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을 걸어둠 그리고 부적符籍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에 따르면 연산군燕山君 9년(1503년) 4월 29일 지평持平 권헌權憲이 아뢰었습니다.
“국무國巫 돌비乭非는 술법이 많아 거울을 방안에 걸어놓고 말하기를 ‘신이 그 안에 있는데 사람들은 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거울은 원형圓形의 청동제 무구巫具인 명두明斗 혹은 명도明圖를 말합니다.
앞면은 배가 부르고 뒷면에는 일日, 월月, 칠성七星 등의 글자를 새기거나 그 모양을 판 것입니다.
명두明斗는 보통 무신도巫神圖 상단의 중앙에 걸어 두는데, 굿당에 청배된 신이 머무는 곳으로 여겨집니다.
큰 무당인 신어머니가 제자인 신딸에게 대를 물릴 경우 그 상징물로 명두를 줍니다.
『연산군일기』에 따르면 이익李瀷이 『성호사설星湖僿說』에 적었습니다.
“시골 무당이 만명신萬明神을 숭상하고 받들어, 백성들에게 질병疾病이 있으면 곧 만명신에게 기도했다. 누가 말하기를 ‘만명萬明은 곧 신라 김유신金庾信의 어머니인데, 야합野合해서 서현舒玄에게로 달아난 사람’이라 했다. 이를 받드는 자는 반드시 큰 거울을 걸어놓았으며 거울은 반드시 활처럼 휜 모양인데, 이것은 아마 신라 풍속風俗일 것이다. 그러나 그 달아난 여자 귀신鬼神 주제에 어찌 천 년 동안 힘이 없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만명신萬明神은 ‘말명’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말명은 좁게는 죽은 여자의 영혼, 넓게는 죽은 영혼 모두를 가리킵니다.
말명과 혈연관계血緣關係에 있을 경우 말명은 조상신의 일종이 되기도 합니다.
만명부인萬明婦人은 갈문왕葛文王 입종立宗의 손녀이며, 진흥왕振興王의 아우인 숙흘종肅訖宗의 딸입니다.
가야 왕족 출신인 서현과 중매도 없이 야합野合했고, 서현이 지금의 충북 진천군인 만노군萬弩郡 태수太守로 가게 되자 함께 떠나려 했습니다.
그러나 숙흘종肅訖宗은 두 사람의 결합結合을 반대하여 만명萬明을 집에 가두고 사람을 시켜 지키게 했으나, 갑자기 벼락이 떨어져 지키는 사람들이 흩어진 틈에 서현과 함께 도망하여 만노군으로 갔습니다.
이 만명부인을 간혹 무조巫祖라 하고, 또 ‘말명’으로 이해하기도 하지만 양자를 동일시할 수 있을지는 미상입니다.
『연산군일기』에 따르면 연산군燕山君 9년(1503년) 4월 29일 경연에 납시었습니다.
지평持平 권헌權憲이 아뢰기를 “이 무녀는 술법이 많습니다. 놋그릇이 있는데, 이것을 부처님께 공양하는 그릇이라 하고, 또 부적을 가지고 민중들을 미혹시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무녀”란 국무國巫 돌비乭非를 가리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