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 활동에서의 의미

 

 

 

 

우리가 인식이나 이해가 없는 쾌락을 발견한다면 실험장치가 이상적인 삶을 마련해준다는 생각을 부정하고 쾌락주의보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에 귀를 기울이려 할 터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에 의하면, 좋은 삶은 경험이 아니라 활동으로 실현된다. 그뿐 아니라 어떤 활동은 본질에 있어서 다른 활동보다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다. 우정, 정치 활동, 예술과 음악, 개성의 계발, 세상사의 이해, 자신의 잠재력과 기술을 발전시키고 연습하는 일 따위는 모두 온전한 삶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그중에서 한두 가지가 모자란 사람은 그만큼 불충분한 삶을 살아야 한다. 이런 것들을 꽤 갖췄을 뿐 아니라 어느 특정 분야 또는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은 최상에 가까운 삶을 누릴 터이다. 실험장치에 매달려 살아가는 사람은 실상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기 때문에 좋은 삶을 누릴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서 쾌락은 중요하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제대로 성장한 사람은 진정 좋은(의미 있고,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일에서 쾌락을 찾을 줄 안다고 했다. 가치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러한 활동에 어떤 보람이 있는지를 잘 알고, 그런 여러 가지 경험을 즐길 줄 안다. 하지만 여기에도 자기 발전이 빗나갈 수 있는 두 가지 가능성이 깃들어 있다. 먼저 진정 좋지 않은 것에서 쾌락을 얻으려 할지도 모른다
는 것이다. 이럴 때 쾌락은 퇴폐적이거나 부적절할 수 있다(예를 들어, 다른 사람의 수난을 보고 즐기는 가학증 환자나 타인의 불행이나 재난에서 느끼는 쾌락인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를 들 수 있다). 빗나갈 가능성 두 번째는 좋은 일에 참여하면서도 좋은 경험을 하지 못하는 경우다. 음악에 귀를 기울여도 그걸 이해할 수 없다면 고상한 음악은 귓전을 스쳐 갈 뿐이다. 이상적으로 말하자면, 제대로 이해하고 인식할 수 있는 주관적인 경험이 자신이 참여한 활동의 객관적인 의미와 들어맞아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비평적으로 검토하기에 앞서, 그가 인간 존재의 무의미함을 주장하는 이론에 대하여 어떤 견해를 밝혔는지 잠시 살펴보자. 쾌락주의자들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삶에서 자신이 애써 추구하던 일이 실상 무의미한 것으로 밝혀지는 불편한 가능성에 부딪힐 수 있다고 보았다. 철학은 온갖 허구로 꽉 찬 빈 보따리이거나 할 일 없는 사람들의 잠꼬대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럴 때 하릴없는 일에 많은 시간을 들인 사람은 자신의 삶을 낭비한 결과가 되고 만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는 언뜻 가치 있어 보이는 것이 알고 보면 가치 없는 것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음을 인정한다(반면, 쾌락주의자들에게는 쾌락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쾌락인데 어떻게 느끼는가를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 역시 이런 가능성을 인정하지만, 그 까닭은 인간적 삶의 가치와 의미, 즉 삶을 가치 있게 하는 것이 인간의 활동 그 자체에 담긴 가치와 의미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신께서 인간의 삶을 그릇된 길로 빗나가지 않게 하려고 굳이 세상을 굽어보며 자신이 지은 대로 세상이 잘 굴러가는지를 살피실 필요가 없다. 우리 삶이 의미가 있는 까닭은 가치가 있는 프로젝트, 활동, 관계 따위를 발전시키거나 유지하려고 힘쓰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이 시시포스의 삶과 다른 까닭은 이 때문이다.
시시포스의 수난이 끔찍스러운 까닭은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는 일을 무한정 되풀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일이 잘됐다 하여 만족스러움을 느낄 부분이 전혀 없다. 앞이 보이지 않고 생산 라인처럼 끝없는 되풀이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인간의 삶은 자신이 기획한 일이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 순조롭게 진행된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생각했다. 우리 삶은 자신이 기획한 일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데 달려 있다. 일이 잘되면 기뻐하고 그렇지 못하면 좌절하고 분노하고 절망한다. 인간의 섬세한 감정은 몰입하고 있는 일이 어찌되어 가는가에 따라 굽이친다. 이것은 우리에게 방향을 지시하는 동시에 우리는 시시포스가 아님을 일깨운다. 물론 내가 모든 시간과 노력을 다 쏟아 부어 철학을 연구하다가 뒷날 그것이 모두 공허한 것(이런 식의 생각은 꽤 널리 퍼져 있어서 지겹도록 많이 듣는 얘기다)이었음을 깨닫는다면 참담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서 볼 때, 도모하는 일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면 삶이 무의미하다고 걱정할 까닭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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