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주의

 

 

이 절에서는 앞에서 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에 숨어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살펴보려 한다. 첫 번째 문제는 어떤 활동이 다른 활동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주장에는 비평의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이런 비평은 “어떤 것이 정말로 가치 있다는 것을 누가 결정하는가?”라는 의문에서 시작한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는 이런 비평의 한 갈래로, 사람들이 고상한 활동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상 상류층의 전유물인 활동을 가리키며, 그런 활동을 하고 싶어 한다는 건 상류층이 되고 싶다는 것과 같다는 말을 흔히 듣는다. 이를테면 어떤 사람들이 ‘좋은 취향’을 지니고 있음을 인정한다는 것은 곧 그들을 우리와는 아주 다른 상류층에 속하는 사람들로 인정한다는 뜻이 된다. 영국인은 좋은 취향을 가졌다는 말을 대부분 좋은 매너를 지녔으며 정통 영어(특정 종류의 억양과 더불어)를 쓴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영국 텔레비전 방송에서 하류층의 억양을 쓰는데도 매너가 좋다는 사회자를 보았는가? 이런 식의 비평론은 좋은 취향 내세우기가 지배층이 하류층에 대한 지배력 장악의 방편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보면, 계층 간 공개적인 전쟁은 아니더라도 이론 간 전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하류층이 좋은 취향이나 바
람직한 생활양식에 관한 지배층의 관념을 받아들이는 순간, 이 전쟁의 승리는 지배층에게 돌아간다. 따라서 이러한 비평의 논지에 따르면, 어떤 활동이 다른 활동보다 가치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지배층에 아부하는 처지가 된다. 그리하여 어떤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그들의 결정만 바라봐야 하는 게임에 발을 들여놓는 셈이 된다. 어떤 생활방식이 다른 생활방식보다 가치 있는지에 대한 판단은 실상 개인이 결정할 문제다. 그렇지 않은 방향으로 이끌리는 움직임은 단순한 엘리트주의나 속물주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비평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는 비평하는 사람이 어떤 활동이 다른 활동보다 가치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수용하면서도 무엇이 가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지배층의 사고에 휘둘린다는 주장이다. 지배층은 자신들의 생활방식을 좋은 취향의 표준으로 내세워 지배력을 유지하려 한다. 이 견해는 사회주의 관점에서 자
본주의 사회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내세워온 논리의 바탕이 되었다. 예컨대,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좋은 취향’은 귀족주의 풍을 띠면서 한편으로는 큰돈을 들여 ‘최신형 제품을 선뜻 사서 쓰는 것’으로 부유함을 과시하려는 태도와 연결된다. 사회주의 견해를 지닌 사람들은 가치 있는 활동은 수입이나 귀족주의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주장할 터이다. 가치 있는 활동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동체, 우정, 교육 같은 것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견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거세게 비평하려 하지 않고, 어떤 활동이 다른 활동보다 가치 있다는 주장을 수용하면서, 한편 지배층의 사고방식에 쉽사리 휘둘리지 말라고 경고한다. 어떤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될 때에는 그 생각이 어디에서 나왔으며 신뢰할 만한 생각인지 늘 자신에게 물어보라고 권고한다.
그렇지만 더 과격한 비평가들은 어떤 것이 다른 것보다 가치가 있다는 생각 자체를 배격한다. 이런 관점에서는 좋은 취향이란 있을 수 없다. 존재하는 것은 주관적 의견일 뿐이다. 어떤 이는 푸시핀을 즐기고 어떤 이는 시를 좋아한다. 이 비평은 어떤 이는 자신의 견해를 객관적인 것으로 잘 포장하여 다른 이들이 쉽게 받아들이도록 하는데(다
른 이들을 움직이는 힘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리라), 이것이야말로 환각이 아닐 수 없다고 주장한다. 호소력이 있는 객관적인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좋은 취향이란 있을 수 없으며 개인적 취향만이 있을 뿐이다. 이 급진적인 견해는 미셸 푸코(푸코는 지식에 관한 모든 주장은 힘을 얻으려는 술책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파한다.7)) 같은 사상가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철저히 거부한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활동이 다른 활동보다 가치 있다는 생각을 버린다면 사회 비평이 설 자리가 얼마나 남을까?
비평적 사회이론들은 전통적으로 압제자의 사슬에서 인간성을 해방하려면 사회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가 갖는 문제는 그것이 인간의 잠재력을 제약하여 생활방식을 비좁은 테두리에 가둬놓는다는 것이다. 또한 그 이유가 불가피해서가 아니라 특정 사회(예를 들어, 계급)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런 식의 사회이론은 전형적으로 어떤 형태의 혁명적 변화를 거쳐서라도 인간의 잠재력이 실현되는 더 나은 상태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인간의 ‘잠재성’에 관한 이런 사고 자체가 아리스토텔레스적이다. 그들은 인간의 활동에는 중요한 것이 있고, 현재 사회에서 허용되지 않는 활동 또한 있다고 전제한다. 이와 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포기한다면 정작 나쁜 일이란 것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
이 제기될 것이며, 특히 삶에서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할 수 있는 대안을 찾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여기서는 급진적 비평론을 더 깊게 파고들지 않겠다. 과연 무엇이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지를 가려낼 객관적인 기준을 내놓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의미 있는 관념이라는 것을 만든 것은 분명 인간이다. 인간을 떠나서 의미 있는 것은 세상에 있을 수 없다. 우주는 수많은 분자들이 존재하면서 그것들의 활동이 이루어지는 장소일 뿐, 의미를 위한장소가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틀림없는 사실일 터이다. 신의 존재를 믿지 않거나 우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더욱 그렇게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우주는 우리가 하는 일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말의 뜻을 더 분명하게 설명하기 위해, 사물의 가치에 대한 생각이 바뀌는 사례를 떠올려보자. 나는 재즈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새로 나온 앨범을 들어보라고 거듭 권하는 친구 때문에 그것을 ‘듣게’ 되었다. 또 어느 날 디킨스가 훌륭한 소설가인지 아닌지에 대한 생각이 뒤바뀌었다. 몰타 위스키를 처음 마실 때는 재떨이에 술을 따라 털어넣은 듯한 맛이었는데 어느 샌가 무척 고상하고 놀라운 맛이 되었다. 어찌 된 일인가?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하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마음이 바뀐 것이다. 어느덧 위스키 맛과 재즈 소리에 익숙해진 이유다.
또 다른 설명은 새로운 것들을 차례로 배우고 익혔다는 것이다. 디킨스의 책을 감상이나 재미로 건성건성 읽은 것이 아니라 주인공의 수난에서 드러나는 저자의 인간성과 동정심을 이해한 탓이다. 두 번째 방식으로 사물을 설명할 때, 취향을 단순히 개인의 견해에 따른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 취향도 발전할 수 있는 것이며, 교육을 거쳐 훈련된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린 것이다. 이러한 활동을 거치면서 의미와 경험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런 경험을 할 가능성이 있기에,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완전히 부정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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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孔子의 교육관은 무엇입니까?

 

 

공자는 자신을 “나는 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 아니요, 옛것을 좋아하고 민첩하게 그것을 구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나면서 저절로 아는 사람이 으뜸이요, 배워서 아는 사람이 다음이고, 막혀도 애써 배우는 사람은 그 다음이다. 막혔는데도 배우지 아니하는 민民은 이렇게 되어 하층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나는 가르치는 데 있어 차별을 두지 않는다”고 말한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인간의 타고난 본성은 서로 비슷하다. 다만 습관들이기에 따라 서로 달라지게 된다.

 

공자의 교육관은 규범적 실천에 있음을 다음의 말에서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여, 집에서는 효도하고, 밖에 나가서는 어른을 공경하며, 일을 함에 있어서는 삼가서 하고 미덥게 해야 하며,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되 어진 이를 가까이해야 한다. 이런 일들을 행하고도 남은 힘이 있으면 고전을 학습하라.

 

공자의 훈계로 입문하여 곧고 순진하여 헌신적으로 공자를 섬긴 자로子路(기원전 543~480)는 공자보다 9세 아래였고 제자 중에서는 최연장자로 중심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자로의 성미는 거칠었으나 꾸밈없고 소박한 인품으로 용기가 있어 가르침을 받으면 실천에 옮기는 인물이었습니다. 공자는 그를 가르침에 있어, 도의를 표준으로 했을 때라야 비로소 용기의 가치가 있음을 강조하여 그의 남보다 앞서는 용기와 적극성을 교정해주었습니다. 뒤에 위衛나라에서 벼슬했는데, 내란이 일어났을 때 스스로 도의적 입장에서 전사戰死를 택했습니다. 내란 소식을 들었을 때 공자는 자로의 죽음을 예언했다고 합니다.

공자는 자로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유由(자로의 이름)야! 너에게 앎에 대해 가르쳐주겠다. 아는 바를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앎이다.

 

공자의 교육관은 다음의 말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함께 나란히 걸어가는 세 사람 중에는 나의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그들이 가진 우수한 점을 가려 배우고, 그들이 가진 열등한 점은 자기에게 실펴 그것을 고쳐나간다.

 

“배우기만 하고 사고하지 않으면 얻는 바가 없고, 사고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의혹이 생길 것이다”라고 말한 공자는 사고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군자가 사고함에는 아홉 가지가 있다. 볼 때는 분명히 보았는지를 생각해야 하고, 들을 때는 똑똑히 들었는지를 생각해야 하며, 안색은 온화한지를 생각해야 하고, 용모는 공손한가를 생각해야 하며, 말은 진실해야 함을 생각하고, 일함에는 진지해야 함을 생각하며, 의문이 날 때는 어떻게 물어볼까를 생각해야 하고, 분통이 날 때는 후환을 생각해야 하며, 이득을 볼 때는 의로운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공자는 네 가지를 하지 않았는데, 근거 없이 억측하지 않았고, 제멋대로 결론짓지 않았으며, 구차하게 고집부리지 않았고, 스스로 옳다고 자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공子貢은 “선생님께서 고전문헌에 관해 논하신 것은 우리가 들을 수 있었다. 선생님께서 인간의 천성과 하늘의 도리에 관해 말씀하신 것은 듣지 못했다”고 했는데, 공자는 “기괴한 일, 억지 쓰는 일, 어지럽히는 일과 귀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공자는 자신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으며 서른에 학문에 어느 정도 성취가 있었고, 마흔에 이르러 스스로의 주장을 확실히 해서 미혹됨이 없었다. 쉰에는 천명天命을 알았으며, 예순에 남의 말을 한번 들으면 즉시 그 옳고 그름을 분별해낼 수 있었고, 일흔에 이르러서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 그대로를 따라 해도 법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자로가 귀신을 섬기는 일에 대해 물었을 때 공자는 “사람 섬길 줄도 모르면서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는가” 했습니다. 자로가 죽음에 관해 묻자 공자는 “삶도 아직 알지 못하면서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 하고 말했습니다. 공자는 “인간이 도道를 넓혀가는 것이지, 도가 인간을 넓혀가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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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음증이란 무엇입니까?

 

 

장기에 이상이 생기면 얼굴뿐만 아니라 온몸의 피부에서 증세가 나타납니다. 피부색은 그러므로 인체의 이상 유무를 알리는 경고등인 셈입니다. 예를 들어 얼굴색이 허옇게 되면서 재채기를 잘 하는 것은 폐에 병이 온 것이며, 얼굴색이 시커멓게 되면서 하품을 잘 하고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는 것은 신장에 병이 온 것입니다. 또 눈 밑이 숯을 칠해놓은 듯 유난히 검으면서 가슴이 두근거리고 속이 메슥거리는 이상 증세를 담음증痰飮症이라 하는데, 인체의 근본인 정기신혈이 좋지 않을 때에 생깁니다.

항상 피곤하고 가슴이 답답하거나, 손발이 저려서 병원을 찾아 각종 검사를 받아보지만 아무런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한의학에서는 이를 담음증으로 파악합니다. 담음은 인체 생리대사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노폐물이 열에 의해 굳어져 걸쭉하고 탁해진 상태에서 혈관 또는 심장, 경락 등에 쌓인 것을 말합니다. 담음증의 증세는 안색이 어둡고 누렇게 뜨는가 하면 혀에 백태가 끼고 늘 어지럼증을 느끼며 사지가 저리고 통증을 느끼는 것입니다. 발병 원인은 과음 혹은 과다한 흡연, 기름진 음식의 과다섭취, 스트레스 또는 지나치게 신경을 많이 써 심장에 열이 쌓이나 이를 제대로 발산하지 못하는 경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 발생합니다. 주로 처방되는 약물로는 순기활혈탕과 이진탕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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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孔子의 정치관은 무엇입니까?

 

 

 

공자는 안연顔淵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치政는 바로잡는 것이다. 네가 솔선하여 바르게 행하면 누가 감히 부정할 수 있겠느냐?

 

공자는 자로子路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위정자 자신이 올바르면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만사가 이뤄지고 위정자 자신이 올바르지 못하면 비록 호령해도 백성이 다르지 아니한다.

위정자가 자신을 올바르게 하면 통치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그 자신을 올바르게 할 수 없으면 어찌 다른 사람을 올바르게 할 수가 있겠는가?

 

노魯나라의 상경上卿(정1품과 종1품의 판서判書에 해당) 계강자季康子가 공자에게 말했습니다. “무법자를 죽여 없애고 백성으로 하여금 도道를 지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면 어떻겠소?” 공자가 대답했습니다.

 

정치를 하겠다면서 어찌 살인을 하시려고 하십니까? 당신이 선을 원하면 백성도 착하게 되는 것입니다.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고 소인의 덕은 풀과 같은 것이라 풀은 바람이 불면 반드시 바람에 쏠리어 따르게 마련입니다.

 

공자는 법치法治를 반대하고 덕치德治를 주장했습니다.

 

백성을 정政(행정명령)만을 통해서 지도하고 형刑(사법명령)만을 써서 강제하면 백성은 죄만 짓지 않으려 할 뿐이며 진정으로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없게 된다. 그러나 이끌기를 덕德으로써 하고 예禮를 써서 그들을 규율한다면 백성은 부그러워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질 뿐 아니라 진심으로 복종하게 된다.

 

공자는 위정자가 “너그러우면 많은 사람들을 얻고 신의가 있으면 백성이 그를 신임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노魯나라의 군주君主로 이름이 장蔣, 시호諡號가 애哀인 애공哀公(기원전 494∼468 재위)은 재위 중 공자가 위衛나라에서 노나라로 돌아왔으나, 정치를 단념한 그를 등용할 수 없었습니다. 국내적으로는 삼환三桓이라고 하는 공족3가公族三家의 세력이 강성했고, 대외적으로는 오吳나라, 제齊나라의 공격으로 국력을 펴지 못햇습니다. 월越나라의 도움으로 삼환씨를 제거하려다 오히려 왕위에서 쫓겨나 유산지有山氏에서 죽었습니다. 공자가 노나라로 돌아왔을 때 애공이 공자에게 “어떻게 하면 백성이 복종하게 되겠습니까?” 하고 묻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정직한 사람을 들어 사특한 사람의 윗자리에 임용해서 쓴다면 백성이 마음으로부터 복종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특한 사람을 오히려 정직한 사람의 윗자리에 두고 쓴다면 백성은 마음으로부터 복종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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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이 마르고 트면 혈血이 부족하다

 

 

“세 살 때부터 태열기가 있었는데 갈수록 더 심해져서 데리고 왔어요.”

포동포동 살이 찌고 귀여워 보이는 일곱 살짜리 여자 아이를 데리고 <생긴 대로 병이 온다>의 저자 조성태를 찾은 어머니의 말입니다. 태열기胎熱気는 아토피성 피부염을 말합니다. 조성태가 보니 아이가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잘 먹을 것 같아 물으니 “밥은 그다지 많이 먹지 않는데 늘 입에 군것질거리를 달고 살아요” 하고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태열이 얼마나 심한지 묻자 아이의 옷을 걷어 올리며 어머니가 “몸 전체가 다 태열기예요” 하고 말했습니다. 여기저기 살펴본 조성태는 특히 팔다리와 주관절 부위가 더 심한 것을 알았습니다. 아이는 어린애답지 않게 입술이 바짝 마르고 껍질이 일어나 있었습니다. 입술이 트는 것은 혈血이 부족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므로 그에 다라 확일 할 겸 그는 아이의 팬티에 어른처럼 냉 같은 것이 묻어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아니 그걸 어떻게 아세요? 오래 전부터 팬티가 지저분해서 산부인과에도 갔었어요. 그런데 의사 선생님 말씀이 손으로 만져서 그런 거니까 손을 자주 씻어주라고 했어요” 하고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아이가 손으로 만진다는 건 가려움증이 있어서 그런 것이므로 낮과 밤 중 언제 더 가려움을 느끼느냐고 물으니 “낮에는 그런대로 잘 노는데 잠들기 전이면 굉장히 많이 가려워해요. 보기 딱할 정도죠. 그리고 여름철엔 심하게 짓무르기도 하구요. 지금도 계속 피부과에 다니면서 연고를 받아다가 발라주고 있어요. 그러지 않으면 긁느라고 잠도 못자는 걸요”하고 말했습니다.

조성태는 아이를 체질상 양명형陽明形으로 분류했습니다. 양명형이란 양명경陽明經이 지나는 부위인 얼굴, 젖가슴, 배, 허벅지 등이 유난히 살이 많이 찌는 체질을 말합니다. 양명경은 경맥經脈의 명칭으로 양명경에는 족양명위경足陽明胃經과 수양명대장경手陽明大腸經이 있으며 일반적으로 위경胃經이라 합니다. 족양명위경이란 십이정경十二正經 중 족부삼양경足部三陽經의 하나로 비양방鼻兩旁(迎香)에서 시작하여 상행하여 비근鼻根에서 좌우 경맥이 교차하고, 여기에서 내려와 윗니 속으로 들어간 다음 아래턱 뒤쪽으로 나와 귀 앞을 지나서 전두부로 나오고, 다른 가지는 후두 양쪽을 타고 내려와 횡격막을 통과하여 위에 속하고 비장에 관련됩니다. 수양명대장경이란 십이정경 중 수부삼양경手部三陽經의 하나로 식지의 엄지 쪽 말단에서 시작하여 팔의 바깥쪽 앞부분을 따라 견관절肩關節의 앞쪽 윗부분에 이른 다음 등 뒤의 견갑골 상단을 지나 대추혈大椎穴(제7경추와 제1흉추 돌기 사이)에서 교차하여 다시 앞으로 나와 쇄골鎖骨로 들어간 뒤 계속 하행하여 폐에 연락되고 횡격막을 통과하여 대장에 속하게 됩니다. 쇄골 중앙에서 갈라진 또 다른 맥은 유두를 거쳐 서혜부로 나와 다리의 전외측前外側을 따라 둘째발가락 외측 끝에서 끝나고, 무릎 아래에서 나누어진 가지는 장딴지 외측을 따라 가운뎃발가락 외측으로 흐르고, 발등에서는 엄지발가락의 안쪽 끝으로 나와 족태음비경에 이어집니다. 수양명대장경은 대장 및 폐, 위 등과 관계가 있습니다.

한의학에서는 눈두덩과 입이 두툼하면서 가슴과 배에 살이 많이 찐 사람을 양명형으로 분류합니다. 이런 체질은 본래 다기다혈多氣多血하여 배고픔을 잘 참지 못하고, 식사할 때면 허기진 사람처럼 허겁지겁 먹습니다. 위경胃經에 열이 있어서 언제나 입맛이 좋고 무엇이든 맛있게 먹으며, 땀을 많이 흘리는 특징이 있습니다.

조성태는 환자에게 사백산瀉白散을 처방했습니다. 사백산을 사폐산이라고도 하며 상한傷寒에 머리가 아프고 열이 나며 온 몸의 관절 마디마디가 쑤시고 아플 때 처방하는 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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