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비대왕魚鼻大王과 바里公主





『성신말법聖神語法』에 이렇게 씌어 있습니다.
『성신말법』은 서울시 노량진의 한 무가巫家에서 소장하고 있던 전 1권의 책자로 지노귀새남굿 무가巫歌를 순 한글로 기록한 것이며, 바리공주里公主 무가를 필사한 무당 문서로 추정됩니다.
왕후王后가 혼인婚姻을 한 다음 점쟁이에게 물으니 점쟁이가 쌀을 던져 점을 쳤다. 연거푸 딸 일곱을 낳았는데, 일곱 번째 딸을 바리공주里公主라 한다.

왕후王后가 혼인婚姻했다는 것은 산호궁珊瑚宮의 어비대왕魚鼻大王이 삼국을 통치하면서 길대공주吉大公主를 간택揀擇해 왕후王后로 삼았음을 말합니다.
점쟁이의 칭호는 천화궁天華宮의 가리박사加利博士, 지화궁地華宮의 다지박사多智博士, 제석궁帝釋宮의 소소락씨蘇昭樂氏, 명도궁明圖宮의 주역박사周易博士 혹은 천문박사天文博士입니다.
왕후가 딸만 많이 낳았으므로 왕이 노해 서해에 버리라고 했던 까닭에 이름을 바리공주라 합니다.
우리말에 버리는 것을 바리(‘버리다’를 한자로 표기한 것)라고 합니다.
바리공주 무가巫歌는 현재 52종이 알려져 있으며, 지역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습니다.
성신말법聖神語法』이 바리공주 부왕父王의 이름을 어비대왕이라 한 점, 문복과정과 점복자에 대한 설명이 자세한 점, 바리공주의 베필을 무장선이라 한 점, 마지막이 염불로 끝나는 점 등에서 중부지역 바리공주 무가의 특성을 보여줍니다.

바리공주의 남편은 처용대감處容大監이다.
따라서 어비대왕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기재된 처용랑處容郞을 말합니다.
처용에 관한 이야기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헌강왕憲康王(제49대 왕으로 875-886년 재위) 때 일이므로 어비대왕이 ‘삼국을 통치했다’는 말이 『성신말법聖神語法』에 적혀 있는 것입니다.
신라인은 처용의 형상을 그려 문에 붙임으로써 벽사辟邪했으며, 어비대왕이라는 명칭이 여기서 유래했습니다.
바다의 용왕龍王이 산호珊瑚를 궁궐宮闕로 삼는다고 하는 데서 산호궁珊瑚宮이란 말이 유래합니다.
부인을 역신疫神에게 빼앗기고 처용處容이 이를 보면서 물러갔다고 하며, 여기서 바리공주라는 이름이 유래했습니다.
지금 『삼국유사』의 처용 기사와 무속의 설화를 대조해보면 모든 명칭이 나온 근원을 가히 알 수 있습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처용랑處容郞」 망해사望海寺조에서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울산광역시 처량면 율리 산16-2번지에 망해사望海寺의 절터가 남아 있으며, 헌강왕대憲康王代(875-886)에 창건創建되었습니다.

제49대 헌강왕대憲康王代에 신라는 서울에서부터 동해바다에 이르기까지 집과 담장이 잇달아 있었으며, 초가는 한 채도 없었다. 악기와 노랫소리는 길거리에 끊이지 않았고, 바람과 비는 사철 순조로웠다. 그때(『삼국사절요三國史節要』 권 13에서는 헌강왕 2년이라고 했다) 대왕이 개운포開雲浦에 놀러갔다가 바야흐로 어가御駕를 돌리려고 했다. 낮에 물가에서 쉬는데,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해져 길을 잃게 되었다. 왕이 이상히 여겨 좌우에게 물으니, 일관日官이 아뢰기를 ‘이것은 동해東海의 용龍이 변괴變怪를 일으킨 것이오니 마땅히 좋은 일을 해주어서 이를 풀어야 합니다’라고 했다. 이에 유사有司에게 명령하기를 용을 위해 불사佛寺를 창건하라고 했다. 명령이 내려지자마자 구름이 걷히고 안개가 흩어졌는데, 이로 말미암아 이곳을 개운포開雲浦라 했다.

개운포開雲浦는 지금의 울상광역시 울주蔚州입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개운포는 군 남쪽 25리에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의 외황강 하류 처용리 일대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어가御駕란 왕이 타던 수레를 말합니다.
일관日官은 추길관諏吉官의 옛 명칭으로 길일吉日을 가리는 일을 맡아보던 벼슬입니다.
유사有司는 사무를 맡은 직책을 말합니다.

동해東海의 용龍이 기뻐하여 일곱 아들을 거느리고 어가御駕 앞에 나타나 대왕大王의 덕德을 칭송하며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했습니다.
그중 한 아들이 어가를 따라 서울로 와서 국왕의 정치를 보좌했는데, 칭하기를 처용處容이라 했습니다.
왕은 미녀를 아내로 삼게 하여 그 마음을 붙잡아두려 했으며, 또 급간級干의 벼슬을 주었습니다.
그의 아내가 매우 아름다웠기 때문에 역신疫神이 이를 흠모欽慕하여, 사람으로 변신해서 밤에 그 집에 들어가 몰래 동침했습니다.
처용은 밖에서 집으로 들어왔다가 잠자리에 두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물러났습니다.
이때 역신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꿇어앉아 말하기를 ‘내가 공公의 아내를 사모하여 방금 범해버리고 말았는데, 공은 이를 보고도 화를 내지 않으니, 감동했을 뿐만 아니라 정말 아름답게 여깁니다. 맹세하건대 앞으로는 공의 모습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문에는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나라 사람들은 처용處容의 형상形象을 문에 붙여서 사기邪氣를 물리치고 경사스러운 일들을 맞이하려 했습니다.

급간級干은 신라 17관등 중 아홉 번째 관등官等으로 급벌찬級伐湌, 급간級干이라고도 합니다.
신라에는 6두품六頭品, 즉 성골聖骨, 진골眞骨의 골족骨族 6-1두품의 두품 층으로 구성되는데, 6두품은 두품층 가운데 가장 높은 등급이었습니다.
급간은 6두품 이상의 신분身分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역신疫神은 병을 퍼뜨리는 신을 말합니다.

위의 이야기로 미루어 처용은 어비대왕이었고, 어비대왕이 거처하는 산호궁은 바다의 용궁이었으며, 처용의 아내라고 하는 미녀가 바리공주였습니다.
복사卜師와 박사博士 모두 옛날의 사무師巫를 이르는 말입니다.
우리 풍속에 남무를 ‘박사’라 하는 것은 복사 혹은 박사가 와전된 것입니다.
신라에 천문박사가 있었으며, 사무를 이렇게 칭한 것으로 보입니다.

『성신말법聖神語法』에 따르면 “바리공주는 무상선無上仙에게 시집가, 일곱 아들을 대동하고 영약靈藥을 가지고 와서, 이미 죽은 아버지를 회생시켰다”고 했습니다.
영약靈藥이란 동해東海 용왕龍王의 여의주如意珠 등을 말합니다.
용왕의 여의주로 아버지의 병을 구했다는 것은 『삼국사기三國史記』, 「김유신전金庾信 

 에 이른바 ‘동해 용왕의 딸이 심장병이 있었는데, 토끼의 간을 구해 치료하려 했다’는 설화에 나오는 것입니다.
「김유신전金庾信傳」에 따르면 고구려高句麗 왕王의 총신寵臣 선도해先道解가 김춘추에게 한 이야기입니다.
642년(선덕여왕 11) 김춘추의 딸과 사위가 백제군에 잡혀 죽자 김춘추는 이들의 복수를 위해 고구려에 청병하러 갔습니다.
그러나 고구려는 과거 신라에게 빼앗긴 영토를 되돌려달라고 하면서 오히려 김춘추를 억류했습니다.
이에 김춘추가 살 길을 찾기 위해 선도해에게 뇌물을 바치자, 선도해가 ‘거북과 토끼의 이야기’[귀토지설龜兎之說]을 들려주었습니다.
이를 통해 선도해는 김춘추에게 토끼처럼 행동할 것을, 즉 영토를 돌려주겠다고 해서 일단은 신라로 달아나고 보라는 점을 암시한 것입니다.

무당巫堂의 책 『성신말법』을 보면 순 한글로 되어 있는데, 기도와 축원의 목적은 신귀神鬼를 편안하게 하는 것이고, 신앙의 대상은 불타佛陀에 귀의歸依하는 데 있습니다.
불교의 시타림屍陀林 의식儀式에서는 신라 의상대사義相大師의 「법성게法性偈」를 염송하는데, 무당도 이렇게 합니다.
도량의 결계結界, 즉 불교 행사를 하는 일정 공간을 속계俗界와 구분하여 청정한 공간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염송念誦하는 글인 불교의 「결도량의문結道場儀文」에서 ‘첫째, 동방에 물 뿌리니 도량이 깨끗하고’ 운운하는 것도 무속에서 사용합니다.
『삼국유사』 신라 비처왕毗處王 대代의 「사금갑射琴匣」에는 내전內殿의 분수승焚修僧이 궁주宮主와 간통하다 죽임을 당했다는 내용이 있는데, 승려의 분수焚修조에 보이는 내전內殿의 분수승과 무당의 기축祈祝은 명칭만 다를 뿐 같습니다.
그러므로 승僧과 무巫의 접근, 신神과 불佛의 혼합混合은 이미 신라 때부터 있었던 것입니다.
이능화李能和는 신라 승려僧侶들이 향가鄕歌를 잘 지었으며, 지금 민속民俗의 「놀부가」, 이른바 「제비 다리」와 「용궁가」, 이른바 「토끼의 간」 등이 신라 승려의 손에서 나온 것으로 보았습니다.
무당의 기원하는 축문祝文도 승려에게서 나왔으나, 전승된 지 오래되었으므로 다소간 변화가 생긴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능화李能和는 승려가 지은 노래는 게송偈頌에서 비롯했고, 노래는 범패梵唄를 통해 익혔으므로 향가鄕歌와 무가巫歌를 창도하는 데 능했을 것으로 보았습니다.

시타림屍陀林 의식儀式은 범어 시타바나의 음역으로 원래 인도에서는 왕사성 박에 시신을 버리는 의식이 있었으나 한국에서는 상가에 가서 염불 등의 의식을 집전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말의 시달림이라는 말이 여기서 유래했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의상대사義相大師(625-702)는 신라시대 화엄종華嚴宗의 고승高僧입니다. 

「법성게法性偈」는 의상이 『화엄경華嚴經』의 내용을 알기 쉽게 요약하여 게송gatha으로 읊은 것입니다.
향가鄕歌는 향찰鄕札(한자의 음音과 훈訓을 차용한 말)로 기록되어 전하는 신라 때의 노래입니다.
범패梵唄는 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하는 노래로 ‘인도梵의 소리唄’란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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