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외적 사례: 이슬람주의와 “나치 팔레스타인”

 

 

 

 

지금까지 논의한 차이점— 이를테면,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 전통 이슬람교의 유대인혐오증과 유럽에서 비롯된 대량살상형 반유대주의의 차이—뿐만 아니라, 종교색을 띠지 않는 범아랍 민족주의자들의 반유대주의와 훗날 이슬람주의가 전개한 종교화된 반유대주의의 차이도 추가해볼까 한다.
역사학자 클라우스 미카엘 말만 및 마틴 퀴페르스와 제프리 허프는 각각『나치 팔레스타인』84과 『아랍세계를 향한 나치 선전』85에서 팔레스타인의 예외적인 사례에 주목하라고 역설했다. 이슬람주의는1 928년, 하산 알반나가 무슬림 형제단을 조직하면서 자리를 잡았으나 1967년, 아랍 민족주의자들이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패한 후에 비로소 중동지역에서 번성했다. 그중에서도 팔레스타인이 1순위로 꼽힌다. 이슬람주의 사상은 나치 독일의 영향으로 1930~40년대 당시 정치계에 진입했으며, 바로 여기서 민족주의와 이슬람주의의 융합이 이루어진 것이다. (팔레스타인의 민족주의는 당시 범아랍민족주의에 속해 있었다) 예루살렘의 이슬람교 법전 전문가(무프티)인 아민 알후세이니의 사상은 알반나에게서 차용한 것이다. 허프는 두 인물이 서로 가까운 사이인 데다, 유대인을 상대로 한 반인륜 범죄와 히틀러에 호감을 느꼈다고 밝혔다.
내가 정의하는 알후세이니는 이슬람주의자가 아니다. 이런 점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성직자 겸 종교 권위자이나 그보다는 팔레스타인민족주의자에 더 가깝다. 그 또한 히틀러를 존경했고, 팔레스타인을 겨냥했다고 믿는 “유대인의 음모론” 을 뒷받침하기 위해 『시온주의 의정서』를 근거로 들기도 했다. 알후세이니는 무슬림 형제단의 지원을 받았다. 허프는 알반나의 친나치 성향의 증거를 문헌에서 찾아내어 그가 “나치와 파시스트 조직을 연구, 이를 본보기로 삼아 특수 훈련을 받은 듬직한 인재를 모아 조직을 창설했다” 는 사실을 지적했다. 무슬림 형제단은 이집트뿐 아니라, 이슬람주의자들이 “나블러스와 야파에서… 지부를 연” 팔레스타인에서도 왕성하게 활약했다. 또한 “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아민 알후세이니와 하산 알반나는 이스라엘의 출현을 나치당이 전시에 했던 예언을 입증하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 무슬림 형제단과 하산 알반나, 사이드 쿠틉은… 매일 베를린 라디오에서 들리는 음모론이 계속 이어질 것을 시사했다” 고 그는 덧붙였다.
알후세이니는 전쟁 당시 대부분 베를린에서 히틀러를 보좌했고, 그 후 독일을 빠져나왔다가 전쟁 범죄에 연루된 혐의로 프랑스에서 검거되었다. 그가 석방되도록 아랍 무슬림 압력단체들 가운데 하나인 무슬림 형제단이 도왔다. 다음은 알후세이니가 풀려난 뒤 알반나가 발표한 성명이다.


무슬림 형제단은… 무프티(알후세이니)가 아랍국가라면 어디에서든 환영받는다는 걸 밝히고 싶소. … 마침내 사자가 자유를 얻었구려. … 오, 아민! 당신은 위대하고도 단호하며 훌륭한 사람이로소이다. …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패전해도… 시온주의와 싸운 영웅인… 당신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구려.

이를 두고 허프는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하산 알반나의 성명을 주의 깊게 읽어보면 알후세이니도 자신을 비롯하여, 히틀러와 독일이 벌였던 전쟁을 지금도 치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일과 히틀러의 편에 선다면… 전쟁 당시 알후세이니가 펼친 활약상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더 끔찍한 사실은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을 대상으로 제2의 홀로코스트를 감행하려는 계획이 있었다는 말만과 퀴페르스의 주장이었다. 이에는 나치와 아랍계 무슬림 동맹이 공조했을 공산이 크다. 후세이니가 발칸반도에 무슬림판 무장 친위대를 조직했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두 사학자는 동유럽 나치의 중대급 기동대의 경험을 팔레스타인에서 시도하려는 계획을 발견한 것이다. 동유럽에서는 나치와 손잡은 해외 부대가 독일 나치를 대신하여 유대인들을 살해하기도 했다. 저자는 “동유럽의 나치 특수임무부대의 사례에 따르면, 독일군이 자행한 대량 살상은… 현지 협력부대의 지원을 받았으며 최소한의 지령만으로도 자연스레 진행되었다” 고 밝혔다. 바로 그것이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질지 모를 본보기가 된 것이다. 조직이 잘 정비된 “많은 아랍인들은 중동에서 독일의 공범이 될 각오가 되어 있었다. … 라우프가 이끄는 기동대의 주요 임무는 팔레스타인에서… 공모자들의 도움을 받아… 홀로코스트를 재현하는 것이다.” 유대인을 멸절시키려는 모략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의 말마따나— “마찰” 이 없었다면 순조롭게 진행되었을 것이다. 이슬람주의자가 가담한 홀로코스트 계획은 엘 알라메인١٣과 동부전선에서 독일이 패배한 후에 저지되었어야 했다. 결국, "1941년, 아랍세계를 둘러싼, 영국의 입장에 맞서 히틀러가 세운 계획은 모두 폐기되어야 마땅했다”
반면, 독일의 주류 학자들은 팔레스타인의 지하디스트 이슬람주의자들— 이를테면, 알후세이니와 공조했던 반시온주의 테러리스트 이즈 알딘알카삼 등— 에 공감했다. 말만과 퀴페르스는 “2001년 9・11테러 사태 후에도 그런 테러리스트가 자신의 신앙과 팔레스타인 명분의 증인으로서 서방세계의 학술문헌에 순교자로 등재될 수 있다” 는 데의아해했다. 이 같은 발언은 구드룬 크라머르의 저작에 기록된 알카삼의 망언을 인용한 것이다. 하마스가 이스라엘 민간인을 향해 발사할 미사일을 카삼 미사일로 지은 것
도 주목해볼 만하다. 두 학자는 주류 학자를 반유대주의라는 이유로 비난하지는 않지만, 다른 문화의 주요 학문을 제한하려는 학자들은 존중이라는 덕목을 내세워 문제를 제기한다. 이는 “사상을 검열하는 작태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 이다. 그들은 “종교나 경제성장 혹은 성별을 넘어…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관을 수용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 인간 조건의 보편성은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책임이기 때문이다.”
두 저자는 서양의 제삼세계주의에서 “맹목과 심취” 를 감지해냈다. 크라머르를 비롯한 학자들은 “이를테면… 반시온주의와 반유대주의처럼 편견이 깔린 이데올로기” 를 억압된 불만의 표현이라며 변호했다. 말만과 퀴페르스는 “계몽적인 사고와 야만주의로 가는 대안적인 길의 차이가” 사라졌음을 탄식했다. 그러므로 “반인륜범죄를 정확히 인식하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분별력을 지켜야 한다” 는 것이 그들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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