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앙商鞅의 사상은 무엇입니까?

 

 

법가法家의 원조元祖 중 하나인 상앙商鞅이 저술한 것으로 알려진 <상군서商君書>는 상앙의 사상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서 상앙 이후의 사실까지 기술되어 있는 데다 <한비자韓非子>에도 당시 이 책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글이 있는 점으로 보아 전국시대 말기에 그 주요부가 편집되어 있었다고 추정됩니다. 난세의 부국강변론인 <상군서>의 일부분이 상앙의 변법變法(사회개혁) 주장에 관한 기록이고 나머지는 상앙 제자들의 상앙 학설에 대한 견해로 이뤄져있습니다. 한대漢代에는 29편이 있었으나 송대宋代에 5편을 잃고 현재 24편이 현존합니다. 『상군서>는 한자로 2만 천여 자로 이루어진, 크지 않은 책입니다. 상앙보다 백 년 뒤의 법가 사상가 한비자는 "요즘 집집마다 관중管仲과 상앙의 법을 가지고 있다"고 했으며 그보다 백 년 뒤의 사마천은 <상군서>의 구체적 편명까지 언급했습니다. <상군>으로 불리다가 <상군서>라고 처음 명명한 사람은 제갈공명諸葛孔明입니다. 당나라 때는 책을 재정리하며 <상자商子>로 불렸는데, 청나라 말기에 다시 <상군서>란 명칭이 회복되었습니다.

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에 여러 나라 군주들의 최대 관심사는 부국강병富國强兵과 군권의 공고화였습니다. 이런 법가적 정치 개혁의 경쟁장에서 진나라는 상앙의 변법으로 가장 성공적인 정치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당시 부국강병의 핵심은 인구 유입이었습니다. 인구가 많아지면 세원이 늘고 노동력이 증가하며 군비 증강에도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인의와 도덕을 외치는 공자와 맹자, 무위와 자연을 주장하는 노자와 장자의 사상도 그들의 정치적 주장을 살펴보면 인구 유입을 통한 정치 개혁이 논의의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상군서>의 내용 또한 대부분 이런 목적으로 씌어졌습니다.

상앙의 행적은 <사기> ‘상군열전’편에 기록되어 있는데, 상앙은 진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어주면 땅을 하사하겠다는 진나라 효공孝公의 현자초빙에 관한 소식을 접하고 위魏나라로부터 진나라로 망명했습니다. 총신 경감을 통해 효공을 알현한 상앙은 왕도정치 등을 말했으나 효공은 꾸벅꾸벅 졸뿐이었습니다. 질책을 당한 경감을 간신히 졸라 네 번째 만난 상앙이 부국강병의 술책에 관해 말하자 효공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방석 밖으로 무릎이 나오는 것도 몰랐으며, 며칠을 이야기하고도 싫증을 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상앙은 크게 발탁되어 효공이 타계할 때까지 일심동체로 정치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상군서>를 10가지 주제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변고變古, 세변도이世變道異, 인성자리人性自利, 농전農戰, 명분공사明分公私, 존군尊君, 약민弱民, 중형重刑, 국해國害, 이리위사以吏爲師 등입니다.

 

변고變古에서 다룬 것은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변화, 발전하며 옛 것은 반드시 바뀌는 것이므로 정치, 사회의 각종 제도 또한 새로운 추세에 맞추어 바뀌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는 고대의 성인들이 남겨 놓은 제도가 완벽하므로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보수 집단의 주장에 대한 반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법이 있어야 하고, 현재의 법도 상황이 바뀌면 또 바뀌어야 한다는 철저한 변화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세변도이世變道異에서 다룬 것은 인구가 늘고 사회가 복잡해진 현시대에서는 법과 관료와 군주를 통해 통치할 수밖에 없으며, 인의니 예악 따위는 과감히 버려야 한다는 점입니다. 과거에는 사회를 지배하는 원리가 인의, 도덕이었다면 새로운 사회를 지배하는 원리는 강력한 법치뿐이라는 주장입니다.

 

인성자리人性自利에서 다룬 것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바를 잘 이용해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는 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상을 좋아하고 벌을 싫어하기 때문에 군주가 그 상벌 권한을 철저히 장악하여 삶, 배부름, 편안함, 즐거움, 출세, 작록, 부귀로 상을 주고, 죽음, 배고픔, 힘듦, 괴로움, 수치, 모욕, 형벌, 빈천으로 벌을 주면 백성을 농사와 전쟁에 집중시킬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인간의 이기적 성향을 철저히 이용하여 국가의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농전農戰에서 다룬 것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오직 농사와 전쟁뿐이므로 훌륭한 정치가는 백성이 농사와 전쟁에 종사했을 때 이익이 생김을 잘 계산해서 알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땅은 넓고 인구는 적은 진나라 환경에서 농사와 전쟁을 일원화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명분공사明分公私에서 다룬 것은 공과 사를 명백히 구분하여 공적 이익을 개척하고, 사적으로 재물을 얻는 모든 경로를 막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법은 국가의 저울"이므로 통제의 방법은 오로지 법뿐이고 군주든 신하든 백성이든 법률의 공적 표준을 벗어나면 안 된다는 내용입니다. 부국과 강병은 국가의 목표에 부합되는 공적인 일이며, 그렇지 못한 것은 어떤 경우든 사적인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존군尊君에서 다룬 것은 복잡하게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정치세계에서 이를 정리해 줄 유일한 표준은 군주라는 점입니다. 군주는 최고 입법권과 행정권을 장악하며 힘과 세로써 천하 백성들의 존중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약민弱民에서 다룬 것은 부국강병이란 국가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힘들어하고 두려워하는 백성을 법으로 철저히 압박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국가 정책에 왈가왈부하는 백성을 혹독하게 징벌하고, 농사 외에 갖가지 재주로 먹고사는 백성의 재능발휘를 막고 무지몽매하게 만들어 전 국민이 오로지 부국강병에만 매진토록 하라는 주장입니다.

 

중형重刑에서 다룬 것은 형벌을 무겁게 하면 가벼운 범죄도 생기지 않는 법이므로 상을 받는 것도 이익이지만 벌을 받지 않는 것이 더 큰 이익이라는 생각을 백성에게 심어 주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혹독한 형벌만이 범죄를 막을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국해國害에서 다룬 것은 지식만 추구하는 나라는 망할 날이 멀지 않다는 점입니다. 학문적 논의나 인의, 도덕 등은 부국강병에 도움이 안 되며 싸움 좋아하는 호걸, 장사로 이익 보는 사람, 지식을 팔러 다니는 사람, 남 신세를 지고 사는 사람, 집안에만 있는 남자, 기예로 먹고사는 예능인 등은 국가의 해충이라는 것입니다. 농사와 전쟁 외의 모든 일은 부국강병이란 국가의 목표에 위배되는 행위이므로 철저히 압박하여 제거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리위사以吏爲師에서 다룬 것은 법으로 통일시키고 법관을 스승으로 삼아서 모든 행동의 표준은 법으로 간단명료하게 정리하고, 상벌, 관직, 신분의 기준을 법으로 정함으로써 국민의 의식을 법 하나로 통일시켜야 한다는 점입니다. 법을 다루는 관리를 스승으로 삼고, 부국강병과 관련 없는 일체의 지식이나 지식 전수자는 쓸모가 없으니 없애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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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이 허하면 치아가 아프다

 

 

“어머니게서 이가 아파 고생하고 계셔. 치과에 여러 번 다녔는데도 잘 낫지를 않아서 ...”

<생긴 대로 병이 온다>의 저자 조성태가 친구로부터 받은 전화 내용입니다. 친구는 며칠 후 칠순의 어머니를 모시고 그에게로 왔습니다.

“우리 아들이랑 친구라면서요. 그런데 내가 이가 너무 아파서 먹지도 못하고 잠도 제대로 잘 수가 없다우. 나 하나만 고생하면 그만인데 애들까지 덩달아 고생시키니 미안하기도 해서 ...”

치과에 가서 신경을 죽이는 치료를 받았지만 그대만 조금 덜할 뿐 통 낫질 않는다고 했습니다. 친구의 어머니는 치통뿐만 아니라 오래 전부터 허리도 아파 고생한다고 말했습니다.

한의학에서는 치통의 경우 팔미환, 독활산, 사위탕, 청위산, 옥지환 등을 처방하는데, 친구의 어머니는 뼈가 약해서 오는 통증으로 판단하고 조성태는 신원腎元이 허해서 오는 치통에 합당한 여덟 가지 약재가 들어가는 팔미환八味丸을 처방했습니다. 팔미환은 찐지황, 산수유, 마, 택사, 솔뿌리혹(복령), 모란뿌리껍질, 육계, 부자(법제한 것) 등 여덟 가지를 가루 내어 졸인 후 꿀에 반죽해서 만든 검은 밤색의 알약입니다. 보혈강장약으로 온몸 허약할 때, 신양이 허하여 소화가 잘 안되고 입맛이 없으며 설사할 때, 손발과 아랫도리가 차고 추위를 잘 타며 밤에 소변을 자주 눌 때, 노년기에 음위증이 일찍 오고 음낭 부위가 습하고 찰 때 처방하는 약입니다.

조성태는 얼마 후 친구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요새 어머니께서 아프다는 말씀을 안 하셔. 진지도 잘 드시고, 허리도 괜찮으신가봐. 고맙다, 내가 다음에 저녁 한번 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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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가法家란 무엇이며 상앙商鞅은 누구입니까?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출현하여 유가儒家의 자연법적인 예禮에 대해 실정법적인 법의 우위를 주장한 법가法家는 예가 지연적, 혈연적 공동체를 결합하는 것이었지만, 춘추시대春秋時代 중기 이후의 생산력의 발전에 의한 공동체의 붕괴는 예를 대신하는 법에 의한 지배를 요구했습니다. 전국시대 제자백가 가운데 유일하게 법가가 당대의 사회경제적인 근본 변화를 역사의 정당한 발전에서 필연적인 과정으로 파악했습니다. 이러한 사회 변화의 근원적 와중에서 법가는 농업 생산의 증대와 다른 한편 전통적인 세습귀족제의 폐지를 통한 효율적인 관료제의 확립을 노리는 강력한 농업정책을 제창했습니다. 그리고 보편적 공평무사한 법에 의한 통치로 구귀족의 특권을 제한함으로써 군주의 통치권을 강화시키려는 군주절대주의 실현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는 새로이 대두하는 관료제적 절대주의 국가의 정치적 이해를 대변하는 것이었습니다.

초楚나라를 저지하고 중원제국 주도권을 장악한 위魏나라의 문후文侯(기원전 445∼396 재위) 아래서 일했던 이리李理(기원전 445~396)는 농업정책에 개혁을 꾀하는 법령을 편찬했고, 위韋나라의 귀족 출신으로 위앙韋鞅 혹은 공손앙公孫鞅이라 불린 상앙商鞅(?~기원전 338)은 법령을 편집, 공개하여 그에 따른 신상필벌信賞必罰을 단행, 부국강병책을 이루었습니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상군열전商君列傳’에는 상앙의 인물됨과 그가 진秦나라에서 실시한 사회개혁의 개괄적인 내용 및 그것에 대한 비판적 평가가 간결하게 적혀있습니다. 여기서 상군商君이란 상앙을 말합니다. 상군商君으로 불린 것은 그가 상商 지방의 땅을 하사받았기 때문입니다.

 

상군商君은 타고난 자질이 각박한 사람이다. 그가 효공孝公에게 벼슬자리를 얻으려고 제왕帝王의 치술로써 허튼 이야기를 한 것을 보면 그의 본바탕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는 총신을 통해 등용되었으며, 공자건孔子虔에게 형벌을 주었고, 위나라의 장군 공손앙公孫鞅을 옛 우정을 미끼로 사로잡았으며, 조량趙良의 말을 좇지 않았다. 이것은 또한 상군의 인정머리 없음을 충분히 나타내준다.

 

상앙은 사회개혁을 통해 봉건적 구제도를 철저하게 파괴하고 군주의 절대권력 확립에 필요한 혁신적인 조치를 강구했습니다. 그는 귀족들의 세습적 특권을 박탈하고자 했을 뿐만 아니라 절대군주의 존재를 위협하는 지식인들의 자율적이고 비판적인 사상 논의를 엄금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이런 일련의 강압적, 전제주의적 조처로서 상앙은 당시 낙후된 진秦나라를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부강하게 만들었으며 이것을 토대로 진나라는 후일 천하를 통일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상앙의 사회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한 진나라의 효공이 죽자 상앙은 수구적인 관료세력의 반격을 받아 비참한 종말을 맞았습니다. 상앙은 법률의 효용이란 인간들의 상호투쟁과 변란을 방지하고, 동시에 인간들의 토지재산과 등급을 규정하기 위한 것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군주와 관리의 사명은 인간들의 분쟁과 갈등을 법적으로 해소시킬 수 있는 강력한 법의 제정과 그 시행을 통한 사회적 안정의 확보와 유지에 있다고 설파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신념하에 상앙은 전통적인 관습禮敎을 개혁 없이 인습하는 것에 반대했습니다. 그는 더 나아가 인간의 본성이란 근본적으로 실리타산적인 존재라는 현실적인 인간관에서 출발하여 유가의 주장처럼 인간의 실천적 도덕의지에 호소하는 덕치를 반대했습니다.

한韓나라 학자이자 정치가이며 사상가로 한나라의 소후昭侯를 섬겨 재상宰相으로서 15년간 나라를 태평하게 다스린 신불해申不害(?~기원전 341)는 독특한 술론術論을 지녔는데, 그 술術이란 군주가 뜻하는 바를 신하가 모르게 하여 상벌의 위력으로써 신하로 하여금 그 능력을 다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조나라 사람으로 제齊나라의 선왕宣王 때 직하稷下의 학사學士를 지낸 신도愼到(기원전 395~315)는 인간 사회의 권위를 중시하여 권위에 의해 세勢를 이용할 때야말로 사람은 자기의 능력에 관계없이 다른 사람을 제압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비자韓非子는 상앙의 법, 신불해의 술, 신도의 세를 비판 종합하여 법가 이론을 완성했습니다. 이사李斯(기원전 280?~208)는 한비자의 이론을 전면적으로 계승하여 진秦나라의 지배에 구체적으로 적용했습니다. 한漢나라도 표면적으로는 유교를 국교로 한 덕치주의를 표방했지만 그 내실은 법치주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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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아 사이가 벌어지거나 치아가 검으면 신장이 허하다

 

 

뼈가 상하면 치아도 약해지면서 시큰거리거나 아프고 흔들리는 등 불편한 증상들이 생깁니다. 치아는 뼈의 나머지로서, 이것 역시 신腎의 주관 아래에 있습니다. 신의 원기가 부족해져서 오는 이빨병에는 잇몸이 파이고 이뿌리가 드러나면서 흔들리는 증상이 있습니다. 또 치아 사이가 벌어지는 것은 신의 기능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치통 증상도 신이 허해서 오는 수가 많으며, 어혈이나 찬 기운 또한 벌레가 먹어서 이빨이 아플 때도 있습니다. 이빨병으로 고생할 때에는 참기름 같은 기름 종류나 마른 대추는 절대로 금해야 합니다.

치아가 검으면 신이 좋지 않다는 표시입니다.

“두통이 있고 항상 머리가 무거워요. 그리고 키도 좀 컸으면 좋겠어요.”

16세의 한양이 <생긴 대로 병이 온다>의 저자 조성태에게 한 말입니다. 조성태는 환자의 치아가 검은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몸에 비해 머리가 큰 편이며 얼굴이 잘 붉어지는 체질이었습니다. 평소에 허리가 좋지 않을 때가 있느냐고 물으니 “예, 잠자고 일어나면 허리가 뻐근해요. 피곤하면 입 냄새가 나기도 하구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가끔 어지럽지 않느냐고 물으니 “맞아요, 가끔씩 하늘이 빙빙 돌면서 어지러울 때가 있어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변비는? 하고 묻자 “그렇게 심하진 않지만 시원하게 변을 보는 건 아니에요” 하고 대답했습니다.조성태는 한양의 증세를 신장 기능이 저하되어 신수기腎水氣(신장의 기운)가 부족한 현상으로 판단했습니다. 치아가 검다는 건 신장이 허하다는 말이고 뼈가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은 수水도 조절하기 때문에 신수가 부족하면 대변도 시원찮고, 화가 위로 올라가서 얼굴이 붉게 달아오릅니다. 다라서 이 경우에는 뼈를 튼튼하게 해주는 약을 써야 하므로 조성태는 한양에게 육미지황환六味地黃丸을 처방했습니다. 육미지황환은 간肝, 신장腎臟의 자보滋補(정기를 길러서 보익補益하는 효능)가 있고 간, 신장의 음허陰虛로 인한 허리와 무릎이 시큰거리고 힘이 없어지는 요슬산연腰膝酸軟,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운 두통현훈頭痛眩暈, 귀울림과 소리를 듣지 못하는 증상이 동반되는 이명이롱耳鳴耳聾, 도한유정盜汗遺精(잠자는 사이에 식은 땀을 흘리는 병증盜汗과 정액이 저절로 나오는 병증遺精), 소아신문불합증小兒顖門不合(어린아이가 일정한 연령기에 접어들어도 신囟이 봉합되지 않고 열려 있어 정상적인 아이에 비하여 신문囟門(숫구멍 혹은 정수리)이 큰 병태病態) 혹은 허화상염虛火上炎(신음腎陰이 손상되어 심화心火나 간화肝火를 통제하지 못해 일어나는 병증)이 골증조열骨蒸潮熱(골증骨蒸에 조열潮熱이 나타나는 것)에 이르고 손과 발바닥과 심흉부에 열이 있고 또는 갈증이 있으며, 음양과 기혈이 부족하여 나는 열과 치통인 허화아통虛火牙痛, 설질舌質이 담홍색보다 더 짙게 열증熱證이 있는 설홍소태舌紅少苔, 맥상脈象의 하나로 맥脈이 가늘고 빈번히 뛰는 맥세삭脈細數 등의 증세를 보일 때 사용하는 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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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견宋鈃과 윤문尹文은 누구입니까?

 

 

중국 사상에서 과욕론의 비조로 꼽을 수 있는 인물 송견宋鈃과 윤문尹文의 학파學派는 전국시대戰國時代 중기 제齊나라 직하稷下(직문稷門, 아래에 있었던 학사촌/학술원) 학파學派 중에서 도가道家 계열에 가까운 사상가들입니다. 전국시대의 직하 학파는 도, 법, 유, 명, 음양 등 제가의 학을 널리 끌어 모았고 각파의 것을 모아서 일정한 경향을 가진 학파를 점차로 이뤄나갔으며 그 중에서 주도적 지위를 차지한 것이 도가학파였습니다. 송견宋鈃의 생졸生卒 연대는 상세하지 않으나, 대체로 맹자孟子(기원전 390?-305)와 동시대이거나 조금 빠른 시대의 인물로 추정됩니다. <맹자孟子> ‘고자告子’ 하편에서 맹자가 송견을 선생이라 불렀으니, 송견은 맹자보다 연장年長이었던 같습니다. <맹자>에서는 송경宋徑으로, <장자莊子>에는 송영자宋榮子, 그리고 전국시대 말기 한韓나라의 공자公子로 법치주의를 주창한 한비韓非(기원전 280?∼233)와 그 일파의 논저論著인 <한비자韓非子>에서는 송영宋榮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진나라의 정치가 여불위呂不韋가 빈객賓客 3천 명을 모아서 편찬한 <여씨춘추呂氏春秋>(26권, <여람呂覽>이라고도 함) ‘정명正名’편에 의하면, 제나라 사람 윤문尹文은 일찍이 제나라 왕을 만난 적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국시대 명가名家의 한 사람으로 이견백파離堅白派의 지도자인 공손룡公孫龍(기원전 ?-250?)이 윤문을 언급한 적이 있으므로 윤문은 공송룡보다 앞섰거나 그와 동시대인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송견과 윤문의 사상에 대한 개괄적인 소개가 <장자>의 ‘천하天下’편에 실려 있고 또 <한비자>, <순자荀子> 및 <여씨춘추> 등에도 조금 언급되고 있습니다. <장자>의 ‘천하’편과 <순자>의 ‘정론正論’편에 따르면, 두 사람의 주장은 크게 편견의 제거, 즉 별유別宥, 침략전쟁 반대, 즉 금공禁攻 및 감성적 욕구의 절제, 즉 정욕과천情欲寡淺 등으로 요약됩니다. 이런 점에서 두 사람을 묵가墨家의 금공禁攻의 실천적 논의를 수용한 도가道家의 한 유파流波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중국의 시인, 극작가 겸 사학자로 낭만주의 문학단체인 창조사創造社를 결성하고, 국민혁명군의 북벌北伐에 정치부 비서처장으로서 참가한 곽말약郭沫若(중국어로 궈모뤄, 1892~1978)은 춘추시대의 제나라 재상宰相 관중이 부민, 치국, 경신, 포교를 서술하고 패도정치를 역설한 책 <관자管子>의 ‘내업內業’편의 내용을 송견과 윤문 일파의 사상적 저작이라고 고증했습니다. <관자>의 ‘내업’편에서는 정기精氣를 만물을 구성하는 본원으로 제시했습니다. 거기에는 생명의 기원에 대한 문제 및 생명을 오래 보존하는 양생술까지도 언급하는 정기 학설을 확립했습니다. 그들은 정기의 개념으로 인간의 생명현상과 정신을 설명했습니다. 그 이론에 따르면 사람이 정기를 얻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몸의 형체가 강건해지고 아홉 개의 감각기관이 모두 제 기능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정기가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를 잡아야만 마침내 총명하게 되고, 지혜가 있게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정기를 잃게 되면 생명은 곧 고갈되어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송견과 윤문 학파가 정기를 보존하는 양생술을 추천하는 것은, 항상 마음을 비우고 고요하게 하여, 일체의 욕망과 잡념을 버리고, 그럼으로써 외물의 유혹을 받지 않고서 오로지 몸의 보전에 주의를 기울이되, 적절하게 섭생하며 병이 생기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정기의 개념은 독창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데, <노자老子>에서 제시된 만유만상의 근원으로서 설정한 도道의 관념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노자>에서는 도가 곧 기라는 사상이 분명히 제시되어 있지만, 둘의 관계에 대해서는 충분한 설명이 없습니다. 이에 비하면 <관자>의 ‘내업’편에서는 도가 곧 기라고 분명하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노자>에서는 천天을 우주의 근원으로 보는 시각이 엿보이는데, <관자>의 ‘내업’편에서는 천을 명확하게 자연으로 간주하고 기를 천보다 더 근본적인 것, 즉 천을 구성해주는 미세한 유동적 물질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氣와 정精의 관계에 대해서도 <관자>의 ‘내업’편에서는 “정精이란 것은 기氣의 정수다”라고 하여 정이 기이며, 기의 정수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관자管子>의 ‘내업內業’편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마음心의 드러남形은 저절로 가득차고 저절로 넘쳐흐르며, 저절로 생겨나서, 저절로 자신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때때로 그것이 그 온전함을 잃는 것은 반드시 근심과 쾌락, 기뻐함과 노함, 욕망과 탐심 때문이다. 그런 것들을 제거한다면 마음은 곧 본래의 상태를 회복하여 온전해진다. 그 마음의 본성情은 안정되고 편안한 상태를 최고로 친다. 번거롭지 않고 어지럽지 않다면 마음의 평화는 저절로 이뤄진다. 이 평화스러운 마음은 그 밝고 분명함이 몸 옆에 있는 것 같고, 어슴프레하여 찾아 잡지 못할 듯도 하며, 아득하여 끝 간 데가 없는 듯하다. 잘 살펴보면 그것은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니며, 누구나 날마다 그것을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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