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시惠施의 사상은 무엇입니까?

 

 

전국시대戰國時代 송宋나라의 사상가 혜시惠施(기원전 370?~309?)는 명가名家에 속하는 학자로서 장자莊子와 동시대의 사람이고, 조趙나라 사람으로 이견백파離堅白派의 지도자 공손룡公孫龍(기원전 325-250)보다는 조금 앞선 시대의 사람입니다. 양梁나라의 혜왕惠王, 양왕襄王을 섬기어 재상이 되었으나, 독자적인 정책을 가지고 군주 사이를 유세遊說하며, 돌아다닌 외교가外交家를 통틀어 일컫는 종횡가縱橫家로 위魏나라의 모사 장의張儀(?-기원전 310)에게 쫓겨 초楚나라로 갔다가 후에 고향으로 돌아와서 생애를 마쳤습니다. 박학한 사람으로 알려졌으며, 그의 저서는 수레로 다섯이나 되었다고 하나 현재까지 전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의 주장은 <장자莊子> ‘천하天下’편에서 찾아볼 수 있을 뿐이며, 명가 중 궤변이 가장 뛰어났다고 하나 형식과 현실과의 관계를 명확하게 하고 치세治世의 이상상理想像을 설파한 데에 지나지 않습니다.

전국시대의 유명한 논변가 혜시는 일찍이 전국시대의 칠웅七雄 가운데 하나인 위魏나라로 가서 재상 백규白圭와 논변을 벌였고, 나중에 양梁나라의 혜왕惠王(기원전 369-119 재위)의 재상이 되어 여섯 나라六雄, 즉 한韓나라, 위魏나라, 조趙나라, 연燕나라, 제齊나라, 초楚나라가 연합하여 강대국 진秦에 대항하는 합종合縱을 주장하다가 장의張儀의 합종과는 반대가 되는, 즉 여섯 나라가 각각 진나라와 손잡는 것이지만 실은 진나라에 복종하는 연형連衡 주장이 득세함에 따라 위나라에서 쫓겨나 남방의 초楚나라로 갔습니다. 거기서 북방의 송宋나라로 되돌아오면서 장자莊子와 교류하게 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혜시는 몇 년 뒤 송나라에서 위나라로 환국했으며, 위나라를 위해 다시 초나라에 유세 갔다가, 그곳에서 황료黃繚를 만나 그를 위해 천지자연의 이치에 대하여 달변을 토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혜시의 저작은 한나라 초기에 이미 일실되었으며, 후한後漢시대의 역사가 반고班固가 저술한 기전체紀傳體의 역사서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는 단지 ‘혜자惠子’ 한 편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적事跡에 관한 것들이 <장자>, <순자>, <한비자>, <전국책>, <여씨춘추> 등에 나타나 있습니다.

<장자莊子> ‘천하天下’편에 나타난 혜시의 사상은 장자의 사상과 유사한데, 만물의 본질적 차이를 부정하고 천지일체天地一體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장자가 당대의 명변론자들을 같음과 다름을 하나로 합해 생각하는 합동이合同異와 명분과 실질을 나누어서 본질을 파악하려는 별동이別同異로 구분했는데, 혜시의 주장은 합동이의 대표이고 공손룡은 별동이의 대표였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은 안이 없다” “산과 연못은 평평하다” 등 사물을 뛰어넘는 열 가지 일에 대한 혜시의 주장은 사물을 보는 상대적 관점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그는 일체의 존엄을 부정하는 거존去尊을 말하고, 전략적 세력 균형을 통한 평화 공존과 전쟁 중지를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거존은 지존에 대한 부정으로 비쳐져 왕권 옹호론자들의 비판 대상이 되었고, 전쟁 중지론은 통일을 향한 사회 추세에 반하는 것으로 오해받았습니다. 공손룡은 혜시의 다른 것 가운데서 같은 것을 구하는 일면을 지양하고, 전적으로 다름만 구했습니다. 이 점은 그의 백마비마白馬非馬 주장에 잘 드러나 있는데, 그는 “말馬이란 형태를 명명한 바이다. 희다白는 것은 색깔을 명명한 바이다. 색깔을 명명한 것은 형태를 명명함이 아니다. 그래서 흰 말은 말이 아니다”라고 <공손룡자公孫龍子> ‘백마론白馬論’편에서 주장했습니다. 논리와 실재의 괴리를 반영하여 실재하지 않은 말이란 개념의 장애를 뛰어넘어 백마라는 실재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딱딱한 흰 돌이란 있을 수 없고, 딱딱한 돌과 흰 돌은 분리되어 이해해야 한다는 이견백離堅白 논의도 같은 맥락에서 명실을 바로잡아 천하를 바로잡으려는 시도였습니다. 혜시가 사물의 상대적 일면성을 과장하여 사물의 자기규정성을 부정하는 논변을 편데 반해 공손룡은 개개 사물의 구체성에만 주목하여 상호 연결될 수 없는 개념적 고립주의의 논변을 편 것입니다.

공손룡은 조趙나라 평원군平原君의 문객으로 무장해제론을 주장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현존하는 공손룡의 저작으로는 <공손룡자> 한 권이 있습니다. 당唐나라 때까지는 <공손룡자>가 모두 14편으로 전해져 왔으나, 북송시대에 8편이 산실되어 6편 한 권만 전해옵니다.

<장자> ‘천하’편에 나타난 혜시의 열 가지 명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지극히 큰 것은 바깥이 없으니 태일太一이라 한다. 지극히 작은 것은 안이 없으니 소일小一이라 한다.

2. 두께가 없으면 쌓을 수 없어도 그 크기는 천 리까지 갈 수 있다.

3. 하늘은 땅보다 낮고 산은 못과 같이 평평하다.

4. 태양은 정중의 위치에 서자마자 기울기 시작하고 만물은 태어나자마자 죽기 시작한다.

5. 대동大同과 소동小同은 다르니 이것이 소동이小同異라 한다. 사물은 완전히 같게도 볼 수 있고 완전히 다르게도 볼 수 있으니, 이것을 대동이大同異라 한다.

6. 남방은 끝이 없지만 끝이 있다.

7. 오늘 월나라를 떠났지만 어제 도착하였다.

8. 둥근 고리는 풀 수가 있다.

9. 나는 천하의 중앙이 연나라 북쪽, 월나라 남쪽임을 안다.

10. 모든 사물을 사랑하면 천지간의 모든 것은 한 몸이다.

<장자> ‘외물外物’편에는 혜시와 장자의 대화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혜시가 장자에게 말했다.

“그대의 말은 무용無用하네.”

장자가 말했다.

“무용은 안 뒤에야 용用을 말할 수 있네. 대지大地란 참으로 광대한 것이지만 사람에게 소용되는 것은 발을 수용할 만한 땅뿐 아닌가! 그렇다면, 발 옆으로 땅을 파내려가 황천黃泉에 이르기까지 이른다면 그 사람은 아직 유용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 하겠나?”

혜시가 말했다.

“무용하네.”

장자가 말했다.

“그렇다면 무용이 유용됨은 또한 자명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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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 운행의 이치에 순종한 사람들

 

 

『황제내경皇帝內經』에서는 사람의 경지에 차이가 있음을 논한다. 상고시대上古時代에는 진인眞人이 있었고, 중고시대에는 지인이 있었으며, 그 후에는 성인聖人, 현인賢人이 있었는데, 이들 모두 천지운행의 도리道理에 순종해 무병장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중에서 진인이란 양생養生을 가장 잘 이해한 사람들이다. 진인의 양생법은 천지음양天地陰陽에 동화同化되는 것이었다. 자연의 정기를 호흡해 하나로 했다. 그리하여 스스로 정신을 지키고 몸이 하나가 되어 수명이 천지와 마찬가지로 길어졌다.

한편, 지인至人은 도덕이 몹시 고상한 사람으로 음양과 사시四時의 변화에 긴밀하게 조화를 이루었고, 세속을 떠나려는 마음이 있어 속인俗人과 함께하지 않고 세속과 혼동하지 않았다. 지인은 정情을 쌓아 정신을 온전히 하고 천지天地 사이를 두루 다니며 여덟 가지에 통달하여 수명을 늘리고 건강할 수 있었다.

성인聖人은 천지와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고 팔풍八風의 이치를 쫓아 근본을 거스르는 일을 하지 않았으며 세속의 기호와 욕망을 담담하게 보고 화火를 내지 않았다. 행동行動은 세속世俗의 이치를 벗어나지 않지만, 완전히 세속과 같은 것도 아니어서 비바람이나 추위에 쉽게 손상損傷되지 않았다. 또 과로하지 않으며, 집착과 욕망이 적어 생각이 가지런하고 편안하며 즐거웠다. 그래서 저절로 공을 얻고 형체가 피폐해지지 않았으며 정신이 산만해지지 않았다. 이런 사람은 백세百歲까지 살 수 있다.

현인賢人 역시 대단했다. 현인은 천지를 본받고 자연의 운행법칙을 알아 음양에 거역하거나 따름을 이해하며 생장수장生長收藏하는 사시 양생의 도를 알았다. 그래서 상고시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도道와 함께 할 수 있었으며, 수명을 더해 줄곧 하늘에서 정定한 수명까지 살 수 있었다.

천지운행의 이치에 순종할 줄 알면서 음양, 한열寒熱을 적당히 맞추어 어그러지지 않으면 천지의 특성에 동화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앞에서 언급한 진인, 지인, 성인, 현인과 마찬가지로 무병장수無病長壽에 이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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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는 신에서 나온다聲音出於腎

 

 

심心은 목소리를 주관하고 폐肺는 목소리의 문이며 신腎은 목소리의 근원이다. 풍風, 한寒, 서暑, 습濕, 기氣, 혈血, 담痰, 열熱 등 사기邪氣가 심폐心肺에 침입하면 상완上脘(위胃의 위쪽 입구인 분문부賁門部에 해당하는 신체부위)에 병이 생기는데 증상에 따라 치료하여야 한다. 사기를 없애면 목소리가 나온다. 신이 허해서 병이 생기게 되면 받아들인 모든 기를 제자리로 돌려보내지 못해 기운이 치밀어 오르게 된다. 따라서 기침이 나고 담이 뭉치며 혹은 숨차거나 가슴이 벅차고 가슴과 배, 온몸의 뼈가 다 켕기게 된다. 기침이 심하면 기운이 더 부족해져서 소리가 더 작아진다.

어느 어린이가 토하고 설사를 하자 과루탕瓜蔞湯을 썼는데 나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 어린이가 또 대소변을 보지 못하게 되자 다른 의사가 약으로 설사시켰는데 몸이 차지고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되었다. 이에 익황산과 사군자환을 쓰자 비로소 몸이 더워지고 음식을 먹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그 어린이가 말을 못하게 되자 이것을 성질이 서늘한 약으로 오줌을 누게 하여 비脾와 신腎이 모두 허해진 것으로 진단하고 비는 실해졌지만 아직 신이 허한 상태로 보고 육미지황원六味地黃元을 한 달 동안 먹게 했더나 나았다는 기록이 있다.

신腎이 허해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데에는 인삼평보탕人蔘平補湯을 처방하고 중병을 앓은 뒤에 말을 못하는 데에는 신기환을 처방해야 한다.

인삼평보탕은 신腎이 허虛하여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을 치료한다. 인삼, 궁궁이(천궁), 당귀, 찐지황(숙지황), 집함박꽃뿌리(백작약), 흰솔풍령(백복령) , 새삼씨(토사자), 오미자, 두충, 파극, 귤홍, 반하국 각각 2.4g, 쇠무릎, 흰삽주(백출) , 파고지, 호로파, 익지인, 감초(닦은 것) 각각 1.2g, 석창포 0.8g. 위의 것들을 썰어서 1첩으로 하여 생강 3쪽, 대추 2알과 함께 물에 달인다. 새벽(4-5시)에 신기腎氣가 열릴 때에 먹는데 기침을 하지 말고 가래침도 뱉지 말며 말도 하지 말고 있다가 조용히 먹어야 한다[직지].『회춘』에 있는 자신탕滋腎湯이 이 약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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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우의 근황

 

 

얼마 전부터 한의학에 관심이 생겨 혈자리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특히 사암침 혹은 오행침五行針을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우리 몸에 361개의 혈자리가 있어 하나하나의 치료 효과에 관한 자료를 정리하면서 66개의 혈자리로 대부분의 치료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사암침 혹은 오행침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사암침은 말 그대로 선조 때 허준과 동시대인 사암이 개발한 침법입니다. 동굴에서 살았다고 해서 사암으로 불릴 뿐 전설로만 전해지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오행법은 명나라의 고무高武가『침구취영針灸聚英』에서 상생相生관계에 의거하여 자경내自經內 오수혈五兪穴을 오행五行의 속성에 따라 취혈하는 자경보사법自經補瀉法을 최초로 논술한 것이 그 근원입니다. 오수혈은 경맥經脈이 흐르는 원리原理에서 근거根據한 것입니다. 사지의 주슬관절肘膝關節(팔꿈치와 무릎 관절 아래에 있는 경혈) 이하의 66개 수혈을 정定하여 정井, 형滎, 수兪, 경經, 합合의 명칭을 붙이고 이를 다시 오수혈의 주치 및 오행생극五行生剋의 원리에 의거하여 순서에 따른 배혈법입니다. 오수혈에 흐르는 기의 흐름이 오장육부五臟六腑로 퍼져 기운을 공급하고 조절할 수 있습니다.

가장 어려운 부분은 보사법補瀉法입니다. 아주 많은 한의사들이 보사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가운데 침 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보사법은 단순히 혈의 흐름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병증과도 관련이 있고, 사람의 선천적인 체질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일기와도 관련이 있고 태어난 시와도 관련이 있어 어려운 것입니다. 동일한 병증이라도 실과 허에서 보사법이 다시금 달라지기 때문에 가장 어렵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선 아는 데 까지만 적용하고 있으며, 앞으로 공부해야 할 부분입니다.

보사법은 지압에도 적용됩니다. 예를 들면 상대방의 배를 문질러줄 때 소화가 잘 안 되거나 변비가 있거나 하여 위를 보할 때에는 시계방향으로 물질러야 하지만, 실하여 사해야 할 경우에는 시계방향의 반대방향으로 문질러야 합니다. 그 중간일 때에는 한 번은 시계방향 한 번은 시계방향의 반대방향으로 문질러야 합니다.

처음 침을 접한 것은 사암침으로 치료하는 분을 통해서였는데, 침에 관한 자료가 <황제내경>을 비롯하여 오랫동안 너무 많고, 임상경험이나 치료방법에 관한 신뢰할 만한 자료가 넘쳐나서 누구라도 독학으로 침을 배울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정확한 혈자리는 경희대학 한의과에서 사용하는 교재가 참고할 만했습니다.

오수혈에서 중요한 점은 정혈井穴, 형혈滎穴, 수혈輸穴, 경혈經穴, 합혈合穴 다섯 가지에 대한 이해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물이 흘러 모이는 것에 오수혈을 비유했는데, 손가락 끝에 있는 정혈은 물의 수원水源으로, 수원에서 출발한 가는 실개천들이 합쳐서 형혈滎穴로, 물줄기가 점점 커지고 깊어지면 수혈輸穴로, 물줄기가 모이고 또 모여 하류를 이루면 경經으로, 마침내 강물이 모이고 모여서 바다로 들어갈 때 합혈合穴이라 칭했습니다.

진秦나라의 명의 편작扁鵲이 지은「난경難經ㆍ육십팔난六十八難」에 “정혈井穴은 심하心下의 창만을 치료하고, 형혈滎穴은 전신의 열병熱病을 치료하며, 수혈腧穴은 몸이 무겁고 관절關節이 아픈 것을 치료하고, 경혈經穴은 기천, 해수, 오한, 발열을 치료하며, 합혈合穴은 정기精氣가 상열하고 진액이 빠져나가는 것을 치료한다”고 했는데, 반드시 기억해두어야 할 지식입니다. 이는 오수혈의 주병主病에 대한 특징을 명확하게 나타내주는 것으로 임상臨床에서 병의 주증主症에 근거하여 적합한 오수혈을 선택하여 취取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지난 두 주 동안 집사람에게 사암침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근육위축증 혹은 무력증에 가장 무난한 혈자리 곡지혈, 합곡혈, 족삼리혈, 삼음교혈, 겸천혈, 상구혈, 통리혈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합곡혈에 태충혈을 합하면 사관혈이 됩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사관혈 네 곳에 지난 두 주 동안 침을 놓으니, 본인이 어느 정도 득기得氣를 하고 있습니다. 오후에 이따금 족삼리혈과 삼음교혈에 침을 놓습니다. 이상은 약방의 감초와도 같은 혈들로 거의 누구에게나 좋은 혈자리들입니다.

운동은 도인술을 병행합니다. 도가에서 전래된 운동입니다. 물론 열심히 하고 있지 않아 자신 있게 말할 단계는 아닙니다. 하지만 몸소 도인술을 실험한 결과 매우 좋은 운동임을 알았습니다.

사암침 혹은 오행침은 대부분의 경우 치료보다는 예방에 좋습니다. 치료인 경우에는 오랜 시간을 요하므로 긴급한 병에는 서양의학에 의존해야 합니다. 침의 경우 식사 후에는 금하는 것이 좋고, 음기가 많은 비가 오거나 추운 날에도 금하는 것이 좋으며, 몸의 컨디션이 나쁠 때에는 금해야 합니다. 가장 위험한 경우는 지식도 없이 허약한 사람에게 사법을 쓰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는 오히려 그 사람을 더욱 나쁜 상황으로 몰아가게 됩니다. 잎서 언급한 대로 침에 관한 지식은 매우 넉넉합니다. 침 사고에 관한 지식도 매우 넉넉합니다. 얼마든지 독학으로 알 수 있습니다. 충분히 지식을 섭렵하면 침으로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이상이 근황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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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 이민자와 유대인의 동질성

 

 

 

 

“그릇된 비교” 라는 제목으로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지에 기고한 글에서 나는 무슬림 이민자와 유대인의 동질성을 피력했다. 무슬림 이민자인 나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오늘날 유럽의 무슬림은 사회적 소외감과 차별을 감내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제2의 유대인” 이 아니다. 현재 민주적인 유럽에서 살고 있으며 홀로코스트를 당할 일은 전혀 없다. 이슬람세계를 통틀어, 이슬람주의자들에게 시민권과 자유가 유럽보다 더 보장된 곳은 없다. 반유대주의와 반이슬람주의를 잘못 비교한 경우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유럽 이슬람주의자들은 유대인을 상대로 제2의 홀로코스트가 벌어질 거라고 심심치 않게 말하는데, 무슬림 인본주의자로서 나는 유대인을 멸시하는 그들이 정치적 목표를 위해 홀로코스트의 쓰라린 시련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무슬림을 부당하게 대우한 적도 있긴 하지만 유럽은 민주주의가 정립된 곳으로, 이슬람세계의 박해를 피해 이민한 이슬람주의자들에게 정치망명을 허용하고 복지기금을 지급해왔다. 무슬림에게는 그들의 국가보다는 유럽이 더 안전하며, 이슬람주의자들이야말로 시민권을 두고 엄격한 법률을 적용하는 유럽의 최대 수혜자다.
무슬림을 겨냥한 홀로코스트가 정말 유럽에서 벌어진다면 왜 유럽에 몰려들고 망명을 신청하겠는가? 통계에 따르면, 1950년부터 2010년까지 서유럽의 무슬림 소수집단은 백만 명에서2 ,300만 명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유럽의 무슬림 소수집단을 이용하려는 이슬람주의자들의 움직임을 감안해본다면, 반유대주의는 이슬람교의 유입으로 유럽에 다시 확산되고 있는 셈이다. 그들은 통합을 저해하고, 이슬람혐오증이라는 돌을 던져 비방을 모면해왔다. 2000년 에센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반유대주의의 폐단(사실)은
축소되고 이슬람혐오증은(사실이긴 하나 너무 부각시켰다) 확대되고 말았다. 이슬람주의식 선전에서 두 사상은 동일하다. 거듭 언급하지만, 이슬람주의자들이 장악한 국가를 제외하면, 그들에게 시민권과 자유가 유럽보다 더 보장된 곳은 없다. 다문화주의라는 편견에 사로잡힌 이데올로기 환경은 유럽에서 이념 전쟁의 성역을 찾은 이슬람주의자들에게 득이 되는 침묵을 강요하고 있으니 말이다.
소수집단을 이룬 이슬람주의자들에게까지 확산된 다문화적인 관용은 유럽계 유대인뿐 아니라, 고국의 이슬람교를 떠나려 했으나 마침내 유럽에서 이를 다시 맞닥뜨리게 된 진보주의 무슬림에게도 마찰을 일으켰다. 유럽의 반유대주의 이데올로기의 요소 중에는 나치당이 자부심을 느꼈던 민중 독트린이 있는데, 본래 이슬람교의 움마사상에는 그와 비슷한 개념이 없다. 무슬림공동체(움마)는 개종하면 모두가 합류할 수 있는 매우 포괄적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나는 11장에서 이슬람주의가 무슬림의 움마를 정화와 배타주의를 지향하는 나치당의 민중과 흡사한 개념으로 바꿔 이슬람교의 전통을 꾸며냈다는 점을 입증했다. 민중 독트린의 주적은 유대인이다. 앞서 “두려움이라는 민족성” 을 언급했는데, 이는 무슬림과 유럽인에게서 벌어지고 있는 상호 민족화 과정을 기술하기 위해 지어낸 말이다. 이슬람주의의 제한적인 움마가 가지는 구조화된 민족성은 유럽의 제한적인 민족성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현지 유대인들이 타격을 받을 테니 우려할 만한 일이다. 이 같은 추세를 눈감아주는 것은 유럽에서 반유대주의를 비호하는 것과 같다. 반유대주의는 인본주의와는 상극을 이룬다. 그러나 이슬람교는 일찍이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공생” 을 비롯한 인본주의 전통을 보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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