스리던 제후 계력季歷의 아들이었으며, 서쪽 제후들 가운데 우두머리인 서백西伯으로서 기산岐山 아래에 나라를 세우고 어진 정치로 백성의 신망을 얻었으나, 참소를 당해 유리羑里에 유폐幽閉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풀려나와 태공망太公望 여상呂尙(강상姜尙이라고도 함)을 등용하여 국력을 키웠습니다. 훗날 그의 아들 무왕이 상나라 마지막 왕인 제30대 제신帝辛(별명이 주紂)을 내쫓고 주周나라를 건립한 뒤 그를 문왕으로 추존追尊했습니다. 희창이 유리에 유폐되었을 때 유교儒敎의 고전인 <주역周易>의 괘사卦辭를 지었으며, 복희선천팔괘伏羲先天八卦를 연역演易하여 주역후천팔괘周易後天八卦를 지었다고 전해지나, 괘사나 효사爻辭는 점占의 전문가들 사이에서 생겨 고정된 것으로, 후대에 문왕을 찬미하기 위한 서술로 추정됩니다. 오늘날에는 주역이 기원전 403년 이후 사이에 체제가 갖추어진 것으로 보고, 문왕, 주공(문왕의 아들 무왕), 공자가 <주역>을 나눠지었다는 설은 근거가 부족하다고 봅니다.

공자는 삼황오제三皇五帝 신화 가운데 오제五帝의 마지막 군주였던 순舜임금이 우禹에게 천하를 물려주어 우가 세웠다는 하夏나라와 상나라의 문화에 비교하면 주나라의 문화가 “더욱 빛나는지라 나는 주나라를 좇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공자는 광匡 땅에서 위험에 봉착했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문왕이 이미 돌아가셨으니 예악문물禮樂文物이 이제 없지 않느냐? 하늘이 장차 이 문물을 없애려면 뒤에 죽을 자(공자 자신을 말함)가 이 문물을 전수받지 못할 것이다. 하늘이 이를 없애고자 하지 않는다면, 광 땅의 사람들이 어찌 나에게 해를 끼칠 수 있겠는가?

 

문왕에 대한 공자의 존경심은 다음의 말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누가 나를 기용한다면 나는 동쪽에 주나라를 다시 세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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