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적 입장에 입각한 또 다른 이론이 비평적 단일주의이다


에이어A. J. Ayer를 대표적인 인물로 탄감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으로 디키는 헤어R. M. Hare를 대표적인 인물로 하는 상대주의를 말한다.
상대주의는 단순히 화자의 감정이나 감정적 반응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으로 작품을 칭찬하든지 아니면 그 반대 입장을 취하는 것을 말한다.
‘이 작품은 좋다’라는 말로 작품을 평가할 때 ‘좋다’는 말은 화자의 감정을 표현한 것 외에도 그 작품에 대한 칭찬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좋다’는 말은 ‘추천한다’는 말과 동의어인 것이다.
‘이 작품은 좋다’라는 말로 작품을 평가할 때 어떤 기준이 전제되어 있으며 기준에 적합한 속성소를 가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기준이 전제된 판단이란 점에서 그 작품의 가치평가는 어느 정도 이성적인 활동이며 그만큼 객관성이 보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런 입장에서의 작품 평가는 주관적이며 상대적일 수밖에 없으며 기준은 합리적으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결단에 의한 것이다.
이런 경우 우리는 작품의 가치를 판단하는 객관성이나 타당성을 찾을 수 없게 된다.

주관적 입장에 입각한 또 다른 이론이 비평적 단일주의이다.
이 입장에 의하면 비평가가 한 작품을 좋다고 말하고 그 이유를 제시한다고 해도 그 이유가 좋다는 가치 판단의 기준이나 규범이 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단지 그 작품이 지닌 어떤 성질에 대한 우리의 주의를 끄는 기능 그 이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평가의 이유가 규범으로 환원될 수 있다면 예술은 더 이상 예술이 아니고 과학이며 예술가들도 엔지니어처럼 훈련을 통해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주관적인 평가를 수용해야 한다면 결국 그 평가는 다수결에 의해 결정되어야 하거나 아니면 소수의 취향에 의해 독단적으로 강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몬로 비어즐리Monroe Beardsley는 『미학』에서 평가는 항상 근거에 의해 뒷받침된다고 주장했다.
비평가는 작품을 평가할 때 판단의 근거를 제시하고 근거가 평가의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한 작품의 장점은 다른 작품에서 장점이 되지 못할 수 있어 단일한 기준이 일률적으로 모든 작품에 적용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비어즐리는 모든 작품에 보편적으로 적용시킬 수 있는 기준이 있다고 확신하면서 기준이 발견되지 않는 한 작품의 가치 판단은 객관성을 가질 수 없다고 보았다.
그는 가치 판단의 기준을 두 가지로 보았는데, 일차적 원칙Primary Principle과 이차적 원칙Secondary Principle으로 일차적 원칙은 모든 작품에 적용되지만 이차적 원clr은 그렇지 못하다. 그리고 이차적 원칙은 일차적 원칙에 의해 통괄·흡수된다.
모든 비평의 기준으로 제시된 다양한 원칙들의 저변에는 통일성unity, 강렬성intensity, 그리고 복잡성complexity이라는 가장 일반적인 원칙들이 전제되어 있다고 본 비어즐리는 그 외의 원칙 혹은 평가 기준은 세 가지 중 한 원칙을 전제하는 이차적 원칙에 불과함을 주장한다.

통일성은 작품의 질서로서 구성이 잘 되었다든가, 일관성이 있다든가, 조화를 이룬다든가 등의 속성소가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하고, 강렬성은 작품에 감동을 주는 내용이 있다든가, 작품이 새롭다든가, 독창적이라든가 등으로 구체화되는 것을 말하며, 복잡성은 작품의 주제 혹은 내용이 깊이가 있다든가, 포괄적이라든가, 다양성을 지녔다든가 등이다.
이 세 가지를 기준으로 여기에 합당한 속성소가 있는지의 여부를 경험적으로 작품 속에서 찾아내는 것이 비평이며 세 가지 기준에 해당하는 속성소가 전혀 없을 경우 논리적으로 그 작품은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 가지 중 하나를 갖춘 작품보다는 세 가지 모두를 갖춘 작품이 더욱 가치가 있게 된다.
비평은 주관적·즉각적 반응이 아니라 엄격한 논리적 활동을 수반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 가지 평가 기준인 통일성, 강렬성, 복잡성이 어떤 근거로 작품의 가치를 규정하는 척도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해 비어즐리는 예술적 경험이 그것을 말해준다는 입장이다.
지적 경험이 맛이나 섹스에서의 생리적 경험과 구별이 되듯이 고유한 예술적 경험, 즉 심미적 경험이 따로 존재하며, 심미적 경험을 분석하면 그 바탕에 통일성, 강렬성, 복잡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속성소에 의해 얻어지는 심미적 경험은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진리, 사랑, 건강 등에 내재적 가치가 있듯이 예술적 혹은 심미적 경험 자체도 내재적 가치가 있으며 어떤 변명이나 이유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작품의 가치는 심미적 경험을 얼마나 야기하는가에 달린 것이며 심미적 가치를 자아내는 도구로서만 평가될 뿐이다.
그리고 작품의 가치에 대한 평가는 구체적으로 통일성, 강렬성, 복잡성이라는 기준에 의해 어느 정도 객관성을 갖게 된다. 작품의 가치는 작품이 지닌 속성소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작품에 대한 감상자의 감성적 반응도 아니며, 작품에 부여되고 전제된 기능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런 작품의 가치를 기능에서 해석한 비어즐리의 이론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이를 비어즐리의 도구주의라고 하는데 조지 디키는 이를 반박한다.
비어즐리의 이론이 전제하는 예술적 혹은 심미적 경험의 존재 여부가 의심스럽다는 것이며,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통일성, 강렬성, 복잡성이라는 성질로 규정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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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스
 

고대 그리스에는 7명의 현인들이 있었다.
이들은 과학자이면서 사상가들이었다.
열거하면,
탈레스Thales, 아낙시맨더Anaximander, 아낙시메네스Anaximenes, 피타고라스Pythagoras, 헤라클리토스Heraclitus,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그리고 엠페도클레스Empedocles이다.

이들은 우주의 기원이 무엇인가 하는 데 골돌히 생각했다.
만물을 이루는 요소가 무엇인가 하고 생각했다.

우선 탈레스부터 알아보기로 하자.
탈레스는 만물의 근본 원소가 물이라고 주장했다.
Everything is made of water.
우리의 몸 80%가 물인 것만 봐도 그의 관찰은 놀랄 만하다.
불교에서도 우주가 水地火風으로 되어 있다고 해서 물을 먼저 꼽았지 않았던가!

탈레스는 소아시Asia Minor의 마일터스Miletus 사람으로 위의 7명을 가리켜서 마일터스 학파Milesian School라 한다.
마일터스는 당시 상업도시로 노예가 많았고 부자와 가난한 사란들 사이에 분쟁이 많았다. 가난한 사람들은 봉기하여 귀족들의 아내와 자녀들을 살해했고 귀족들이 우세할 때는 상대편을 화형에 처했다.
이런 분쟁은 도시국가 그리스에서 보통 있었던 일이었다.

그리스 동쪽 연안에 있던 리디아Lydia 왕국이 마일터스인들에게 호의적이었는데 리디아는 기원전 546년에 페르시아의 사이러스Cyrus에 의해 점령되었다.

탈레스는 늘 하늘을 바라보면서 천체를 연구했는데 그가 일식eclipse을 옝너한 것은 유명하다.
천체학자들의 말로는 그가 예언한 일식을 기원전 585년에 일어난 것으로 보고 그가 그 시대의 사람으로 추측한다.
이 시기에 마일터스는 리디아와 우호관계에 있었고 리디아는 바빌로니아Babylonia(오늘날 이라크)와 문화적 교류를 했다. 바빌로니아에는 천체학이 발달했고 일식이 19년만에 일어남을 발견했다.
하지만 바빌로니아인과 탈레스 모두 일식이 왜 일어나는지에 관해서는 몰랐다.

탈레스가 이집트에 기하geometry를 소개한 것은 유명하다.
탈레스가 이집트에 갔을 때 그가 현인이란 소문을 듣고 이집트 왕은 그를 실험하기 위해 하루만에 피라미드의 높이를 재라고 명했다.
탈레스는 땅에 1미터의 막대기를 꽂고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집트 왕은 그가 가만히 있는 것을 의아해 했다.
막대기의 그림자가 1미터가 되자 탈레스는 피라미드의 그림자의 길이를 측정했다.
그는 기하를 이용하여 피라미드의 높이를 잰 것이다.
그는 과연 7명의 현인들 중 하나였다.
One of the Seven Wise Men of Greece.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탈레스는 물이 고유한 물질로서 모든 것이 물로 형성되었으며 땅이 물 위에 떠있다고 믿었다.
그때만 해도 지구의 가장자리는 폭포처럼 물이 떨어진다고 믿었다.
그는 자석에는 혼이 있기 때문에 쇠를 움직인다고 했고 더 나아가서 모든 것들에는 신이 있다고 했다.
탈레스에 관한 기록은 별로 없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저서 <정치학 Politics>에 다음과 같이 전했다.

그는 가난했으므로 철학이 무용하다는 점을 드러낸 결과를 초래했다.
그는 별에 관한 지식이 있었으므로 겨울이지만 이듬해 올리브가 대풍년일 것을 알 수 있었으며 그래서 싼 값에 올리브를 사들였고 이듬해 올리브 가격이 앙등하자 그것들을 팔아 쉽게 부자가 되었다.
그는 철학자는 자신이 원하면 쉽게 부자가 될 수 있지만 원하는 바가 딴 데 있다는 걸 시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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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디키의 탄감주의


서양에서의 비평criticism(kritik, critique)은 18세기 중엽 프랑스 미술 아카데미 회원을 중심으로 루브르 궁전의 한 화랑에서 시작된 살롱전에 대한 디드로D. Diderot(1713~84)의 비평에서 시작되었다.
이런 전통은 19세기 영국의 러스킨, 프랑스의 스탕달Stendhal(1783~1842), 보들레르C. Baudelaire(1821~67), 공쿠르 형제E. I. A. de Goncourt(1822~96)와 J. A. H. de Goncourt(1830~70) 등을 통해 이어졌다.
미술비평은 어떤 작품을 놓고 구체적인 경험, 미적 판단을 이론화하고, 정당화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추상표현주의가 출현한 후 비평도 달라졌는데, 해럴드 로젠버그Harold Rosenberg(1906~78)는 예술가의 작품창조의 행위에 중점을 두는 비평을 했고, 같은 시기에 클레먼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1909~94)는 전통적인 회화관에 입각하여 유럽 회화의 역사적 전통과 연결시키면서 추상표현주의를 비평했다.
그린버그는 과정보다는 완성된 작품에 중점을 두었다.

작품을 비평한다는 것은 작품의 가치를 논하는 것으로 이는 비평가가 어떤 규준 혹은 규범을 저울삼아 그 위에 올려놓고 중량을 저울질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로젠버그가 작품창조의 행위에 관한 규범을 정한 것이나 그린버그가 과정보다는 완성도에 관한 규범을 정한 것이나 둘 다 개인적인 선택에 근거한 작품의 가치를 측정하기 위해서인데 엄밀히 말해 가치에 대한 욕망이 발생하기 때문에 생긴다.
그러나 어떤 규범을 가지고 작품을 비평 혹은 가치를 논하더라도 미술사가 존재하는 한 그 판단은 미술사의 맥락 안에서 객관성을 유지해야만 한다.

제솝T. E. Jessop은 논문 <미학적 가치의 객관성 The Objectivity of Aesthetic Value>(1969)에서 속성소屬性素, 즉 작품에 내재하는 구성 요소가 판단의 규범이 된다고 주장했다.
“미학 이론에 있어서나 실천에 있어서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판단 규범인데, 미적 판단의 유일한 규범은 아름다움이라고 정의되는 속성소이다.
그리고 완전히 미적 판단을 보장할 수 있는 아름다움의 유일한 정의는 … 대상들의 어떤 속성소에 대한 진술이다.”

그러나 작품에 이러저러한 속성들이 내재되어 있음을 지적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바로 가치가 될 수는 없다.
속성은 존재의 사실이지만 사실 자체가 가치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작품에 내재한 속성들이 다른 작품에 부재한다고 해서 후자가 전자에 비해 가치가 떨어진다고 말할 수 없으며 때로는 한 작품의 속성은 그 작품의 존재에 의의가 있더라도 다른 작품에서는 오히려 부정적인 의미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자는 비평을 감상자의 반응이라고 말하지만 그럴 경우 작품의 가치에 대한 주관적인 판단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감상자의 반응은 사람마다 다르고 시간, 장소,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비평을 감상자의 반응으로 보는 것에 대한 부정을 조지 디키George Dickie는 『미학 Aesthetics』(1971)에서 세 가지로 나눠 고찰한 탄감주의Emotivism, 비평단일주의Critical Singularism, 상대주의Relativism로 설명했다.
그는 탄감주의는 하나의 의미론으로 문법적 구조와 논리적 구조를 혼동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예를 들면 ‘장미꽃은 빨갛다’는 명제와 ‘장미꽃은 아름답다’라는 명제는 주어와 술어를 갖추었지만, ‘장미꽃은 빨갛다’는 명제는 장미꽃의 객관적 속성을 서술하나 ‘장미꽃은 아름답다’라는 명제에는 객관적 속성이 결여된 채 감상자의 반응만 나타낸 것으로 장미꽃을 서술하는 기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거 비평가들은 이 두 명제가 문법적으로 동일한 구조를 갖추었다고 착각한 것이다.
그러나 ‘장미꽃은 빨갛다’는 명제는 인식적 내영을 가지고 있는 데 반해 ‘장미꽃은 아름답다’는 것은 사이비 명제로서 그런 인식적 내용이 부재한다.
‘아름답다’는 술어는 대상에 대한 성질이나 속성을 지칭하는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오직 탄감적 기능을 할 뿐이다.
‘그 작품은 훌륭하다’는 명제도 마찬가지로 대상에 대한 성질이나 속성을 지칭하는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도덕적·예술적 차원에서 탄감적인 의미만을 가지고 있다.
‘이 작품이 좋다’, ‘이 작품은 위대하다’, ‘이 작품이 마음에 든다’ 등의 작품에 대한 판단 혹은 평가는 객관적으로 추정될 수 있는 어떤 대상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말하는 감상자의 느낌이나 반응을 나타낸 것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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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 6세기는 이성의 세기였다 
 
호메로스의 시는 기원전 6세기에 쓰여졌다.
그가 고대 그리스 문화를 이성을 갖고 기록했다.
기원전 5, 6세기는 동양과 서영에서 이성의 세기였다.
공자, 노자, 석가모니가 이 세기의 사람들이다.
이란의 지성적인 종교의 대상이 되는 조로아스터Zoroaster 역시 이 세기의 사람이다.
기독교에서는 예언자 이사야가 매우 중요한 사람으로 이해되는데 그의 개혁적 정신이 예수의 출현을 가능하게 했다.
이사야도 이 세기의 사람이다.
철학의 할아버지로 불리우는 탈레스 또한 이 세기의 사람이다.
과연 기원전 5, 6세기는 이성의 세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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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섭과 야나기


최순우는 『우리의 미술』에 조선 백자에 대해 적었다.
“의젓하기도 하고 어리숭하기도 하면서 있는 대로의 양심을 털어놓은 것, 선의와 치기와 소박한 천정天定의 아름다움, 그리고 못생기게 둥글고 솔직하고 정다운, 또 따듯하고도 희기만한 빛, 여기에는 흰 옷을 입은 한국 백성들의 핏줄이 면면이 이어져 있다.
말하자면 방순芳醇한 진국 약주 맛일 수도 있고, 털털한 막걸리 맛일 수도 있는 것, 이것이 조선 자기의 세계이며, 조선 항아리의 예술이다.”

고유섭은 조선 미술의 특색으로 무기교의 기교, 무계획의 계획, 민예적인 것, 비정제성, 비균제성, 적조미, 적막한 유머, 어른 같은 아해, 무관심성, 구수한 큰 맛 등을 꼽았는데,
앞서 야나기가 주장한 바와 일치하는 견해로 그가 야나기의 민예론에 동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민예를 강조함으로써 한때 야나기의 비애미론에 비판적이었던 태도를 바꾸어 동조하는 주장을 『조선 고대미술의 특색과 그 전승문제』에서 폈다.
“조선에는 근대적 의미에서의 미술이란 것은 있지 아니하였고 근일의 용어인 민예라는 것만이 남아 있다.
즉 조선에서는 개성적 미술, 천재주의적 미술, 기교적 미술이란 것은 발달되지 아니하고 일반적 생활, 전체적 생활의 미술, 즉 민예라는 것이 큰 동맥을 이루고 흘러내려왔다.
그러므로 민예로서의 미술은 계급문화로서의 특수성보다도 일반 대중생활의 전체 호흡이 그대로 들여다보인다 하겠다.
고구려, 백제는 물론이요 신라의 미술도, 고려의 미술도, 이조의 미술도 모두 다 민예적인 것이다.
조선에서는 고려조로부터 개성적 미술, 천재주의적 미술이라 할 중국의 문인화가 일부 유행하기는 하였으나 중국에서와 같이 뚜렷한 개성문제, 천재주의가 발휘된 것이 아니요 다분히 이 민예적 범주에 들어 있었고, 개성적 요소, 천재주의적 요소는 극히 적은 특수례를 이루었을 뿐이다.”

고유섭이 『조선 고대미술의 특색과 그 전승문제』에서 편 주장은 마치 야나기의 주장처럼 들려 그가 야나기의 이론에 전적으로 동조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의 미술은 민예적인 것이매 신앙과 생활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조선의 미술은 순전히 감상만을 위한 근대적 의미에서의 미술이 아니다.
그것은 미술이자 곧 종교요, 미술이자 곧 생활이다.
말하자면 상품화된 미술이 아니므로 정치한 맛, 정돈된 맛에서는 항상 부족하다.
그러나 그 대신 질박한 맛과 순진한 맛에 있어 우승하다.”

야나기가 타계한 이듬해인 1962년 김원룡은 그를 추모하는 글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의 조선미술관 - 그 생애와 미의 세계’에서 야나기의 조선미관을 비애·적막 둘로 요약하며 비애미론과 더불어 즉여사상卽如思想을 바탕으로 한 야나기 민예론을 거론하면서 조선미관이 민예론의 핵심적인 개념들 무사의 미, 조작 없는 미, 타력의 미, 무유호추無有好醜의 미, 법미法美, 심상尋常의 미, 평범의 미 등이 불교미에 있음을 강조했다.
그는 야나기의 “성문화된 조선미의 철학은 영원히 광채를 잃지 않을 것이며 틀림없이 하나의 진리를 우리들에게 제시할 것”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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