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점침卜命과 쌀점米卜
『용재총화慵齋叢話』에 따르면 태종太宗 때 이숙번李叔蕃과 칠원부원군 윤자당은 같은 배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기 달랐습니다.
윤자당의 어머니 남씨南氏는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되어 함양咸陽에서 살았습니다.
『용재총화慵齋叢話』는 조선 전기 성현成俔(1439-1504)의 수필집으로 전 10권입니다.
이숙번李叔蕃(1373-1440)은 제1차 왕자난과 제2차 왕자난 때 태종太宗을 도와 공을 세웠지만, 자기의 공만 믿고 안하무인眼下無人으로 행동行動하다가, 여러 차례 대간臺諫의 탄핵彈劾을 받아 결국 1417년 관직이 삭탈되고 함양에 유배되었습니다.
윤자당은 일곱 살 때 어머니를 따라 무당집에 가서 운명을 물어보았더니, 무당이 말하기를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아이는 귀한 상입니다. 그러나 이 아이는 반드시 동생의 힘 때문에 귀함을 얻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남씨가 말하기를 “과부의 아들이 어찌 동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했습니다.
그 뒤에 남씨는 이씨李氏 집으로 시집을 가서 아들을 낳았는데, 이 사람이 바로 재상 이숙번李叔蕃입니다.
윤자당은 이숙번의 힘으로 봉작封爵을 얻고 군君에 봉해졌습니다.
윤자당은 태종太宗 원년 좌명공신佐命功臣에 봉해졌고, 세종世宗 4년 칠원부원군漆原府院君에 봉해졌습니다.
이덕무李德懋는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무녀척미조巫女擲米條」에서 말했습니다.
“우리나라 무녀들은 흰 쌀을 소반에 쌓아놓고 그 쌀을 조금 집어서 던진 다음, 입으로 주문을 외우면서 손가락 끝으로 던진 쌀을 헤아려서 스스로 길흉吉凶을 안다고 말한다. 이 풍속風俗도 유래가 있으니 『요사遼史』에 ‘정월 초하룻날이면 창문으로 올라가 쌀 덩어리米團(미단)을 던져 홀수가 되면 불리하다고 여겼다’ 했으니, 이 쌀 덩어리란 것은 경단粉團(분단)의 일종이 아닌가 한다.”
이덕무李德懋(1741-93)는 서얼庶孼 출신出身이기 때문에 크게 등용되지 못했으나 1778년(정조正祖 2년) 북경北京을 다녀와서 북학北學을 제창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는 이덕무의 시문 전집으로 71권 25책이며, 청장관靑莊館은 이덕무의 호입니다.
「무녀척미조巫女擲米條」는 무녀巫女가 쌀을 뿌려 점米卜을 치는 것에 대해 언급한 조목입니다.
『요사遼史』는 중국 요遼나라의 역사歷史를 기록한 기전체紀傳體 사서로 전 116권입니다.
경단粉團(분단)은 찹쌀가루 따위를 반죽하여 밤톨만한 크기로 빚은 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