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는 이상적인 인간에 관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가장 이상적인 인간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자도 아니고 유교에서 말하는 군자도 아니다.
그의 이상적인 인간은 고유한 자긍심을 가진 사람으로 자신의 장점을 평가절하under estimate해서는 안 된다.
자긍심은 겸손과는 반대되는 개념으로 니체가 자긍심을 높이 찬양하면서 기독교가 사람들로 하여금 자긍심을 버리도록 종용하면서 노예 도덕성slave morality을 주입시킨다고 기됵교를 혐오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상적인 인간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도량이 큰 사람은 고상한 수준에서 훌륭함을 인정받을만 하며 그는 선할 수밖에 없다.
...
모든 미덕 가운데서 위대한 것은 도량이 큰 사람의 성격처럼 보인다.
도량은 미덕의 왕관처럼 보이고
이것이 사람을 위대하게 만들며
이것 없는 위대한 사람을 우리는 발견할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긍심은 정치학에도 적용되어 그는 1인독재주의를 가장 이상적인 정치 형태로 보았다.
그 다음으로 귀족주의를 꼽았는데 독재자와 귀족들은 도량이 클 수 있지만 시민들은 그럴 수 없고
시민들이 그들처럼 살려고 노력한다면 이는 웃기는 일일 것이라고 했다.
이런 그의 논리는 절반은 윤리학이며 나머지 절반은 정치학에 속한다.

도량이 크다는 건 덕이 있다는 말이며
이런 그의 덕치주의는 플라톤의 정치이념이었고
공자와 맹자의 덕치주의와도 다르지 않다.
공자와 맹자가 미덕이 있고
위대하며
이상적인 군자로 꼽은 3황5제는 바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이상적인 인간, 즉 철학자였다.
이런 철학자는 서양이나 동양에서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는 적임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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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을 위한 민본정치

 
소크라테스가 신성불경죄로 사형에 처해졌지만
사실은 민주주의 정체를 반대했기 때문에 사상범으로 처형된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정치철학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어받았는데
두 사람은 덕치주의를 찬양하면서 독재주의가 가장 이상적인 정체로 보았다.
이들 두 사람과 공자와 맹자
이들 네 사람은 시민에 의한 민주정치를 반대했고
시민을 위한 민본정치를 이상적인 정체로 찬양했다.
그들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소수만이 이상적인 인간이 될 수 있고 대부분은 이상적인 인간이 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는 오늘날에도 사실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체를 반대한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신봉한 사람들로
스토익 학파의 창시자 제노Zeno 이후 스토익Stoic 학파 사람들과 기독교인들이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고
주장하면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민주주의 정체 하에서도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아래 사람이 있다는
것이 우리가 경험하는 바이다.
즉 대통령과 박씨네 문간방에 세든 미쟁이 오씨는 무차별한 사이가 아니다.
대통령이 오씨 위에 있어 보인다.

민주정치는 겉으로는 그럴싸해 보여도 속으로는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아래 사람 있다.

과연 인간 모두가 동등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판사의 존재를 어떻게 인정할 수 있을까!

인민재판이 바로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는
형식일 텐데 인민재판이 과연 이상적인 재판일까?
인민은 늘 선동의 대상이 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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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고 겸손한 사람이야말로 훌륭하다고 칭찬했다 

 
스토익에 속한 사람들과 기독교인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미덕이 최선이라는 데 동감을 표하면서도 그의 미덕론에는 반발했는데,
모든 사람이 선을 추구할 수 있으며
선은 몇몇 소수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면서 정부는 의로운 사람들만의 정부여서는 안 된다고 반대했다.
그들은 주인들 뿐만 아니라 노예들에게도 미덕은 가능하다고 주장했으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자긍심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악하다고 여긴 겸손을 오히려 찬양했고,
가난하고 겸손한 사람이야말로 훌륭하다고 칭찬했다.

기독교인들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지성적 미덕을 무시했는데 그들에게 미덕은 지성적 문제가 아니라 신의 축복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든 사람이 동등한 수준에 있으므로 사람들 가운데서 통치자를 뽑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면서 신정정치Theocracy를 주장했다.
Theo는 신이란 뜻이므로 신정정치는 신에 의한 신을 위한 정치를 말한다.

기독교인들은 신의 대리인으로 교황을 선출했으므로
교황에 의한
교황을 위한 정치를 선택할 결과를 초래했다.
그러니까 신정정치는 말이 신의 뜻을 따른 것이지 결국 교황의 1인독재로 나타날 수밖에 없으며
결국 절대권력은 절대부패를 낳아 혁명에 의해 가톨릭은 수난을 당하고 개신교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스토익과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들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민주주의를 반대하지만 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을 사람들은 아랫 마을 방아간집 아저씨나 그 건너집 목수 아저씨보다 존경하며,
대통령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도량이 큰 위인은 못되더라도 평균 시민에 비하면 우수한 편이며 어떤 장점을 갖고 있는데
물론 윤리적으로 떳떳지 못한 경우가 흔하다.
이렇게 말하고는 있지만 여기에 전두환이나 노태우 전직 대통령들은 아예 포함되지 않는데
두 사람은 평균 시민보다 훨씬 못한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시인, 작곡가, 화가, 조각가 등 예술가들도 어떤 장점을 가진 사람들인데
비록 도덕적으로는 한심한 구석이 있더래도 비윤리적인 면에서는 평균 사람보다 장점을 갖고 있다.
이 말은 왜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여하튼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지만 평균 사람보다 장점을 가진 사람은 있으므로 그런 사람이 정치를 하게 되는 것은 차선책으로 타당하는 그런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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귓불을 자른 건 성을 못이긴 자해공갈이었다 

 
반 고흐는 아를에서 폴 고갱과 함께 생활한 적이 있다.
반 고흐가 자신의 귓불을 자른 건 이때 일어난 일이다.
고갱은 반 고흐의 재능을 인정하면서도 겉으로는 퉁명스러운 말투로 존경심을 감춰 반 고흐를 화나게 만들었고
반 고흐는 고갱을 존경하면서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자 성을 냈다.
귓불을 자른 건 성을 못이긴 자해공갈이었다.
효과는 반대로 나타나 고갱은 학을 띠고 반 고흐로부터 멀리 달아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미우나 고우나 두 사람을 미술사에서 한쌍의 콤비로 기억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두 아마추어 화가들에 의해서 진정한 현대회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 단지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일념을 가진 이 두 성질 고약한 사람들에 의해서 서양회화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것이다.
당시 아카데미에서 충분히 회화 교육을 받은 화가들이 많았다.
그런데 어째서 원근법도 제대로 못맞추고 색도 제대로 내지 못했으며 남의 그림만 모방하던 이 두 사람이 떠오르는 별이 되었을까?
두 사람의 수준낮은 그림들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초창기의 거의 모든 그림들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말년에서야 자신들이 원하는 그림을 그렸고 이런 그림들이 두 사람을 현대회화의 선구자들로 만들었다.

고갱은 가난으로 지치고 마누라한테서도 멸시를 받을 때 친구 슈페네케에게 편지를 썼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 말은 훗날 고갱과 반 고흐의 그림을 말해주는 함축된 미학이 된다.
"색은 음악에서와 마찬가지로 진동이고
자연 안에서 일반적인 것들과 가장 모호한 것들을
나타내는 내면의 힘일세.
순수색!
모든 건 이것을 위해 희생되어야 한다네."

고갱과 반 고흐의 성격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고갱은 인습타파주의자였으며
빈정거리는 말을 곧잘 했고
유럽의 현대문명을 냉소했으며
무심한 구석이 있었다.

이에 반해 반 고흐는
북유럽 특유의 기질대로 야성적이었고
천성이 열심히 하는 성격이었으며
동료 예술가들에게 곧잘 격정적인 우정을 표시했다.

반 고흐에게 격정이 있었다고는 하나 이런 격정이 야성적인 기질에 근거한 것이 아님을 그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수많은 편지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적었다.
"난 눈으로 본 것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기분내키는대로 사용한단다.
난 나 자신을 힘있게 표현하고 싶다."

반 고흐의 그림을 보면 이 두 마디의 의미를 알 수 있다.

아까운 건 그가 37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37살로 세상을 떠난 화가들로 반 고흐 외에도
라파엘로, 와토, 툴루즈 로트렉이 있다.
유명해지는 데 37살이면 충분한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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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가 말했다

 

보가 말했다.
"언어를 제한해서 사용하는 건 내게도 별로 유용하지 못하다고 생각되는군.
자네들이 쉴러의 시 <공자의 문장 The Sentences of Confucius>을 기억할줄 아는데 시에는 다음의 구절이 있지.
'가득찬 마음은 절로 명료하고 진실은 깊은 곳에 있다.'
우리에게 있어 가득찬 마음이란 충분한 경험뿐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문제에 관해 말할 수 있으며, 현상들을 일반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충분한 개념들을 말하는 것일세.
<양자 이론>의 고유한 법칙들과 관망한 현상들 사이의 낯선 관계에 관해 논할 때 다양한 모든 개념들을 사용해야지만 다각도에서 그런 관계들에 불을 붙여 분명한 모순을 나타낼 수 있으며
따라서 <양자 이론>에 관한 우리의 이해가 되는 사고의 과정을 바꿀 수도 있는 것이라네."

보의 말을 듣고 파울리가 응답했다.
"자네가 필립 프랭크의 원인에 관한 책을 언급했는데 프랭크는 코펜하겐 국회에 참석하는 철학자들 중 한 사람으로 그는 자기가 말한 형이상학에 관해 강의했지.
그건 한 마디로 비과학적인 사고였다네.
프랭크가 강의를 마쳤을 때 난 그에게 나의 입장을 설명해야 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네.
나는 접두사 메타meta가 어째서 논리학과 수학에 필요한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는 점과 물리학에서는 메타가 금계로 인식된다는 점을 지적하는 걸로 이야기를 시작했지.
프랭크가 메타논리학metalogic과 메타수학metamathematics에 관해서 말했기 때문이었네.
잡두사는 결국 우리가 질문하는 것을 단지 시사할 뿐으로 질문은 특별한 학문 분야의 근본적인 개념들에 적용되는데 왜 물리학에서는 그런 질문을 할 수 없느냐?
그러나 난 반대편의 입장에서 질문을 시작해야 했다네.
예를 들면 전문가란 어떤 사람이냐?
전문가란 자신의 주제에 관해 아주 많은 걸 알고 있는 사람일 걸세.
난 어느 누구라도 어떤 주제에 관해 아주 많이 알 수는 없는 일이라고 이의를 제기했지.
난 전문가에 대한 정의를 자신의 주제에서 지독한 실수를 발견하고 그 실수를 피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했네.
이런 이유에서 프랭크는 형이상학에 전문가라 말할 수 있으며 난 그가 지독한 실수를 피하는 방법에 관해 알고 있다고 말했는데
그는 내 칭찬에 아주 만족해 했는지 난 알지 못하네.
그와 나눈 대화 중 내게 문제가 된 건 우리가 존재 밖 깊은 곳에 진실이 있다는 점에 관해 그절 말하지 않았다는 것일세.
그것을 아주 피상적 견해로 봤다는 것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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