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불, 만명, 칠금령




삼불三佛
무당巫堂이 노래할 때 사용하는 부채에는 세 부처가 그려져 있습니다.
대개 세 부처는 극락세계極樂世界의 아미타불阿彌陀佛과 좌보처左補處인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우보처右補處인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입니다.
무당은 때때로 또한 부처를 노래하면서 기원하는데, 이는 신과 불이 혼합된 증거입니다.

무당이 노래할 때 사용하는 부채에는 그림이 그려졌고 부채살이 50개입니다.
아미타불阿彌陀佛은 서방정토西方淨土 극락세계極樂世界를 주재하는 부처로 아미타불이란 아미타유스Amitayus, 아미타바Amitabha의 음역이며, 그 뜻을 번역한 것이 무량수, 무량광입니다.
보처補處란 일생보처一生補處의 준말로, 이전의 부처가 입멸入滅한 뒤 성불成佛해서 그 자리를 보충할 예정인 자, 즉 부처의 후보자를 말합니다.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은 아미타불阿彌陀佛의 교화敎化를 도우며 중생衆生의 현세 고통을 구원하는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보살菩薩입니다.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은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오른쪽 협시보살挾侍菩薩로 서방 극락세계에 있는 지혜와 광명이 으뜸인 보살입니다.

만명萬明
만명萬明이란 신라 김유신의 어머니 만명부인을 신으로 삼아 말하는 것입니다.
소운거사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이르기를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서 ‘영남의 군위현軍威縣 서악西岳에는 신라 김유신의 사당이 있다’고 했고, 그의 어머니 만명 역시 신이 되었으니, 지금 무녀巫女들이 주문呪文에서 만명을 부르면서 제사한다. 만명신萬明을 모신 곳에는 반드시 구리靑銅로 만든 둥근 거울을 걸어놓고 이를 칭하여 명도明圖라 한다”는 것이 곧 그것입니다.
명도明圖는 무당巫堂이 수호신守護神으로 삼고 위하는 청동제靑銅製 거울을 말합니다.

칠금령七金鈴
무당巫堂의 방울에는 군웅방울, 칠성방울(칠쇠방울), 대신방울, 상쇠방울 네 가지가 있는데, 방울이 7개가 달린 것은 칠성방울입니다.
지금 풍속으로는 무녀巫女들이 숫자가 일곱인 금속제 방울을 손에 들고 노래하다 흔들다 합니다.
또 그림이 그려진 부채를 들고 접었다 폈다 하면서 비틀비틀 춤을 추며 재잘재잘 주문을 욉니다.
한국의 고대를 살펴보면 마한馬韓에서는 귀신을 섬기면서 소도蘇塗에 나무를 세우고 방울을 매다는 신앙이 있었고, 부여의 제천에 또 영고迎鼓 의례儀禮가 있었으므로, 무녀巫女가 방울을 사용하는 것은 오래되었습니다.
일본의 신관神官이나 만주滿洲의 살만薩滿도 신에게 제사지낼 때 금속 방울을 사용하는데, 그것들은 모두 같은 근원에서 나온 것입니다.

마한馬韓은 삼한三韓의 하나로 삼국시대三國時代 이전 기원전 1세기-기원후 3세기에 경기, 충청, 전라도 지방에 분포한 54개의 부족국가部族國家를 가리키며 뒤에 백제百濟에 병합倂合되었습니다.
소도蘇塗는 마한馬韓의 신성지역으로 방울과 북을 매단 큰 나무를 세우고 귀신을 섬기던 곳으로 도망자가 피난하면 처벌을 피할 수 있는 피신처asylum의 역할도 했습니다.
영고迎鼓는 부여夫餘에서 해마다 은정월殷正月(은나라 때의 정월로 지금의 음력 12월)에 거행하는 제천행사였습니다.
일본의 신관神官이란 일본의 신궁이나 신사의 제관을 말합니다.
살만薩滿은 샤먼shaman의 한자 음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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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단神壇




무당이 굿을 행할 때 그 무가巫歌 중에 초단初壇, 이단二壇, 삼단三壇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 또한 불교의례에서의 상, 중, 하 삼단三壇을 모시는 단壇으로 대개 상단의 좌측에 신중정화神衆幀畵를 걸어둔 것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하단은 지장보살地藏菩薩을 중심으로 영가靈駕의 규정을 모방한 것입니다.
불교의례에서 상단은 불보살위佛菩薩位이며, 중단은 신중위神衆位이고, 하단은 인귀위人鬼位입니다.

한국의 사찰寺刹에서는 불단佛壇을 신앙대상의 위계질서位階秩序에 따라 삼단三壇으로 구분합니다.
상단은 부처와 보살을 아우르는 불보살佛菩薩을 모시는 단壇으로 법당法堂 중앙에 두고, 중단은 화엄경을 보호하는 화엄신장華嚴神將 혹은 불법佛法을 지키는 신장神將을 둡니다.
정화幀畵를 탱화라고도 합니다.
지장地藏은 브라마나 시대부터 일장日藏, 월장月藏, 천장天藏 등과 함께 별의 신으로 신앙되었으며, 이것이 중국에 들어가 염마시왕閻魔十王 신앙信仰과 결합하고 말법末法 사상이 활기를 띠면서 지장을 통한 구제를 희구하는 신앙으로 발전했고, 관음신앙觀音信仰과 더불어 중요한 민간신앙이 되었습니다.
영단靈壇은 사람의 모든 정신적 활동의 근원인 영가靈駕의 위패位牌를 모시는 곳으로 상단의 우측에 있습니다.
이러한 불단의 3단 분단은 불교가 마찰 없이 토착신앙을 포용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신중神衆은 불법佛法을 수호守護하고, 사찰寺刹을 호위護衛하는 불교의 신으로 범천梵天, 제석천帝釋天, 사천왕四天王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무가巫歌에서 초단은 ‘신길神路’ 혹은 ‘지로귀指路鬼(지노귀)’라 하는데, 이는 불교의례에서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이 있어 극락세계로 왕생하는 길을 가리켜주는 것과 같고, 무속巫俗으로 말하면 ‘시왕十王에게 가는 길을 가리켜준다’라는 것이 이것입니다.
'진넉위’는 망령위亡靈位를 말하는데, 세속世俗에서는 죽음을 ‘진’, 예를 들면, 초상집에서 무녀巫女를 불러 하는 굿을 진부정가심이라 하고, 번역하면 죽음에서 비롯된 부정을 씻어낸다는 뜻이라 하고, ‘넉’이란 우리말로 영혼靈魂입니다.
이능화李能和는 『조선무속고朝鮮巫俗考』에서 ‘진넉’을 사자死者의 영혼으로 해석했습니다.

지로귀指路鬼는 ‘길을 가르쳐주는 귀신’이란 뜻입니다.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은 사자死者를 서방정토西方淨土로 안내하는 보살菩薩을 말하며, 불경佛經에 나오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처음에는 지장地藏이든 관세음觀世音이든 정토淨土로 안내하는 보살菩薩을 가리키는 일반명사였으나, 당唐나라 중기 이후에는 이 일을 전당하는 특정 보살이 상정되고 그 보살에 대한 고유명사가 되었습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인로왕보살 신앙이 강해 이를 그린 번幡을 대재大齋 때나 장례葬禮 등에 앞장세웁니다.

무가巫歌에서 2단二壇은 ‘새넘’이라 하며, 산음散陰이 와전된 것입니다.
이능화李能和는 새남의 어원을 불교에서 유래한 산음, 즉 중음신中陰身을 흩어 극락왕생極樂往生하게 하는 것으로 보았으나, 산음은 불교에서 사용하는 표현이 아닙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사람이 죽으면 처음에는 중음신中陰身이 되어 허공을 헤매고 갈 곳이 없기 때문에 칠칠재七七齋 및 百齎를 베풀어 어둠속에 있는 중음신이 흩어져 바로 좋은 길로 왕생往生하도록 한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무속巫俗에서 불교의례를 본떠 ‘진넉위새념’을 거행하는데, 그 취지趣旨는 망령亡靈을 좋은 곳으로 보내는 굿입니다.

중음신中陰身은 사람이 죽은 뒤에 다음 삶을 받아 다시 날 때까지의 몸을 말합니다.
극악極惡한 사람의 경우 죽으면 바로 다음 생을 받지만, 보통사람은 중음신의 기간을 거쳐 다음 생이 결정됩니다.
그렇지만 중음신의 기간은 생전의 행위에 따라 7일 단위로 차이가 있어, 첫 번째 7일에 벗어나기도 하지만은 보통은 7주인 49일입니다.
칠칠재七七齋는 사람이 죽어 중음신中陰身으로 있는 동안 망자의 추선追善을 위해 첫 7일에서 일곱 번째 7일까지 거행하는 불교의례佛敎儀禮로 49재라고도 합니다.
백재百齎는 사람이 죽은 지 1백일 되는 날 거행하는 불공을 말합니다.

무가巫歌에서 3단三壇은 법식法食 받기라 하는데, 역시 불교의례에서 나온 것으로, 법식이란 법공양을 말합니다.
승가僧家에서 공양供養은 두 가지 뜻이 있는데, 물품을 바치는 것을 재공양財供養이라 하고, 불교의 가르침에 따라 기도하는 것을 법공양法供養이라 합니다.
3단三壇에 대한 언급은 주로 망자 천도를 위한 무가에 등장합니다.
무당巫堂이 말하는 망자의 극락왕생을 비는 의례 ‘선왕재’란 불교의 이른바 ‘현왕재現往齋’입니다.
불서佛書에 『현왕경現王經』이 있는데, 대개 죽은 영혼의 천도天道를 위한 가르침입니다.

현왕재現往齋는 죽은 지 사흘 뒤에 사자를 심판하는 현왕現王, 즉 보현왕여래普賢王如來에게 올리는 불교의식이며, 현재 거의 행해지지 않으나 신도가 죽었다고 하면 사찰에서 탑타라니塔陀羅尼를 걸어놓고 현왕불공賢王佛供을 드린 뒤 탑타라니를 상가에 보냈습니다.
『현왕경現王經』은 정토왕생의 법식과 다라니를 전하는 『현행경』, 『현행서방경』을 가리킨다는 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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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降神




무축巫祝의 노래에 ‘강림도령降臨徒領’이라는 말이 있는데, 불교의례佛敎儀禮에서 나왔습니다.
불교에서는 의식을 집전하는 승려가 의문儀文을 염송하면서, 불보살佛菩薩이 도량[도장道場]에 강림하여 이 공양 받으시기를 청합니다.
무속巫俗에서는 이 도량을 와전訛傳하여 도령徒領이라 했습니다.
도령이란 신라 때 화랑花郞이 무리를 수백 혹은 수천을 거느렸으므로 이를 도령이라 한 것입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의 악지樂志에 도령가徒領歌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 풍습에 귀한 집안의 묘세卯歲의 동자를 도령이라 하는 것은 신라 때의 말이 전해진 것입니다.
또 요즈음 떠돌아다니는 말 가운데 “산의 으뜸은 곤륜산崑崙山이요, 물의 으뜸은 황하수요, 아이들의 으뜸은 강림도령”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무가가 와전된 탓으로 도량을 도령徒領이라 이해한 것입니다.

강림도령降臨徒領은 일직사자日直使者, 월직사자月直使者와 함께 다니면서 저승으로 인간을 잡아가는 저승사자로 성격이 몹시 포악하다. 강님도령, 강임도령, 강님사제라고도 합니다.
악지樂志는 삼국시대의 음악 기사를 정리한 것으로 『삼국사기』 권 32에 있으며, 도령가徒領歌를 진흥왕振興王 때의 작품이라 했습니다.
묘세卯歲의 의미를 알 수 없으나, 20세 안팎의 젊은이를 뜻하는 묘년妙年, 묘령妙齡과 같은 뜻으로 짐작됩니다.
곤륜산崑崙山은 중국의 전설에 나오는 서방의 신성한 산으로 서왕모西王母가 살고 불사의 물이 흐르는 곳으로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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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비대왕魚鼻大王과 바里公主





『성신말법聖神語法』에 이렇게 씌어 있습니다.
『성신말법』은 서울시 노량진의 한 무가巫家에서 소장하고 있던 전 1권의 책자로 지노귀새남굿 무가巫歌를 순 한글로 기록한 것이며, 바리공주里公主 무가를 필사한 무당 문서로 추정됩니다.
왕후王后가 혼인婚姻을 한 다음 점쟁이에게 물으니 점쟁이가 쌀을 던져 점을 쳤다. 연거푸 딸 일곱을 낳았는데, 일곱 번째 딸을 바리공주里公主라 한다.

왕후王后가 혼인婚姻했다는 것은 산호궁珊瑚宮의 어비대왕魚鼻大王이 삼국을 통치하면서 길대공주吉大公主를 간택揀擇해 왕후王后로 삼았음을 말합니다.
점쟁이의 칭호는 천화궁天華宮의 가리박사加利博士, 지화궁地華宮의 다지박사多智博士, 제석궁帝釋宮의 소소락씨蘇昭樂氏, 명도궁明圖宮의 주역박사周易博士 혹은 천문박사天文博士입니다.
왕후가 딸만 많이 낳았으므로 왕이 노해 서해에 버리라고 했던 까닭에 이름을 바리공주라 합니다.
우리말에 버리는 것을 바리(‘버리다’를 한자로 표기한 것)라고 합니다.
바리공주 무가巫歌는 현재 52종이 알려져 있으며, 지역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습니다.
성신말법聖神語法』이 바리공주 부왕父王의 이름을 어비대왕이라 한 점, 문복과정과 점복자에 대한 설명이 자세한 점, 바리공주의 베필을 무장선이라 한 점, 마지막이 염불로 끝나는 점 등에서 중부지역 바리공주 무가의 특성을 보여줍니다.

바리공주의 남편은 처용대감處容大監이다.
따라서 어비대왕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기재된 처용랑處容郞을 말합니다.
처용에 관한 이야기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헌강왕憲康王(제49대 왕으로 875-886년 재위) 때 일이므로 어비대왕이 ‘삼국을 통치했다’는 말이 『성신말법聖神語法』에 적혀 있는 것입니다.
신라인은 처용의 형상을 그려 문에 붙임으로써 벽사辟邪했으며, 어비대왕이라는 명칭이 여기서 유래했습니다.
바다의 용왕龍王이 산호珊瑚를 궁궐宮闕로 삼는다고 하는 데서 산호궁珊瑚宮이란 말이 유래합니다.
부인을 역신疫神에게 빼앗기고 처용處容이 이를 보면서 물러갔다고 하며, 여기서 바리공주라는 이름이 유래했습니다.
지금 『삼국유사』의 처용 기사와 무속의 설화를 대조해보면 모든 명칭이 나온 근원을 가히 알 수 있습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처용랑處容郞」 망해사望海寺조에서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울산광역시 처량면 율리 산16-2번지에 망해사望海寺의 절터가 남아 있으며, 헌강왕대憲康王代(875-886)에 창건創建되었습니다.

제49대 헌강왕대憲康王代에 신라는 서울에서부터 동해바다에 이르기까지 집과 담장이 잇달아 있었으며, 초가는 한 채도 없었다. 악기와 노랫소리는 길거리에 끊이지 않았고, 바람과 비는 사철 순조로웠다. 그때(『삼국사절요三國史節要』 권 13에서는 헌강왕 2년이라고 했다) 대왕이 개운포開雲浦에 놀러갔다가 바야흐로 어가御駕를 돌리려고 했다. 낮에 물가에서 쉬는데,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해져 길을 잃게 되었다. 왕이 이상히 여겨 좌우에게 물으니, 일관日官이 아뢰기를 ‘이것은 동해東海의 용龍이 변괴變怪를 일으킨 것이오니 마땅히 좋은 일을 해주어서 이를 풀어야 합니다’라고 했다. 이에 유사有司에게 명령하기를 용을 위해 불사佛寺를 창건하라고 했다. 명령이 내려지자마자 구름이 걷히고 안개가 흩어졌는데, 이로 말미암아 이곳을 개운포開雲浦라 했다.

개운포開雲浦는 지금의 울상광역시 울주蔚州입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개운포는 군 남쪽 25리에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의 외황강 하류 처용리 일대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어가御駕란 왕이 타던 수레를 말합니다.
일관日官은 추길관諏吉官의 옛 명칭으로 길일吉日을 가리는 일을 맡아보던 벼슬입니다.
유사有司는 사무를 맡은 직책을 말합니다.

동해東海의 용龍이 기뻐하여 일곱 아들을 거느리고 어가御駕 앞에 나타나 대왕大王의 덕德을 칭송하며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했습니다.
그중 한 아들이 어가를 따라 서울로 와서 국왕의 정치를 보좌했는데, 칭하기를 처용處容이라 했습니다.
왕은 미녀를 아내로 삼게 하여 그 마음을 붙잡아두려 했으며, 또 급간級干의 벼슬을 주었습니다.
그의 아내가 매우 아름다웠기 때문에 역신疫神이 이를 흠모欽慕하여, 사람으로 변신해서 밤에 그 집에 들어가 몰래 동침했습니다.
처용은 밖에서 집으로 들어왔다가 잠자리에 두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물러났습니다.
이때 역신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꿇어앉아 말하기를 ‘내가 공公의 아내를 사모하여 방금 범해버리고 말았는데, 공은 이를 보고도 화를 내지 않으니, 감동했을 뿐만 아니라 정말 아름답게 여깁니다. 맹세하건대 앞으로는 공의 모습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문에는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나라 사람들은 처용處容의 형상形象을 문에 붙여서 사기邪氣를 물리치고 경사스러운 일들을 맞이하려 했습니다.

급간級干은 신라 17관등 중 아홉 번째 관등官等으로 급벌찬級伐湌, 급간級干이라고도 합니다.
신라에는 6두품六頭品, 즉 성골聖骨, 진골眞骨의 골족骨族 6-1두품의 두품 층으로 구성되는데, 6두품은 두품층 가운데 가장 높은 등급이었습니다.
급간은 6두품 이상의 신분身分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역신疫神은 병을 퍼뜨리는 신을 말합니다.

위의 이야기로 미루어 처용은 어비대왕이었고, 어비대왕이 거처하는 산호궁은 바다의 용궁이었으며, 처용의 아내라고 하는 미녀가 바리공주였습니다.
복사卜師와 박사博士 모두 옛날의 사무師巫를 이르는 말입니다.
우리 풍속에 남무를 ‘박사’라 하는 것은 복사 혹은 박사가 와전된 것입니다.
신라에 천문박사가 있었으며, 사무를 이렇게 칭한 것으로 보입니다.

『성신말법聖神語法』에 따르면 “바리공주는 무상선無上仙에게 시집가, 일곱 아들을 대동하고 영약靈藥을 가지고 와서, 이미 죽은 아버지를 회생시켰다”고 했습니다.
영약靈藥이란 동해東海 용왕龍王의 여의주如意珠 등을 말합니다.
용왕의 여의주로 아버지의 병을 구했다는 것은 『삼국사기三國史記』, 「김유신전金庾信 

 에 이른바 ‘동해 용왕의 딸이 심장병이 있었는데, 토끼의 간을 구해 치료하려 했다’는 설화에 나오는 것입니다.
「김유신전金庾信傳」에 따르면 고구려高句麗 왕王의 총신寵臣 선도해先道解가 김춘추에게 한 이야기입니다.
642년(선덕여왕 11) 김춘추의 딸과 사위가 백제군에 잡혀 죽자 김춘추는 이들의 복수를 위해 고구려에 청병하러 갔습니다.
그러나 고구려는 과거 신라에게 빼앗긴 영토를 되돌려달라고 하면서 오히려 김춘추를 억류했습니다.
이에 김춘추가 살 길을 찾기 위해 선도해에게 뇌물을 바치자, 선도해가 ‘거북과 토끼의 이야기’[귀토지설龜兎之說]을 들려주었습니다.
이를 통해 선도해는 김춘추에게 토끼처럼 행동할 것을, 즉 영토를 돌려주겠다고 해서 일단은 신라로 달아나고 보라는 점을 암시한 것입니다.

무당巫堂의 책 『성신말법』을 보면 순 한글로 되어 있는데, 기도와 축원의 목적은 신귀神鬼를 편안하게 하는 것이고, 신앙의 대상은 불타佛陀에 귀의歸依하는 데 있습니다.
불교의 시타림屍陀林 의식儀式에서는 신라 의상대사義相大師의 「법성게法性偈」를 염송하는데, 무당도 이렇게 합니다.
도량의 결계結界, 즉 불교 행사를 하는 일정 공간을 속계俗界와 구분하여 청정한 공간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염송念誦하는 글인 불교의 「결도량의문結道場儀文」에서 ‘첫째, 동방에 물 뿌리니 도량이 깨끗하고’ 운운하는 것도 무속에서 사용합니다.
『삼국유사』 신라 비처왕毗處王 대代의 「사금갑射琴匣」에는 내전內殿의 분수승焚修僧이 궁주宮主와 간통하다 죽임을 당했다는 내용이 있는데, 승려의 분수焚修조에 보이는 내전內殿의 분수승과 무당의 기축祈祝은 명칭만 다를 뿐 같습니다.
그러므로 승僧과 무巫의 접근, 신神과 불佛의 혼합混合은 이미 신라 때부터 있었던 것입니다.
이능화李能和는 신라 승려僧侶들이 향가鄕歌를 잘 지었으며, 지금 민속民俗의 「놀부가」, 이른바 「제비 다리」와 「용궁가」, 이른바 「토끼의 간」 등이 신라 승려의 손에서 나온 것으로 보았습니다.
무당의 기원하는 축문祝文도 승려에게서 나왔으나, 전승된 지 오래되었으므로 다소간 변화가 생긴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능화李能和는 승려가 지은 노래는 게송偈頌에서 비롯했고, 노래는 범패梵唄를 통해 익혔으므로 향가鄕歌와 무가巫歌를 창도하는 데 능했을 것으로 보았습니다.

시타림屍陀林 의식儀式은 범어 시타바나의 음역으로 원래 인도에서는 왕사성 박에 시신을 버리는 의식이 있었으나 한국에서는 상가에 가서 염불 등의 의식을 집전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말의 시달림이라는 말이 여기서 유래했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의상대사義相大師(625-702)는 신라시대 화엄종華嚴宗의 고승高僧입니다. 

「법성게法性偈」는 의상이 『화엄경華嚴經』의 내용을 알기 쉽게 요약하여 게송gatha으로 읊은 것입니다.
향가鄕歌는 향찰鄕札(한자의 음音과 훈訓을 차용한 말)로 기록되어 전하는 신라 때의 노래입니다.
범패梵唄는 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하는 노래로 ‘인도梵의 소리唄’란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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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우화상法祐和尙




무녀巫女가 굿을 할 때면 한 손으로는 금속방울을 흔들고 한 손에는 그림 부채를 가지고, 웅얼웅얼 주문을 외우고 빙글빙글 춤을 추면서, 불타佛陀를 부르고 또 법우화상法祐和尙을 부릅니다.
여기에는 유래가 있습니다.
옛날 지리산智異山의 엄천사嚴川寺에 법우화상法祐和尙이 있었는데, 불법佛法의 수행修行이 대단했습니다.
하루는 한가로이 있는데, 갑자기 산의 개울이 비가 오지 않았는데도 물이 불어난 것을 보고, 물이 흘러온 곳을 찾아 천왕봉天王峯 꼭대기에 올랐다가 키가 크고 힘이 센 여인을 보았습니다.
그 여인은 스스로를 성모천왕聖母天王이라 하면서 인간세계에 유배流配되어 내려왔는데 그대와 인연이 있어 물의 술법術法을 사용하여 스스로를 중매하고자 한다고 말했습니다.
드디어 부부가 되어 집을 짓고 살면서 딸 여덟을 낳았고 자손이 번성했습니다.
이들에게 무당의 술법을 가르쳤는데, 금속방울을 흔들고 그림 부채를 들고 춤을 추면서 또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창하고 법우화상을 부르면서 방방곡곡坊坊曲曲을 다니면서 무당의 일을 했습니다.
이 때문에 세상의 큰 무당은 반드시 한번 지리산 꼭대기로 가서 성모천왕에게 기도하고 접신接神을 한다고 합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엄천사嚴川寺는 ‘엄천嚴川의 북안北岸’에 있고, 엄천은 ‘함양군의 남쪽 25리에 있으며 용유담의 하류’라 했습니다.
엄천사는 법우화상法祐和尙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천왕봉天王峯은 지리산의 최고봉으로 해발 1,915m입니다.
고려 후기의 재상宰相으로 충선왕忠宣王의 개혁정치改革政治에 동참한 박전지朴全之(1250-1325)의 「용암사중창기龍巖寺重創記」에 지리산智異山의 산신山神 성모천왕聖母天王이 언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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