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파울리와 하이젠베르그에게 말했다
 

시인 쉴러는 "진실은 깊은 곳에 있다"라고 했다.
깊은 곳이란 어느 영역을 말하는 것일까?
과학자들은 사물의 운동을 명백한 영역에서 발견하려고 한다.
그러나 시인과 신비주의자들은 모호한 영역에서 발견하려고 한다.
명백한 영역에서 발견되는 진실이 부분적인 진실이라서 진실에 대한 우리의 욕망을 채워주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과학자들도 명백한 영역에서 발견한 진실만으로는 우리가 알고자 하는 우주 전체에 대한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고 있다.
미지의 영역을 설명해주는 것이 형이상학이고 신비주의이다.

1952년 초여름 원자력 물리학자들이 코펜하겐에 모여서 유럽인들의 가속장치를 만들기 위해 논의했을 때 하이젠베르그도 그 학회에 초대되었다.
원자력 가속장치란 두 가지 기본 원소가 고도의 에너지로 충돌했을 때 다른 원소들을 생산할 수 있는가를 증명하는 것이 당시 학회의 과제였다.
그때 하이젠베르그는 그럴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는 새로운 원소들이 존재할 것으로 믿었으며 원자와 미분자의 정지된 상태처럼 새로운 원소들은 무게, 생존기간, 그리고 대칭적으로만 상이할 것으로 믿고 있었다.
볼프강 파울리Wolfgang Pauli와 닐스 보Niels Bohr도 그 학회에 참석했으며 하이젠베르그는 두 사람과 특히 우정이 두터웠다.
세 사람은 코펜하겐 근처에 있는 보의 연구실에서 자주 만났다.

어느날 보의 연구실에서 보는 파울리와 하이젠베르그에게 말했다.
"얼마 전에 이곳 코펜하겐에서 철학자들의 모임이 있었는데 대부분 비엔나 서클에서 활약하던 실증주의자들positivists이었다네.
난 그들로부터 초대받아 <양자 이론>에 관해 설명하게 되었네.
내 강의가 끝난 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으며 나를 부끄럽게 만들 질문을 한 사람도 없었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점은 내가 대단히 실망했었다는 것일세.
그들은 <양자 이론>을 처음 들었으므로 그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텐데도 그들이 전혀 놀라지 않았다는 사실일세. 아마 내가 말주변이 없어서 누구도 내 강의를 이해하지 못했는지 모르겠어."

그러자 파울리가 말했다.
"잘못이 자네에게 있었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
실증주의자들의 신조 중 하나가 소위 말하는 '볼 수 없는 사실이라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일세.
내가 알기로는 비트겐스타인Wittgenstein이 다음과 같이 말했네.
'세계는 모든 것이고 그것이 문제이다.'
'세계는 사물들의 집합이 아니라 사실들의 집합이다.'
만약 자네가 그러한 전제 하에서 강의를 시작했다면 어떠한 이론을 설명했더라도 그들은 자네를 반겼을 것일세.
실증주의자들은 <양자 역학>이 원자력 현상을 정확하게 설명한다고 믿기 때문에 불평할 이유가 없다네.
그 외에 우리가 보탤 것이 무엇일까.
보충, 확율의 작용, 불확실한 관계들, 주체와 대상의 구별 등에 관한 이론들을 그들에게 말해준다면 그것들은 아주 많은 수식처럼 또는 과학 이전의 사고로 돌아가는 재발처럼 그들에게 여겨져서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일세.
그와 같은 그들의 태도는 아마 논리적으로 그들이 방어할 만한 것이겠지만 그와 같은 이론들을 설명할 때 우리가 자연을 이해했다고 하는 말의 의미를 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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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이 상징주의 그 이상으로 확장되려면
 

 물리학이 상징주의 그 이상으로 확장되려면 과학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고 신비주의가 지식이 되기 위해서는 신비주의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요구된다.
과학에서 발견되는 존재론이 두 학문의 간격을 좁혀줄 수 있다고 본다.

윌버는 "과학이 무엇이냐"라고 물어서는 안 되고 "과학적인 방법과 그 영역이 무엇이냐"라고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과학을 과학의 방법the method of science과 과학의 영역the domain of science으로 나눠서 이해했다.
그는 과학의 방법은 사실, 데이타, 또는 자료를 긍정하거나 논박함으로써 지식을 축적하는 것이며, 과학의 영역은 단지 사건이나 현상들의 종류를 탐구하는 것으로 보았다.
방법은 인식론에 속하고 영역은 존재론에 속하는 것으로 보았다.

윌버는 과학적 방법을 일반적인 과학으로서 어던 가정에 대한 전제를 기구를 사용하든 경험적으로 실험하든 그렇게 해서 얻은 지식으로 보았으며, 근원적으로 지식이 경험적인 유용함이나 반박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경험한 지식을 과학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윌버는 그러한 과학은 방법에만 관심을 둘 뿐 과학과 비과학을 나누는 객체-영역들object-domains을 포함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윌버가 말한 과학과 비과학은 물리학과 형이상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적으로 실험할 수 있는experientially testable 것들과 실험할 수 없는 독단적인 선언들dogmatic pronouncements을 말한다.
경험적으로 실험할 수 있는 것들은 경험을 공개하여 확인하거나 반박할 수 있지만 독단적인 선언들은 "내가 너희에게 그렇게 말하기 때문이다"라는 식이어서 경험적으로 실험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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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와 실재
 

신비주의를 잘 이해한 에딩턴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물리학자들은 신을 다른 방정식으로 제한하려고 한다.
우리는 어떠한 큰 실패를 범하기를 피하고자 한다. ...
우리는 물리학의 방법으로 외부세계를 탐구한 것이 확고한 실재에 접근 한 것이 아니라 상징들의 그림자 세계에 접근했음을 알게 되었다."

에딩턴에 의하면 물리학은 한 마디로 그림자-상징들의 세계에 대한 탐구이다.
플라톤이 <공화국>에서 말한 실재가 아닌 그림자를 실재로 착각하고 탐구하는 것이다.
신비주의의 입장에서 보면 과거의 물리학과 20세기 물리학의 상이한 점은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 이론>, <불확정 이론>, <4차원 이론>, 또는 그와 같은 새로운 이론들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물리학과는 달리 새로운 물리학은 실재가 아닌 환상과도 같은 그림자-상징들을 다루는 학문임을 자각하는 데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점을 안 진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근원적인 사실은 과학이 그린 자연에 관한 모든 그림은 관망적인 사실처럼 보이지만 수학적인 그림들이라는 것이다.
그것들은 그림들 그 이상이 아니고 허구적인 것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과학이 궁극적인 실재에 접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20세기 물리학의 성과는 시간과 공간을 한데 묶은 <상대성 이론>이나 인과법칙을 부정하는 <양자 이론>이나 원자의 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스의 말대로 물리학이 궁극적인 실재에 접근하지 못한 사실을 안 데 있다.
플라톤의 말을 빌려서 말하면 물리학자들은 여전히 동굴 속에 갇히 사람들일 뿐이다.
현대 물리학은 그림자-상징들이 허구임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들의 상징주의 그 이상에 실재가 있다는 걸 알았다.
그들은 여태까지의 물리학으로는 상징주의 그 이상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자각했다.
이는 대단한 발견이다.
현대 물리학자들은 플라톤의 가깝한 동굴로부터 조만간 탈출을 시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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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들 중 가장 신비스러운 생각을 가진 사람은 

운동, 진화, 그리고 별자리에 관한 이론을 제시한 물리학자 아서 에딩턴 경Sir Arthur Eddington(1882-1944)은 아인슈타인과 마찬가지로 신비주의 사고를 갖고 있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새로운 물리학이 종교를 증명한다거나, 종교적인 믿음에 어떤 확고한 증거를 제공한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
나로서는 그러한 시도 자체를 반대합니다."

물리학자들 중 가장 신비스러운 생각을 가진 사람은 1933년에 노벨상을 수상한 어윈 슈로에딩거Erwin Schroedinger(1887-1961)라 말할 수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물리학은 매일 매일의 경험으로부터 시작되고 좀더 미묘한 방법으로 탐구를 계속합니다. 신비주의와 유사한데
신비주의를 능가하지 못하고 또한 실재로 진입할 수 없습니다."

슈로에딩거는 물리학이 신비주의를 능가하려고 시도한다면 이는 그저 불합리할 뿐이라고 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과거 과학이 점유한 영역은 기꺼이 받아들일 만한 솜씨 좋은 종교적 이상주의의 놀이터로 퇴장할 것을 요구하는데
과학이 유용하게 적용되지 못하는 것은 종교적 진리가 어떠한 과학적인 설명으로도 가능하지 않는 영역에서 현저하게 나타난 까닭입니다."

1918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막스 플랑크Max Planck(1858-1947)는 <현대 양자론 Quantum Theory>의 아버지로 불리우며 그는 과학과 종교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존재에 관해 설명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식물학과 음악이 충돌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지도 않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과학과 종교도 충돌하지도 조화를 이루지도 않는다고 했다.
플랑크는 과학과 종교를 각각 외짝이 되게 하거나, 하나로 묶는 것은 "그것들을 오류 위에 건립하는 것과도 같으며,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종교의 이미지들을 과학적 설명으로 혼란스럽게 하는 것과도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플랑크는
"그러한 시도는 두 말할 나위없이 결과를 얼토당토않게 만드는 것이다"라고
부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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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은 초자연적인 신비주의와 관련이 있을까? 
 

물리학은 우리에게 자유의지free will, 창조, 정신, 혼에 관하여 설명해줄 수 있을까?
물리학은 초자연적인 신비주의transcendental musticism와 관련이 있을까?
과학과 종교의 역할은 무엇일까?
20세기에 <상대성 이론 Relativity Theory>과 <양자 이론 Quantum Theory> 그리고 원자에 대한 해부가 있었지만 물리학과 신비주의에 대한 논쟁은 종식되지 않았다.

일부 물리학자들은 과학의 범위를 넘어서 철학의 영역에 해당하는 글을 발표했다.
그들 모두 신비주의나 초자연주의를 옹호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글에서 신비주의의 내용이 발견된 것은 특기할 만하다.
그들은 신비주의자들의 형이상학 이론들을 지지하지도 반박하지도 않았다.
물리학자들이 신비주의 이론에 반박하지 못한 것은 신비주의 이론에 형이상학적 타당성이 있기 때문이며 신비주의 이론이 우리에게 만족할 만한 설명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우주의 기원에 관심이 있는데 우주의 기원에 관한 문제는 닭이 먼저냐, 아니면 알이 먼저냐 하는 질문처럼 보인다.
과락자들은 이 문제에 대한 답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고 답을 제시할 경우 형이상학적이거나 신비적인 해석처럼 들린다.
우주가 영원한 것인지, 아니면 창조된 것인지에 관한 문제는 아직까지는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형이상학과 종교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칸트는 <순수 이성 비판>에서 우주가 시작되었다고 믿는 것과 그렇지 않다고 믿는 것 모두 타당한 논쟁이라고 주장했는데 두 이론 모두 이성의 가능성들로 과학이 증명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형이상학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특수 상대성 이론>(1905년)과 <일반 상대성 이론>(1915년)으로 1921년 노벨상을 수상한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1879-1955)은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물리학 이론을 인생에 적용하려는 근래의 경향은 온전히 오류일 뿐 아니라 오히려 비난을 받을 만합니다."

대주교 대비드선Davidson이 아인슈타인에게 <상대성 이론>이 종교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겠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상대성 이론>은 순전히 과학적인 이론으로서 종교와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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