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살법接煞法과 칼날 위를 뛰면서 추는 춤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말했습니다.
“『이견지夷堅志』에는 ‘동성이랑董城二郞이라는 사람이 죽어서 염습殮襲을 마친 다음, 집안 식구들이 당시의 풍습에 따라 부엌 앞에 재를 가늘게 채쳐두고 그 위에 시루를 덮어두었다. 그것은 사자死者가 간 곳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아침 일찍 시루를 들어보니 재위에는 거위 발자국 두 개가 분명하게 찍혀 있었다’는 설화가 실려 있다. 이것이 지금 접살법接煞法이라 하는 것이고, 우리나라 풍속風俗에서는 반혼返魂이라 일컫는 것이다. 접살接煞이란 비록 억지로 해석하기가 어렵지만, 저영儲泳의 『거의설袪疑說』에는 다음과 같은 언급이 있다. ‘사람이 죽으면 죽은 날의 살기煞氣를 받는다. 음양가陰痒家의 기록한 바에 의하면 자살雌煞과 웅살雄煞이 있고, 또 살기가 나가는 것도 있고 나가지 않는 것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설은 믿을 수 없지만, 자살刺殺이 나가지 않으면 죽은 이의 오른쪽 발이 뒤틀려 왼쪽을 향하고, 웅살雄殺이 나가지 않으면 사자死者의 왼쪽 발이 뒤틀려 오른쪽을 향한다. 그리고 자살과 웅살이 모두 나가지 않으면 두 발이 모두 바깥을 향하고 뒤틀리지 않는다고 하니, 어찌 이상한 일이 아닌가’라 했다.”
『이견지夷堅志』는 남송南宋의 홍매洪邁(1123-1202)가 편찬한 괴기소설집으로 전 206권입니다.
염습殮襲은 시신을 씻긴 뒤 옷을 입히고 염포로 묶는 일을 말합니다.
반혼返魂이란 불교佛敎에서 사자死者를 화장하고 그 혼魂을 집으로 돌로 불러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이능화李能和는 『조선무속고朝鮮巫俗考』에서 반혼返魂을 속칭俗稱 ‘넋두리’(굿에서 무당이 사자死者의 넋이 실려 하는 말)라 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우리 맹속氓俗(풍속이란 뜻)에 무당巫堂으로 하여금 신사神事를 하여 사자死者의 혼魂을 부르는 일이 있다. 무당이 망인亡人의 말로 생전의 소위사所爲事를 일일이 든다. 간혹 제이인第二人도 모르는 은밀한 관계를 집어내어 가인家人으로 하여금 놀라게 한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것을 중국의 접살接煞과 동일시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참고로 요즈음은 반혼이라면 장사 후 신주神主를 집으로 모시고 오는 일을 말합니다.
저영儲泳은 송대宋代 사람. 정확한 생몰년生沒年을 알 수 없다. 시명詩名이 있었고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에 정통했습니다.
『거의설袪疑說』은 각종 무술巫術의 신빙성信憑性을 논파하고자 한 저술입니다.
이규경李圭景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말했습니다.
“무당이란 비록 천한 기예技藝이지만, 옛날과 지금을 따져서 그 우열優劣을 논한다면 형초荊楚, 오월吳越 지방의 큰 무당巫堂이다. 물동이를 입술에 붙인다든지 맨발로 예리한 칼날을 밟는 것 따위에 이르러서는 혹시 요사한 귀신을 끼고서 그 기술의 신기하고 이상함을 자랑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또 이것은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낚싯밥인데, 사람들로 하여금 그 술법에 빠져서 현혹되어 맹종하도록 하는 것이다.”
형초荊楚는 중국 호북성, 호남성 일대를 말합니다.
오월吳越은 중국 절강성, 강소성 일대를 말합니다.
중국 삼국시대三國時代 오吳나라의 책사 장굉張紘(?-?)이 중국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문학자진림陳琳(?-217)에게 준 편지에 대해 진림의 답장에서 ‘작은 무당이 큰 무당巫堂을 보면 신기神氣가 소진消盡해버린다’고 했습니다.
“맨발로 예리한 칼날을 밟는 것 따위”란 요망한 무당이 술법術法을 행行할 때 물동이를 들어 입술에 붙이는데 떨어지지 않으며, 또 물동이 위에 칼날을 세워놓고 맨발로 칼 날 위에서 춤을 추어도 발이 끊어지지 않고 물동이도 깨어지지 않습니다.
요사妖邪한 귀신鬼神을 끼고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