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은 패러다임에서 파생되지만
 
토마스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 5장에서 '패러다임의 우선성'에 관해 언급했는데
이는 패러다임에 대한 완벽한 해석이나 합리화에는 동의하지 않더라도 혹은 그런 것을 얻으려고 하지 않은 채 패러다임의 확인에서는 의견의 합치를 볼 수 있음을 예증한 장이다.
규칙은 패러다임에서 파생되지만 패러다임은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조차 연구의 지침이 된다는 앞서 언급한 내용과 흡사하게 패러다임의 표준 해석이나 규칙에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패러다임에 의한 연구방향은 지속되며,
오히려 패러다임의 존재는 완벽한 한 벌의 규칙이 존재하는 것을 암시조차 할 필요가 없음을 논했다.

정상과학이 부분적으로 패러다임들의 직접적 점검에 의해 결정될 수 있으며,
이럴 경우 흔히 규칙들과 가정들의 공식화의 도움을 받게 되지만 그것들에 의존하지는 않는다면서
쿤은 '패러다임의 직접적 점검 direct inspection of paradigms'의 의미를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저서 <철학적 연구 Philosophical Investigations>에서 인용해 설명했다.
그는 비트겐슈타인이 "'의자'니 '잎'이니 하는 말들을 애매하지 않게 그리고 논쟁거리가 되지 않게 적용하려면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하고 질문한 것에 주목했다.
그런 말들이 지닌 공통적 특성은 파악되어져야만 한다고 알려졌지만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이 주어지고 우리가 그것을 적용하는 세계의 유형이 정해지는 경우, 그런 공통의 특성은 존재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왜냐하면 분류층의 모든 구성요소들에 대해서 동시에 모조리 그리고 거기에만 유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 특성의 묶음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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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쿤은 정상과학을 퍼즐풀이에 비유했다.
퍼즐을 푸는 놀이에는 규칙rule이란 것이 있기 마련인데 과학자들은 패러다임으로부터 유도한 공약에 관해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하지만 정상과학이 고도로 결정적인 성격의 활동이라고 하더라도 전적으로 규칙에 의해 결정될 필요는 없으며 지침을 터득하면 퍼즐을 풀 수가 있다.
재능 있는 과학자에게는 과거에 풀지 못했거나 제대로 풀지 못한 퍼즐을 푸는 데
성공할 것이란 확신이 있고, 가장 위대한 과학적 정신을 가진 대가들은 거의 이런 류의 미결된 퍼즐들에 전문가들로 헌신해왔다.

정규적인 연구에서 패러다임의 기본 이론과 상치되는 결과를 얻는 경우 이론의 성립 여부가 의심되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의 능력 여부가 의문시되는 것이 상례이며,
성급하게 패러다임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과학자는 "연장을 탓하는 목수" 격이 된다.
쿤은 결론으로 "규칙은 패러다임에서 파생되지만 패러다임은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조차 연구의 지침이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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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서는 패러다임이 모사의 대상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패러다임은 문법에서 동사들의 변형에 대한 패턴인데 이런 경우 패러다임은 그중 어느 하나가 원칙적으로 그 패러다임을 대치할 수 있는 예제들을 모사하도록 허용함으로써 그 기능을 나타내지만,
과학에서는 패러다임이 모사의 대상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를 오히려 쿤은 관습법에 의해 판가름난 판결처럼 새롭거나 보다 엄격한 조건하에서 더욱 명료화되고 특성화되어야 하는 대상으로 간주했으며,
이런 이유로 패러다임이 처음 제시될 때 전망과 정확도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크게 제한될 수 있게 때문임을 꼽았다.

하지만 패러다임이 전문가들 그룹이 시급하게 여기는 몇몇 문제들을 푸는 데
경쟁 상대들보다 훨씬 성공적이라는 이유로 해서 그 직위를 획득하더라도 한 패러다임의 성공은 처음에는 불완전한 예제들에서 발견되는 성공의 약속일 뿐으로 보았다.
전문가들만이 알 수 있겠지만 그런 약속의 실재화를 통해 정상과학은 이루어지는 것이며 이는 패러다임 자체가 더욱 명료해지는 것을 말한다.

패러다임 마무리 작업에 생애를 바치는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새로운 이론의 창안을 목적으로 삼지 않을 뿐더러 다른 과학자들에 의해 창안된 것을 수용하려고도 하지 않기 때문에 정상과학의 연구는 패러다임이 이미 제공한 현상과 이론을 재공식화reformulation에 의한 명료화articulation를 지향한다.

쿤은 패러다임에 대한 확신에서 파생되는 이런 제한이 과학 발전에 불가결한 것으로 보았으며 패러다임에 기초한 연구의 의미를 명백히 밝히기 위해 압도적인 다수 과학자들이 사실-수집을 통해 자신들의 지속적 연구 결과를 전문학술지에 발표하는 것을 알았다. 여기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는데 의미있는 사실의 결정, 사실과 이론의 일치, 이론의 명료화로서 실험적 이론적 과학 모두에서 정상과학 문헌을 거의 전부 차지한다. 거의 전부라고 한 것은 정상과학의 진보에 의해 마련된 특별한 경우, 즉 일반적이 아닌 비상적인 문제들도 있기 때문인데 쿤은 비상적 문제의 풀이가 오히려 과학적 활동을 전반적으로 가치있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또한 알았다.

결론적으로 쿤은 패러다임을 버리는 것이 그것이 정의하는 과학다루는 일을 중단하는 것임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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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 Poietica>에서 이념의 모방은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 Metaphysica> 첫 부분에서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으로 경험을 통한 보편적 판단에 의한 기술art과 추론능력을 꼽았다.
경험을 통한 보편적 판단이라는 지식이 기술을 향상시키며 모방은 여기서 과정일 뿐이다.
그는 <시학 Poietica>에서 비극을 예로 들어 모방 양식을 플롯mythos, 성격ethe, 조사lexis, 사상dianoia, 장경opsis, 노래melopoia 6가지로 구분했는데 모방의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는 그의 유명한 기술(오느날의 말로 예술)에 대한 모방론으로 알려졌다.

현실을 직접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서의 미술품을 인정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적 모방은 본래 상태보다 더욱 아름답게 혹은 덜 아름답게 나타낼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서사시와 비극, 또한 희극, 주신의 찬가(열광적인) 시, 그리고 대부분의 플룻연주와 수금연주 이 모든 걸 하나로 봤을 때 모방의 양식들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들은 세 가지 방법에서 상호 다른데
그것들의 상이한 매체들에 의해, 그것들이 모방하는 상이한 오브제들에 의해, 그것들의 모방의 방법에서 다르다.

플라톤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과 미 속에서 하나의 실재가 아니라 하나의 과정, 즉 예술 창조의 능력에 주목했다.
이는 대단히 중요한 관점으로 그의 제자 알렉산더 대왕은 스승을 통해 예술을 총체적으로 볼줄 알게 되었고, 트로이와 바빌론, 페르세폴리스를 예술적이고 상징적인 연관 속에서 이해하며 동시에 자신의 정치적 목적의 수립과도 연결시켜 역사의식을 한층 높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 Poietica>에서 이념의 모방은 대상이 그렇게 될 수 있는 상태 및 마땅히 그래야만 하는 상태를 나타낼 수 있으며, 스스로 보편적, 전형적, 필연적인 대상들의 특징으로 제한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방은 우선 인간 행위의 모방으로 충실한 복사가 아니라 실재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을 의미했지만 점차 자연의 모방으로 그 개념이 확대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를 선천적 본능과 후천적 모방을 통해 생겨나는 것으로 보았으며, 사고를 '알기theoria', '하기praxis', '만들기poiesis' 세 종류로 구분했다.
시를 좀더 구체적으로 정의하면서 그는 '만들기'의 한 종류를 모방으로 보고 대상들 혹은 사건들을 재현하는 것으로 보았다.
모방론을 이원화하여 시각예술을 색과 드로잉으로 시각적 외양을 모방하는 예술로 분류했으며 시를 시구, 노래, 댄스를 통해 인간 행위를 모방하는 것으로 분류했다.
시를 언어와 멜로디 그리고 리듬을 매개로 하는 것으로, 시각예술을 색과 드로잉을 매개로 하는 것으로 상이한 점을 지적했을 뿐 모방이란 점에서는 둘을 동일하게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예술의 기능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는 비극을 찬양하는 가운데 비극의 기능으로 '적합한 즐거움 oikeia hedone'을 꼽았다.
이는 시각예술에도 해당하는 기능이다.
그는 모방을 자연적 현상으로 보았고, 모방을 인식하는 것이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이유로 사람이 즐거움을 아는 것을 발견하기 때문인 것으로 꼽았다.
예술에 대한 플라톤의 회의적인 태도와는 달리 아리스토텔레스가 기본 미적 즐거움을 철학자의 것과 동일한 류의 인식적인 요소에 둔 것은 특기할만 하다.
시에서 느끼는 즐거움은 일반적으로 미에 대한 즐거움으로 시각예술에도 적용된다.
적합한 즐거움을 제공하는 아름다운kalliste 것 혹은 부분들이 순열적으로 배열된 탁월한 것을 생산하는 것이 고대 그리스인의 예술에 대한 이해였음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유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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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어 미메시스는 라틴어로 이미타티오imitatio

 
고대 그리스인에게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의미로서의 예술이란 말이 없었다.
그들은 예술이란 말 대신에 기술이란 말을 사용했으며 이는 사물의 이미지를 모방mimesis하는 숙련된 방법을 뜻했다.
그리스어 미메시스는 라틴어로 이미타티오imitatio인데 어원이 확실하지 않다.
박카스 숭배의식 및 신비와 더불어 비롯했다는 설이 유력하며 이를 뒷받침하듯 모방의 의미로서의 미메시스는 사제가 행하는 숭배의식 무용, 음악, 노래 등을 가리켰다.
이 말은 기원전 5세기경 외면세계의 재생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데모크리토스Democritus(기원전 460-370)는 예술이 자연을 모방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은 가장 중요한 기능을 동물에게서 배운다.
예컨대 거미로부터 천을 짜는 법을, 백조와 밤꾀꼬리로부터는 모방의 방식에 기초한 노래를 배운다.

그리스인이 어떤 인공물이 아름답다고 판단하는 것은 그 인공물이 실재를 완벽하게 모방했거나 혹은 만족할 만큼 모방했음을 뜻했다.
어떤 인공물을 보고 경이롭다거나 훌륭하다고 감탄할 때 이는 그리스인에게 완벽하게 모방했다는 뜻과 같으므로 그러한 맥락에서 미적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사람이 제작한 생산품을 각기의 원형이나 형상을 모방한 것으로 간주했으므로 플라톤Plato(기원전 428-348)이 회화, 극시, 노래를 모방으로 간주한 것은 당연해보인다.

중세 격언에 "아름다운 것과 완전한 것은 동일하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리스인의 미메시스 개념이 중세에까지 이어졌음을 알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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