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잠에 빠지게 한 곡지혈曲池穴과 상구혈商丘穴

 

어제는 집사람에게 곡지혈과 상구혈에 침을 놓았습니다.

팔목과 어깨에 힘이 없고 발목과 다리를 아파하므로 곡지혈을 선택한 것입니다.

30분 후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잠을 깊이 잔 것을 좋아했습니다.

 

곡지혈曲池穴은 팔꿈치 외측 보골輔骨과 팔꿈치뼈 사이에 있으며, 수양명대장경手陽明大腸經의 합혈合穴입니다. 수양명대장경은 검지손가락 끝 안쪽 상양혈에서 모인 기氣가 엄지손가락 상연을 따라 합곡혈을 지나고, 곡지를 경유하여 팔 외측 전연을 따라 어깨 위로 올라가는 혈입니다. 곡지혈을 합혈이라고 하는 것은 상양혈商阳穴이 정혈井穴로 혈이 모인 곳이고 형혈, 수혈, 경혈을 지나 곡지혈이 오수혈五輸穴(정井, 형滎, 수輸, 경經, 합合 다섯 가지 수혈)의 마지막 종착지이기 때문입니다.

곡지혈은 대장大腸의 상태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경혈經穴입니다. 대장의 사기邪氣를 제거하고 원활하게 해줍니다. <마단양천성십이혈가馬丹陽天星十二穴>에서는 곡지공수취曲池拱手取라 하여 두 팔을 읍揖하듯이 맞잡고 손가락으로 혈을 찾는다고 했으며, 편풍수불수偏風手不收 만궁개부득挽弓開不得이라 하여 편풍偏風으로 손을 가누지 못하거나 활시위를 당기지 못할 때 쓴다고 했습니다. 활시위를 당길 때 수양명대장경의 근육이 힘을 써야 하는데 이곳에 문제가 있으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수양명대장경에 문제가 발생하면 근육이 늘어져 머리를 빗을 수 없는데 이럴 때 곡지혈을 찌르면 효과가 있습니다.

또한 곡지혈은 소화계통, 순환계통, 내분비계통을 조절하는 작용을 뚜렷하게 나타내주는 혈입니다. 팔뚝이 시큰거리고 아플 때, 겨드랑이가 아플 때 효과가 있습니다. 팔꿈치를 직각으로 구부리고 자침刺鍼합니다.

곡지혈에 부당한 침자수법을 가했을 때 요골신경橈骨神經에 손상이 생기면 갑자기 손목이 아래로 늘어뜨려지는 증상을 나타내는데, 이런 현상을 수완垂腕이라 합니다. 당연히 침을 빼야 합니다.

 

발목 안쪽 복사뼈 중 가장 높은 곳에 손가락을 대고 엄지발가락 쪽으로 조금씩 밀고 내려가면 움푹 파인 함요처陷凹處가 상구혈商丘穴입니다. 발목이 가장 많이 삐는 곳이기도 합니다. 족태음경足太陰經(족태음지근足太陰之筋이라고도 함)의 경혈經穴로 엄지발가락 안쪽 끝에서 모인 기氣가 안쪽 복사뼈를 경유하여 무릎 안쪽의 보골을 향해 달리다가 넓적다리 안쪽을 따라 고관절 부위로 이어지며, 생식기 부위에 그 기氣가 모였다가 배꼽 부위를 지나 가슴에서 퍼집니다.

상구혈만큼 차멀미를 예방해주는 침점은 없습니다. 차를 타기 전에 상구혈에 침을 맞거나 침이 없을 경우 상구혈에 2분 내지 3분 동안 지압해주면 만족할 만한 효과를 가져다줍니다. 발목의 통증에 사용되는 긴요한 침점이며, 다리와 등줄기가 아플 때에도 상구혈을 취하는데, 기氣가 복부를 지나기 때문에 비위를 건전하게 하여 운화기능을 유지함으로 습을 제거하는 데 효과가 있습니다. 비위를 치할 때에는 족삼리足三里를 병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상구혈은 복창腹脹(배가 더부룩하면서 불러 오르는 병증), 복명腹鳴(배가 꾸르륵거리는 소리)이 있으나 변便(똥오줌 변)은 없고 비허脾虛(소화불량으로 몸이 파리해지고, 식욕이 없어지는 병)에 좋고, 족관절足關節 및 주위건부조직周圍軟部組織의 질환疾患, 위염胃炎, 장염腸炎, 소화불량消化不良, 유종乳腫(유방염으로 젖이 곪는 종기) 등에 좋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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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묵가의 사상이란 무엇입니까?

 

 

<장자莊子> ‘천하天下’편에 의하면 묵자墨子 이후 묵가는 여러 유파로 나뉘어졌습니다. 그 중 초나라 사람 고획苦獲, 기치己齒, 등릉자鄧陵子 등은 모두 <묵경墨經>을 연구하여 각파가 서로 변론하면서 자신들이야말로 진정한 묵가墨家라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이들 대부분이 후기 묵가에 속합니다. 후기 묵가의 저작으로 전해지는 <묵경墨經> 상하, <경설經說> 상하, <대취大取>, <소취小取> 이렇게 여섯 편을 <묵변墨辯>이라 합니다. <경설經說>은 <묵경墨經>을 해설한 것이고, <대취大取>와 <소취小取>는 변론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논구한 것으로 모두 묵자 이후의 것으로 추정됩니다. <묵변墨辯>은 공손룡과 동시대이거나 공손룡 이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묵가는 생산기술과 자연과학의 기술을 중시했고, 특히 인식론과 논리학의 문제를 연구함으로써 유가儒家와 나란히 가장 유력한 학파였던 초기 묵가의 종교, 미신적 요소들을 극복했으며, 궤변 학설과의 논쟁을 통해 객관적 인식체계를 확보하려는 상당히 진보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묵가는 명확한 계획 아래 엄격한 규율을 지키며 거자의 인솔 아래 행동하는 사회변혁 실천 집단이었습니다. 주周나라 시대의 각국 군주, 귀족에 예속되어 있던 직능씨족職能氏族이 봉건적 사회체제의 해체과정에서 결속하여 만든 길드적 공인工人집단에 유래합니다. 공인, 농민이 중심이었지만 사대부士大夫도 가세했습니다. 묵가는 유가의 차등적인 사랑에 대해 겸애를 주장했으며, 유가의 인문주의적인 경향에 대해 오직 실용주의적인 관점에서 유가의 허례허식을 배격했습니다.겸애'를 제시한 목적은 혼란의 평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겸애의 기초 위에서 구체적으로 침략전쟁에 반대하는非攻 주장을 펼쳤습니다. 도道를 행하는 자는 반드시 천하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이롭게 됨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남을 해치고 자기를 이롭게 하는 일은 어질지도 의롭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유가가 덕치를 주장했다면 묵가는 권위주의적인 통치를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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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병장수를 위한 질병과 사계절

 

 

한의학은 도가道家 학술 체계의 하나로서 천인합일天人合一을 강조한다. 도가에서는 사람의 몸을 하나의 소우주小宇宙로 본다. 인체의 모든 기혈氣血 순환과 흐름에는 모두 대우주大宇宙와 상호 연결된 통로가 있다. 그래서 자연계에 존재하는 동물과 식물 등 우주의 특성을 빌려 사람의 기氣를 조절하고 침구鍼灸로 사람의 기와 우주의 기를 연계하면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명明대의 뛰어난 의약학자이자 과학자 이시진李時珍은『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 “병을 치료하려면 먼저 그 원인을 살피고 병기를 알아야 한다. 아직 오장五臟이 허虛하지 않고 육부六腑에 문제가 없으며 혈맥血脈이 어지럽지 않고 정신이 산만하지 않은 상태에서 약을 먹으면 반드시 살아난다. 그러나 만약 이 이미 시작이 되었다면 절반쯤 나을 수 있고 병세가 이미 지나가 버렸다면 생명을 보전하기 어렵다”고 했다.

경험과 실천을 중시한 이시진은 일찍이 역대 의약 및 그 밖의 관련 있는 문헌 800여 종을 참고하고 몸소 산에 올라가 약물을 채취하였으며, 민간 속으로 깊이 파고들어가 뭇 백성들에게 가르침을 청했다. 약을 직접 먹어 보고, 임상 관찰 및 관련 있는 실천을 통하여 약물에 대하여 연구·비교·분석하였다. 옛날 본초에 관한 책 가운데에서 약물의 산지·품종·약재 이름 및 치료 작용 방면에 관한 적잖은 잘못을 바로 잡았다. 27년간의 뼈를 깎는 실천을 통하여『본초강목』을 지었는데 명대 이전의 약물학을 총결한 책으로 약물의 분류, 감정, 채집, 포제 등의 내용이 후세 의가들의 표본이 되었다. 책 속에 모두 1892종의 약물을 실었으며 약물학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본초강목』에서 그는『황제내경皇帝內經-소문素問』‘탕액요례湯液醪醴’를 인용해 사람이 하늘의 운행 도리를 따라야만 건강할 수 있다고 했다. 탕액요례란 탕약湯藥과 약술을 가리킨다. 상고上古 시기에는 성인이 만일의 사태를 위해 탕액을 준비만 했을 뿐 실제로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중고中古 시대에는 사람들의 도덕이 조금씩 쇠락하여 사기邪氣가 이르렀고 이때 탕액을 복용하면 만전을 기할 수 있었다.

고대古代에는 병기病氣를 사기邪氣라 불렀다. 이는 풍風, 화火, 서暑, 습濕, 조燥, 한寒 등 바르지 못한 기후변화를 포함하는데, 이것이 사람을 침범해서 사기가 발생하고 사람이 쉽게 병에 걸린다.

중고시기에 병에 걸린 사람은 단지 탕액을 마시기만 해도 나을 수 있었다.『황제내경-소문』‘상고천진론上古天眞論’에 따르면 상고시대에는 사람의 수명壽命이 비교적 길고 백세歲가 넘어도 동작이 민첩했다고 한다. 그러나 중고시기 와 지금의 사람은 오십만 넘어도 동작이 굼떠진다.『황제내경』의 관점은 상고시대 도道를 아는 사람은 천지天地의 운행 원리와 음양의 조화를 알았으며 사람에게 정해진 운명이 있음을 알았다. 일을 함에 있어서 천지의 운행 이치를 거스르지 않고 음양을 따르고 술수에 조화를 이뤘고, 또 행위의 준칙準則 역시 천지자연의 음양의 기氣에 부합했으며 천명天命을 어기지 않았다.

상고시대 사람들은 양생養生했다. 첫째, 음식유절食飮有節, 음식을 먹을 때 절제했다. 둘째, 기거유상起居有常, 기상하고 잠자리에 드는 등 일상생활에 정해진 규칙이 있었다. 셋째, 불망작로不妄作勞,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무리한 일을 하지 않았다. 이러한 방법을 사용해 양생했기 때문에 정신과 형체를 온전히 갖추고 하늘이 준 수명을 누릴 수 있었으며, 백세 이상 살 수 있었다.

그렇다면 오세만 넘어도 동작이 굼떠지는 후대 사람은 어떨까? 첫째, 이주위장以酒爲漿, 술을 음료처럼 마시고, 둘째, 이망위상以妄爲常, 평소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며, 셋째, 취이입방醉以入房, 술에 취해 성적 접촉을 한다. 즉 욕망으로 자신의 정기精氣를 고갈시켜 진기眞氣를 흩어지게 했다. 쾌락에만 힘쓰다가 참다운 인생의 즐거움을 거스르니 자연히 일상생활에 절도가 없고 오세만 되도 동작이 굼떠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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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적 사례: 이슬람주의와 “나치 팔레스타인”

 

 

 

 

지금까지 논의한 차이점— 이를테면,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 전통 이슬람교의 유대인혐오증과 유럽에서 비롯된 대량살상형 반유대주의의 차이—뿐만 아니라, 종교색을 띠지 않는 범아랍 민족주의자들의 반유대주의와 훗날 이슬람주의가 전개한 종교화된 반유대주의의 차이도 추가해볼까 한다.
역사학자 클라우스 미카엘 말만 및 마틴 퀴페르스와 제프리 허프는 각각『나치 팔레스타인』84과 『아랍세계를 향한 나치 선전』85에서 팔레스타인의 예외적인 사례에 주목하라고 역설했다. 이슬람주의는1 928년, 하산 알반나가 무슬림 형제단을 조직하면서 자리를 잡았으나 1967년, 아랍 민족주의자들이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패한 후에 비로소 중동지역에서 번성했다. 그중에서도 팔레스타인이 1순위로 꼽힌다. 이슬람주의 사상은 나치 독일의 영향으로 1930~40년대 당시 정치계에 진입했으며, 바로 여기서 민족주의와 이슬람주의의 융합이 이루어진 것이다. (팔레스타인의 민족주의는 당시 범아랍민족주의에 속해 있었다) 예루살렘의 이슬람교 법전 전문가(무프티)인 아민 알후세이니의 사상은 알반나에게서 차용한 것이다. 허프는 두 인물이 서로 가까운 사이인 데다, 유대인을 상대로 한 반인륜 범죄와 히틀러에 호감을 느꼈다고 밝혔다.
내가 정의하는 알후세이니는 이슬람주의자가 아니다. 이런 점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성직자 겸 종교 권위자이나 그보다는 팔레스타인민족주의자에 더 가깝다. 그 또한 히틀러를 존경했고, 팔레스타인을 겨냥했다고 믿는 “유대인의 음모론” 을 뒷받침하기 위해 『시온주의 의정서』를 근거로 들기도 했다. 알후세이니는 무슬림 형제단의 지원을 받았다. 허프는 알반나의 친나치 성향의 증거를 문헌에서 찾아내어 그가 “나치와 파시스트 조직을 연구, 이를 본보기로 삼아 특수 훈련을 받은 듬직한 인재를 모아 조직을 창설했다” 는 사실을 지적했다. 무슬림 형제단은 이집트뿐 아니라, 이슬람주의자들이 “나블러스와 야파에서… 지부를 연” 팔레스타인에서도 왕성하게 활약했다. 또한 “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아민 알후세이니와 하산 알반나는 이스라엘의 출현을 나치당이 전시에 했던 예언을 입증하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 무슬림 형제단과 하산 알반나, 사이드 쿠틉은… 매일 베를린 라디오에서 들리는 음모론이 계속 이어질 것을 시사했다” 고 그는 덧붙였다.
알후세이니는 전쟁 당시 대부분 베를린에서 히틀러를 보좌했고, 그 후 독일을 빠져나왔다가 전쟁 범죄에 연루된 혐의로 프랑스에서 검거되었다. 그가 석방되도록 아랍 무슬림 압력단체들 가운데 하나인 무슬림 형제단이 도왔다. 다음은 알후세이니가 풀려난 뒤 알반나가 발표한 성명이다.


무슬림 형제단은… 무프티(알후세이니)가 아랍국가라면 어디에서든 환영받는다는 걸 밝히고 싶소. … 마침내 사자가 자유를 얻었구려. … 오, 아민! 당신은 위대하고도 단호하며 훌륭한 사람이로소이다. …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패전해도… 시온주의와 싸운 영웅인… 당신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구려.

이를 두고 허프는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하산 알반나의 성명을 주의 깊게 읽어보면 알후세이니도 자신을 비롯하여, 히틀러와 독일이 벌였던 전쟁을 지금도 치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일과 히틀러의 편에 선다면… 전쟁 당시 알후세이니가 펼친 활약상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더 끔찍한 사실은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을 대상으로 제2의 홀로코스트를 감행하려는 계획이 있었다는 말만과 퀴페르스의 주장이었다. 이에는 나치와 아랍계 무슬림 동맹이 공조했을 공산이 크다. 후세이니가 발칸반도에 무슬림판 무장 친위대를 조직했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두 사학자는 동유럽 나치의 중대급 기동대의 경험을 팔레스타인에서 시도하려는 계획을 발견한 것이다. 동유럽에서는 나치와 손잡은 해외 부대가 독일 나치를 대신하여 유대인들을 살해하기도 했다. 저자는 “동유럽의 나치 특수임무부대의 사례에 따르면, 독일군이 자행한 대량 살상은… 현지 협력부대의 지원을 받았으며 최소한의 지령만으로도 자연스레 진행되었다” 고 밝혔다. 바로 그것이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질지 모를 본보기가 된 것이다. 조직이 잘 정비된 “많은 아랍인들은 중동에서 독일의 공범이 될 각오가 되어 있었다. … 라우프가 이끄는 기동대의 주요 임무는 팔레스타인에서… 공모자들의 도움을 받아… 홀로코스트를 재현하는 것이다.” 유대인을 멸절시키려는 모략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의 말마따나— “마찰” 이 없었다면 순조롭게 진행되었을 것이다. 이슬람주의자가 가담한 홀로코스트 계획은 엘 알라메인١٣과 동부전선에서 독일이 패배한 후에 저지되었어야 했다. 결국, "1941년, 아랍세계를 둘러싼, 영국의 입장에 맞서 히틀러가 세운 계획은 모두 폐기되어야 마땅했다”
반면, 독일의 주류 학자들은 팔레스타인의 지하디스트 이슬람주의자들— 이를테면, 알후세이니와 공조했던 반시온주의 테러리스트 이즈 알딘알카삼 등— 에 공감했다. 말만과 퀴페르스는 “2001년 9・11테러 사태 후에도 그런 테러리스트가 자신의 신앙과 팔레스타인 명분의 증인으로서 서방세계의 학술문헌에 순교자로 등재될 수 있다” 는 데의아해했다. 이 같은 발언은 구드룬 크라머르의 저작에 기록된 알카삼의 망언을 인용한 것이다. 하마스가 이스라엘 민간인을 향해 발사할 미사일을 카삼 미사일로 지은 것
도 주목해볼 만하다. 두 학자는 주류 학자를 반유대주의라는 이유로 비난하지는 않지만, 다른 문화의 주요 학문을 제한하려는 학자들은 존중이라는 덕목을 내세워 문제를 제기한다. 이는 “사상을 검열하는 작태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 이다. 그들은 “종교나 경제성장 혹은 성별을 넘어…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관을 수용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 인간 조건의 보편성은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책임이기 때문이다.”
두 저자는 서양의 제삼세계주의에서 “맹목과 심취” 를 감지해냈다. 크라머르를 비롯한 학자들은 “이를테면… 반시온주의와 반유대주의처럼 편견이 깔린 이데올로기” 를 억압된 불만의 표현이라며 변호했다. 말만과 퀴페르스는 “계몽적인 사고와 야만주의로 가는 대안적인 길의 차이가” 사라졌음을 탄식했다. 그러므로 “반인륜범죄를 정확히 인식하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분별력을 지켜야 한다” 는 것이 그들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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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신성함’에 관한 실제 논의

 

 

 

 

 

‘생명의 신성함’을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논의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이 장의 첫머리에서 우리는 낙태, 안락사, 동물의 권리 같은 몇 가지 문제가 되는 상황들을 간략히 살펴본 바 있다. 각각의 문제 영역에는 다른 고찰이 필요하다. 이 절에서는 그 가운데 몇 가지를 살펴보려 한다. 그렇지만 이 모든 고찰을 통해, 과연 생명은 어느 시점에서 우리가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는 나름의 가치를 지니는가 하는 핵심적인 의문을 살펴볼 것이다. 지금까지 (인간의) 생명이 특별한 종류의 가치를 지님을 살펴보았다. 인간의 생명에 이렇듯 특별한 종류의 가치가 있다고 하는 까닭이 무엇일까? 한편으로 인간에게 의식이 있어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은 풍부한 의미가 있는 중요한 일들을 폭넓게 수행하는 능력과 더불어 자신의 삶을 제어하면서 이끌어가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철학자들은 흔히 즐거움과 괴로움을 느끼는 능력이 특히 어떤 사물이 좋은지 나쁜지를 깨닫게 해주므로 기본적으로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식물에 물을 주거나 김매지 않는 경우처럼, 나쁜 것을 나쁘다고 여길 줄 모르는 존재에게조차 나쁜 일은 있을 수 있다고 말할 때가 더러 있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이런 일이 나쁜 것일지라도, 그것이 나쁜 일인지를 모르는 탓에 결과적으로는 그리 나쁜 일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미안해할 까닭이 전혀 없다. 그러나 의식이 있는 존재가 괴로움을 당하면 그에 마음을 써야 하겠기에 그것을 나쁜 일로 여긴다. 동물 대부분은 중추신경계가 있어 괴로움을 느낄 수 있다. 그러므로 적어도 괴로움이나 즐거움을 느끼는 동물의 능력을 참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생명의 신성함을 내세우는 논자들에 따르면, 비록 괴로움과 즐거움을 느끼는 동물의 능력이 도덕적인 고려가 필요할 만큼 가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생명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괴로움과 즐거움을 느끼는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그 이상의 능력이다. 인간은 괴로움과 즐거움을 느낄 뿐 아니라 의사소통을 하고, 지능을 써서 문제를 풀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세상과 자신의 처지를 자성하여 사색하고, 큰 규모의 행동계획을 짜며, 자신의 행동이 정당한지에 의문을 품고, 그 밖에도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는 능력을 두루 갖추었다. 그러기에 앞서 지적했듯이, 생명의 신성함을 내세우는 논자들은 인간의 생명에는 그 어느 동물과도 비교할 수 없는 풍부함과 의미가 깃들어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 생명의 풍부함과 의미는 다른 동물들의 생명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으므로 인간은 동물과 달리 자신의 행동을 제어하고 길을 잡아갈 수 있다.
이 같은 논리를 바탕으로 이제 한 사람의 철학자가, 예를 들어, 인간이 육식하는 행위를 어떤 방식으로 정당화하는지 살펴보자. 가장 단순한 논리는 다음과 같다. 인간을 본질적으로 가치 있는 존재로 만들고 인간이 자신의 생명에 대한 권리를 누리게 해주는것은 복합적이고 잘 발달한 인간의 능력이다. 이 능력으로 인간은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의사소통하고, 도덕적으로 행동하고, 관계를 형성하고, 꽤 세련된 방식으로 다양한 정서를 경험할 수 있다. 동물도 괴로움을 느낀다는 사실만으로는 육식하는 인간의 행위를 금지할 수가 없다. 동물이 사용가치 이상의 더 나은 가치를 지닌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필요 이상으로 동물을 괴롭혀서는 안 된다. 동물을 편안하게 기르고 되도록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죽일 때에도 고통을 덜 느끼게 해야 한다. 그렇지만 동물이 인간만큼 신성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육식하는 행위가 사람을 잡아먹거나 빚을 갚지 않으려고 빚쟁이를 죽이는 행위만큼 나쁜 것은 아니다. 인간은 인간의 가치를 보호하고 존중하기 위해 자신의 행위에 제약을 설정한다. 하지만 동물에게도 그만한 가치를 인정해야 할 만큼의 능력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이 같은 견해는 이른바 인간 중심적 기준에서 그려낸 도덕적 세계관을 전제로 한다. 철학자들은 때때로 생명의 권리처럼 높은 권리를 지닌 존재에 한정하여 사람이란 용어를 쓴다. 이러한 권리를 인간이 지녔다고 보는 까닭은 인간에게는 어떤 가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능력을 지녔는지 아닌지는 한 존재가 내재적 가치를지녔는지 아닌지, 또는 오로지 사용의 가치만을 지녔는지 아닌지를 가리는 기준이 된다. 앞서 인용한 견해는 오로지 인간만이 인간 완성도의 기준을 충족한다고 가정하므로 도덕적 중요성을 나타내는 일종의 위계서열에서 인간을 맨 꼭대기에 놓는다. 동물은 한 계단 아래에 놓이고, 식물은 다시 그 아래에 놓이며, 맨 밑바닥에 의자 같은 물건들이 놓인다. 이 견해는 동물에게도 일정한 도덕적 고려를 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데, 그 까닭은 동물 역시 나쁜 일을 겪을 때에는 고통스러워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합리적으로 가능한 범위에서 동물이 받는 고통을 줄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동물은 의자 같은 물건과는 달리 도덕적 고려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이 견해는 동물의 생명이 지닌 가치를 인간의 그것과 같은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동물에게는 인간의 생명을 경이롭고 대체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주는 정도의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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