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화 선교” 와 꼴사나운 유럽중심주의

다문화주의는 서방세계의 “문명화 선교” 와 꼴사나운 유럽중심주의를 폐기할 목적으로 탈식민주의 세계관의 특색을 띠었으나 이처럼 긍정적인 면은 말로만 그치고 말았다. 대신 인본주의 가치관의 보편성을 부정하는 문화의 상대주의 이데올로기가 마련되었다. 새로운 반유대주의도 반시온주의로 위장하면 제삼의 문화로 허용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마티아스 쿤첼은 이슬람주의식 반유대주의에 대한 자신의 연구를 거론하자 동료 학자에게 “따돌림” 을 당했다고 한다. 유럽에서 무슬림의 유대인혐오증은 금기시된 주제였기 때문이다. 유럽의 좌파세력은 이슬람주의자를 반제국주의자로, 그들의 전체주의운동을 반세계화운동으로 간주하므로 이슬람주의의 비판론자는 진압해도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다. 따라서 그들은 이슬람주의식 반유대주의보다는 이슬람혐오증을 화두로 삼으려 한다.
비서양(이를테면, 팔레스타인계 이슬람교) 이민자라면 유대인을 혐오하는 가해자라도 면죄부를 받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다양성을 내세운 다문화주의는 문화의 차이를 존중한다. 문화를 기본권으로 인정하려면 제삼자의 문화적 견해도 아무런 제약 없이 허용해야 한다. 허프가 지적한 바와 같이, 반유대주의 사상은 현지 유럽인이 표출했을 때에만 처벌을 받는데, 그것이 다른 문화에서 비롯되었다면 면죄가 성립될 것이다. 반유대주의란 팔레스타인과 세계에 난무하는 시온주의의 만행을 상대로 “박해자가 정당하게 행사하는 폭력” 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2000년 10월, 독일 에센과 뒤셀도르프에서는 일부 회당들이 괴한의 습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모두가 이를 신나치당의 소행으로 지적했고, 당시 총리였던 게르하르트 슈뢰더는 품위 있는 국민이라면 새로 부각된 반유대주의에 맞서야 한다며 매우 격앙된 목소리로 역설했다. 그러나 진상조사에 나선 경찰이 범인을 밝혀내자 흥분은 곧 가라앉았다. 신나치당이 아니라 아랍계 무슬림 이민자가 범행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사건은 즉각 “핍박받는” 팔레스타인을 다문화적으로 이해해보려는 사례로 달라졌
다. 회당에서 벌어진 신성모독은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이 아랍인을 푸대접해온 데 대한 반감을 드러낸 것” 이므로, 유대인은 “신나치당”의 입장에서조차도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요, 괴한의 증오심은 혐오스런 반유대주의가 아니라 되레 찬사를 받아야 할 반시온주의가 된 것이다! 물론 유대교 회중 가운데 아랍인을 천대한 사람이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사실, 그것까지 밝힐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애당초 일부 유대인을 유대인 전체로 싸잡아 그랬다니 말이다.
사건이 있은 후, 나는 반시온주의와 반유대주의를 주제 삼아 대중과 함께 토론회를 개최해볼까 싶었지만 내가 쓴 기사를 게재할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당시 나는 정규 칼럼니스트였으나 평소 기고하던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지와 『슈피겔』지를 비롯하여, 독일 신문은 전부 내 기사를 싣지 않으려 했다. 우여곡절 끝에 『디 벨트』지가 이를 게재했는데 그때는 이미 또 다른 사건이 터진 직후였다. 베를린에서 랍비 로트실트가 아랍계 이슬람주의 공작원에게 구타당해 병원 신세를 지게 된 것이다. 이것이 독일이 원하는 관용인가! 그들은 홀로코스트에서 무엇을 배웠단 말인가! 역사를 통해 배운 교훈이라고는 거의 없다는 것이19 62년부터 2009년까지 현지에서 살아온 나의 생각이다. 회당 습격사건을 재판하던 법정에서 배심원들은 피의자의 범행을 팔레스타인에서 겪고 있는 불의에 대한 “정당한 분노” 의 표출로 이해해달라며 선처를 부탁받았다. 피고가 이례적으로 솜방망이 처벌을 받은 것은 국민이 가해자에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는 방증이었다. 만일 그들이 독일인이었다면 형량은 훨씬 더 무거워지고 사회는 용서에 인색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