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신성함’에 관한 실제 논의

 

 

 

 

 

‘생명의 신성함’을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논의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이 장의 첫머리에서 우리는 낙태, 안락사, 동물의 권리 같은 몇 가지 문제가 되는 상황들을 간략히 살펴본 바 있다. 각각의 문제 영역에는 다른 고찰이 필요하다. 이 절에서는 그 가운데 몇 가지를 살펴보려 한다. 그렇지만 이 모든 고찰을 통해, 과연 생명은 어느 시점에서 우리가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는 나름의 가치를 지니는가 하는 핵심적인 의문을 살펴볼 것이다. 지금까지 (인간의) 생명이 특별한 종류의 가치를 지님을 살펴보았다. 인간의 생명에 이렇듯 특별한 종류의 가치가 있다고 하는 까닭이 무엇일까? 한편으로 인간에게 의식이 있어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은 풍부한 의미가 있는 중요한 일들을 폭넓게 수행하는 능력과 더불어 자신의 삶을 제어하면서 이끌어가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철학자들은 흔히 즐거움과 괴로움을 느끼는 능력이 특히 어떤 사물이 좋은지 나쁜지를 깨닫게 해주므로 기본적으로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식물에 물을 주거나 김매지 않는 경우처럼, 나쁜 것을 나쁘다고 여길 줄 모르는 존재에게조차 나쁜 일은 있을 수 있다고 말할 때가 더러 있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이런 일이 나쁜 것일지라도, 그것이 나쁜 일인지를 모르는 탓에 결과적으로는 그리 나쁜 일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미안해할 까닭이 전혀 없다. 그러나 의식이 있는 존재가 괴로움을 당하면 그에 마음을 써야 하겠기에 그것을 나쁜 일로 여긴다. 동물 대부분은 중추신경계가 있어 괴로움을 느낄 수 있다. 그러므로 적어도 괴로움이나 즐거움을 느끼는 동물의 능력을 참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생명의 신성함을 내세우는 논자들에 따르면, 비록 괴로움과 즐거움을 느끼는 동물의 능력이 도덕적인 고려가 필요할 만큼 가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생명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괴로움과 즐거움을 느끼는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그 이상의 능력이다. 인간은 괴로움과 즐거움을 느낄 뿐 아니라 의사소통을 하고, 지능을 써서 문제를 풀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세상과 자신의 처지를 자성하여 사색하고, 큰 규모의 행동계획을 짜며, 자신의 행동이 정당한지에 의문을 품고, 그 밖에도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는 능력을 두루 갖추었다. 그러기에 앞서 지적했듯이, 생명의 신성함을 내세우는 논자들은 인간의 생명에는 그 어느 동물과도 비교할 수 없는 풍부함과 의미가 깃들어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 생명의 풍부함과 의미는 다른 동물들의 생명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으므로 인간은 동물과 달리 자신의 행동을 제어하고 길을 잡아갈 수 있다.
이 같은 논리를 바탕으로 이제 한 사람의 철학자가, 예를 들어, 인간이 육식하는 행위를 어떤 방식으로 정당화하는지 살펴보자. 가장 단순한 논리는 다음과 같다. 인간을 본질적으로 가치 있는 존재로 만들고 인간이 자신의 생명에 대한 권리를 누리게 해주는것은 복합적이고 잘 발달한 인간의 능력이다. 이 능력으로 인간은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의사소통하고, 도덕적으로 행동하고, 관계를 형성하고, 꽤 세련된 방식으로 다양한 정서를 경험할 수 있다. 동물도 괴로움을 느낀다는 사실만으로는 육식하는 인간의 행위를 금지할 수가 없다. 동물이 사용가치 이상의 더 나은 가치를 지닌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필요 이상으로 동물을 괴롭혀서는 안 된다. 동물을 편안하게 기르고 되도록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죽일 때에도 고통을 덜 느끼게 해야 한다. 그렇지만 동물이 인간만큼 신성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육식하는 행위가 사람을 잡아먹거나 빚을 갚지 않으려고 빚쟁이를 죽이는 행위만큼 나쁜 것은 아니다. 인간은 인간의 가치를 보호하고 존중하기 위해 자신의 행위에 제약을 설정한다. 하지만 동물에게도 그만한 가치를 인정해야 할 만큼의 능력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이 같은 견해는 이른바 인간 중심적 기준에서 그려낸 도덕적 세계관을 전제로 한다. 철학자들은 때때로 생명의 권리처럼 높은 권리를 지닌 존재에 한정하여 사람이란 용어를 쓴다. 이러한 권리를 인간이 지녔다고 보는 까닭은 인간에게는 어떤 가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능력을 지녔는지 아닌지는 한 존재가 내재적 가치를지녔는지 아닌지, 또는 오로지 사용의 가치만을 지녔는지 아닌지를 가리는 기준이 된다. 앞서 인용한 견해는 오로지 인간만이 인간 완성도의 기준을 충족한다고 가정하므로 도덕적 중요성을 나타내는 일종의 위계서열에서 인간을 맨 꼭대기에 놓는다. 동물은 한 계단 아래에 놓이고, 식물은 다시 그 아래에 놓이며, 맨 밑바닥에 의자 같은 물건들이 놓인다. 이 견해는 동물에게도 일정한 도덕적 고려를 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데, 그 까닭은 동물 역시 나쁜 일을 겪을 때에는 고통스러워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합리적으로 가능한 범위에서 동물이 받는 고통을 줄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동물은 의자 같은 물건과는 달리 도덕적 고려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이 견해는 동물의 생명이 지닌 가치를 인간의 그것과 같은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동물에게는 인간의 생명을 경이롭고 대체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주는 정도의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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