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견宋鈃과 윤문尹文은 누구입니까?

 

 

중국 사상에서 과욕론의 비조로 꼽을 수 있는 인물 송견宋鈃과 윤문尹文의 학파學派는 전국시대戰國時代 중기 제齊나라 직하稷下(직문稷門, 아래에 있었던 학사촌/학술원) 학파學派 중에서 도가道家 계열에 가까운 사상가들입니다. 전국시대의 직하 학파는 도, 법, 유, 명, 음양 등 제가의 학을 널리 끌어 모았고 각파의 것을 모아서 일정한 경향을 가진 학파를 점차로 이뤄나갔으며 그 중에서 주도적 지위를 차지한 것이 도가학파였습니다. 송견宋鈃의 생졸生卒 연대는 상세하지 않으나, 대체로 맹자孟子(기원전 390?-305)와 동시대이거나 조금 빠른 시대의 인물로 추정됩니다. <맹자孟子> ‘고자告子’ 하편에서 맹자가 송견을 선생이라 불렀으니, 송견은 맹자보다 연장年長이었던 같습니다. <맹자>에서는 송경宋徑으로, <장자莊子>에는 송영자宋榮子, 그리고 전국시대 말기 한韓나라의 공자公子로 법치주의를 주창한 한비韓非(기원전 280?∼233)와 그 일파의 논저論著인 <한비자韓非子>에서는 송영宋榮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진나라의 정치가 여불위呂不韋가 빈객賓客 3천 명을 모아서 편찬한 <여씨춘추呂氏春秋>(26권, <여람呂覽>이라고도 함) ‘정명正名’편에 의하면, 제나라 사람 윤문尹文은 일찍이 제나라 왕을 만난 적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국시대 명가名家의 한 사람으로 이견백파離堅白派의 지도자인 공손룡公孫龍(기원전 ?-250?)이 윤문을 언급한 적이 있으므로 윤문은 공송룡보다 앞섰거나 그와 동시대인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송견과 윤문의 사상에 대한 개괄적인 소개가 <장자>의 ‘천하天下’편에 실려 있고 또 <한비자>, <순자荀子> 및 <여씨춘추> 등에도 조금 언급되고 있습니다. <장자>의 ‘천하’편과 <순자>의 ‘정론正論’편에 따르면, 두 사람의 주장은 크게 편견의 제거, 즉 별유別宥, 침략전쟁 반대, 즉 금공禁攻 및 감성적 욕구의 절제, 즉 정욕과천情欲寡淺 등으로 요약됩니다. 이런 점에서 두 사람을 묵가墨家의 금공禁攻의 실천적 논의를 수용한 도가道家의 한 유파流波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중국의 시인, 극작가 겸 사학자로 낭만주의 문학단체인 창조사創造社를 결성하고, 국민혁명군의 북벌北伐에 정치부 비서처장으로서 참가한 곽말약郭沫若(중국어로 궈모뤄, 1892~1978)은 춘추시대의 제나라 재상宰相 관중이 부민, 치국, 경신, 포교를 서술하고 패도정치를 역설한 책 <관자管子>의 ‘내업內業’편의 내용을 송견과 윤문 일파의 사상적 저작이라고 고증했습니다. <관자>의 ‘내업’편에서는 정기精氣를 만물을 구성하는 본원으로 제시했습니다. 거기에는 생명의 기원에 대한 문제 및 생명을 오래 보존하는 양생술까지도 언급하는 정기 학설을 확립했습니다. 그들은 정기의 개념으로 인간의 생명현상과 정신을 설명했습니다. 그 이론에 따르면 사람이 정기를 얻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몸의 형체가 강건해지고 아홉 개의 감각기관이 모두 제 기능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정기가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를 잡아야만 마침내 총명하게 되고, 지혜가 있게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정기를 잃게 되면 생명은 곧 고갈되어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송견과 윤문 학파가 정기를 보존하는 양생술을 추천하는 것은, 항상 마음을 비우고 고요하게 하여, 일체의 욕망과 잡념을 버리고, 그럼으로써 외물의 유혹을 받지 않고서 오로지 몸의 보전에 주의를 기울이되, 적절하게 섭생하며 병이 생기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정기의 개념은 독창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데, <노자老子>에서 제시된 만유만상의 근원으로서 설정한 도道의 관념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노자>에서는 도가 곧 기라는 사상이 분명히 제시되어 있지만, 둘의 관계에 대해서는 충분한 설명이 없습니다. 이에 비하면 <관자>의 ‘내업’편에서는 도가 곧 기라고 분명하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노자>에서는 천天을 우주의 근원으로 보는 시각이 엿보이는데, <관자>의 ‘내업’편에서는 천을 명확하게 자연으로 간주하고 기를 천보다 더 근본적인 것, 즉 천을 구성해주는 미세한 유동적 물질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氣와 정精의 관계에 대해서도 <관자>의 ‘내업’편에서는 “정精이란 것은 기氣의 정수다”라고 하여 정이 기이며, 기의 정수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관자管子>의 ‘내업內業’편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마음心의 드러남形은 저절로 가득차고 저절로 넘쳐흐르며, 저절로 생겨나서, 저절로 자신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때때로 그것이 그 온전함을 잃는 것은 반드시 근심과 쾌락, 기뻐함과 노함, 욕망과 탐심 때문이다. 그런 것들을 제거한다면 마음은 곧 본래의 상태를 회복하여 온전해진다. 그 마음의 본성情은 안정되고 편안한 상태를 최고로 친다. 번거롭지 않고 어지럽지 않다면 마음의 평화는 저절로 이뤄진다. 이 평화스러운 마음은 그 밝고 분명함이 몸 옆에 있는 것 같고, 어슴프레하여 찾아 잡지 못할 듯도 하며, 아득하여 끝 간 데가 없는 듯하다. 잘 살펴보면 그것은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니며, 누구나 날마다 그것을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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