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 이민자와 유대인의 동질성

“그릇된 비교” 라는 제목으로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지에 기고한 글에서 나는 무슬림 이민자와 유대인의 동질성을 피력했다. 무슬림 이민자인 나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오늘날 유럽의 무슬림은 사회적 소외감과 차별을 감내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제2의 유대인” 이 아니다. 현재 민주적인 유럽에서 살고 있으며 홀로코스트를 당할 일은 전혀 없다. 이슬람세계를 통틀어, 이슬람주의자들에게 시민권과 자유가 유럽보다 더 보장된 곳은 없다. 반유대주의와 반이슬람주의를 잘못 비교한 경우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유럽 이슬람주의자들은 유대인을 상대로 제2의 홀로코스트가 벌어질 거라고 심심치 않게 말하는데, 무슬림 인본주의자로서 나는 유대인을 멸시하는 그들이 정치적 목표를 위해 홀로코스트의 쓰라린 시련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무슬림을 부당하게 대우한 적도 있긴 하지만 유럽은 민주주의가 정립된 곳으로, 이슬람세계의 박해를 피해 이민한 이슬람주의자들에게 정치망명을 허용하고 복지기금을 지급해왔다. 무슬림에게는 그들의 국가보다는 유럽이 더 안전하며, 이슬람주의자들이야말로 시민권을 두고 엄격한 법률을 적용하는 유럽의 최대 수혜자다.
무슬림을 겨냥한 홀로코스트가 정말 유럽에서 벌어진다면 왜 유럽에 몰려들고 망명을 신청하겠는가? 통계에 따르면, 1950년부터 2010년까지 서유럽의 무슬림 소수집단은 백만 명에서2 ,300만 명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유럽의 무슬림 소수집단을 이용하려는 이슬람주의자들의 움직임을 감안해본다면, 반유대주의는 이슬람교의 유입으로 유럽에 다시 확산되고 있는 셈이다. 그들은 통합을 저해하고, 이슬람혐오증이라는 돌을 던져 비방을 모면해왔다. 2000년 에센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반유대주의의 폐단(사실)은
축소되고 이슬람혐오증은(사실이긴 하나 너무 부각시켰다) 확대되고 말았다. 이슬람주의식 선전에서 두 사상은 동일하다. 거듭 언급하지만, 이슬람주의자들이 장악한 국가를 제외하면, 그들에게 시민권과 자유가 유럽보다 더 보장된 곳은 없다. 다문화주의라는 편견에 사로잡힌 이데올로기 환경은 유럽에서 이념 전쟁의 성역을 찾은 이슬람주의자들에게 득이 되는 침묵을 강요하고 있으니 말이다.
소수집단을 이룬 이슬람주의자들에게까지 확산된 다문화적인 관용은 유럽계 유대인뿐 아니라, 고국의 이슬람교를 떠나려 했으나 마침내 유럽에서 이를 다시 맞닥뜨리게 된 진보주의 무슬림에게도 마찰을 일으켰다. 유럽의 반유대주의 이데올로기의 요소 중에는 나치당이 자부심을 느꼈던 민중 독트린이 있는데, 본래 이슬람교의 움마사상에는 그와 비슷한 개념이 없다. 무슬림공동체(움마)는 개종하면 모두가 합류할 수 있는 매우 포괄적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나는 11장에서 이슬람주의가 무슬림의 움마를 정화와 배타주의를 지향하는 나치당의 민중과 흡사한 개념으로 바꿔 이슬람교의 전통을 꾸며냈다는 점을 입증했다. 민중 독트린의 주적은 유대인이다. 앞서 “두려움이라는 민족성” 을 언급했는데, 이는 무슬림과 유럽인에게서 벌어지고 있는 상호 민족화 과정을 기술하기 위해 지어낸 말이다. 이슬람주의의 제한적인 움마가 가지는 구조화된 민족성은 유럽의 제한적인 민족성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현지 유대인들이 타격을 받을 테니 우려할 만한 일이다. 이 같은 추세를 눈감아주는 것은 유럽에서 반유대주의를 비호하는 것과 같다. 반유대주의는 인본주의와는 상극을 이룬다. 그러나 이슬람교는 일찍이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공생” 을 비롯한 인본주의 전통을 보전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