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비평의 선구자
미술비평이 미술품에 대한 고유한 해석의 기능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중엽이었다.
프랑스 미술 아카데미 회원을 중심으로 루브르 궁의 한 전시실에서 시작된 살롱전에 대한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1713-84)의 비평에서 평론가의 역할이 자리를 잡았다.
미술 아카데미란 회화와 조각 아카데미로 에콜 대 보자르의 전신이다.
디드로는 매년 개최되는 살롱전에 대한 평론을 통해 파리 시민들에게 그 이름이 널리 알려졌으며 1759년부터 81년까지 살롱전에 대한 평론을 계속 썼다.
리오넬로 벤투리는 디드로의 비평에서 미술비평의 새 시대가 개막되었다고 주장했다.
디드로는 1751년에 발표한 <미>란 제목의 논문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미술품 속에서 우리는 본질적인 미를 보게 된다.
본질미는 그 기반을 질서에 두며,
인간적인 창조의 미는 그 기반을 예술가에게 달려 있는 질서라는 법칙의 자유로운 적용에 둔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런 질서의 선택에 기초한다.
끝으로 관찰로부터 일깨워지며 가장 통찰력 있는 예술가들에게서조차 차이를 나타내는 체계적인 미는 본질미가 개입된다 하더라도 결코 넘어설 수 없는 한계는 아니다.
디드로에게 본질미와 더불어 '유기적 완전성'의 개념도 중요한데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훌륭하게 구성된 회화는 하나의 유일한 시점에서 파악된 전체인 바,
그 전체 속에서 부분들은 모두 동일한 목표에 기여하며 그 상호 일치를 통해 동물 신체의 각 부위들처럼 현실적 전체를 구성한다.
디드로가 1775년에 발표한 <회화에 관한 에세이 Essay on Painting>는 유명한데 그의 유명한 경구
"자연은 결코 부정확하지 않다 Nature is never incorrect"가 적혀 있다.
보상케는 그를 가리켜 낭만적 자연주의의 설교자이면서 로맨스와 자연주의의 두 정반대 요소들이 난무한 시대를 두루 살면서 고전적이며 매너리즘에 빠진 형식주의와는 대조가 되는 단일한 극단을 형성했다고 지적했다.
디드로의 전통을 이어받아 스탕달, 보들레르, 콩쿠르 형제, 영국의 러스킨이 비평활동을 활발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