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를 ‘단순한 하나의 세포 덩어리’로 표현

 

 

 

 

우리는 앞에서 낙태에 찬성하는 주장을 살펴보며 태아를 ‘단순한 하나의 세포 덩어리’라고 표현한 바 있다. 아무런 느낌이나 의식이나 의지가 없는 단순한 하나의 유기체로 본 것이다. 신생아는 그보다는 진보한 상태에 있겠지만, 정상적인 인간의 완성도 기준에서 보면 미숙할 것이다. 그렇지만 유아와 태아 사이에 나타나는 차이는 동물과 식물 사이에 나타나는 차이와는 많이 다를 것이다. 이는 잠재력을 염두에 둔 것이다. 식물과 연체동물 그리고 소와 양 같은 것들은 현재 상태보다 훨씬 더 수준 높은 상태로 발달할 수 없다. 그러나 다른 모든 조건이 같다고 가정할 때, 태아나 유아는 크게 발전하여 훨씬 더 높은 수준으로 올라갈 것이다. 바로 여기서, 생명의 신성함을 내세우는 사람은 낙태에 반대할 명분을 찾아낸다. 육식하는 사람은 낙태에 찬성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반대할 수 있는 것은 태아에게 완전한 성인으로 발전할 잠재력이 있고, 따라서 그에 상당하는 내재적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비록 태아의 현재 상태가 단순한 세포의 집합체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태아에 깃들어 있는 내적 구조는 엄마의 적절한 도움을 받아 온전한 인간의 기준을 충족하는 존재로 발달해갈 것이다. 그 반면, 식물과 연체동물은 말할 것 없고, 소나 양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결코 그렇게 발달할 수가 없다.
생명을 신성한 것으로 보는 견해는 안락사에 대해서도 앞선 예와 비슷한 문제에 부딪힌다. 우리가 보았듯이, 인간 완성도의 기준에서 보면, 동물에게는 내재적 가치가 없으므로 육식해도 좋다고 할 만한 이유가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그렇지만 같은 논리를 연장해가면, 식물인간이나 알츠하이머로 지적 장애가 심각한 사람 역시 내재적 가치가 없거나 상실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말이 성립한다. 지적 악화 과정이 돌이킬 수 없는 단계에 이르러 더 수준 높은 단계의 능력을 영영 회복할 수 없음이 분명해질 수도 있다(물론 안락사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회복할 수 없다는 것을 과연 누가 어떻게 판정하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 환자는 온전한 인간 완성도의 기준에 비추어 더는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한다. 나아가 낙태문제에서는 태아의 발달 잠재성을 고려할 수 있었으나, 이런 환자에게서는 그 같은 잠재성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환자는 자꾸만 상태가 나빠지다 결국 죽고 말 것이다. 그런데도 생명의 신성함을 내세우는 논자들이, 그와 반대되는 대안을 제시하면서 이 환자가 온전한 사람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없다고 해도 한때는 온전한 사람이었음을 주장한다면, 이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지적 장애에 빠진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은 모두 꺼리기 때문일까? 이때 안락사를 정당화할 수 있을까? 여기서 제기되어야 할 또 하나의 문제는 본래부터 심각한 지적 장애를 안고 태어난 사람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관한 것이다. 이런 지적 장애인에게는 아무런 내재적 가치가 없다고 보아야 옳을까? 그리하여 편의에 따라 이들에게 안락사를 시행해도 되는 것일까?
끝으로 다시 동물문제로 돌아가자. 우리는 인간적 완성도의 기준을 내세우는 논리를 육식을 옹호하는 논리와 같은 것으로 간주했다. 그 논리가 다른 영역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살펴본 사람은 다음과 같이 논고하려 할 것이다. 지적 장애인의 안락사가 허용될 수 있다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지적 장애인도 여느 사람과 다름없이 생명의 권리를 지닌다. 이들 장애인이, 그 논리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인간적 완성도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처음부터 장애인에게는 기준이 너무 가혹할 정도로 높게 설정되었다. 본래부터 지적 장애를 안고 태어난 사람들을 편의에 따라 아무렇게나 다루어서는 안 되므로 이들을 위해 인간적 완성도의 기준을 낮춰야 한다. 지적 장애인을 볼 때, 인간은 괴로움과 즐거움을 느끼고, 의사소통하고, 감정에 반응하고, 지적 사고를 하는 능력이 있는 한, 생명의 권리를 지닌다고 할 것이다. 그렇지만 더 수준 높은 능력을 지닌 몇몇 종류의 동물에게도 이런 능력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논리상 일관성이 있으려면, 육식을 옹호하는 논리에 반대해야 마땅하다. 지적 장애인에게 생명의 권리가 있다면, 마찬가지로 고등동물에게도 생명의 권리가 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마음대로 처분해서는 안 될 만큼 어떤 생명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관하여 생각해보았다. 어떤 생명에는 왜 이러한 가치가 있는가를 설명하기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복합적인 일들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바로 앞 단락에서 제시한 주장은 이에 관한 논의가 그릇된 가정을 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즉 모든 인간에게 그런 복합적 행위들을 할 능력이 있다는 식으로 가정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세상에는 그런 능력이 없는 일단의 사람들, 예를 들면 심한 지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긴 하지만 우리는 이들이 오직 사용 가치만을 지닌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 장애인들이 진정 생명의 권리를 지닌다면, 동물이 세련된 행위를 할 능력이 없다는 이유만을 내세워 육식을 정당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해도 된다면, 극심한 지적 장애인을 처분하거나 심지어 먹는 것도 허용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므로 앞의 주장은 하나의 도전장이 아닐 수 없다. 결국 비교적 지능이 발달한 동물까지 포
함할 정도로 인간 완성도의 기준을 낮춰서 극심한 지적 장애인들까지 구제대상에포함하거나, 동물은 물론 지적 장애인들도 포함될 수 없을 정도로 인간 완성도의 기준을 높이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동물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곧 일부의 어떤 인간들을 죽일 수 있다는 주장을 받아들이는 결과가 된다.
피터 싱어는 이런 식의 주장을 내세워 모든 동물을 평등하게 다뤄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했다.1) 그는 육식은 할 수 있지만 상태가 심각한 장애인을 죽여 없애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는 식의 상식론적 견해를 비판한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이것이야말로 아무 원칙적 근거조차 없는 인간의 종적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종차별이나 성적 학대 같은 다른 모든 형태의 차별과 마찬가지로, 지지를 받을 수 없다고 그는 주장한다. 싱어는 이를 가리켜 동물에 대한 ‘종차별주의speciesism’로서 도덕적 상태에 대한 무지라고 했다.
이 절의 논의는 아직 낙태나 안락사, 동물의 권리 같은 여러 문제 영역에 대한 종합적 평가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각 영역에 관한 논의에서 핵심을 이루는 문제를 살펴보았다. 말하자면 그 문제란 어떤 존재가 생명의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 갖추어야 할 요건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가 (1) 모든 존재에게 생명의 권리가 인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2) 어떤 존재에게 생명의 권리를 인정하고 다른 존재에게는 부정하는 것은 단순한 변덕이나 즉흥에서가 아니라고(또는 변덕이나 즉흥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한, 이러한 요건은 인정될 듯하다. 이것이 옳다면 특정 부류의 존재를 죽이는 것이 허용되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적어도 부분적으로 그러한 요건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와 어느 특정 존재가 그러한 요건을 충족하는가 하는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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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맹姜希孟의 훈자오설訓子五說(도자설盜子說)

 

 

훈자오설訓子五說이란 자식을 훈계한 다섯 가지 이야기로 도자설盜子說(도둑의 아들), 담사설膽巳說(뱀을 잡아먹음), 등산설登山說(높은 산에 오름), 삼치설三雉說(꿩을 잡는 이야기), 요통설曜通說(오줌통의 이야기)을 말한다.

도자설盜子說

도둑질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아들에게 자신의 솜씨를 모두 가르쳐 주었다. 아들은 자신의 재능을 자부하여 자기가 아비보다도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도둑질을 나갈 때에는 언제나 아들이 먼저 들어가고 나중에 나오며 가벼운 것은 아비에게 맡기고 무거운 것을 들고 나왔다. 게다가 먼 곳에서 나는 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고 어둠속에서도 사물을 분별하는 능력이 있어서 도둑들 간에 기림의 대상이 되었다.

하루는 아비에게 자랑삼아서, “내가 아버지의 솜씨에 비해 조금도 손색이 없고, 억센 힘은 오히려 나으니 이대로 나간다면 무엇은 못하겠습니까?” 하니, 아비 도둑이, “아직 멀었다. 지혜란 배워서 이르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어서 자득自得함이 있어야 되는 것이다. 그러니 너는 아직 멀었다” 하였다. 아들 도둑이 “도둑이란 재물을 많이 얻는 것이 제일인데, 나는 아버지에 비해 소득이 항상 배나 되고 나이도 아직 젊으니 아버지의 연배가 되면 틀림없이 특별한 재주를 터득하게 될 것입니다” 하니 아비 도둑이 다시 “그렇지 않다. 나의 방법을 그대로 행하기만 해도 겹겹의 성에도 들어갈 수 있고 깊이 감춘 물건도 찾아낼 수 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화가 따른다. 아무런 단서도 남기지 않고 임기응변하여 거침이 없는 그런 수준은 자득의 묘妙를 터득한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너는 아직 멀었다” 하였지만 아들은 건성으로 들어 넘겼다.

다음날 밤 아비 도둑은 아들을 데리고 어느 부잣집에 들어갔다. 아들을 보물창고 안으로 들어가게 하고는 아들이 보물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을 때쯤 밖에서 문을 닫고 자물쇠를 건 다음 자물통을 흔들어 주인이 듣게 하였다. 주인이 달려와 쫓아가다가 돌아보니 창고의 자물쇠는 잠긴 채였다. 주인은 방으로 되돌아갔고 아들 도둑은 창고 속에 갇힌 채 빠져 나올 길이 없었다. 그래서 손톱으로 박박 쥐가 문짝을 긁는 소리를 냈다. 주인이 소리를 듣고 “창고 속에 쥐가 들었군. 물건을 망치니 쫓아버려야지.” 하고는 등불을 들고 나와 자물쇠를 열고 살펴보려는 순간. 아들 도둑이 쏜살같이 빠져 달아났다. 주인집 식구들이 모두 뛰어나와 쫓았다. 아들 도둑은 더욱 다급해져서 벗어나지 못할 것을 알고는 연못가를 돌아 달아나다가 큰 돌을 들어 못으로 던졌다. 뒤쫓던 사람들이 “도둑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하고는 못가에 빙 둘러서서 찾았다. 아들 도둑은 그 사이에 빠져나갔다. 집으로 돌아와 아비에게 “새나 짐승도 제 새끼를 보호할 줄 아는데, 제가 무슨 큰 잘못을 했다고 이렇게 욕을 보입니까?” 하며 원망하였다. 아비 도둑이 “이제 너는 천하의 독보적인 존재가 될 것이다. 사람의 기술이란 남에게서 배운 것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지만 스스로 터득한 것은 그 응용이 무궁한 법이다. 더구나 곤궁하고 어려운 일은 사람의 심지心志를 굳게 하고 솜씨를 원숙하게 만드는 법이다. 내가 너를 궁지로 몬 것은 너를 안전하게 하자는 것이고 너를 위험에 빠뜨린 것은 너를 건져 주기 위한 것이다. 네가 창고에 갇히고 다급하게 쫓기는 일을 당하지 아니하였던들 어떻게 쥐가 긁는 시늉과 돌을 던지는 기발한 꾀를 냈겠느냐. 너는 곤경을 겪으면서 지혜가 성숙해졌고 다급한 일을 당하면서 기발한 꾀를 냈다. 이제 지혜의 샘이 한번 트였으니 다시는 실수하지 않을 것이다. 너는 천하의 독보적인 존재가 될 것이다”하였다. 그 후에 과연 그는 천하제일의 도둑이 되었다.

도둑질 같은 악한 일도 반드시 자득自得의 묘妙를 터득한 뒤에야 비로소 천하제일이 될 수 있었다. 하물며 도덕과 공명에 뜻을 둔 선비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대대로 벼슬하여 국록國祿을 누리는 집 자식들은 인의를 행하는 것이 얼마나 훌륭한 일인지, 학문을 연마하는 것이 얼마나 유익한 것인지는 모른 채 현달하고 나면, “선대의 공업을 능가할 수 있다”고 함부로 말하는데. 이는 바로 아들 도둑이 아비에게 자랑하는 꼴이다. 만약 높은 것을 사양하고 낮은 데를 택하며 호방한 것을 버리고 담박한 것을 좋아하며 자신을 굽히고 학문에 뜻을 두어 성리性理의 연구에 마음을 쏟아서 습속에 휩쓸리지 아니할 수 있다면 능히 남들과 대등해질 수도 있고, 공명도 이룰 수 있으며, 등용되면 자신의 경륜을 행하고 등용되지 아니하면 자신의 길을 지켜서 어떤 경우라도 합당하지 않음이 없게 되리니, 이는 바로 아들 도둑이 곤경을 겪으면서 지혜가 성숙해졌고 마침내는 천하의 독보적인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것과 같다.

너도 또한 이 경우와 비슷하다. 도둑이 창고에 갇히고 다급하게 쫓기던 그와 같은 곤경을 겪는 어려움을 피하지 말아서 마음속에서 자득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이 말을 잊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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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압指壓이 무엇입니까?

 

 

지압指壓(Acupressure)은 엄지손가락의 지문이나 손바닥 등으로 몸 표면의 일정 부위를 압박함으로써 생체의 변조變調를 교정하거나 건강의 증진 또는 질병의 치료를 도모하는 수기요법手技療法이다. 종래의 안마를 중심으로 하여 유도柔道의 활법活法(유도에서, 목조름을 당하여 가사假死 상태에 빠진 사람에게 인공호흡 따위를 시켜 되살아나게 하는 방법)이나 도인導引(도가道家가 실시하는 양생법) 등을 가미하여 만들어진 독특한 경험요법이며, 여기에 미국으로부터 도입된 카이로프랙틱chiropractic의 이론과 수기手技를 함께 엮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수기로서는 척주교정법, 술자의 엄지손가락에 의한 보통 압법, 각 관절의 운동조작 등 세 가지가 있다.

손바닥이나 엄지 등으로 누를 뿐이지만, 지압의 요점은 단지 손끝으로 누르면 된다는 것이 아니라 술자의 몸 전체의 무게를 피술자의 몸의 굳은 정도에 따라서 가감하면서 손끝에 압력을 주어가는 듯이 한다. 압력의 정도에는 경중輕重·완급緩急·점증漸增·점감漸減·충격 등의 변화를 주면서 안배하며 압반사壓反射에 의한 효과적인 생체반응을 기대해야 한다. 손끝만으로의 지압에서는 오히려 통증만을 느낄 경우가 있다. 또 누르는 방향도 피술자의 몸의 중심을 향하는 모양으로 하여 항상 수직압垂直壓의 원칙을 지키도록 주의해야 한다. 압법을 실시하는 부위의 간격은 대체로 3~5cm로 중앙으로부터 말초방향으로 차례차례 눌러나가면 된다.

몸의 각 관절을 생리적 운동의 한계까지 구부리거나 펴는 운동조작도 지압의 한 종류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관절운동이 원활해지고 전신의 생리적 조정이 이루어진다. 또한 몸이 가벼워지고 기분이 상쾌해진다.

고혈압·불면증·신경통·류머티즘·위장병 외에, 견통·두통·피로 등 적응범위는 넓으나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금기이다. 피술자가 극도로 쇠약해졌을 때, 38℃ 이상의 열이 있고 전신에 통증이 있을 때, 화농성 질환이나 습진 등의 피부병이 있을 때, 악성종양이 있을 때, 충수염 등 급성 질환일 때는 지압을 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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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맹姜希孟이 누구입니까?

 

 

강희맹姜希孟(1424~1483)은 본관이 진주晉州, 자는 경순景醇, 호는 사숙재私淑齋, 운송거사雲松居士, 국오菊塢, 만송강萬松岡이다. 할아버지는 고려 말에 벼슬하여 정당문학政堂文學 겸兼 대사헌大司憲이 되었고, 조선에 들어와 동북면東北面 도순문사都巡問使가 되어 문장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그가 휘 석덕碩德을 낳았으니, 호는 완역재玩易齋이다. 그가 강희맹의 부친으로, 박학하고 문장에 능했는데, 한번 과거 보아 합격하지 못하자 탄식하기를, “도의道義라는 숭상할 만한 것이 있거늘 무엇 때문에 과거 과목을 공부하겠는가?” 하고, 응시하지 않았다. 어머니 심씨沈氏는 영의정 안효공安孝公 휘 온溫의 따님인데, 안효공은 소헌 왕후昭憲王后(세종비)를 낳았으므로, 왕비 친가親家의 인척이 되어 경복慶福을 양성하여 문벌門閥이 빛나게 번성했다. 완역재공은 어려서 음직蔭職에 보임되어 관직을 두루 거쳐 4품에 이르렀는데, 안효공의 총애와 세력이 날로 더해지는 것을 보고 또 조급히 승진하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아서 안효공에게 관직에 임용하는 것을 늦추어 줄 것을 청했다. 안효공이 몰락하기에 미쳐 좌절한 채 다시 벼슬에 나갈 생각이 없었는데, 세종이 발탁해 중용하여 승지承旨ㆍ대사헌大司憲ㆍ이조참판吏曹參判ㆍ호조참판戶曹參判ㆍ형조참판刑曹參判을 역임하고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에 승진했으며, 죽은 뒤 대민戴敏이라 시호를 내렸다.

강희맹은 1447년(세종 29) 24세로 친시문과에 장원급제한 뒤 종부시주부宗簿寺主簿가 되었다. 1450년 예조좌랑과 돈녕판관을 역임하고, 1453년(단종 1) 예조정랑이 되었다. 1455년(세조 1)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고 세조로 등극하자 원종공신 2등에 책봉되었고, 그 뒤 예조참의·이조참의를 거쳐, 1463년 중추원부사로서 진헌부사進獻副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 부윤으로서 어제구현재시御製求賢才試에 2등으로 합격하고, 1466년 발영시拔英試에 3등, 등준시登俊試에 2등으로 급제했다. 세조의 총애를 받아 세자빈객이 되었으며, 예조판서를 거쳐 1467년에는 형조판서로 특배되었다.

1468년(예종 즉위년)에 남이南怡의 옥사獄事를 다스린 공으로 익대공신翊戴功臣 3등에 책봉되어 진산군晉山君에 봉해지고, 1471년(성종 2)에는 좌리공신佐理功臣 3등에 책봉되었다. 그해에 지춘추관사로서 신숙주申叔舟 등과 함께 ≪세조실록≫·≪예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했다.

1473년에는 병조판서가 되고, 이어서 판중추부사·이조판서·판돈녕부사·우찬성을 역임한 뒤, 1482년에 좌찬성에 이르렀다. 인품이 겸손하고 치밀해 맡은 일을 잘 처리했으며, 또 경사經史와 전고典故에 통달했던 당대의 뛰어난 문장가였다. 사대부로서의 관인적 취향과 섬세한 감각을 가진 문인이면서도 농촌 사회에 전승되고 있는 민요와 설화에 깊은 관심을 가져 관인문학官人文學의 고답적인 자세를 스스로 파괴했다.

그의 ≪농구십사장農謳十四章≫은 생활 주변에서 채집한 농요를 모아 정리한 것으로 농민들의 애환과 당시 농정農政의 실상이 잘 묘사되어 있으며, 그의 시 중에서 그것보다 앞서는 것이 없다는 평을 받았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형의 시집인 ≪진산세고晉山世稿≫를 편찬했으며, 세조 때 ≪신찬국조보감新撰國朝寶鑑≫·≪경국대전≫의 편찬과 사서삼경의 언해, 성종 때는 ≪동문선≫·≪동국여지승람≫·≪국조오례의≫·≪국조오례의서례≫ 등의 편찬에 참여했다.

또한, 소나무와 대나무 및 산수화를 특히 잘 그렸는데, 현재 일본의 오구라문화재단小倉文化財團에 소장되어 있는 <독조도獨釣圖>는 그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글씨로는 원각사비圓覺寺碑의 액전額篆, 아버지와 강지돈姜知敦 묘표의 액서額書, 합천홍류동체필암각陜川紅流洞泚筆巖刻 등을 썼다.

저서로는 성종의 명에 따라 서거정徐居正이 편찬한 ≪사숙재집私淑齋集≫ 17권 이외에 ≪금양잡록衿陽雜錄≫·≪촌담해이村談解頤≫ 등이 전하고 있다. 시호는 문량文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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궐기厥氣로 벙어리가 되면

 

 

궐기厥氣(기가 고르지 못해서 위로 치미는 것)가 울대 쪽으로 몰려 말을 잘하지 못하고 손발이 차며 대변이 잘 나가지 않는 데는 족소음경맥의 침혈을 쓴다. 그리고 갑자기 소리를 내지 못할 때에는 어떻게 침을 놓아야 하는가 하고 황제가 물으니 기백이 답하기를󰡒족소음경맥이 위로는 혀와 연결되었고 설골橫骨을 통해서 회염會厭에 와서 끝났는데 이 혈맥의 좌우를 사혈瀉血하면 탁기濁氣가 곧 없어집니다. 회염의 맥은 올라가서 임맥任脈과 통하였는데 천돌天突혈을 치료하면 회염이 곧 동합니다󰡓하고 답하였다[영추].

어떤 남자가 오랜 병으로 가래가 나오면서 기침을 하다가 갑자기 풍한에 감촉되고 술과 고기를 먹어서 궐기가 생겨 인후에 몰렸기 때문에 갑자기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좌우 풍륭혈에 뜸을 각각 3장씩 뜨고 좌우 조해照海혈에 각각 1장씩 떠주었는데 곧 말을 하였다. 그 다음 속썩은풀(황금)을 화를 내리기 위한 군약君藥으로 하고 살구씨(행인) , 귤껍질陳皮, 도라지(길경)를 궐기厥氣를 사하기 위한 신약으로 하고 가자로 치미는 기운을 사하고 감초로 원기를 조화시키기 위하여 좌약으로 넣어 먹였는데 잘 나았다[강목].

벙어리가 되는 것은 음분陰分에 사기가 침범했기 때문이다.『내경』에󰡒사기邪氣가 음과 부딪치면 벙어리가 된다. 또한 사기가 음에 침범하여 부딪치면 벙어리가 된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벙어리에는 두 가지 증이 있다. 그 한 가지는 혀가 잘못되어 벙어리가 된 것인데 이것은 중풍中風으로 혀가 잘 놀려지지 못하게 된 것이다. 다른 한 가지는 울대가 잘못되어 벙어리가 된 것인데 이것은 허로虛勞로 기침을 하다가 목이 쉰 것이다. 혀가 잘못된 벙어리는 혀가 잘 놀려지지 않아 말을 하지 못하지 목구멍에서는 여전히 소리가 나온다. 울대가 잘못된 벙어리는 목구멍에서 소리가 쉰 것이지 혀는 제대로 말을 할 수 있게 잘 놀려진다[강목].

오장에서 생긴 기침이 오래되면 목 쉰 소리聲嘶를 한다. 목 쉰 소리는 울대가 상한 것이지 인두의 병은 아니다[득효]. 힘을 들여 목청을 내서 목 쉰 소리를 하는 것은 바로 기氣가 허虛하고 위기衛氣가 몹시 차진 것이다[입문]. 기침을 하여 목이 쉰 것은 혈血이 허해지고 열을 받은 것이다. 이런 데에는 청대와 조가비가루를 꿀에 반죽하여 알약을 만들어 입에 물고 녹여 먹는다[단심]. 목 쉰 소리를 하는 데는 시호승마탕, 윤폐환, 밀지전이 좋다.

신겁증은 목 쉰 것과 비슷하다腎怯與失音相似. 병으로 토하고 설사한 뒤와 중병을 앓은 뒤에 목소리는 낼 수 있으나 말이 되지 않는데 이때에 약을 먹을 수 있는 것은 목이 쉰 것이 아니고 신겁腎怯증이다. 이것은 신기腎氣가 위로 올라가지만 양기陽氣와 잘 접촉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이런 데는 보신지황원補腎地黃元을 주로 쓴다. 목이 쉰 것은 풍한에 접촉되어서 갑자기 생기는 것이다[전중양].

누울 수도 없고 숨 쉴 때마다 소리가 나는 것息有音은 양명경陽明經의 기운이 거슬러 오르기 때문이다. 족삼양경足三陽經의 기운은 내려가야 하는데 도리어 거슬러 오르면 숨 쉴 때에 소리가 난다. 그리고 양명경은 위胃의 경맥인데 양명경의 기운이 거슬러 올라왔다가 제 길로 잘 내려가지 못하면 눕지 못하게 된다. 자고 일어나는 것은 여전하면서 숨 쉴 때 소리가 나는 것은 폐肺의 낙맥絡脈이 거슬러 오르기 때문이다. 낙맥에 병이 생겼을 때의 증상은 경輕하다. 그러므로 자고 일어나는 것은 별일 없는데 숨 쉴 때 소리가 난다[내경].

내상內傷으로 허손虛損되어 목구멍이 헐고 목이 쉰 것不治證을 치료하는 방법은 없다[입문]. 오장 기운이 이미 허탈해 정신이 없고 목 쉰 소리를 하는 것은 죽는다[편작]. 음양이 다 끊어지고 목이 쉬어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3일반 만에 죽는다[화타].

보통 목소리가 맑지 못한 데에는 가미고본환, 가미상청환, 요량환, 발성산, 가자산, 가자청음탕 등 목소리를 내게 하는 처방을 쓰는 것이 좋다.

건시乾柿(곶감)은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는 데 좋다. 물에 담갔다가 늘 먹어야 한다[본초].

호마유胡麻油(참깨기름)는 벙어리를 치료하는 데 주로 쓴다. 폐를 눅여 주려면 참대기름이나 생강즙 같은 것을 타서 먹어야 좋다.

계자鷄子(달걀)은 많이 먹으면 목소리가 잘 나온다. 물에 두 번 끓어오르게 삶아서 그 물과 같이 먹는다[본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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