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孔子의 교육관은 무엇입니까?
공자는 자신을 “나는 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 아니요, 옛것을 좋아하고 민첩하게 그것을 구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나면서 저절로 아는 사람이 으뜸이요, 배워서 아는 사람이 다음이고, 막혀도 애써 배우는 사람은 그 다음이다. 막혔는데도 배우지 아니하는 민民은 이렇게 되어 하층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나는 가르치는 데 있어 차별을 두지 않는다”고 말한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인간의 타고난 본성은 서로 비슷하다. 다만 습관들이기에 따라 서로 달라지게 된다.”
공자의 교육관은 규범적 실천에 있음을 다음의 말에서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여, 집에서는 효도하고, 밖에 나가서는 어른을 공경하며, 일을 함에 있어서는 삼가서 하고 미덥게 해야 하며,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되 어진 이를 가까이해야 한다. 이런 일들을 행하고도 남은 힘이 있으면 고전을 학습하라.”
공자의 훈계로 입문하여 곧고 순진하여 헌신적으로 공자를 섬긴 자로子路(기원전 543~480)는 공자보다 9세 아래였고 제자 중에서는 최연장자로 중심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자로의 성미는 거칠었으나 꾸밈없고 소박한 인품으로 용기가 있어 가르침을 받으면 실천에 옮기는 인물이었습니다. 공자는 그를 가르침에 있어, 도의를 표준으로 했을 때라야 비로소 용기의 가치가 있음을 강조하여 그의 남보다 앞서는 용기와 적극성을 교정해주었습니다. 뒤에 위衛나라에서 벼슬했는데, 내란이 일어났을 때 스스로 도의적 입장에서 전사戰死를 택했습니다. 내란 소식을 들었을 때 공자는 자로의 죽음을 예언했다고 합니다.
공자는 자로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유由(자로의 이름)야! 너에게 앎에 대해 가르쳐주겠다. 아는 바를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앎이다.”
공자의 교육관은 다음의 말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함께 나란히 걸어가는 세 사람 중에는 나의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그들이 가진 우수한 점을 가려 배우고, 그들이 가진 열등한 점은 자기에게 실펴 그것을 고쳐나간다.”
“배우기만 하고 사고하지 않으면 얻는 바가 없고, 사고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의혹이 생길 것이다”라고 말한 공자는 사고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군자가 사고함에는 아홉 가지가 있다. 볼 때는 분명히 보았는지를 생각해야 하고, 들을 때는 똑똑히 들었는지를 생각해야 하며, 안색은 온화한지를 생각해야 하고, 용모는 공손한가를 생각해야 하며, 말은 진실해야 함을 생각하고, 일함에는 진지해야 함을 생각하며, 의문이 날 때는 어떻게 물어볼까를 생각해야 하고, 분통이 날 때는 후환을 생각해야 하며, 이득을 볼 때는 의로운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공자는 네 가지를 하지 않았는데, 근거 없이 억측하지 않았고, 제멋대로 결론짓지 않았으며, 구차하게 고집부리지 않았고, 스스로 옳다고 자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공子貢은 “선생님께서 고전문헌에 관해 논하신 것은 우리가 들을 수 있었다. 선생님께서 인간의 천성과 하늘의 도리에 관해 말씀하신 것은 듣지 못했다”고 했는데, 공자는 “기괴한 일, 억지 쓰는 일, 어지럽히는 일과 귀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공자는 자신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으며 서른에 학문에 어느 정도 성취가 있었고, 마흔에 이르러 스스로의 주장을 확실히 해서 미혹됨이 없었다. 쉰에는 천명天命을 알았으며, 예순에 남의 말을 한번 들으면 즉시 그 옳고 그름을 분별해낼 수 있었고, 일흔에 이르러서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 그대로를 따라 해도 법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자로가 귀신을 섬기는 일에 대해 물었을 때 공자는 “사람 섬길 줄도 모르면서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는가” 했습니다. 자로가 죽음에 관해 묻자 공자는 “삶도 아직 알지 못하면서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 하고 말했습니다. 공자는 “인간이 도道를 넓혀가는 것이지, 도가 인간을 넓혀가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