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란 말은
'예술'이란 말은 그리스인의 개념이다.
그들은 예술을 테크네techne라고 했는데 이 말이 라틴어 아르스ars, 영어 art로 번역되었다.
기술craft이라는 뜻의 테크네에는 경험을 통해 익힌 솜씨, 배우거나 관찰로 익힌 기교, 일종의 배우는 방법, 그리고 인문학의 일부도 포함되었는데 나무를 깍는 기술로부터 나라를 다스리는 정치까지 폭넓은 뜻으로 사용된 말이다.
테크네, 즉 예술은 자연을 모델로 무엇인가를 생산한다는 의미로,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정해진 규칙 내에서 이성적으로 익히거나 연마해서 제작물을 만드는 것"이다.(<니코마코스 윤리학> 1139b를 참조할 것)
자연nature이라는 말은 그리스어 퓌시스physis의 라틴어 번역 나투라natura의 번역으로 '낳다' '생산하다'라는 의미이다.
예술도 자연처럼 생산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성적으로"란 말은 '올바른 동기' 혹은 '자연의 보편성에 따라서'라는 뜻으로 마찬가지로 자연을 모델로 생산한다는 뜻이다.
예술, 즉 기술은 수공handwerke과 구별되는데 예술은 자유로운, 즉 쾌적한 기술인 반면, 수공은 칸트의 말을 빌면 노임기술Lobnkunst로서의 노동, 즉 쾌적하지 않은 기술이다.
칸트는 <판단력비판 Kritik der Urteilskraft>(1790)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술이 어떤 기능적 대상의 인식에 적합하도록 단지 그 대상을 실현화하기 위해 필요한 행위만을 수행하는 경우 그것은 "기계적 기술 mechanische Kunst"이다.
하지만 쾌의 감정을 집적적인 의도로 삼고 있을 경우 그것은 "미적 기술 asthetische Kunst"이라 일컬어진다.
이 미적 기술은 "쾌적한 기술 angenehme Kunst"이거나 예술인데, 쾌가 한갓된 "감각"으로서의 표상에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이 미적 기술의 목적인 경우 그것은 쾌적한 기술이고, 또 쾌가 인식방식으로서의 표상에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이 목적인 경우 그것은 예술이다.
예술은 감관의 감각을 규칙으로 삼는 기술이라는 것이 칸트의 정의이다.
예술이 규칙 내에서의 기술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보면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칸트에 이르기까지 약 2150년 동안 예술의 정의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는 어떤 생산물이 예술작품이기 위해서는 우선 규칙을 기초로 기술에 의해 가능하게 표상되기 때문이며 따라서 드로잉도 예외일 수 없다.
드로잉을 자동차운전에 비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운전은 안전을 목적으로 반드시 따라야 할 기술이다.
하지만 어지간히 운전을 익힌 후에는 그것이 안전운전을 보장한다고 하더라도 자유로워진 운전자는 운전기술을 의식하지 않고도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대로 올바른 동기만으로 자신이 원하는 곳을 향해 달릴 수 있다.
드로잉을 배우는 것은 오브제를 명확하게 보는 법을 배우는 것으로 손으로 그린다기보다는 눈으로 그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폴 세잔은 모네를 가리켜 대단한 눈을 가졌다고 칭찬했다.
그가 모네의 손을 칭찬하지 않은 이유는 그만한 손은 흔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그리더라도 오브제를 명확하게 볼 수만 있다면 그렇게 그릴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작품을 감상할 때 그것이 어떤 방법으로 묘사되었는지 알려고 하기보다 작가가 얼마나 명확하게 오브제를 관찰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훌륭한 작품은 작가가 심취된 상태에서, 변화된 공상의 상태에서, 주관적으로 도취된 상태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