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격巫覡의 술법術法: 공창空唱과 신탁神托
『성종실록成宗實錄』에 따르면 성종成宗 21년(1490년) 8월 5일 병조판서兵曹判書 이극돈李克墩이 와서 아뢰기를 “지금 번상番床이 되어 서울에 올라와 있는 충청도 보은군의 정병正兵 김영산金永山이 요사스러운 말로 사람들을 홀리자, 도성 안의 사대부집 아녀자들이 다투어 점을 치러가기 때문에 그가 이르는 곳마다 무리를 이룹니다”고 했습니다.
임금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요사妖邪한 말은 어떤 것이냐?” 하니, 이극돈이 대답하기를 “귀신鬼神이 공중에 있으면서 능히 지나간 일을 말할 수 있다고 핑계하니, 사대부집 여자들이 믿고 혹하지 않음이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극돈李克墩은 성종成宗 때 정계에 진출한 사림파와 반목이 심한 훈구파의 거목이었습니다.
『세종실록世宗實錄』에 따르면 세종世宗 25년(1443년) 8월 25일 의정부議政府에서 음사淫祀를 금지하는 법을 조목별로 진술했습니다.
“하나, 무녀들이 혹은 고금古今에 없는 신이라 일컫거나, 혹은 당대에 사망한 장수將帥나 재상宰相의 신이라 칭하면서 특별히 신의 이름을 만들어내고, 제 스스로 이르기를 ‘신이 내 몸에 내렸다’고 하며, 요망한 말로 여러 사람을 혹하게 하는 자는 ‘요망한 말이나 요망한 글을 조작한 데 대한 처벌규정’에 의하여 참형慘刑에 처하도록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