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의 헌장

하마스의 헌장은 초항부터 무슬림이 선택된 민족khair umma(카이르 움마)이라는 자격을 부여한 코란의 구절을 언급하고 나서 무슬림 형제단을 창립한 하산 알반나의 주장으로 이어진다. “이스라엘은 자립했고, 이슬람교가 자립을 멸절하기까지는 그럴 것이다. 전에도 그랬듯이 말이다.” 6조항은 하마스의 목표를 “팔레스타인 방방곡곡에 알라의 깃발을 흔드는 것” 이라고 규정했다. 그 다음 조항은 논란이 일고 있는 무함마드의 가르침인 하디트를 인용했는데, 이는 부하리가 무함마드에게서 직접 전수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하디트는 유대인과의 전쟁이 벌어질 부활의 날을 언급하고 있으며, 유대인이 나무와 바위 뒤에 숨는 것으로 전쟁이 종식된다고 한다. 그때 바위가 “오, 무슬림이여, 알라의 종이여! 유대인이 내 뒤에 숨었으니 와서 그를 죽이라!” 고 외칠 것이나, “나무는 숨은 유대인을 배신하지 않을텐데 이는 그가 유대인이기 때문이다.” 하디트는 “유대인의 말살” 을 “종교의 의무” 로 규정하므로 반유대주의의 종교화에 큰 의미를 둔다. 즉 이스라엘이 말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디트의 진위는 의심스럽기가 짝이 없다. 예언자 무함마드에게서 비롯되었다고는 하나, 사후에 발견된 허위 문서가 한둘이 아니더라도 하마스 헌장에 인용된 구절은 진위를 떠나 의미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이스라엘과의 분쟁을 두고 협상의 여지를 남기지 않기 위해 11조항은 타협이 불가능한, 신성한 종교를 일컫는 팔레스타인의 타협할 수 없는 신성waqf Islami(와크프 이슬라미)을 선언했다. 헌장은 정복 전쟁 전에 예루살렘이 이슬람의 영토가 아니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부활qiyama(키야마)의 날이 오기까지 정복한 땅은 모두 무슬림의 소유지가 된다” 는 샤리아 규정을 언급했다. 그리고 13조항에 이르면 “평화적 해결은 이슬람교에 대한 하마스의 의지와 대립되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을 포기하는 것은 종교 자체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 성전 외에는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갈등을 현실적으
로 해결할 방안이 없다. … 그 밖의 대책들은 시간낭비에 불과하다” 는 주장이 이어진다.
하마스는 유대인 및 십자군과 무장 전쟁을 일으키고 그들의 지적인 영향력을 중화하기로 결의했다. 다음의 35조항을 살펴보자.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서방세계의 십자군이 앞서 시온주의의 침략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 당시 무슬림이 그들과 맞서 승리했으므로 향후 벌어질 공격도 능히 방어할 수 있을 것이다. … 무슬림은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 지적 침략(가주 피크리)에 대해서도 자신을 정화해야 한다. 여기서 정화purification는 하마스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슬람주의의 정치적 사상에도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이는 유대인과 서양인뿐 아니라, 이를테면, 동남아시아의 비무슬림을 문제 삼는 까닭이기도 하다.
하마스 헌장에서 배울 점이 둘 있다. 하나는 종교화된 전쟁을 수용함으로써 살상을 성례전으로 승화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서방세계의 사상을 “지적 침략” 으로 배격하여 21세기의 인본주의 아젠다를 배척했다는 것이다. 21세기의 아젠다 중 근본적인 핵심 중 하나는 극악무도한 홀로코스트가 재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데, 하마스를 비롯한 이슬람주의자들은 인본주의의 신뢰성과 진정성을 대놓고 짓밟으며 대량살상의 재연을 꿈꾸고 있다.
하마스가 쿠틉의 사상을 좇아 주장하는, 유대인과 무슬림 사이의 “세계적인 원한” 은 이슬람교 역사상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점을 재차 강조하고 싶다. 이는 이슬람주의자들이 반유대주의를 합리화하기 위해 날조한 역사를 근거로 들었을 뿐, 실제 역사에 근거를 둔 것은 아니다. 그건 그렇고, 내가 독자에게 일러두고 싶은 점은 만상이 변하는데 이슬람주의라고 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마스는 서방세계에 대한 저항을 해방으로 간주해도 될 만큼 변했는가? 유럽 좌파와 진보주의자들은 대개 그렇게 믿는다. 그와 생각이 같은 폴 맥거프 기자는 하마스 리더인 할리드 미샬과 회동하며 헌장의 수정에 대하여 그의 의견을 물었다. 맥거프는 “이스라엘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내용의 수정안을 두고 [미샬은] “그럴 일이 없다” 며 단호한 뜻을 밝혔다” 고 술회다.
서양에서 하마스를 동조하는 자는 대부분 헌장을 읽어본 일도 없거니와 이슬람주의 조직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도 없다. 혹자는 “하마스를 비난하는 것이 곧 이슬람교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과 같다” 며 하마스를 변호하려 들지만, 이는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의 차이를 외면한 주장이다. 이 같은 혼동이 빚은 안타까운 사실 중 한 가지 예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사회학 교수 찰스 커즈먼은 『진보주의 이슬람: 사료』에서 이집트 무슬림 형제단의 유수프 알카라다위를 “진보주의” 명단에 올리고 말았다. 사실, 알카라다위는 쿠틉의 사상을 계승한 인물이자, 하마스가 차용된 것은 무엇이든 서양 십자군에서 비롯된 외부에서 도입된 해결책이라며 거절하게 된 원흉이었다. 민주주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3부작으로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이슬람교식 해결책의 필연성』62에서 알카라다위는 서방세계의 십자군을 상대로 세계적인 이념의 전쟁을 벌이자고 촉구한 바 있는데, 그는 반유대주의를 제외하고는 서방세계에서 유입된 것들을 모두 이 신조에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라커는 알자지라의 주간 방송에서 다음과 같이 그의 말을 인용했다. “총칼 없이는 유대인과의 대화가 불가능하다.” 이 같은 선전포고가 쿠틉의 『유대인과의 투쟁』을 방불케 하는데도 어찌 알카라다위를 “진보주의 무슬림” 이라고 하는지, 가히 기가 찰 노릇이다.
미국 정부는 하마스를 “테러 조직체” 로 규정했으나, 터키의 AKP와 유럽의 좌파는 이슬람세계에서 반미주의와 반서양주의가 증가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며 미국을 설득했다. “제3세계주의” 에서 좌파는 이슬람주의를 반자본주의 동맹으로 보는데,64 이는 정략결혼에 비유할 수 있다. 한편, 이슬람주의의 우파 성향은 반미주의 및 반유대주의65를 이슬람주의자들과 공유하는 유럽 좌파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은 것 같다. 안드레이 마코비츠는 반미주의와 반유대주의를 부인한 좌파의 주장을 신뢰하지 않는다. 『유쾌하지 않은 국가: 왜 유럽은 미국을 싫어하는가Uncouth Nation: Why Europe Dislikes America』(2001)에서 그는 유럽의 반유대주의가 “지금껏… 반미주의의 요체였다” 66고 밝혔다. 이 같은 사상은 유럽의 무슬림 이민 지도자들 사이에서 반시온주의와 반미주의라는 이중 위장전략 아래 유럽의 노장 우파와 신참 좌파의 반유대주의를 통합했다. 그러나 이슬람주의자들이 경솔하게 홀로코스트가 사실이 아니라는 등, 반유대주의를 부인하자 상황은 아주 어색해지고 말았다. 유대인을 배척하는 이슬람주의자가 “제2의 유대인” 을 자처하고, 홀로코스트를 허위라고 주장하면서도 이슬람교를 상대로 벌어질 제2의 홀로코스트를 운운하는 것은 이른바 위선의 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