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의 손자孫子는 누구누구입니까?
사마천司馬遷(기원전 145-?)의 <사기史記>에 의하면 선진시대에 두 명의 손자孫子가 있었습니다. 자子는 높여 부르는 말입니다. 하나는 춘추시대春秋時代 말기의 제齊나라 사람 손무孫武입니다. 자가 장경長卿이고, 제나라 낙안樂安(지금의 산동성 혜민현) 사람인 손무는 병가兵家의 성인이란 뜻으로 병성兵聖 혹은 무성武聖으로 추앙받고, 그의 저작은 병가의 바이블이란 뜻의 병경兵經으로 불립니다.
손무의 선조 진완陳完은 원래 진陳나라(지금의 하남성 회양 일대) 공자로 내란 통에 제나라로 피신해 성을 전田으로 바꾸었습니다. 손무의 할아버지 전서田書는 거莒를 공격하는 전쟁에서 공을 세워 제나라 26대 군주 경공景公이 낙안을 근거지로 주고 동시에 손孫이란 성까지 하사했습니다.
기원전 532년, 제나라에 전田, 포鮑, 난欒, 고高 '4성의 반란'이 터졌고, 손무의 집안도 이 정치투쟁에 휘말렸습니다. 이때 손무는 가족을 따라 오吳나라로 이주했고, 손무는 20년 동안 병법을 깊이 탐구하여 <손자병법>을 저술했습니다. 그 후 오대부 오원伍員의 추천을 받아 오나라 군주 합려闔閭를 만났고, 이어 장군에 임명되어 오나라가 초나라를 격파하는 전쟁에서 중대한 공을 세웠습니다. 그는 합려에게 병법 13편을 헌정했다고 합니다.
만년의 손무에 대한 기록은 부실하기 짝이 없어 그저 죽어서 오현에 묻힌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춘추좌전春秋左傳>에 나타난 춘추시기(기원전 722-468) 260여 년간의 전쟁상황에 관한 주보경朱寶慶의 연구에 의하면, 이 시기에 일어난 크고 작은 전쟁의 횟수는 무려 531회, 년평균 2회 이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춘추시대에서 전쟁의 규모와 격렬한 정도, 작전방법 및 전쟁사상의 풍부성은 그 이전 역사에는 없었던 것이다. 이런 점들은 필연적으로 당시의 문화를 나타나는 책들에 반영될 수밖에 없었다. <손자병법>은 당시의 이런 전쟁 경험에 대한 이론적 총결이며 철학적인 개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마천의 <사기>에 등장하는 또 다른 손자孫子는 손무의 사후 약 백여 년이 지나서 등장한 전국시대戰國時代 중기 탁월한 전공을 세운 제齊나라의 군사軍師 손빈孫臏입니다. 손빈은 선조가 되는 손무의 군사사상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군사이론과 실천에서 대단히 높은 수준을 과시했습니다. 그가 창안한 삼사법三駟法은 군사응용학의 시초가 되었고, 위위구조圍魏救趙(위나라를 둘러싸 조나라를 구하다)와 감조유적減灶誘敵(솥을 줄여 적을 속이다)과 같은 전법은 현재도 적을 굴복시키는 데 유용한 사례로 꼽힙니다.
주로 제나라 위왕과 선왕 재위기에 해당하는 기원전 356년에서 기원전 319년 무렵에 활동한 손빈은 청년 시절에는 방연龐涓과 함께 병법을 배웠는데, 학업성적이 늘 방연을 앞질러 그의 시기와 질투 대상이 되었습니다. 학업을 마친 뒤 방연은 위魏나라에 가서 벼슬을 하다가 혜왕惠王에 의해 장수에 임명되었습니다. 당시 제나라와 위나라는 중원의 패권을 놓고 격렬하게 싸우고 있었습니다. 방연은 자신이 손빈만 못하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제나라에서 손빈을 기용하는 것이 두려워서 비밀리에 손빈을 위나라로 초빙했고, 혜왕이 뛰어난 손빈을 발탁하지 않을까 걱정되어 음모를 꾸며 손빈을 해쳤습니다. 방연은 손빈의 선조 손무가 남긴 병서를 손에 넣기 위해 손빈을 죽이지 않고 무릎 아래를 잘라내는 형벌인 빈형臏刑을 가해 앉은뱅이로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손빈의 얼굴에다 죄인임을 나타내는 경형黥刑의 흔적까지 남겼습니다. 물론 방연은 자신의 정체와 의도를 철저하게 숨긴 채 손빈에게 마치 은혜를 베푸는 것처럼 꾸몄지만, 방연의 지독하고 천인공노할 흉계와 그 진상을 알아낸 손빈은 불굴의 의지로 사지에서 벗어나 제나라 사신을 따라 몰래 제나라로 도망쳤습니다. 그때부터 손빈은 제나라에서 자신의 일생 중 가장 빛나는 시절을 보냈습니다. 손빈은 이른바 삼사법三駟法을 창안했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 제나라 위왕에게 군사로 임명받았습니다. 그리고 대장군 전기田忌를 도와 두 차례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뒀으며,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손빈병법>이라는 군사 이론서를 남겼습니다.
제나라로 돌아온 손빈이 귀족의 눈에 들어 장군 전기의 상객이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당시 제나라 귀족 사이에서는 많은 돈을 걸고 하는 경마 노름이 크게 유행했습니다. 손빈은 경마에 참여하는 말들이 상·중·하 세 등급으로 나누어져 있고, 시합은 삼판양승으로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에 손빈은 전기에게 다음 번 시합에서는 반드시 이길 수 있게 해주겠노라 장담했습니다. 전기는 손빈의 말을 믿고는 천금을 걸고 위왕을 비롯한 공자들과 내기를 했습니다. 시합이 시작되기에 앞서 손빈은 전기에게 다음과 같은 방법을 일러주었습니다. 먼저 제일 못한 하등 말을 상대의 상등 말과 붙여서 한 판을 져주고, 다음 상등 말을 상대의 중등 말과 붙여 한 판을 만회한 다음 상대의 하등 말과 내 중등 말을 붙이면 필승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전기는 이 방법으로 당연히 시합에서 이겼습니다. 훗날 사람들은 당시 손빈이 제기한 이 방법을 삼사법三駟法이라 불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