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은 헤겔에 와서 종착역에 이르렀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바라보고 "저것은 아름답다"고 지각하더라도 그 대상은 절대적으로 아름다울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저것은 추하다"고 지각될 때도 절대적으로 추할 수는 없다.
아름답다든가 추하다든가 하는 건 상대적 상황에서의 관람자의 판단일 뿐이다.
김영자가 이순자에 비해 아름다운것이고 저 놈이 이 놈에 비해 추하게 보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 절대적인 아름다운 사람과 추한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미학은 헤겔에 와서 종착역에 이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헤겔은 미를 상대적인 것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절대absolute란 말을 정신에 붙여 '절대정신'이라고 했듯이 절대란 말을 사용한 건 아니지만 미를 거의 이런 개념으로 보았는데
이는 고대 그리스인이 미를 절대적 개념으로 이해한 것과 다르지 않다.
그리스인은 세상을 정신적인 것들과 물질적인 것들 즉 이원적으로 보았으므로 우리가 눈으로 보는 자연의 갖가지 대상들에 대한 절대적인 본보기가 되는 것들이 따로 정신세계에 존재한다고 믿었다.
이런 사고가 철학적으로 혹은 논리적으로 나타난 것이 플라톤의 이데아론이다.
이데아 즉 정신계에는 아름다운 영자와 순자가 있다.
아름다움을 독자적 개념으로 인식하게 되면 자연히 절대미에 대한 모방미를 말하게 된다.
절대미를 얼마만큼 모방했느냐에 따라서 미에 대한 판단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인은 자연을 절대미로 보고 아름다움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믿었다.
따라서 미술품은 자연스러운 모방이어야 한다고 보았다.
자연스럽지 못하면 추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미학이다.
예술철학이 자연이 무엇이며 인간의 존재와 능력이 무엇인지를 밝히려고 노력해온 것은 이 때문이며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이해와 모방의 가능성을 통해서 예술을 이해하려고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