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오래된 문화입니다 
 

얼마전 어느 분이 예수에 관해 알고 싶다길래 내가 쓴 <예수 이야기>(知와 사랑)를 주면서 말했습니다.
"예수를 제대로 알려면 역사 속에 존재했고 역사 속에 죽은 예수를 알아야지 신화 속의 예수를 알면 안됩니다."

이는 비단 예수뿐 아니라 종교의 중심에 있는 신봉의 대상이 되는 석가모니나 그 외의 분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일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이들을 신화 속의 인물로 이해하는데
내 생각에는 어이없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단군을 환웅의 아들로 믿는다면 신화를 이해할 줄 모르는 사람일 것입니다.
오로지 역사에 실재했던 인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분에게 말했습니다.

"예수를 '신의 아들'이라고 말하는데
나는 '역사의 아들'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물론 우리도 역사의 자식들이지요.
신은 바로 역사입니다.
신의 심판이 있다는 건 역사의 심판이 있다는 말입니다.
역사를 엄숙하게 바라보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내게 있어 종교는 오래된 문화입니다.
기독교문화, 불교문화 등 말입니다.
원시종교의 형태에 있어서는 기독교와 불교가 다르지 않고 오르페우스의 종교 또한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종교는 이론을 갖추면서 원시성에서 벗어났습니다.
이론이 생기면서 오히려 인간에게 갈등을 주었고 심지어 피를 부르는 전쟁을 일으키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이론 혹은 신학을 벗어던질 때 우리는 참종교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이는 곧 문명의 새아침이 어떻게 밝아왔는지를 알게 합니다.

혹시 종교철학에 관심이 있거나 비교종교에 관심이 있는 분은 기원전 5, 6세기를 유심히 살펴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석가모니와 같은 나라사람 자인Jain이 이 세기의 사람들이었고,
노자와 공자가 이 세기의 사람들이었으며,
예수가 자신의 모델로 삼은 선지자 이사야가 바로 이 세기의 사람이었습니다.
철학의 할아버지라고 말할 수 있는 탈레스도 이 세기의 사람이었습니다.
즉 기원전 5, 6세기는 역사의 눈으로 보면 인간이 막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고 한 청소년 소녀의 시기에 해당합니다.
당시 동양과 서양이 문화적 교류를 하지 않았는 데도 유사한 사상을 가진 것을 보면 인간의 사고의 한계가 같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더러 지나치게 종교에 빠진 사람들 때문에 일어나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특히 기독교에 빠진 사람들의 어리석은 생활 때문에 일어나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문화 자체는 훌륭한데 우상숭배로 흐른 나머지 종교가 타락했다는 느낌입니다.
내가 주장하려는 점은 예수에 관해 알고 싶다는 사람에게 한 말이지만 종교를 문화로 이해해야지 숭배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다른 인간을 존경할 수는 있어도 숭배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나의 신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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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데스Hades(황천)의 집' 왼편에 샘물이 흐르고 
 

오르페우스 종교를 신봉하는 사람이 적은 석판이 발견되었는데
망자에게 저세상으로 가는 길을 찾는 방법과 그곳에 가서 구원을 받기 위해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하는 가르침이 적혀 있다.
한 석판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하데스Hades(황천)의 집' 왼편에 샘물이 흐르고
그 곁에 흰 키프루스 나무가 서 있으면
샘 가까이 가자 말라.
'기억의 호숫가'에 또 하나의 샘이 있어
찬물이 흐르고 파수꾼이 지키고 있으리라.
그에게 일러라 "나는 땅과 하늘의 외아들이로다.
그러나 나는 그대가 알다시피 하늘의 족속이로다.
보라, 나는 목이 말라 죽게 되었노라.
어서 나에게 '기억의 호숫가'에서 흘러내리는 찬물을 달라."
그는 그대에게 신성한 샘물을 마시게 할 터이니,
그대는 영웅들의 왕이 될지라.

또 하나의 석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고통을 참고 견디는 그대에게 영광이 임했도다.
그대는 인간으로부터 신이 되었도다.

또 다른 석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행복하고 축복받은 자여,
그대는 죽지 않고 신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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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카스를 사먹는데 술의 신을 마시는 것이다 

예술철학뿐 아니라 서양을 이해하려면 먼저 고대 그리스인 사상을 알아야 한다

고대 그리스인은 몸은 멸하더라도 몸속에 내재한 혼은 불멸하다고 믿었는데 동양사상과 다르지 않다.
먼저 문명을 이룩한 그리스인의 이러한 믿음은 크레타 섬Crete에서 유래한 오르페우스Orpheus의 종교에서 비롯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르페우스의 존재에 관해서는 분명히 밝혀진 바가 없다.
그를 실재했던 인물로 보는 사람도 있고 신처럼 상상의 인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전설에 의하면 그는 박카스Bacchus(바카스는 디오니소스Dionysos로도 불리운다)와 마찬가지로 트라키아Thracia로부터 왔다.
그가 트라키아로부터 왔다고 하더라도 그가 전개한 종교적 운동은 크레타 섬에서 비롯했다.
그의 종교는 술의 신 박카스를 섬기는 의식에서 유래했으며, 사람의 혼을 불멸하는 것으로 본 이 종교의 교리는 피타고라스를 통해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게 전수되었다.

한국사람들은 술을 마시면 박카스를 사먹는데 술의 신을 마시는 것이다.

박카스를 경배하는 고대 그리스인의 의식에는 들짐승을 여러 갈래로 찢어 익히지 않은 채 날로 먹는 것과 남자와 여자가 떼를 지어 포도주에 취해 밤새도록 춤을 추며 황홀한 신비경에 도취되는 것도 포함되었다.
포도주는 우연히 발견된 것으로 짐작되는데 포도주에 취하여 광란의 행동을 하는 것을 그리스인은 바카스 신이 작용한 것으로 이해한 듯하다.

그러나 박카스 경배가 피타고라스를 통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게 미친 영향은 이런 야만적이며 혐오스러운 행위가 아니라 오르페우스에서 기인한 정신적으로 보다 승화된 사상이었다.
오르페우스는 바카스 경배의 야만적인 요소들을 청소했다.
그는 금욕주의를 표방하며 육체적인 신비경을 정신적인 신비경으로 대치했다.
당시 그의 개혁성향은 전통을 따르려는 보수주의자들에게 매우 위험한 것으로 비쳐졌을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오르페우스는 전통적인 박카스 신봉자들의 선동을 받은 흥분한 바카스 무녀들에 의해 찢겨 죽었다.

오늘날로 말하면 종교혁명을 일으킨 오르페우스가 과연 무엇을 사람들에게 가르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교리는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었고 계승되었다.
그는 사람의 혼은 윤회한다는 것,
이승에서의 삶의 질에 따라서 내세에 심판을 받는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것,
사람은 여성으로 상징되는 땅의 요소와 정신으로 상징되는 하늘의 요소로 이원론적으로 구성되었으므로 청결한 생활을 하게 되면 정신적인 하늘의 요소가 증가되는 반면 땅의 요소는 줄어들어 궁극에는 박카스와 일체가 되어 박카스로 불리우게 된다고 했다.

박카스 신화에 의하면 바카스는 제우스(Olympus의 최고 신)와 페르세포네Persephone(지옥의 여왕)의 아들로서 소년시절 타이탄Titan(하늘Uranus과 땅Gaea의 자식들 가운데 하나)에 찢겨 살을 모두 먹히우고 심장만 남게 되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제우스가 박카스의 심장을 세멜Semele(바카스의 어머니)에게 주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제우스가 삼켰다는 것이다.
어느 설이 맞던 결과는 같은데 박카스가 다시 태어난 것이다.
윤회가 이루어진 것이다.
타이탄들은 본래 땅의 태생이었지만 박카스를 찢어 먹고 나서 신성의 흔적을 갖게 되었으므로 땅의 요소와 하늘의 요소로 구성된 사람은 박카스를 경배하는 가운데 신성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이 전설의 요지이며 이는 곧 고대 그리스인의 믿음이요 희망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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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은 헤겔에 와서 종착역에 이르렀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바라보고 "저것은 아름답다"고 지각하더라도 그 대상은 절대적으로 아름다울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저것은 추하다"고 지각될 때도 절대적으로 추할 수는 없다.
아름답다든가 추하다든가 하는 건 상대적 상황에서의 관람자의 판단일 뿐이다.
김영자가 이순자에 비해 아름다운것이고 저 놈이 이 놈에 비해 추하게 보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 절대적인 아름다운 사람과 추한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미학은 헤겔에 와서 종착역에 이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헤겔은 미를 상대적인 것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절대absolute란 말을 정신에 붙여 '절대정신'이라고 했듯이 절대란 말을 사용한 건 아니지만 미를 거의 이런 개념으로 보았는데
이는 고대 그리스인이 미를 절대적 개념으로 이해한 것과 다르지 않다.
그리스인은 세상을 정신적인 것들과 물질적인 것들 즉 이원적으로 보았으므로 우리가 눈으로 보는 자연의 갖가지 대상들에 대한 절대적인 본보기가 되는 것들이 따로 정신세계에 존재한다고 믿었다.
이런 사고가 철학적으로 혹은 논리적으로 나타난 것이 플라톤의 이데아론이다.
이데아 즉 정신계에는 아름다운 영자와 순자가 있다.

아름다움을 독자적 개념으로 인식하게 되면 자연히 절대미에 대한 모방미를 말하게 된다.
절대미를 얼마만큼 모방했느냐에 따라서 미에 대한 판단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인은 자연을 절대미로 보고 아름다움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믿었다.
따라서 미술품은 자연스러운 모방이어야 한다고 보았다.
자연스럽지 못하면 추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미학이다.

예술철학이 자연이 무엇이며 인간의 존재와 능력이 무엇인지를 밝히려고 노력해온 것은 이 때문이며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이해와 모방의 가능성을 통해서 예술을 이해하려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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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미학의 과제는 네 가지이다

첫째, 예술이란 무엇인가?
둘째, 예술의 가치는 무엇인가?
셋째, 예술품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무엇인가?
넷째, 예술품은 어떤 종류의 실체인가?

이상 네 가지 과제를 성취하려면 다음 세 가지를 해결해야 한다.

첫째, 미를 정의해야 만한다.
둘째, 미적 경험을 분석해야 만한다.
셋째, 자연의 대상을 고찰해야 만한다.

미를 정의하려면 미의 특성을 알아야 하고, 미적 경험이 어디서 오는지 알아야 하며, 미적 판단의 기준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미적 특성, 미적 경험, 미적 판단은 심리적인 요소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으며 문화의 변천에 따라 달라진다.
이런 식의 탐구가 르네상스 시대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18세기에 무르익었다.

미학이 철학에서의 고유한 분야, 즉 미의 철학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18세기였다.
미학이 대학에서 학과로 성립된 것은 18세기 중엽 독일에서였다.
예술가의 활동이 장인의 손기술과 구별되어 시, 음악, 회화, 조각 등 여러 종류의 예술이 실용성보다는 쾌를 목적으로 하는 순수예술fine arts(beaux-arts, schone Kanste)로 파악되었으며,
18세기 말에는 예술이 고유한 논리에 기초해서 자율적인 세계를 구축한다는 점이 이론적으로 명백해졌다.

미학을 학문의 과제로 본 사람은 바움가르텐인데
그는 하급 인식력에 의한 감성적 인식에서 출발점을 삼았다.
그가 미학이란 말을 처음 사용했는데 '미학Aesthetica'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감각에 의한 지각 perception by the senses"으로 오관을 통해 대상을 아는 걸 의미한다.
이성적 인식의 여러 법칙을 다루는 논리학에 비해 미학은 감성적 인식의 논리학으로 바움가르텐은 "미학의 목표는 감성적인 인식 그 자체의 완전성, 즉 미beauty에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문제는 지각적 경험perceptual experience을 우리가 미적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는냐 하는 점이다.
단순한 지각적 경험을 미적 경험이라고 말할 수 없다.
미적 경험은 감각상 혹은 지각상의 특성 그 이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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