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묵가의 사상이란 무엇입니까?

 

 

<장자莊子> ‘천하天下’편에 의하면 묵자墨子 이후 묵가는 여러 유파로 나뉘어졌습니다. 그 중 초나라 사람 고획苦獲, 기치己齒, 등릉자鄧陵子 등은 모두 <묵경墨經>을 연구하여 각파가 서로 변론하면서 자신들이야말로 진정한 묵가墨家라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이들 대부분이 후기 묵가에 속합니다. 후기 묵가의 저작으로 전해지는 <묵경墨經> 상하, <경설經說> 상하, <대취大取>, <소취小取> 이렇게 여섯 편을 <묵변墨辯>이라 합니다. <경설經說>은 <묵경墨經>을 해설한 것이고, <대취大取>와 <소취小取>는 변론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논구한 것으로 모두 묵자 이후의 것으로 추정됩니다. <묵변墨辯>은 공손룡과 동시대이거나 공손룡 이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묵가는 생산기술과 자연과학의 기술을 중시했고, 특히 인식론과 논리학의 문제를 연구함으로써 유가儒家와 나란히 가장 유력한 학파였던 초기 묵가의 종교, 미신적 요소들을 극복했으며, 궤변 학설과의 논쟁을 통해 객관적 인식체계를 확보하려는 상당히 진보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묵가는 명확한 계획 아래 엄격한 규율을 지키며 거자의 인솔 아래 행동하는 사회변혁 실천 집단이었습니다. 주周나라 시대의 각국 군주, 귀족에 예속되어 있던 직능씨족職能氏族이 봉건적 사회체제의 해체과정에서 결속하여 만든 길드적 공인工人집단에 유래합니다. 공인, 농민이 중심이었지만 사대부士大夫도 가세했습니다. 묵가는 유가의 차등적인 사랑에 대해 겸애를 주장했으며, 유가의 인문주의적인 경향에 대해 오직 실용주의적인 관점에서 유가의 허례허식을 배격했습니다.겸애'를 제시한 목적은 혼란의 평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겸애의 기초 위에서 구체적으로 침략전쟁에 반대하는非攻 주장을 펼쳤습니다. 도道를 행하는 자는 반드시 천하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이롭게 됨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남을 해치고 자기를 이롭게 하는 일은 어질지도 의롭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유가가 덕치를 주장했다면 묵가는 권위주의적인 통치를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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