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는 상업과 예술의 으뜸가는 도시 

 

아테네는 상업과 예술의 으뜸가는 도시로 부상했지만 빈부 차이가 심화되다보니 여늬 대도시와 마찬가지로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충돌이 잦았다.
스파르타Sparta는 그들에게 항상 두려운 나라로 위협했는데
스파르타의 국익은 이웃나라를 침략하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스파르타인들은 전쟁을 많이 치뤘기 때문에 게릴라 전투에서 용맹스러움을 나타냈으며 적의 공격에 후퇴한다든가 도망치는 걸 가장 수치스럽게 여겼다.
필사적으로 목숨을 내걸고 싸우는 것을 그들은 가장 훌륭한 덕목으로 여겼다.
그래서 이웃나라들은 스파르타의 공격을 늘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플루타크가 <영웅전>에서 스파르트를 이상적인 국가로 미화시킨 글을 썼으므로 사람들은 스파르타를 훌륭했던 국가라고 생각하게 되었지만 실제로는 전혀 고상한 국가가 못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전한 바에 의하면 스파르타에는 왕이 둘 있었다.

그리고 보통 시민들 중 다섯 명을 제비뽑기로 선출해 이 두 왕을 감시하게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스파르타인들이 애들처럼 제비뽑기 방식으로 왕의 감시자들을 뽑았다고 그들을 한심한 사람들로 여겼지만 그것은 그들 방식의 민주주의 방법이기도 했다.
하지만 권력을 부여해주면 부패가 곧 따르듯 다섯 명은 뇌물을 받고 부패해지기 보통이었다.
이와같이 제도상의 문제가 아니라 늘 제도의 집행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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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소포타미아인의 기록
 
메소포타미아인의 기록에 의하면 아카드의 왕 사르곤 1세Sargon I의 군대가 멜루하Meluhha에까지 진군했는데
오늘날 학자들은 멜루하가 인더스 강 계곡이라고 주장한다.
인더스와 갠지스 강 사이에 인도의 화려한 문명이 있었던 것이다.
인도인이 농경사회를 건설한 것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인에 비해 늦은 편이었으며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유적들에 의하면 기원전 3700년경에 인도인들은 가축을 길렀다.
기원전 3000년경부터 인도인들은 한 곳에 안주했고 그때부터 문화를 갖기 시작했다.
그들이 흙과 구리를 사용하여 제작한 용기들을 보면 메소포타미아인들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인더스와 갠지스 강가에는 두 거대한 도시국가가 있었는데 하라파Harappa와 모헨조-다로Mohenjo-Daro였다.
두 도시의 크기는 인더스 계곡을 따라 1천 마일가량 되었다.
모헨조-다로 지역에서 구운 벽돌이 발견되었는데 당시 흙으로 벽돌을 빚어 태양에 말리는 것이 보통이었을 때 그들은 불을 지펴 벽돌을 구웠으므로 그들의 문화가 더욱 진전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돌이 귀한 그곳에서는 흙벽돌을 사용해 홍수를 막아야 했다.

그리고 도시의 구조를 보면 커다란 대로가 있었으며 대로를 가로지르는 많은 작은 길들이 있었고 길들을 연결하게 되면 도시의 크기와 모습이 어렴풋이 상상된다.
작은 집들이 나란히 모여 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거주지가 따로 있었고 땅을 넓게 차지한 부유층은 2층 혹은 3층 집에서 살았다.
그리고 하수도시설이 있었는데 물론 훗날 로마인들이 건축한 하수시설에 비하면 형편없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일찍이 건설한 것을 감안하면 그들이 매우 문명화된 도시를 건설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의 문화를 하라판Harappan이라 부르는 이유는 인더스 강 유역의 도시 하라파에서 대부분의 유적이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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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인의 찬란한 유적

 
인도인의 찬란한 유적은 모헨조-다로Mohenjo-Daro에서도 발굴되는데 상아, 청동, 은, 구리, 그리고 흙을 사용해 제작한 용기들이 많다.
이런 유적들을 통해 그들의 빼어난 기술과 예술성을 알 수 있다.
기원전 2250년경 그들에게는 훌륭한 문화가 있었으며 그들의 문화는 약 400년 동안 지속되었는데 그들이 건립한 사원의 크기는 가로 세로 180피드 108피드의 규모였다.
인도인들은 여신을 섬겼으며 동물 또는 그것들과 유사한 형상들을 만들어 신성을 부여하고 섬겼다.
인더스 계곡에서 상형문자가 반결되었는데 인도인들이 기원전 2300년과 1700년 사이에 사용했을 것으로 학자들은 짐작한다.
인도 문명이 왜 퇴화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인더스 강의 홍수로 인한 범람이 농경사회를 궁핍하게 한 것은 아니었나 짐작된다.

더러 학자들은 인더스 지역에 여섯 소수 민족이 함께 어울려 살았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증명하지는 못하고 있다.
언어의 구별로 보면 아리안Aryan이 살았던 건 분명한데 아리아인이란 말은 '고상한 족속 Noble Folks'이란 뜻으로 그들은 스스로를 그렇게 불렀다.
히틀러가 튜톤족의 조상이 아리안이라고 주장한 것은 고상한 족속이었음을 주장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리안은 인도-유럽인Indo-European으로 그들이 대거 남쪽으로 이동할 때 일부가 인도로 왔으며 일찍이 철기문화를 가진 그들이 구석기시대에 살고 있던 인도 원주민들을 깔보고 그들을 노예로 부리며 살았다.
아리안족 일부는 기원전 1750년경에 이란Iran으로 가서 살았다.
아리아인이 인도 원주민들에게 미친 영향은 두 가지로 종교와 사회의 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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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아인은 신 아그니Agni를 섬겼다

 
아리아인은 신 아그니Agni를 섬겼는데 불의 신이다.
아그니는 화염을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신을 만날 수 있는 신앙을 심어주었다.
현재에도 힌두교 신자들의 결혼식에는 불을 피우고 불 주위를 맴도는 의식이 거행되고 있는데 아그니를 섬기던 관습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 전으로 기억된다.
베트남전이 아직 한창일 때였다.
주간지 뉴욕타임즈에는 베트남 수도승 하나가 앉은 채 자신의 몸에 기름을 붓고 스스로를 불에 태웠다.
미국의 월남전 참여에 대한 반발을 그런 식으로 시위를 한 것이었다.
인도에서 수도승이 스스로의 몸을 태웠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적은 있었지만 잡지에 사진과 함께 보기는 처음이었다.
베트남의 늙은 수도승은 아그니의 도움으로 화염에 싸여 신을 만났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홀로 불길에 싸여 춥고 쓸쓸하기 짝이 없는 우주 밖으로 달아났을 것이다.
온몸이 불길에 싸인 모습은 매우 경악스러웠다.
더욱 놀라웠던 사실은 온몸이 불에 타는 데도 꿈쩍 않고 길바닥에 앉아 있었고 제자 승들을 멀찌감치 원을 그리며 스승의 이승 하직을 불길 속에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이지 온몸이 줄길에 싸였는 데도 목석처럼 앉아 있었는데 그야말로 목석같은 스님이었다.

그때 느낀 점은 종교란 그 신앙이 어디서 비롯되었든 간에 믿음은 파스칼이 말한 "생각하는 갈대"가 아니라 생각하는 목석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knowing에서 knowledge가 된다.
Faith는 opinion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Opinion이 knowing보다 근거가 약해보일 것 같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지식보다 더한 믿음이 된다.
다시 말하면 믿음은 지식보다 더욱 확고한 것이 된다.
지식에는 목숨을 걸지 못하더라도 믿음에는 목숨을 건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인생의 궁극적인 힘이 되어주는 것은 지식보다는 믿음이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했는데 그날 나는 "믿는 것이 아는 것보다 더 큰 힘"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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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가 활약할 당시 
 

석가모니가 활약할 당시 인도에는 자이니즘Jainism이란 종교가 있었다.
한두교에 비해 석가모니의 사상, 즉 훗날 불교가 된 사상이 매우 진보적이었지만 자이니즘은 불교보다 진보적이었고 더 지성적이었다.
자이니즘이 도태되고 불교가 성행한 건 자이니즘이 불교에 비해 보편적이 되기 난해했기 때문이었다.
자인Jain은 '정복자'라는 뜻이다.
자이니즘에는 대대로 자인들이 있었는데 인생을 정복한 사람들이었고 그들의 가르침이 전해왔다.

자이니즘에 관한 기록을 보면 인도사회에는 특수계급이 있었는데 가장 고상한 계급으로 인도 원주민들을 다스린 브라만Brahman이다.
이들은 아리안들이었다.
이 계급이 한두교라는 종교에서 또한 지고의 계급이 된다.
브라만은 통치자이면서 성직자이기도 했다.
옛날에는 정치와 종교가 한데 섞여 있었기 때문에 통치자는 곧 종교 지도자이기도 했다.
아리안들은 인도 원주민들을 노예부리듯 하면서 그들을 다사dasa라고 불렀는데 다사는 검다는 뜻이다.
피부가 검어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계급을 바르나varna라고 했는데 바르나는 색color이란 뜻이다.
바르나에는 네 계급이 있었는데 최고의 계급이 앞서 말한 브라만이고, 다음이 군인kshatriya이며, 그 다음이 상인vaishya이고, 마지막이 농부shudra이다.
이런 계급은 세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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