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비평의 근거 
 
미술품을 해석함에 있어 어떤 기본규정을 정하지 않으면 해석할 수 없다.
기본규정들 중 고립주의Isolationism라는 것이 있으며 이는 미술품을 감상할 때 오직 예술가의 일대기와 역사적 배경만을 염두에 두고 그 밖의 것들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 방법이다.

다음으로 맥락주의Contextualism라는 것이 있으며 이는 미술품을 그것의 배경 안에서만 해석하는 것이다.
이는 초상화를 감상할 때도 적용된다.
고립주의는 음악의 경우 더 적합하고, 예술가의 주관적인 작품을 해석할 때 적합한 반면 맥락주의는 역사화와 종교화를 해석하는 데 적당하다.
두 가지 이론을 병행할 수도 있다.
맥락주의가 고립주의보다 광범위에 걸쳐 해석에 적합해보인다.

미술품의 의미는 예술가의 의도가 성공적으로 표현될 때 고스란히 나타나지만 제대로 표현되지 못할 때는 그 의미가 예술가의 의도와 무관하게 해석될 수밖에 없다.
은유 혹은 비유가 적절하지 않을 때 이런 일이 종종 발생하며, 문학의 경우 사용된 언어를 문자적인 의미로 해석할 때 작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또한 예술가의 의도가 부분적으로 드러날 경우 혹은 그 의도가 불분명하게 나타날 경우 해석은 달라질 수 있다.
평론가가 예술가의 의도보다는 자신의 의도를 더욱 드러내려고 할 때 미술품에 대한 해석은 전적으로 평론가의 몫이 된다.

평론가는 아니지만 레오 톨스토이Leo Tolstoy(1828-1910)에 의해 미술품을 해석하는 방법으로 제안된 주정주의Emotionalism가 있다.
미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예술이란 무엇인가? What Is Art?>에서 예술을 쾌를 위한 수단으로 정의해서는 안 된다면서 인간 삶의 조건들 가운데 하나로 간주해야 할 것을 역설했다.

톨스토이는 예술의 역할들 중 하나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교제의 수단으로 꼽으면서 웅변이 인간의 사고와 경험을 전달하는 것으로 인간들 사이의 합일의 수단에 기여하듯 예술도 유사한 목적에 기여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웅변이 사고를 전달하는 데 비해 예술은 느낌을 전달한다고 보았다.
미술품을 통해서 관람자가 작가의 느낌의 표현을 전달받는데 이는 작가의 감성을 경험하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적었다.

예술은 형이상학자들이 말한 어떤 신비로운 미의 개념이나 신의 표명이 아니다.
그것은 미적 생리학자가 말한 인간이 자기의 저장된 에너지의 여분을 발사하는 게임이 아니다.
그것은 외적 표적들에 의해 인간의 감성들에 대한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즐거움을 제공하는 오브제들의 생산이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것은 쾌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동일한 느낌들 안에서 인간들을 서로 연결시켜서 하나가 되게 하는 수단이며, 개인과 인류의 복지를 향한 삶과 발전을 위한 필요불가결한 것이다.

톨스토이는 예술의 전염력 수준이 세 가지 조건에 달린 것으로 보았다.
1. 전달한 느낌의 크고 작은 특성에 달렸다.
2. 느낌이 전달한 것과 더불어 크고 작은 명확성에 달렸다.
3. 예술가의 성실, 즉 예술가 자신이 전달하려는 감성에 대한 느낌과 더불은 크고 작은 힘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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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스킨은 시각적 인상을 이와 반대되는 개념적 지식보다 우위에 놓고 

미술비평에 있어 존 러스킨John Ruskin(1819-1900)의 역할은 중요하다.
그는 <근대 화가론 Modern Painters>을 썼는데 그의 중요한 저작들 가운데 하나이다.
곰브리치는 이 책에 관해 자신의 저서 <미술과 환영 Art and Illusion>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폴리니와 바자리에게서 시작된 미술사를 시각적 진리를 향한 발전으로 해석해온 전통에 속하는 책들 가운데 가장 설득력 있는 최후의 책이다.

러스킨은 <근대화가론> 제1권을 1843년 익명으로 출간했으며 제3권과 제4권은 1856-57년에 출간했고 제5권은 1860년에 완성되었다.

러스킨은 시각적 인상을 이와 반대되는 개념적 지식보다 우위에 놓고 훈련된 감수성에 바탕을 둔 관찰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베네치아의 돌 The Stones of Venice>(1851-53년에 초판 발행)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미술은 ... 오로지 선하고 위대한 영혼의 소유자가 지닌 인격, 활동성, 살아 있는 지각을 표현할 때에만 가치가 있다.
...
미술은 제작법의 도움을 거의 받지 않고, 또 과학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이런 것들을 표현하고 담을 수 있다.
...
미술이 이런 것들, 즉 위대한 인간 정신의 활기, 지각, 창의성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무가치할 것이다.

러스킨에게 찬사를 보낸 사람이 많았으나 혹평을 서슴치 않은 사람도 있었는데
그가 지나치게 도덕성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그의 도덕주의에 식상한 로저 프라이Roger Fry는 다음과 같이 비난했다.

러스킨은 늙은 사기꾼이다.
...
그는 너무나 고결한 체한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반듯해야 하는데 심지어 공들여 꾸민 궁전까지도 도덕적이어야 한다.

"미술은 진지하게 이해되고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한 러스킨은 관람자에게 미술품에 즉각적, 감각적, 감정적으로 반응할 것을 요구했는데 직관에 의한 통찰력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관되지 못한 러스킨의 비평을 두고 조안 이반스Joan Evans는 다음과 같이 혹평했다.

러스킨은 기질, 취미, 관심, 열광, 감수성과 같은 자신의 정신 상태를 받아들여 실질적인 일반화 없이 과장된 웅변술로 보편적 의의가 있는 것인양 만들려는 경향이 있다.
그가 생각한 통일성이란 자신의 개성이 지닌 통일성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스킨이 비평에 남긴 업적은 정확성과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면서 외관의 재현이 전적으로 표현적인 힘에 종속된 데서 미술의 참된 목적을 찾으려는 것이었다.

러스킨은 보들레르와 더불어 근대 미술비평의 창시자로 칭송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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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비평의 선구자

미술비평이 미술품에 대한 고유한 해석의 기능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중엽이었다.
프랑스 미술 아카데미 회원을 중심으로 루브르 궁의 한 전시실에서 시작된 살롱전에 대한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1713-84)의 비평에서 평론가의 역할이 자리를 잡았다.
미술 아카데미란 회화와 조각 아카데미로 에콜 대 보자르의 전신이다.
디드로는 매년 개최되는 살롱전에 대한 평론을 통해 파리 시민들에게 그 이름이 널리 알려졌으며 1759년부터 81년까지 살롱전에 대한 평론을 계속 썼다.
리오넬로 벤투리는 디드로의 비평에서 미술비평의 새 시대가 개막되었다고 주장했다.

디드로는 1751년에 발표한 <미>란 제목의 논문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미술품 속에서 우리는 본질적인 미를 보게 된다.
본질미는 그 기반을 질서에 두며,
인간적인 창조의 미는 그 기반을 예술가에게 달려 있는 질서라는 법칙의 자유로운 적용에 둔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런 질서의 선택에 기초한다.
끝으로 관찰로부터 일깨워지며 가장 통찰력 있는 예술가들에게서조차 차이를 나타내는 체계적인 미는 본질미가 개입된다 하더라도 결코 넘어설 수 없는 한계는 아니다.

디드로에게 본질미와 더불어 '유기적 완전성'의 개념도 중요한데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훌륭하게 구성된 회화는 하나의 유일한 시점에서 파악된 전체인 바,
그 전체 속에서 부분들은 모두 동일한 목표에 기여하며 그 상호 일치를 통해 동물 신체의 각 부위들처럼 현실적 전체를 구성한다.

디드로가 1775년에 발표한 <회화에 관한 에세이 Essay on Painting>는 유명한데 그의 유명한 경구
"자연은 결코 부정확하지 않다 Nature is never incorrect"가 적혀 있다.
보상케는 그를 가리켜 낭만적 자연주의의 설교자이면서 로맨스와 자연주의의 두 정반대 요소들이 난무한 시대를 두루 살면서 고전적이며 매너리즘에 빠진 형식주의와는 대조가 되는 단일한 극단을 형성했다고 지적했다.

디드로의 전통을 이어받아 스탕달, 보들레르, 콩쿠르 형제, 영국의 러스킨이 비평활동을 활발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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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예술의 개념 
 

순수 예술과 기능술에 대한 구분은 계몽주의 시대에 이르러서야 이루어졌다.
순수 예술beaux arts의 용어가 확립된 것도 이 시대에서였다.
순수 예술이란 용어가 16세기 프란체스코 다 홀란다F. da Hollanda에 의해서 사용된 적은 있었지만 17세기에 좀더 보편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이 용어가 책의 제목으로 등장한 것은 1690년에 출간된 샤를 빼로Charles Oerrault(1628-1703)의 <순수 예술 일람 Cabinet des beaux arts>에서였다.
그러나 순수 예술의 구체적인 것들이 열거된 것은 1747년에 출간된 바뙤C. Batteux(1713-80)의 <동일한 한 가지 원리로 귀결되는 순수 예술>에서였다.
그는 순수 예술로 다섯 가지를 꼽았는데 음악, 시, 회화, 조각, 무용(동작예술 l'art du geste)이었다.
바뙤는 이 다섯 가지 예술이 자연을 모방할 뿐 아니라 즐겁게 해준다는 공통된 목적 속에서 이것들의 특수성을 찾으려고 했다.
그는 예술을 즐거움을 제공하는 순수 예술과 실용성이 있는 기능술로 양분하면서 여기에 즐거움과 실용성 모두를 특징으로 하는 중간적인 제3의 예술로 건축과 수사법을 추가했다.

프랑스어로 된 <대백과사전 Great Encyclopaedia>의 제1권이 출간된 1751년에도 예술 분류의 문제는 여전히 애매한 상태로 남아 있었으며, 디드로는 백과사전의 '예술'에 관한 항목에서 교양예술과 기능술로 나누는 옛 분류방법을 계속해서 사용했다.

그러나 같은 해 달랑베르Jean Le Rond D'Alembert(1717-83)는 백과사전의 서문에서 회화, 조각, 건축, 음악, 시를 열거하면서 순수 예술beaux arts(혹은 beautiful arts)라는 용어를 이미 사용했다.
보자르beaux arts라는 프랑스어는 이탈리아어, 독일어, 폴란드어와 같은 다른 엉어로도 번역되었다.

영어로는 해리스J. Harris(1709-80)가 <세 개의 논문 Three Treatises>(1744)에서 사용한 '우아한 예술 elegant arts' 혹은 '품위있는 예술 polite arts'로 불리워졌으나 결국 순수 예술로 통용되었다.

순수fine로 구분된 예술들arts이 참예술로 인정받았고 예술이란 명칭은 이것들에만 적용되었다.
그래서 예술을 말하는 사람들은 중세의 예술이 기능술에 반대되는 교양예술이었듯이 순수 예술을 염두에 두게 되었다.
이는 예술이라는 표현의 의미가 축소된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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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말들 가운데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감사하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감사라는 말을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고맙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는데 고마운 걸 뭘 생각합니까.
"고맙습니다"라고 말해야겠지요.

"생각합니다"라는 말을 사용하기를 좋아한다면,
애인에게 "사랑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면 어떨까요?

이런 식의 잘못 사용되는 말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슬프게 생각됩니다" 역시 마찬가지이지요. "슬픔니다"라고 합시다!

통용되는 말에서 세태를 느끼는데 한 가지 묻겠습니다.
"사랑합니다"와 "정말로 사랑합니다"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정말로'가 꼭 필요한 것입니까?
'정말로'를 붙이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겠다는 뜻입니까?

"정말로 죄송합니다"라는 말도 그렇습니다.
이 말이 "죄송합니다"와 다른 뜻입니까?
어떤 사람은 이 말을 요상하게 "죄송하게 생각합니다"라고 하던데 죄송한 것을 또 생각해야 합니까?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라는 말을 종종 사용하는데 유감은 말 그대로 느낌이지요.
느낌을 생각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째 말장난인 것 같습니다.
"유감입니다"라고 간단하게 말하는 것이 솔직해보입니다.

오늘은 공연히 말에 대한 시비를 하고 싶어서 몇 자 적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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