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냄새가 심하고 혓바닥이 얼룩덜룩한 사람은 심열心熱이 있다

 

 

“몸이 약한 편이라 위염과 장염으로 고생한 적도 있어요. 생리 때마다 허리가 아프다고도 하는데, 손발이 유난히 차서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 또 쉽게 피로를 느끼고 밤에 잠잘 때 혼자 재우면 가위에 눌려요.”

16세의 소녀를 데리고 온 어머니가 <생긴 대로 병이 온다>의 저자 조성태에게 한 말입니다. 소녀는 입 냄새가 무척 심하고 혓바닥에 얼룩덜룩한 무늬가 있었다고 합니다. 소녀의 어머니는 소녀에게 축농증이 생긴 지는 2년 정도 되었으며 축농증 증세가 심해지면 온몸이 몹시 피곤해지면서 입 안이 파이곤 한다고 했습니다.

축농증을 만성 부비동염chronic sinusitis이라고도 하는데, 부비동이란 코 주위의 얼굴 뼈 속에 있는 빈 공간을 말합니다. 이 공간은 작은 구멍(자연공)을 통해 코 속과 연결되어 있고, 이를 통해 부비동 내의 공기의 환기 및 분비물의 배설이 이루어집니다. 부비동염(축농증)이란 자연공이 막혀서 부비동이 제대로 환기 및 배설되지 않아 이차적으로 부비동에 염증이 발생하고, 농성 분비물이 고이면서 염증이 심해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질병의 기간이 4주 미만일 경우에는 급성 부비동염, 3개월 이상 지속될 경우에는 만성 부비동염으로 규정합니다.

조성태가 보니 소녀의 피부색은 흰 편이었고, 입이 좀 튀어나왔으며 입술은 얇고 색깔이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마른 체격에 뼈도 약해 보였다고 합니다. 그는 소녀를 괴롭히는 구취와 축농증, 그리고 혓바닥에 있는 무늬, 혀가 파이는 증상, 생리통과 가위눌림 등 모두가 연관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한의학에서는 혀를 주관하는 것이 심장이라고 말합니다. 소녀의 입은 헐었고 혓바닥에는 얼룩덜룩한 무늬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조성태는 소녀의 심열心熱을 다스리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그렇게 하면 현뿐만 아니라 다른 증상들까지 좋아집니다.

조성태는 소년의 입술이 얇고 입이 튀어나온 것으로 보아 체질상 화체조류로 분류했습니다. 화체조류형은 새의 성질을 닮아 매우 예민하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더라도 생각이 너무 많은 게 탈입니다. 매사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고 늘 고민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살이 붙지 않고 마를 수밖에 없습니다.

심열을 다스리는 데 여러 가지 처방이 있지만, 나이 어린 사람에게는 도적산導赤散이나 삼미도적산三味導赤散을 사용하는데 그는 소녀에게 도적산을 처방했습니다. 도적산은 심장의 열熱이 위의 눈까지 솟구쳐 양쪽 모두 부종浮腫(몸이 붓는 병)이 있고 피가 침투해 눈동자가 하얗게 되며 수명羞明이 생기고 눈물이 나는 증상을 치료하는 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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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 활동에서의 의미

 

 

 

 

우리가 인식이나 이해가 없는 쾌락을 발견한다면 실험장치가 이상적인 삶을 마련해준다는 생각을 부정하고 쾌락주의보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에 귀를 기울이려 할 터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에 의하면, 좋은 삶은 경험이 아니라 활동으로 실현된다. 그뿐 아니라 어떤 활동은 본질에 있어서 다른 활동보다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다. 우정, 정치 활동, 예술과 음악, 개성의 계발, 세상사의 이해, 자신의 잠재력과 기술을 발전시키고 연습하는 일 따위는 모두 온전한 삶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그중에서 한두 가지가 모자란 사람은 그만큼 불충분한 삶을 살아야 한다. 이런 것들을 꽤 갖췄을 뿐 아니라 어느 특정 분야 또는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은 최상에 가까운 삶을 누릴 터이다. 실험장치에 매달려 살아가는 사람은 실상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기 때문에 좋은 삶을 누릴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서 쾌락은 중요하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제대로 성장한 사람은 진정 좋은(의미 있고,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일에서 쾌락을 찾을 줄 안다고 했다. 가치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러한 활동에 어떤 보람이 있는지를 잘 알고, 그런 여러 가지 경험을 즐길 줄 안다. 하지만 여기에도 자기 발전이 빗나갈 수 있는 두 가지 가능성이 깃들어 있다. 먼저 진정 좋지 않은 것에서 쾌락을 얻으려 할지도 모른다
는 것이다. 이럴 때 쾌락은 퇴폐적이거나 부적절할 수 있다(예를 들어, 다른 사람의 수난을 보고 즐기는 가학증 환자나 타인의 불행이나 재난에서 느끼는 쾌락인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를 들 수 있다). 빗나갈 가능성 두 번째는 좋은 일에 참여하면서도 좋은 경험을 하지 못하는 경우다. 음악에 귀를 기울여도 그걸 이해할 수 없다면 고상한 음악은 귓전을 스쳐 갈 뿐이다. 이상적으로 말하자면, 제대로 이해하고 인식할 수 있는 주관적인 경험이 자신이 참여한 활동의 객관적인 의미와 들어맞아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비평적으로 검토하기에 앞서, 그가 인간 존재의 무의미함을 주장하는 이론에 대하여 어떤 견해를 밝혔는지 잠시 살펴보자. 쾌락주의자들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삶에서 자신이 애써 추구하던 일이 실상 무의미한 것으로 밝혀지는 불편한 가능성에 부딪힐 수 있다고 보았다. 철학은 온갖 허구로 꽉 찬 빈 보따리이거나 할 일 없는 사람들의 잠꼬대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럴 때 하릴없는 일에 많은 시간을 들인 사람은 자신의 삶을 낭비한 결과가 되고 만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는 언뜻 가치 있어 보이는 것이 알고 보면 가치 없는 것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음을 인정한다(반면, 쾌락주의자들에게는 쾌락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쾌락인데 어떻게 느끼는가를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 역시 이런 가능성을 인정하지만, 그 까닭은 인간적 삶의 가치와 의미, 즉 삶을 가치 있게 하는 것이 인간의 활동 그 자체에 담긴 가치와 의미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신께서 인간의 삶을 그릇된 길로 빗나가지 않게 하려고 굳이 세상을 굽어보며 자신이 지은 대로 세상이 잘 굴러가는지를 살피실 필요가 없다. 우리 삶이 의미가 있는 까닭은 가치가 있는 프로젝트, 활동, 관계 따위를 발전시키거나 유지하려고 힘쓰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이 시시포스의 삶과 다른 까닭은 이 때문이다.
시시포스의 수난이 끔찍스러운 까닭은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는 일을 무한정 되풀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일이 잘됐다 하여 만족스러움을 느낄 부분이 전혀 없다. 앞이 보이지 않고 생산 라인처럼 끝없는 되풀이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인간의 삶은 자신이 기획한 일이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 순조롭게 진행된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생각했다. 우리 삶은 자신이 기획한 일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데 달려 있다. 일이 잘되면 기뻐하고 그렇지 못하면 좌절하고 분노하고 절망한다. 인간의 섬세한 감정은 몰입하고 있는 일이 어찌되어 가는가에 따라 굽이친다. 이것은 우리에게 방향을 지시하는 동시에 우리는 시시포스가 아님을 일깨운다. 물론 내가 모든 시간과 노력을 다 쏟아 부어 철학을 연구하다가 뒷날 그것이 모두 공허한 것(이런 식의 생각은 꽤 널리 퍼져 있어서 지겹도록 많이 듣는 얘기다)이었음을 깨닫는다면 참담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서 볼 때, 도모하는 일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면 삶이 무의미하다고 걱정할 까닭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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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孔子의 극기복례克己復禮란 무엇입니까?

 

 

극기복례克己復禮란 욕망이나 사詐된 마음 등을 자신의 의지력으로 억제하고 예의禮儀에 어그러지지 않도록 하는 것을 말합니다. 노魯나라의 현인賢人 안연顔淵(기원전 521~490, 안회顔回라고도 함)은 공자가 사랑한 제자였습니다. 인仁에 대해 안연이 묻자 공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자의 극기복례를 짐작하게 하는 말입니다.

 

자기의 사사로운 욕심을 이겨 그 언행이 예禮에 합치되면 그것이 곧 인仁이다. 하루라도 그렇게 한다면 온 세상이 인을 따르게 된다. 인을 실천하는 것은 자기에게 달린 것이지, 다른 사람에게 달린 것이 아니다!

 

안연이 좀 더 상세한 실천 조목을 말해달라고 청하자 공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禮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행하지 말라.

 

<논어>에 기록된 공자의 “사람이 어질지 못하면 예禮는 무엇하자는 것이며, 사람이 어질지 못하면 악樂은 무엇하자는 것이냐?”는 말에서 예禮도 중요하고 악樂도 중요하지만 인仁을 먼저 갖추지 못한다면 예악禮樂도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진 심성을 갖추는 것이 예악을 바르게 할 수 있는 바탕입니다. 군자君子가 될 수 있는 바탕입니다. 공자는 “군자는 예에 부지런하고 소인은 육체노동에 힘을 다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공자는 “군자가 마음에 두는 것은 덕이고 소인이 마음에 두는 것은 땅이다”라고 했고, “군자는 의義에 밝고, 소인은 이利에 밝다”고도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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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색이 푸른 사람은 불임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결혼 전에 인공유산을 한 번 했거든요. 그 후로 생리가 아주 없어져버렸어요. 그래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는데 그 뒤로는 생리주기가 점점 늦어지면서 기간도 3일로 줄어들었어요. 또 생리에 검은색을 띤 덩어리가 섞여서 나와요.”

인공유산 후 몸이 엉망이 되어버린 27세의 김씨의 하소연이었습니다.

<생긴 대로 병이 온다>의 저자 조성태는 그녀가 유산의 후유증으로 자궁에 숙질宿疾, 즉 오래 앓고 있는 지병持病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환자에게 입술색이 아주 푸른데 추위를 많이 타느냐고 묻자 “네, 엄청 추위를 많이 타요. 항상 이렇게 입술색이 푸르니까 보는 사람마다 혹시 심장병이 아니냐며 물어볼 정도죠. 그리고 머리를 만져보면 늘 미열이 느껴지는데 손발, 특히 발뒤꿈치는 한여름에도 얼음처럼 차고 시려요. 아랫배도 찬 편이구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김씨는 피부색이 검었으며, 살짝만 부딪혀도 멍이 잘 든다고 했습니다. 생리 전후에 특별한 증상이 없느냐고 묻자 “생리 전에 몸살이 좀 심하고 굉장히 우울해져요. 가슴이 답답할 때도 있구요. 참, 저는 생리 때 유방이 아프면서 젖이 나오거든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조성태는 그녀가 불임의 조건을 다 갖추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우선 입술이 푸른 것이 그러한데, 입술이 푸른 것은 한증寒症(병적으로 몸에서 생기는 추운 기운氣運)으로, 환자 본인이 느낄 정도로 손발과 아랫배가 차니 이것만으로도 임신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멍이 잘 든다는 것은 혈병血病(혈血의 정체停滯로 일어나는 일련의 증상)에 걸리기 쉽다는 뜻으로, 혈 위주로 되어있는 여성에게 이처럼 나쁜 건 없다는 것입니다.

혈병이란 망혈증亡血證과 탈혈증脫血證, 뉵혈衄血, 구혈嘔血, 토혈吐血, 박궐증薄厥證, 해혈咳血, 수혈嗽血, 타혈唾血, 각혈咯血, 피오줌尿血, 변혈便血, 잇몸에서 피가 나오는 齒衄, 혀에서 피가 나오는 舌衄, 혈한血汗, 9규에서 피가 나오는 九竅出血, 피를 흘린 뒤의 어지럼증失血眩暈 등을 아울러 이르는 말입니다.

조성태는 환자가 생리 때 유방이 아프고 젖이 나온다는 말에서 자궁에 숙질이 쌓인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는 환자에게 음혈지부인 자궁을 튼튼하게 해줄 목적으로 제음단濟陰丹을 처방했습니다. 제음단은 산전産前이나 산후産後의 모든 질병과 난산難産, 횡산橫産, 역산逆産을 치료할 때 그리고 오랜 냉증冷症으로 자식이 없는 것과 여러 번 유산한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처방하는 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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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스의 헌장

 

 

 

 

하마스의 헌장은 초항부터 무슬림이 선택된 민족khair umma(카이르 움마)이라는 자격을 부여한 코란의 구절을 언급하고 나서 무슬림 형제단을 창립한 하산 알반나의 주장으로 이어진다. “이스라엘은 자립했고, 이슬람교가 자립을 멸절하기까지는 그럴 것이다. 전에도 그랬듯이 말이다.” 6조항은 하마스의 목표를 “팔레스타인 방방곡곡에 알라의 깃발을 흔드는 것” 이라고 규정했다. 그 다음 조항은 논란이 일고 있는 무함마드의 가르침인 하디트를 인용했는데, 이는 부하리가 무함마드에게서 직접 전수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하디트는 유대인과의 전쟁이 벌어질 부활의 날을 언급하고 있으며, 유대인이 나무와 바위 뒤에 숨는 것으로 전쟁이 종식된다고 한다. 그때 바위가 “오, 무슬림이여, 알라의 종이여! 유대인이 내 뒤에 숨었으니 와서 그를 죽이라!” 고 외칠 것이나, “나무는 숨은 유대인을 배신하지 않을텐데 이는 그가 유대인이기 때문이다.” 하디트는 “유대인의 말살” 을 “종교의 의무” 로 규정하므로 반유대주의의 종교화에 큰 의미를 둔다. 즉 이스라엘이 말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디트의 진위는 의심스럽기가 짝이 없다. 예언자 무함마드에게서 비롯되었다고는 하나, 사후에 발견된 허위 문서가 한둘이 아니더라도 하마스 헌장에 인용된 구절은 진위를 떠나 의미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이스라엘과의 분쟁을 두고 협상의 여지를 남기지 않기 위해 11조항은 타협이 불가능한, 신성한 종교를 일컫는 팔레스타인의 타협할 수 없는 신성waqf Islami(와크프 이슬라미)을 선언했다. 헌장은 정복 전쟁 전에 예루살렘이 이슬람의 영토가 아니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부활qiyama(키야마)의 날이 오기까지 정복한 땅은 모두 무슬림의 소유지가 된다” 는 샤리아 규정을 언급했다. 그리고 13조항에 이르면 “평화적 해결은 이슬람교에 대한 하마스의 의지와 대립되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을 포기하는 것은 종교 자체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 성전 외에는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갈등을 현실적으
로 해결할 방안이 없다. … 그 밖의 대책들은 시간낭비에 불과하다” 는 주장이 이어진다.
하마스는 유대인 및 십자군과 무장 전쟁을 일으키고 그들의 지적인 영향력을 중화하기로 결의했다. 다음의 35조항을 살펴보자.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서방세계의 십자군이 앞서 시온주의의 침략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 당시 무슬림이 그들과 맞서 승리했으므로 향후 벌어질 공격도 능히 방어할 수 있을 것이다. … 무슬림은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 지적 침략(가주 피크리)에 대해서도 자신을 정화해야 한다. 여기서 정화purification는 하마스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슬람주의의 정치적 사상에도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이는 유대인과 서양인뿐 아니라, 이를테면, 동남아시아의 비무슬림을 문제 삼는 까닭이기도 하다.
하마스 헌장에서 배울 점이 둘 있다. 하나는 종교화된 전쟁을 수용함으로써 살상을 성례전으로 승화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서방세계의 사상을 “지적 침략” 으로 배격하여 21세기의 인본주의 아젠다를 배척했다는 것이다. 21세기의 아젠다 중 근본적인 핵심 중 하나는 극악무도한 홀로코스트가 재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데, 하마스를 비롯한 이슬람주의자들은 인본주의의 신뢰성과 진정성을 대놓고 짓밟으며 대량살상의 재연을 꿈꾸고 있다.

하마스가 쿠틉의 사상을 좇아 주장하는, 유대인과 무슬림 사이의 “세계적인 원한” 은 이슬람교 역사상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점을 재차 강조하고 싶다. 이는 이슬람주의자들이 반유대주의를 합리화하기 위해 날조한 역사를 근거로 들었을 뿐, 실제 역사에 근거를 둔 것은 아니다. 그건 그렇고, 내가 독자에게 일러두고 싶은 점은 만상이 변하는데 이슬람주의라고 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마스는 서방세계에 대한 저항을 해방으로 간주해도 될 만큼 변했는가? 유럽 좌파와 진보주의자들은 대개 그렇게 믿는다. 그와 생각이 같은 폴 맥거프 기자는 하마스 리더인 할리드 미샬과 회동하며 헌장의 수정에 대하여 그의 의견을 물었다. 맥거프는 “이스라엘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내용의 수정안을 두고 [미샬은] “그럴 일이 없다” 며 단호한 뜻을 밝혔다” 고 술회다.
서양에서 하마스를 동조하는 자는 대부분 헌장을 읽어본 일도 없거니와 이슬람주의 조직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도 없다. 혹자는 “하마스를 비난하는 것이 곧 이슬람교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과 같다” 며 하마스를 변호하려 들지만, 이는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의 차이를 외면한 주장이다. 이 같은 혼동이 빚은 안타까운 사실 중 한 가지 예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사회학 교수 찰스 커즈먼은 『진보주의 이슬람: 사료』에서 이집트 무슬림 형제단의 유수프 알카라다위를 “진보주의” 명단에 올리고 말았다. 사실, 알카라다위는 쿠틉의 사상을 계승한 인물이자, 하마스가 차용된 것은 무엇이든 서양 십자군에서 비롯된 외부에서 도입된 해결책이라며 거절하게 된 원흉이었다. 민주주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3부작으로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이슬람교식 해결책의 필연성』62에서 알카라다위는 서방세계의 십자군을 상대로 세계적인 이념의 전쟁을 벌이자고 촉구한 바 있는데, 그는 반유대주의를 제외하고는 서방세계에서 유입된 것들을 모두 이 신조에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라커는 알자지라의 주간 방송에서 다음과 같이 그의 말을 인용했다. “총칼 없이는 유대인과의 대화가 불가능하다.” 이 같은 선전포고가 쿠틉의 『유대인과의 투쟁』을 방불케 하는데도 어찌 알카라다위를 “진보주의 무슬림” 이라고 하는지, 가히 기가 찰 노릇이다.
미국 정부는 하마스를 “테러 조직체” 로 규정했으나, 터키의 AKP와 유럽의 좌파는 이슬람세계에서 반미주의와 반서양주의가 증가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며 미국을 설득했다. “제3세계주의” 에서 좌파는 이슬람주의를 반자본주의 동맹으로 보는데,64 이는 정략결혼에 비유할 수 있다. 한편, 이슬람주의의 우파 성향은 반미주의 및 반유대주의65를 이슬람주의자들과 공유하는 유럽 좌파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은 것 같다. 안드레이 마코비츠는 반미주의와 반유대주의를 부인한 좌파의 주장을 신뢰하지 않는다. 『유쾌하지 않은 국가: 왜 유럽은 미국을 싫어하는가Uncouth Nation: Why Europe Dislikes America』(2001)에서 그는 유럽의 반유대주의가 “지금껏… 반미주의의 요체였다” 66고 밝혔다. 이 같은 사상은 유럽의 무슬림 이민 지도자들 사이에서 반시온주의와 반미주의라는 이중 위장전략 아래 유럽의 노장 우파와 신참 좌파의 반유대주의를 통합했다. 그러나 이슬람주의자들이 경솔하게 홀로코스트가 사실이 아니라는 등, 반유대주의를 부인하자 상황은 아주 어색해지고 말았다. 유대인을 배척하는 이슬람주의자가 “제2의 유대인” 을 자처하고, 홀로코스트를 허위라고 주장하면서도 이슬람교를 상대로 벌어질 제2의 홀로코스트를 운운하는 것은 이른바 위선의 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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