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에 걸친 종교의 연구는 종교의 발전단계를 재구성하는 데 초점이 모아졌습니다.
영국의 인류학자 타일러Edward Burnett Tylor(1832-1917)는 애니미즘Animism을 종교의 원초형태로 보고 애니미즘으로부터 사령死靈, 악령惡靈, 정령精靈의 신앙信仰으로 발전하여 다음으로 신의 관념이 생겨 다신교多神敎가 되고 나아가 일신교一神敎로 진화進化했다고 주장합니다.
라틴어 아니마(영혼靈魂)에서 온 애니미즘이란 말은 물신숭배物神崇拜, 영혼신앙靈魂信仰 혹은 만유정령설萬有精靈說이라고도 번역됩니다.
타일러가 『원시문화原始文化』(1871)에서 이 말을 처음 사용했는데, 애니미즘 사고방식은 ‘야만인의 철학’으로서 종교의 기원을 설명하는 동시에 종교의 근본원리가 되었다고 주장한 데서 비롯됩니다.
타일러에 의하면 애니미즘적 사고방식은 꿈과 죽음의 경험에서 추리되어 성립되었습니다.
꿈과 죽음의 경험을 통해 육체와 유리遊離되어 활동하는 원리, 즉 영혼을 상정하게 되었습니다.
지역성이 강한 민속종교民俗宗敎에는 종교처럼 교의敎義를 창제한 특정한 교조敎祖가 없는데, 서낭당(성황당城隍堂)을 예로 들면 고대로부터 그 지역사회가 독자적으로 지켜온 신앙으로 명칭은 지역에 따라 다양합니다.
할아버지당, 할머니당, 혹은 골멕이당, 당제堂祭, 당산제堂山祭, 동제洞祭 등 고유한 명칭名稱이 있습니다.
동제洞祭를 당산제堂山祭, 동신제洞神祭, 대동치성大同致誠, 산제山祭라고도 하며, 마을의 조상신祖上神, 수호신守護神에게 마을사람들의 연중무병年中無病과 평온무사平穩無事를 비는 제사祭祀로 대개 마을 입구에 제단祭壇이나 별도로 사당祠堂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제단은 미리 청결하게 닦고 주변에 황토를 깔아놓으며, 솔가지를 끼운 금줄을 쳐 잡인雜人의 출입出入을 막습니다.
제주祭主는 마을사람 중에서 연로年老하고 상기喪期에 있지 않은 사람으로 합니다.
제주는 일주일 전부터 목욕재계沐浴齋戒하고 육류肉類를 먹지 않으며 상인喪人이나 병자病者를 만나지 않습니다.
제삿날은 지방마다 다른데, 보통 제주의 운수運數가 길吉한 날을 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물은 전날 차려놓으며 제삿날 자시子時(밤 11시부터 오전 1시까지)에 동신제문洞神祭文을 읽으면서 제사를 지냅니다.
제사가 끝나면 굿을 하며 제사 음식과 술을 나눠 먹는데, 당산제는 제사와 굿의 이중성격을 띠는 것이 특징입니다.
다른 동네 사람의 참여를 막고 마을사람 전체가 참여해 음복陰伏하는 신인합일적神人合一的인 향연饗宴이라는 데 의의意義가 있습니다.
마을사람 중에서 뽑힌 제관祭官이 주관자主管者 노릇을 하지만 모든 진행을 무당에게 맡기는 경우를 별신굿, 당굿, 도당굿이라고 합니다.
동제洞祭는 특별히 선정된 소수의 제관들이 한밤중에 마을수호신을 모신 당에 가서 음악이나 놀이가 없이 경건하게 지냅니다.
신에게 제물을 바친 뒤 축문祝文을 읽거나 소지所志를 올려 소원을 고한 뒤 잡귀를 풀어먹이고 음복陰伏하는 것으로 제사를 마칩니다.
다음날 낮 시간에 마을주민들이 모두 모인 중에 다시 음복하고 놀이판을 벌이며 마을회의를 엽니다.
그러고는 농악農樂에 맞춰 마을굿을 합니다.
이때 제관祭官과 농악대農樂隊가 함께 움직입니다.
당堂으로 가서 제물祭物을 진설陳設하고 절하며 소원을 비는 것이 동제와 같습니다.
그러나 농악대가 서낭기를 앞세우고 당으로 가는 것이 다르며, 경우에 따라서는 기를 내려 서낭기에 신을 받기도 합니다.
농악대의 상쇠는 제의를 진행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제물을 진설한 뒤 제관들이 절 할 때도 농악장단農樂長短에 맞춰 하게 되며 여러 당堂을 돌아다닐 경우에도 농악대의 음악이 따릅니다.
농악대 마을굿은 떠들썩한 음악과 놀이가 수반되며 참가하는 인원도 동제보다는 많습니다.
굿이 끝나면 한바탕 농악으로 놀이판이 벌이는데, 이때 탈꾼들이 따르기도 합니다.
무당은 대개 외부에서 초빙하나 비용이 만만치 않아 해마다 하지 못합니다.
평소에 동제를 지내다가 몇 년에 한 번 정해진 해에 굿을 하기 때문에 무당굿은 특별한 축제가 됩니다.
무당은 전승되어 내려온 절차를 좇아 여러 신을 모시고 굿을 합니다.
동해안 지역의 서낭굿은 부정굿, 골매기청좌굿, 하회동참굿, 성주굿, 조상굿, 제석굿, 군웅굿, 심청굿, 천왕굿, 손님굿, 제면굿, 꽃놀이굿, 등노래굿, 뱃놀이굿, 거리굿 등으로 진행되며, 이것들 가운데 주민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끄는 것은 골매기청좌굿 중에 있는 대내림입니다.
부정不淨굿은 본本굿을 하기에 앞서 굿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부정한 일이나 제당祭堂의 불결한 것을 가셔내어 신이 좌정坐定할 수 있는 깨끗하고 신성한 공간으로 정화시키는 의례로 먼저 무당이 부정을 물리는 무가巫歌를 부릅니다.
무가의 내용은 외부에서 들어온 부정과 인간생활에 관계된 부정不淨, 제물祭物에 묻은 부정 등을 물린 뒤 무속巫俗이 신앙하는 신들을 청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어 무당은 바가지에 잿물, 고춧가루나 소금물, 생수를 담아 제당에 골고루 뿌려 물로 깨끗이 씻긴 후 짚단이나 종이에 불을 붙여 불로써 부정을 가셔냅니다.
마지막으로 신칼을 던져 칼끝이 밖으로 나갔는지를 보아 부정을 물린 것을 확인합니다.
부정굿이 끝나면 무당은 당 앞에 서낭대를 세워놓고 너름을 받습니다.
서낭대는 마을수호신의 신체인 것입니다.
주민住民 중에 한 사람이 대를 잡고 있으면 무당이 축원祝願하여 신神을 강림降臨시킵니다.
대가 떨리면 신이 내린 것으로 믿고 주민들은 마을의 중요한 일들에 관해 신의 뜻을 묻습니다.
대잡이는 질문에 대하여 대를 상하, 좌우로 흔들어 신의 뜻을 전합니다.
주민들이 수호신과 직접 대화를 하는 것은 신들린 무당이 굿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무당은 스스로 대를 잡거나 신격화되어 공수를 주는 것이 아니라 세습무世襲巫처럼 대를 내리는 역할만 맡으며, 무당은 순수하게 신을 강림시키는 일만 합니다.
이 과정은 농악대 마을굿에서 서낭을 내리는 것과 같습니다.
본격적인 무당굿은 대를 내려 수호신을 모신 후에 시작되며, 여기서부터 무당은 무속이 신앙하는 여러 신들을 모시면서 굿을 하게 됩니다.
세습무世襲巫는 점치고 예언하는 강신무降神巫에 비해 순수한 사제로서 무속의례를 집행합니다.
세습무는 일정한 지역을 자신의 당골판으로 가지고 있어 당골판 내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종교적 요구를 충족시켜주는 의무를 지니며, 대가로 봄, 가을에 곡식과 돈을 받습니다.
이런 사제권은 부계로 세습됩니다.
세습무권에서는 여자만 무당으로 굿을 하고 양중, 화랭이, 사니 등으로 불리는 남자는 악사로서 무악巫樂을 담당하고 진행을 돕습니다.
동해안에서는 남자들이 촌극寸劇과 염불念佛을 하기도 합니다.
농악대굿과 무당굿에서 공통되는 상징은 신기神氣입니다.
농악대의 농기, 동제에 사용되는 대기(혹은 서낭기) 그리고 무당굿의 신대가 같은 성격을 지닙니다.
걸립패의 농기도 걸립을 나가기에 앞서 서낭기에 제사를 올리는 ‘낭’을 받고 걸립하는 내내 조석으로 기 앞에 밥상을 차리는 점과 두레패의 농기 또한 들에 나가 일할 때 반드시 세워두고 음식을 먹기 전에 농기 앞에 술을 붓는 점에서 신기의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을신앙의례는 이처럼 민속적 의례와 무속적 의례가 공통되는 구조를 가진 채 병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