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가 굵은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병이 오기 시작한다

 

 

뼈는 골수가 모여 저장되는 곳입니다. 흔히 뼛골이 시리다고 말하는데, 뼈와 골수를 통틀어 하는 말입니다. 뼛골이 아프고 시린 증상은 뼈에 골수가 부족하여 찬 기운이 뼈까지 스며들기 때문에 나타납니다. 뼈가 튼튼하려면 골수가 충만해야 하는데 골수와 뼈를 만들어내는 장기가 바로 신腎(콩팥)입니다. 신은 예로부터 “강强함을 만드는 기관”으로 여겨졌습니다. 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생식과 성장이지만, 뼈를 만들고 근육을 튼튼하게 해서 인체의 골격을 강하게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신장이 허하면 허리 디스크나 요통으로 고생합니다. 또 발목이나 손목에 힘이 없고 자주 삐는 것도 신이 허하기 때문입니다.

<생긴 대로 병이 온다>의 저자 조성태는 뼈에 병이 생기면 오래 서 있지 못하고 걸을 때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귀가 마르면서 때가 낀 것처럼 보인다고 말합니다. 귀의 색깔이 나빠지는 것은 뼈와 귀 모두 신장이 주관하는 부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귀가 크거나 귀의 색깔이 좋지 않은 사람은 신의 기능 이상으로 인해 뼈 쪽으로도 병이 오기 쉽습니다.

뼈의 병은 신기腎氣에 열이 있을 때도 생기고 외기外氣 중 바람, 습기, 추위, 담痰에 의해서도 걸릴 수 있습니다. 담은 인체의 기혈이 순조롭게 운행되지 않아서 장부의 진액이 일정 부위에 몰려 걸쭉하고 탁하게 된 것으로 일련의 질병 때 병적으로 생기며, 병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신기에 열이 있으면 허리와 잔등을 제대로 펴지 못하고 뼈가 마르면서 골수가 줄어들어 통증이 옵니다. 그리고 외기의 나쁜 기운에 상하면 뼈가 시리고 아픕니다. 특히 추위에 손상되거나 열이 뼛속까지 뚫고 들어가면 다른 통증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픕니다.

흥미로운 점은 허리 디스크나 팔다리 뼈의 통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얼굴에 광대뼈zygoma(관골)가 튀어나와 있는 것입니다. 한의학에서는 광대뼈를 뼈의 근본으로 보는데, 광대뼈가 크면 몸의 뼈도 굵고 광대뼈가 작으면 몸의 뼈도 작다고 합니다. 형상의학에서는 광대뼈가 나오고 뼈가 굵은 사람은 타고난 근력이 강하므로 일을 많이 하는 체질로 봅니다. 부지런하고 생활력이 강하지만 이런 성격 때문에 과로하기 쉽고, 또 그것이 원인이 되어 병이 납니다. 한의학에서는 이를 노권내상勞倦內傷이라 합니다. 즉 뼛골 빠지게 일하는 성격 탓에 뼛골이 부실해져서 나타나는 증상이란 말입니다. 나이에 비해 주름이 너무 많으면 과로로 몸이 상했을 가능성이 높은데, 이를 한의학에선 노권내상이라 합니다.

뼈가 굵은 사람들은 나이가 들고 쇠약해지면서 병이 오기 시작합니다. 골수, 뇌수 같은 수액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와 관련해 여러 가지 질병이 오기 시작합니다. 그 대표적인 질병이 골다공증osteoporosis입니다. 골다공증은 뼈의 양이 감소하고 질적인 변화로 인해 뼈의 강도가 약해져서 골절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상태를 말합니다. 대부분 증상이 없지만 골절이 생기면 통증이 생기고, 골절이 발생한 부위에 따라 다양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모든 부위에서 골절이 일어날 수 있지만, 특히 손목뼈, 척추, 고관절(대퇴골)에서 골절이 자주 발생합니다. 허리와 등이 아프고 뒷목이 뻣뻣하면서 어깻죽지가 아프기도 합니다. 뼈가 굵은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헛배가 부르고, 소화가 잘 안 되며, 때로는 변비처럼 대변이 시원찮고, 자주 어지러우면서 귀가 울리기도 합니다. 그 밖에도 조금만 서 있으면 정강이가 피곤하거나 쥐가 나며, 나이에 비해 흰머리가 빨리 나는 것도 뼈가 굵은 사람들에게 오는 일반적인 증상입니다.

뼈를 튼튼하게 해주는 한약재로는 숙지황熟地黃이나 오미자, 녹용, 황구육이 있으며 음식으로는 검은콩, 검은참깨 등 검은색 나는 것들이 도움이 됩니다. 숙지황은 지황地黃의 뿌리를 쪄서 말린 것을 말합니다. 날것을 생지황, 말린 것을 건지황이라 하며, 숙지황 중 특히 술에 담갔다가 쪄서 말리기를 아홉 번 되풀이하여 만든 것은 구지황이라 하여 그 약효를 으뜸으로 칩니다. 맛은 달면서도 쓴맛이 돌고 따뜻한 성질이 있어 혈을 보補하고 생명이 발생하고 활동하는 데 기본이 되는 물질인 정精을 보충해서 허리와 무릎이 시리고 아픈 증상이나 월경이상, 어지럼증 등을 치료하고 머리를 검게 하는 효능이 있습니다. 숙지황은 사물탕四物湯의 주요 약재이며 각종 만성병 중 몸이 허약하여 나타나는 내열內熱, 인후건조咽喉乾燥, 갈증 등의 증상에 사용됩니다. 사물탕은 여성의 출산 후나 월경 등으로 인한 과다출혈, 허약, 어지럼증 등에 널리 사용됩니다. 예로부터 담증痰證의 하나인 허담虛痰(한담寒痰, 냉담冷痰과 같음)을 치료하는 데 효과가 있어 차로 달여 마셨으며, 기침과 천식에 복령茯笭(소나무를 벌채한 후 3-10년 사이에 뿌리에 기생하는 균체), 6월쯤의 반 여름에 싹이 나와 꽃이 핀다고 하여 붙여진 반하半夏(천남성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식물) 등과 배합하여 사용했습니다. 그 밖에도 돼지고기를 삶은 국물과 함께 복용하면 습관성 변비에 효과가 있습니다. 영양분이 많고 기름기가 있어 장기간 복용하면 소화 장애를 일으켜 설사, 복창腹脹(배가 더부룩하면서 불러 오르는 병증) 등 부작용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입맛이 없고 소화가 안 되며 설사를 하는 환자에게는 신중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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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손자孫子는 누구누구입니까?

 

 

사마천司馬遷(기원전 145-?)의 <사기史記>에 의하면 선진시대에 두 명의 손자孫子가 있었습니다. 자子는 높여 부르는 말입니다. 하나는 춘추시대春秋時代 말기의 제齊나라 사람 손무孫武입니다. 자가 장경長卿이고, 제나라 낙안樂安(지금의 산동성 혜민현) 사람인 손무는 병가兵家의 성인이란 뜻으로 병성兵聖 혹은 무성武聖으로 추앙받고, 그의 저작은 병가의 바이블이란 뜻의 병경兵經으로 불립니다.

손무의 선조 진완陳完은 원래 진陳나라(지금의 하남성 회양 일대) 공자로 내란 통에 제나라로 피신해 성을 전田으로 바꾸었습니다. 손무의 할아버지 전서田書는 거莒를 공격하는 전쟁에서 공을 세워 제나라 26대 군주 경공景公이 낙안을 근거지로 주고 동시에 손孫이란 성까지 하사했습니다.

기원전 532년, 제나라에 전田, 포鮑, 난欒, 고高 '4성의 반란'이 터졌고, 손무의 집안도 이 정치투쟁에 휘말렸습니다. 이때 손무는 가족을 따라 오吳나라로 이주했고, 손무는 20년 동안 병법을 깊이 탐구하여 <손자병법>을 저술했습니다. 그 후 오대부 오원伍員의 추천을 받아 오나라 군주 합려闔閭를 만났고, 이어 장군에 임명되어 오나라가 초나라를 격파하는 전쟁에서 중대한 공을 세웠습니다. 그는 합려에게 병법 13편을 헌정했다고 합니다.

만년의 손무에 대한 기록은 부실하기 짝이 없어 그저 죽어서 오현에 묻힌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춘추좌전春秋左傳>에 나타난 춘추시기(기원전 722-468) 260여 년간의 전쟁상황에 관한 주보경朱寶慶의 연구에 의하면, 이 시기에 일어난 크고 작은 전쟁의 횟수는 무려 531회, 년평균 2회 이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춘추시대에서 전쟁의 규모와 격렬한 정도, 작전방법 및 전쟁사상의 풍부성은 그 이전 역사에는 없었던 것이다. 이런 점들은 필연적으로 당시의 문화를 나타나는 책들에 반영될 수밖에 없었다. <손자병법>은 당시의 이런 전쟁 경험에 대한 이론적 총결이며 철학적인 개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마천의 <사기>에 등장하는 또 다른 손자孫子는 손무의 사후 약 백여 년이 지나서 등장한 전국시대戰國時代 중기 탁월한 전공을 세운 제齊나라의 군사軍師 손빈孫臏입니다. 손빈은 선조가 되는 손무의 군사사상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군사이론과 실천에서 대단히 높은 수준을 과시했습니다. 그가 창안한 삼사법三駟法은 군사응용학의 시초가 되었고, 위위구조圍魏救趙(위나라를 둘러싸 조나라를 구하다)와 감조유적減灶誘敵(솥을 줄여 적을 속이다)과 같은 전법은 현재도 적을 굴복시키는 데 유용한 사례로 꼽힙니다.

주로 제나라 위왕과 선왕 재위기에 해당하는 기원전 356년에서 기원전 319년 무렵에 활동한 손빈은 청년 시절에는 방연龐涓과 함께 병법을 배웠는데, 학업성적이 늘 방연을 앞질러 그의 시기와 질투 대상이 되었습니다. 학업을 마친 뒤 방연은 위魏나라에 가서 벼슬을 하다가 혜왕惠王에 의해 장수에 임명되었습니다. 당시 제나라와 위나라는 중원의 패권을 놓고 격렬하게 싸우고 있었습니다. 방연은 자신이 손빈만 못하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제나라에서 손빈을 기용하는 것이 두려워서 비밀리에 손빈을 위나라로 초빙했고, 혜왕이 뛰어난 손빈을 발탁하지 않을까 걱정되어 음모를 꾸며 손빈을 해쳤습니다. 방연은 손빈의 선조 손무가 남긴 병서를 손에 넣기 위해 손빈을 죽이지 않고 무릎 아래를 잘라내는 형벌인 빈형臏刑을 가해 앉은뱅이로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손빈의 얼굴에다 죄인임을 나타내는 경형黥刑의 흔적까지 남겼습니다. 물론 방연은 자신의 정체와 의도를 철저하게 숨긴 채 손빈에게 마치 은혜를 베푸는 것처럼 꾸몄지만, 방연의 지독하고 천인공노할 흉계와 그 진상을 알아낸 손빈은 불굴의 의지로 사지에서 벗어나 제나라 사신을 따라 몰래 제나라로 도망쳤습니다. 그때부터 손빈은 제나라에서 자신의 일생 중 가장 빛나는 시절을 보냈습니다. 손빈은 이른바 삼사법三駟法을 창안했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 제나라 위왕에게 군사로 임명받았습니다. 그리고 대장군 전기田忌를 도와 두 차례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뒀으며,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손빈병법>이라는 군사 이론서를 남겼습니다.

제나라로 돌아온 손빈이 귀족의 눈에 들어 장군 전기의 상객이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당시 제나라 귀족 사이에서는 많은 돈을 걸고 하는 경마 노름이 크게 유행했습니다. 손빈은 경마에 참여하는 말들이 상·중·하 세 등급으로 나누어져 있고, 시합은 삼판양승으로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에 손빈은 전기에게 다음 번 시합에서는 반드시 이길 수 있게 해주겠노라 장담했습니다. 전기는 손빈의 말을 믿고는 천금을 걸고 위왕을 비롯한 공자들과 내기를 했습니다. 시합이 시작되기에 앞서 손빈은 전기에게 다음과 같은 방법을 일러주었습니다. 먼저 제일 못한 하등 말을 상대의 상등 말과 붙여서 한 판을 져주고, 다음 상등 말을 상대의 중등 말과 붙여 한 판을 만회한 다음 상대의 하등 말과 내 중등 말을 붙이면 필승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전기는 이 방법으로 당연히 시합에서 이겼습니다. 훗날 사람들은 당시 손빈이 제기한 이 방법을 삼사법三駟法이라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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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색이 노랗다는 건 비위가 좋지 않다는 표시

 

 

“뭐든 먹는 게 아주 부실하고 다리가 약해요. 감기에 한번 걸리면 몇 주식 가구요. 또 감기에 거렸다 하면 코가 부어오르기도 해요.”

다섯 살짜리 사내아이를 데리고 온 어머니가 <생긴 대로 병이 온다>의 저자 조성태에게 한 말입니다. 아니는 나이에 비해 그리 큰 편이 아니었고, 어머니의 말로는 네 살 이후로 체중이 똑같다고 했습니다. 머근 것도 신통치 않고 다리 아프다는 소리를 자주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의 얼굴색이 노란 것, 다리 아픈 것, 밥을 잘 안 먹는 것 등을 종합하여 조성태는 비위脾胃의 기능이 좋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얼굴색이 노랗다는 건 비위가 좋지 않다는 표시로 비위가 좋지 않으므로 팔다리에 힘이 없고 약해집니다. 팔다리를 주관하는 장기가 바로 비위이기 때문입니다.

조성태는 아이에게 양위진식탕養胃進食湯을 처방했습니다. 양위진식탕은 비위가 허약하여 음식을 먹지 못하고, 얼굴이 누렇고 몸이 야위며, 가슴이 더부룩하고 답답하며, 음식이 소화되지 않고, 혹은 트림이 나면서 신물이 올라오는 것을 치료하는 약입니다.

“항상 피곤에 절어 있는 것 같아요. 신경이 예민할 때도 많고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또 기억력도 떨어지는지 자꾸 깜빡깜빡 잊어먹어요.”

고시를 준비하는 33세의 한씨가 조성태에게 한 말이었습니다. 그의 얼굴이 전체적으로 노란색을 띠고 있었습니다.

한씨는 워낙 몸이 좋지 않으므로 2차 시험을 보는데 그 전날 긴장이 되어 한숨도 자지 못한 채 시험을 보았다고 합니다. 조성태가 맥을 보니 대장에 떨어졌습니다. 이는 아침에 일어나도 개운치 않고, 늘 피곤하며, 눈이 침침하면서 머리가 맑지 못한 증세를 말합니다. 뒷목이 뻣뻣하고, 어깻죽지가 뻐근하며 등삻이 땅기면서 허리도 좋지 않다는 뜻입니다. 환자의 손이 찼으므로 늘 피곤함을 말해줍니다.

조성태는 한씨에게 가미천보탕을 처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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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우谷雨단상

 

 

아침에 일어나니 봄비가 대지를 적시고 있었다. 봄은 벚꽃, 개나리꽃에 머물며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그리고 들뜨게 하고 있었다. 목련이 봄의 기운에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봄의 전령은 풀과 나무가 있는 곳 모두를 찾아다니며 화려한 물감으로 채색한다.

그렇잖아도 5월 초 경주 아트선재에 강의가 잡혀 있어 그곳에서 부산으로 갈 예정이다. 강의 날짜를 고맙게도 나더러 잡으라고 배려해주어 봄날을 선택했다. 봄나들이를 준비한다.

오늘은 곡우穀雨답게 봄비가 종일 내린다. 곡우는 음력 3월 중순경, 양력으로 4월 20일 무렵이다. 곡우는 봄비雨가 내려 백곡穀을 기름지게 한다는 뜻에서 곡우라 하였다. 24절기로 말하면 여섯 번째 절기이다. 도시에서는 꿈도 못 꿀 일이지만, 봄이 되면 포곡조布谷鸟(뻐꾹새)의 노래 소리가 산속에서 메아리쳐 온 천지에 울려 퍼진다고 했다.

주곡우走谷雨란 풍속이 있는데, ‘곡우 나들이’란 뜻이다. 곡우, 즉 청명한 봄날 처녀와 총각들이 친척과 친구들을 방문하기 바쁘고 야외野外로 나가 답청踏靑(봄날 파란 풀을 밟고 거님)하면서 서로 만난다. 맘을 설레는 처녀의 마음을 사로잡기 가장 좋은 때에다. 미국에서는 처녀가 자기를 가장 먼저 웃긴 남자에게 시집간다는 말이 있다. 그냥 하는 말이지만, 청명한 봄날 처녀를 웃기면 그 처녀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다.

요즘 침구鍼灸를 배우고 있어 곡우와 한의학을 연결지어 말하면, 곡우절기에는 햇볕이 매우 따스하므로 햇볕을 쪼임으로써 양기阳气를 보할 수 있다. 양기를 보한다는 말은 음기를 사한다는 뜻도 된다. 곡우절기의 햇볕은 비위脾胃의 한기寒气를 몰아내고 소화공능消化功能을 도와주며 배부背部의 경락经络을 소통시켜준다. 심장心臟과 폐肺에 매우 유익한 절기이다. 답청 중에 땀汗의 배출량이 증가되므로 체내体内의 습열湿热을 제거해준다.

채배곡우진방진采焙谷雨趁芳辰이란 속어가 있는데, 곡우에 차茶를 채집하여 말리면 가장 좋다는 뜻이다. 곡우에 찻잎을 따서 차를 끓여 마시는 풍속이 고대 중국에 있다. 곡우절기에 다원茶园에 가면 처녀들이 그 속에서 재잘거리며 찻잎을 따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명明나라 때 허차서许次纾의 저서《다소茶疏》에 채차청명태조采茶清明太早,입하태지立夏太迟,곡우전후谷雨前后,기시적중其时适中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차를 따는 데 있어서 청명절에는 너무 이르고 입하절에는 너무 늦으며 곡우(양력 4 월 20 일경) 전후가 가장 적당하다”는 뜻이다. 곡우는 청명淸明과 입하立夏 사이에 있다. 곡우절기에는 봄이 무르익어 강우량降雨量도 충분하여 겨울 동안 휴식상태에 있던 차수茶树가 비를 맞고 풍성하게 자라 찻잎이 부드럽고 연하며 살이 통통해지므로 찻잎의 색깔도 청록색翠绿이며 잎에서 윤기가 난다고 한다. 그래서 이때에 채취한 찻잎은 알차고 맛이 개운하다. 곡우의 찻잎은 이기理气 작용과 개욱开郁 작용과 거예祛秽 작용과 화중和中 작용이 있으므로 양기阳气를 북돋아주고 정신을 진작시켜 주며 춘곤증春困症을 없애준다.

또한 연년익수延年益寿해주고 항노강신抗老强身 작용도 있다. 사천성 다농茶农들은 곡우절기에 채집한 햇차新茶는 청화清火 작용과 피사避邪 작용과 명목明目 작용이 있다고 말한다.《신농본초神农本草》에 久服安心益气……轻身不老라고 했는데, “차를 장복하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기를 더해 주며 몸이 가벼워지고 장수한다”는 뜻이며, 같은 책에 神农尝百草,日遇七十二毒,得茶而解之라 하여 “신농은 하루에 백 가지 약초의 맛을 봄으로 인하여 매일 72가지 독毒과 만난다. 그러나 약초의 독성은 차를 마심으로 해독되었다”는 뜻이다. 당唐나라 때 진장기陈藏器는 차위만변지약茶为万病之药이라고 강조했는데, “차는 모든 병의 치료약”이라는 뜻이다. 곡우차谷雨茶는 기사회생의 신력神力을 가지고 있다.

북경北京 사람들의 속언에 곡우식향춘谷雨食香椿이란 말이 있는데, “곡우절에 참죽나물을 먹는다”는 뜻이다. 곡우절의 참죽나물은 새로 돋아났기 때문에 자홍색紫红色의 살찐 잎사귀에 연한 녹색을 띄고 있으며 독특한 향기가 난다고 한다. 청清나라 때 미식가美食家 이어찬李渔赞은 菜能芬人齿颊者,香椿头也라 하여 “이빨 사이에 끼어 그윽한 향기를 발하는 나물은 바로 참죽나물”이라고 했다. 검색을 해보니, 한汉나라 때부터 참죽나물香椿과 여지荔枝는 남북南北 지방의 양대两大 공품贡品이었다고 한다. 한나라의 임금과 궁정宫廷의 귀인贵人들이 참죽나물을 즐겨 먹었다고 한다. 참죽나물香椿은 맛도 좋지만 비脾와 위胃의 작용을 도와준다. 또 청열해독清热解毒 작용, 건위이기健胃理气 작용, 윤부명목润肤明目 작용, 살충杀虫 작용, 고정固精 작용을 해준다.《당본초唐本草》에 叶煮水,可以洗疮、疥、疽라 하여 “참죽나물은 모든 피부병을 치료해 준다”고 적혀 있다고 한다. 내친 김에 좀 더 자료를 소개하면,《육천본초陆川本草》에는 香椿健胃,止血,杀虫,治痢疾라 하여 “참죽나물은 건위 작용, 지혈 작용, 살충 작용이 있으므로 이질을 치료해 준다”고 적혀 있다고 한다. 중국 고대인에게 참죽나무椿树는 다수多寿와 다복多福의 상징이었다. 장자庄子는 大椿者,以八千岁为春,八千岁为秋라 하여 “참죽나무는 8천 년이 봄이고 8천 년이 가을”이라고 과장법으로 찬양했다. 장자의 이런 과장법은 그의 친구 혜시의 영향으로 보인다. 암튼 북경 사람들은 지금도 참죽나무를 심어 가꾸고 매년 곡우절이 돌아오면 늙은 참죽나무를 쓰다듬고 어루만지는 풍속이 있다고 한다. 여기에는 아이儿童들은 질병 없이 빨리 자라고 노인들은 장수다복长寿多福하라고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

산동성山东省, 산서성山西省, 섬서성陕西省 일대一带의 사람들은 谷雨节禁杀五毒이란 풍속을 믿고 있다고 한다. “곡우절에 오독五毒을 죽여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그 지방 사람들은 过了谷雨,遍地生火,三月多雨,四月多瘟이라고 말하는데, “곡우절이 지나고 나면 화火가 발생한다. 즉 3월에는 비가 많이 오고 4월에는 온역이 발생한다”는 뜻이다. 곡우절에 각종 해충害虫과 세균细菌들이 왕성하게 번식하며 농작물农作物과 인체人体에 끼치는 해가 엄청 크다. 그래서 고대인들은 곡우에 각방各房 마다 벽에 ‘곡우첩谷雨帖’를 붙였다고 한다. 곡우첩에 신비스러운 닭神鸡이 전갈全蝎을 사로잡아 먹는 그림을 그리거나, 천사天师가 오독五毒을 제거하는 형상形象이나 도교道教의 신부神符를 그려 넣었다고 한다. 또는 谷雨三月中,蛇蝎永不生이라고 쓴 쪽지도 붙였는데, “곡우 3월 중에 뱀이나 전갈들이 집 근처에 얼씬도 못한다”는 뜻이다.

중국 서북西北 지구地区 사람들은 곡우에 하천河川의 물을 도화수桃花水라 칭했다. 도화수로 목욕沐浴하면 신체가 건강해지고 재화灾祸를 피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곡우에 온 가족이 도화수로 목욕하는 풍속이 생겼으며 그날 춤도 추고 사냥도 하는 경축庆祝 행사를 겸하여 거행한다.

겨우내 움츠려있던 사람들이 곡우가 되면 활동하기 시작하는데, 농사꾼들에게 할 일이 많아진다. 1년을 하루에 비하면 봄은 아침인 것이다. 활동하기 시작하는 때인 것이다.

오늘은 종일 창가에 앉아서 책을 읽고 밖을 내다보면서 봄을 바라보고 있다. 눈앞의 밤섬은 벌써부터 푸른 잎들이 봄의 기운으로 씩씩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두 주 교외로 가서 많은 꽃들을 사왔다. 거실, 침실, 베란다에 온갖 꽃들이 만발하다 졌고, 연두색 잎이 연신 돋아나고 있다. 떡갈나무는 며칠 만에 부쩍 새 잎을 내민다. 수국은 며칠 물을 못 주었더니 잎이 모두 오그라들었다. 열흘 물에 담가 겨우 회생시켰다. 우리나라 토종 난은 그야말로 동양화에서 볼 수 있는 선으로 아름다움을 뽐낸다. 투박하지만 강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작지만 야생화들도 야생의 아름다움을 뽐낸다. 봄은 우리 집에도 진을 치고 와서 아직 떠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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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화 선교” 와 꼴사나운 유럽중심주

 

 

 

 

다문화주의는 서방세계의 “문명화 선교” 와 꼴사나운 유럽중심주의를 폐기할 목적으로 탈식민주의 세계관의 특색을 띠었으나 이처럼 긍정적인 면은 말로만 그치고 말았다. 대신 인본주의 가치관의 보편성을 부정하는 문화의 상대주의 이데올로기가 마련되었다. 새로운 반유대주의도 반시온주의로 위장하면 제삼의 문화로 허용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마티아스 쿤첼은 이슬람주의식 반유대주의에 대한 자신의 연구를 거론하자 동료 학자에게 “따돌림” 을 당했다고 한다. 유럽에서 무슬림의 유대인혐오증은 금기시된 주제였기 때문이다. 유럽의 좌파세력은 이슬람주의자를 반제국주의자로, 그들의 전체주의운동을 반세계화운동으로 간주하므로 이슬람주의의 비판론자는 진압해도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다. 따라서 그들은 이슬람주의식 반유대주의보다는 이슬람혐오증을 화두로 삼으려 한다.
비서양(이를테면, 팔레스타인계 이슬람교) 이민자라면 유대인을 혐오하는 가해자라도 면죄부를 받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다양성을 내세운 다문화주의는 문화의 차이를 존중한다. 문화를 기본권으로 인정하려면 제삼자의 문화적 견해도 아무런 제약 없이 허용해야 한다. 허프가 지적한 바와 같이, 반유대주의 사상은 현지 유럽인이 표출했을 때에만 처벌을 받는데, 그것이 다른 문화에서 비롯되었다면 면죄가 성립될 것이다. 반유대주의란 팔레스타인과 세계에 난무하는 시온주의의 만행을 상대로 “박해자가 정당하게 행사하는 폭력” 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2000년 10월, 독일 에센과 뒤셀도르프에서는 일부 회당들이 괴한의 습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모두가 이를 신나치당의 소행으로 지적했고, 당시 총리였던 게르하르트 슈뢰더는 품위 있는 국민이라면 새로 부각된 반유대주의에 맞서야 한다며 매우 격앙된 목소리로 역설했다. 그러나 진상조사에 나선 경찰이 범인을 밝혀내자 흥분은 곧 가라앉았다. 신나치당이 아니라 아랍계 무슬림 이민자가 범행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사건은 즉각 “핍박받는” 팔레스타인을 다문화적으로 이해해보려는 사례로 달라졌
다. 회당에서 벌어진 신성모독은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이 아랍인을 푸대접해온 데 대한 반감을 드러낸 것” 이므로, 유대인은 “신나치당”의 입장에서조차도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요, 괴한의 증오심은 혐오스런 반유대주의가 아니라 되레 찬사를 받아야 할 반시온주의가 된 것이다! 물론 유대교 회중 가운데 아랍인을 천대한 사람이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사실, 그것까지 밝힐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애당초 일부 유대인을 유대인 전체로 싸잡아 그랬다니 말이다.
사건이 있은 후, 나는 반시온주의와 반유대주의를 주제 삼아 대중과 함께 토론회를 개최해볼까 싶었지만 내가 쓴 기사를 게재할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당시 나는 정규 칼럼니스트였으나 평소 기고하던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지와 『슈피겔』지를 비롯하여, 독일 신문은 전부 내 기사를 싣지 않으려 했다. 우여곡절 끝에 『디 벨트』지가 이를 게재했는데 그때는 이미 또 다른 사건이 터진 직후였다. 베를린에서 랍비 로트실트가 아랍계 이슬람주의 공작원에게 구타당해 병원 신세를 지게 된 것이다. 이것이 독일이 원하는 관용인가! 그들은 홀로코스트에서 무엇을 배웠단 말인가! 역사를 통해 배운 교훈이라고는 거의 없다는 것이19 62년부터 2009년까지 현지에서 살아온 나의 생각이다. 회당 습격사건을 재판하던 법정에서 배심원들은 피의자의 범행을 팔레스타인에서 겪고 있는 불의에 대한 “정당한 분노” 의 표출로 이해해달라며 선처를 부탁받았다. 피고가 이례적으로 솜방망이 처벌을 받은 것은 국민이 가해자에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는 방증이었다. 만일 그들이 독일인이었다면 형량은 훨씬 더 무거워지고 사회는 용서에 인색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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