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시는 비극과 동일해야 한다




무대에서의 행동 없이 단지 운문으로 모방하는 시는 비극과 공통점이 있다.
그 스토리의 구성은 드라마의 그것과 같아야 한다.
즉 스토리가 시초, 중간, 종말을 가진 하나의 전체적이며 완결된 행위를 취급해야 한다.
그래야만 고유한 쾌감을 산출할 수 있다.

그 밖에도 서사시는 비극과 동일해야 한다.
서사시에도 급전, 발견, 파토스가 필요하다.
그리고 사상과 조사도 나름대로 훌륭해야 한다.
이런 모든 요소를 최초로 그리고 적절하게 사용한 시인이 호메로스이다.
그의 두 시는 각각 그 구성이 상이한데, 『일리아스』는 단순하고 파토스적이며, 『오뒷세이아』는 복잡하고 성격적이다.
이 두 시는 조사와 사상에 있어서 다른 작품들을 모두 능가한다.

그러나 서사시는 길이와 운율에서 비극과 상이하다.
1. 서시사의 길이는 시초와 종말을 통관할 수 있는 정도라야 한다.
한 번의 관람에 제공되는 분량의 비극만큼 길면 충족될 수 있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비극은 여러 부분이 동시에 진행되는 사건을 모방할 수 없고, 오로지 무대에서 배우에 의해 연출될 수 있는 부분에만 국한되는 데 반해 서사시는 서술 형식이므로 동시에 일어나는 많은 사건들을 그릴 수 있다.

2. 운율과 관련하여 영웅시의 운율(장단단격 육절운율daktylic hexameter)이 서사시에 적합하다.
영웅시의 운율은 모든 운율 중에서 가장 안정성이 있고 무게 있는 운율이기 때문에 서사시는 다른 시들을 능가한다.
이에 비해 단장격 운율과 장단격 운율은 동적 운율로서 전자는 행동에, 후자는 무용에 적합하다.

서사시에는 경이로운 것이 더 많이 허용되는데, 그 까닭은 서사시에는 행위자가 우리 눈앞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헥토르를 추격하는 장면이 무대에서 연출된다면 우스꽝스러울 것이다.
경이로운 것은 쾌감을 준다.

거짓말을 제대로 조작하는 방법을 다른 시인들에게 가르쳐준 사람은 바로 호메로스였다.
거짓말을 조작한다함은 오류 추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가능하지만 믿어지지 않는 것보다는 불가능하지만 있음직한 것을 택하는 편이 좋다고 말한다.
스토리는 있음직하지 않은 사건으로 구성되어서는 안 되고 그와 같은 사건은 되도록 하나도 포함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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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작시술



아리스토텔레스는 시인은 화가와 그 밖의 모상模像 작가와 마찬가지로 모방자이므로 사물을 항상 세 가지 국면 중 하나에서 모방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시인은 사물이 과거나 현재에 처해 있다고 말해지거나 생각되는 상태를 모방하거나 또는 사물이 마땅히 처해야 할 상태를 모방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이런 모든 것을 시인은 언어로 표현함에 있어서 방언이나 은유 등 여러 가지 변화된 형태의 말을 혼용할 수 있다.
시인이 사물을 올바르게 모방하려고 했으나 능력 부족으로 인해 실패했다면 그것은 그의 작시술 자체에 관련된 과오이다.
그러나 시인이 말을 그리는데 동시에 두 오른발을 앞으로 내딛게 그림으로써 사물을 올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그리는 기술상의 과오를 범했거나 혹은 여하한 종류의 것이든 불가능한 것을 그렸다면 그가 범한 과오는 작시술 자체에 관련된 것은 아니다.

시인이 불가능한 것을 그렸다면 과오를 범한 것이지만, 그 과오가 시의 목적에 기여한다면 정당화될 수 있다.
등장인물들의 언어와 행동을 도덕적으로 판단하려면 언어와 행동만을 보고 판단할 것이 아니라 행동자나, 말하는 자, 그 상대자, 때, 수단, 동기 등을 고찰한 뒤에 판단해야 한다.
어떤 말이 모순을 내포했다고 생각될 경우 문제의 구절에서 그 말이 얼마나 많은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고찰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불가능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시의 목적에 이바지하거나 이상 상태를 말하거나 혹은 세인들의 견해일 경우 정당화될 수 있다고 말한다.
시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믿어지지 않는 가능사보다는 믿어지는 불가능사를 택해야 하는데, 예술가는 모델보다 더 나은 것을 그리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불합리한 것도 때로는 정당화될 수 있는데, 있음직하지 않은 일이 일어나는 것도 있음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시인의 언어에서 모순점을 검토할 때는 그가 동일한 사물을 동일한 관계에서 동일한 의미로 말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따라서 비평가들의 비판은 다섯 가지 과오에 기인하는데,
1) 불가능하거나,
2) 불합리하거나,
3) 유해하거나,
4) 모순을 내포하고 있거나,
5) 기술상의 과오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해하다’는 것은 플롯이 요구하지 않는 것을 말하며, ‘기술상의 과오’란 작시술상의 과오가 아닌 말 그대로 기술상의 과오를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서시사와 비극의 우수성과 관련하여 덜 저속한 모방이 더 우수한 모방이고 더 훌륭한 관객을 상대하는 모방이 덜 저속한 모방이라고 말한다. 배우들은 자신이 무엇을 보태지 않으면 관객들이 이해하지 못할 줄 알고 별의별 동작을 다 하는데, 이는 시인의 작시술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배우의 연기에 관련된 것이다. 따라서 교양 없는 사람들의 동작만을 배척해야 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을 찬양하면서 비극은 서사시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서시사의 운율까지도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비극은 음악과 장경을 가지고 있으며, 전자는 드라마의 쾌감을 가장 생생하게 산출한다.
비극은 서사시와 마찬가지로 동작 없이도, 즉 읽을 때에도 무대에서 연출되는 것을 관람할 때와 마찬가지로 생생하게 실감된다.
비극적 모방은 더 짧은 시간에 그 목적을 달성한다.
보다 압축된 효과는 많은 시간에 걸쳐 분산된 효과보다 더 큰 쾌감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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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순(堯舜)의 왕도사상
인의(仁義)로 백성을 다스린다

<아주 오래된 오늘>(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요임금과 순임금이 천하를 인애(仁愛)로써 거느리매 백성들이 거기에 따라 했고, 걸과 주가 천하를 잔학과 횡포로써 거느리매 백성들이 거기에 따라 했다.
그들이 내리는 명령이 그들 자신이 실제 즐겨하는 것과 상반되는 것이면 민중들은 따르지 않는 법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자기에게 선이 있고 난 뒤에 남에게도 선이 있기를 추구하며, 자기에게 악이 없고 난 뒤에 남에게 나무랄 수 있나니, 제 몸에 간직한 것이 용서가 아니고서 능히 남을 깨우칠 수 있는 사람은 아직 없다.
그러므로 나라를 다스림은 그 집안을 다스림에 있다.

堯舜1 率天下以仁 而民 從之 桀紂2 率天下以暴 而民 從之 其所令 反其所好 而民 不從 是故 君子 有諸己而後 求諸人3 無諸己而後 非諸人 所藏乎身 不恕 而能喩諸人者 未之有也 故 治國 在齊其家 ●『대학』

주> 1 요(堯)와 순(舜)은 동양의 이상적인 전설적인 두 임금.
2 걸(桀)은 하(夏)나라 말기의 왕으로 폭군. 주(紂)는 은(殷) 말기 왕으로 잔학했던 왕.
3 有諸己而後 求諸人에서 제(諸)는 말 잘할 ‘저’로 발음하며 내가 잘한 후에 남이 잘하기를 구한다는 말이다.

어느 날 요임금이 변장을 하고 민정을 살피다가 만난 한 백성에게 “왕이 정치를 잘해서 태평성대를 누리니 왕의 은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백성이 대답하여 “해 뜨면 일어나고 해지면 쉬며, 우물 파서 물마시고 밭 갈아 밥 먹으니 제왕의 은덕이야 내게 무슨 상관인가”라고 했다.
이는 요의 정치가 너무도 원만하여 민중들이 의식하지 못할 만큼 태평무사 했다는 이야기이다.

요임금에게는 단주(丹朱)라는 왕자가 있었지만 불초(不肖)하여 왕위를 계승할 수 없었다.
임금은 초야에 묻혀 있는 대효(大孝) 순(舜)의 소문을 들었다.
신하들은 입을 모아 요 임금에게 다음과 같이 순을 천거했다.

그는 소경의 아들입니다.
그의 부친은 장님일 뿐 아니라 고약한 고집쟁이로 매우 불순한 자입니다.
그의 어미는 계모로서 간사하며 그의 이복동생 상(象)은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데,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순은 부모를 공경하고 형제와 화목하려고 애쓰면서 일가를 잘 다스려나가고 있습니다.
그는 덕망이 높고 과실이 없이 잘 살아가고 있사온데 그의 덕에 대한 감화는 그의 일가뿐 아니라 온 나라에 미치고도 남음이 있다고 생각되어 감히 그를 천거토록 진언합니다.

임금이 답하기를 “하지만 비록 그런 인물이라 하더라도 좀 더 그를 관찰한 후에 참으로 그가 능히 그럴 만한 인물이라고 판단되면 기꺼이 양위하기를 서슴지 않겠으며 그를 짐에게 가까이 불러들이기를 바란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짐에게 두 딸이 있는데 그 두 딸을 한꺼번에 그의 처로 삼게 하려 한다.”
그리하여 임금은 두 딸에게 각기 비옥한 땅을 골라서 나눠주고 순으로 하여금 두 딸을 맞아 살도록 하면서 임금을 돕는 높은 지위에 봉했다.
순이 그 임무를 맡은 다음, 날이 갈수록 눈에 뜨일 만큼 만사에 성적이 오르기 시작했고, 순의 덕이 천하 만방에 점점 널리 퍼져나가, 임금은 안심하고 순에게 제위를 맡기게 되었다.

순은 원래 초야에 묻혀서 질그릇을 굽고, 밭을 갈며 사는 현자로서 예지가 깊고 빛나며 밝을 뿐 아니라 온유하고 신실하여 깊은 덕을 지녔다고 한다.
요가 섭정(攝政) 28년 만에 순에게 선위(禪位)하고 죽자, 순은 제위를 왕자 단주에게 전하기 위하여 멀리 피신했다.
그러나 천하의 제후들이 단주를 따르지 않고 순을 찾아와 조근(朝覲)하자 순은 이것이 천명임을 깨닫고 비로소 돌아와 왕위에 올랐다.

순은 우(禹)에게 치수(治水)를 맡기고 요의 왕업을 이어받아 훌륭히 발전시켰다.
그는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남쪽 바람의 훈훈함이여!
좋이 우리 백성들의 성냄을 풀어주리.
남쪽 바람이 때맞춰 불어옴이여!
좋이 우리 백성들의 살림을 풍부하게 하리로다.

순임금 재위 9년에 홍수가 나서 우가 치수의 대명을 받고 집을 떠날 때 부인은 임신 중이었다.
3년 후 자기 집 앞을 지나게 되었는데 집에서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으나 그대로 지나갔다.
그 후 3년 뒤 두 번째 집을 지날 때에는 자기 아들이 연을 날리고 있었으나 그대로 지났다.
3년 후 세 번째 지나갈 때에는 안에서 아들의 글 읽는 소리가 들렸으나 그대로 지나쳤다고 한다.
우는 이처럼 천자의 명령에 충성했으므로 천하를 얻게 되었다.

순임금에게는 상균(商均)이라는 왕자가 있으나 그 역시 불초한지라 순은 치수에 공이 있는 우에게 선위한 것이다.
왕도(王道)사상이란 요, 순, 우, 탕, 문, 무, 주공 등의 역대 왕들의 인의를 중심으로 한 지도이념이다.
이것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을 사랑하는 것을 정치이념으로 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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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효(大孝) 순(舜)
모든 도덕은 효도에서 시작된다 

<아주 오래된 오늘>(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동양의 왕도사상은 그 근본을 인의에 두었고, 인의 근본은 효도와 백성을 사랑함에 두었다.
요순설화를 보면 요임금은 후계자를 구할 때 당시 대효로 알려진 순을 찾아서 후계자로 삼고 천하를 맡겼다.

온 천하 사람들이 크게 기뻐하여 장차 자기에게 돌아오려고 하는데도 이것을 마치 초개같이 여긴 것은 오직 순임금뿐이었다.
사람이 어버이에게 기쁨을 사지 못하면 사람 노릇을 할 수 없고, 어버이에게 순종치 않으면 자식 노릇을 할 수 없다.
순임금은 어버이 섬기는 도리를 다하여 아버지 고수가 기뻐하기에 이르자 온 천하도 이에 감화되어 부자간에 도덕이 정해졌다.
세상에서 이것을 대효(大孝)라고 이른다.
●『맹자』, 「이루 상(離婁 上)」편

맹자는 순임금을 대효라고 했다. 순은 천하를 얻더라도 부모를 기쁘게 하지 못한다면 초개같이 버릴 것이라고 했다.
요임금이 순을 찾았을 때는 효도만으로는 부족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의 두 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을 시집보내어 부마로 삼고 두 부인을 거느림을 본 후에 천하를 맡겼다.

도응: 순이 천자로 있고 고요가 형관으로 있을 때 순의 아버지 고수가 사람을 죽였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맹자: 그를 집행할 따름이다.

도응: 그렇다면 순은 금하지 않았겠습니까?

맹자: 어떻게 순이 금할 수 있겠는가, 이어받은 법이 있는데.

도응: 그러면 순은 어떻게 했을까요?

맹자: 순은 천하 내던지기를 헌신짝 버리듯 하고 몰래 부친을 업고 달아나 해변에 살면서 죽을 때까지 흔연히 즐거워하면서 천하를 잊었을 것이다.

맹자의 대답은 순이 이 세상의 부귀영화보다도 부모에 대한 효도를 더 중요하게 여기므로, 범행자는 지위 여하를 막론하고 체포하고 자기는 효를 위하여 천자의 지위를 버리고 몰래 부모를 모시고 살면서 효도할 것이라는 것이다.

만장이 맹자에게 “『시경』에 아내를 얻을 때 반드시 부모에게 고해야 한다고 했는데 순은 부모에게 고하지 않고 장가를 들었다고 하니 어찌된 일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맹자는 “고하면 장가들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남녀가 같이 사는 것이 대륜(大倫)이라. 만약에 고한다면 인간의 대륜을 폐하고 부모를 원망하게 되므로 고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했다.

삼 심을 때 어찌하나. 가로세로 이랑 내지
장가들 때 어찌하나. 부모에게 아뢰야지
아뢰고서 얻은 아내 어찌 이리 버려두나.
●『시경』, 「제풍 남산」 편

만장: 부모가 순에게 창고의 지붕을 손보게 하고 사다리를 치우고 그의 아버지는 불을 질렀습니다.
그리고 우물을 파게하고 그가 나오기 전에 그대로 묻어버렸다고 합니다.
이복동생인 상은 ‘형을 묻어버리기로 꾀한 것은 다 나의 공적이다.
소와 말과 곡창은 부모에게 주고 방패와 창, 거문고와 활은 내가 가지고 두 형수는 내 잠자리를 돌보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상이 순의 집에 가보니 순은 정자에서 거문고를 타고 있었다.
상은 놀랐으나 뻔뻔스럽게 “형님 생각이 간절하여 왔습니다”라고 하며 부끄러워했습니다.
그러자 순은 “마침 잘 왔구나. 너는 나를 위해 이 백관들을 좀 다스려다오”라고 말했다 하니 사실입니까?
순은 상이 행한 일을 몰랐을까요?

맹자: 왜 몰랐겠느냐.
순은 상이 근심하면 자기도 근심하고 상이 기뻐하면 자기도 기뻐한 것이다.

만장: 그렇다면 순은 거짓으로 기뻐한 것입니까?

맹자: 아니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정(鄭)나라 재상 자산(子産)에게 물고기를 선사하자, 자산은 연못지기를 시켜 연못에 넣어 기르라고 했다.
연못지기는 이것을 삶아 먹고 돌아와서 “처음 놓아주니 어릿어릿하더니 조금 있다가 생기를 차려 꼬리를 치면서 물속으로 들어갔습니다”라고 하자 자산은 ‘제 곳으로 갔구나! 제 곳으로 갔어!’하고 말하였다.

연못지기는 물러나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누가 자산을 지혜롭다 하는가? 내가 삶아서 먹어버렸는데, 제 곳으로 갔구나, 제 곳으로 갔어라고 말하니 말이다.”
그러므로 군자를 속이는 데 도리에 맞는 말로는 할 수 있으나 도리에 맞지 않는 말로는 하지 못한다.
상이 형을 경애하는 도리로 거짓말을 했으므로 순은 정말 믿고 기뻐한 것이지 어찌 거짓으로 했겠는가.

순은 아버지와 이복동생 상의 계략으로 두 번 죽을 뻔했다.
첫 번째로 창고에 불을 질렀을 때 순은 미리 알아차리고 삿갓 두 개를 준비했다가 몰래 뛰어내렸다.
두 번째로 우물을 파서 묻으려 했을 때에는 옆에 미리 구멍을 뚫어놓았다가 살아 나왔다.

『효경』에 “부모를 사랑하는 자, 감히 남을 미워하지 않고, 부모를 공경하는 자는 감히 남을 얕보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기독교에서도 부모에 대한 효도를 강조했다.
십계명에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고 바울은 “자녀들아, 네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에베소서 6장 1-3절)라고 했다.

동양의 효제(孝悌)사상은 부모에 효도하고 사람을 사랑하라는 도이다.
인류역사에 있어서 모든 도덕의 근원은 효도로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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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진 재상 이윤(伊尹)
의와 도가 아니면 천하를 준다 해도 돌아보지 않는다 

<아주 오래된 오늘>(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공손추(公孫丑)가 맹자에게 물었다.
“이윤은 부정한 일을 그냥 보고 견딜 수 없다고 하면서 왕 태갑(太甲)을 동궁으로 쫓아냈는데 백성들이 크게 좋아했습니다. 태갑이 현명해지자 다시 돌아오게 했는데 백성들이 크게 기뻐했습니다. 현명한 사람이 신하가 되었을 때 그 임금이 현명하지 못하다면 본래 쫓아내기 마련입니까?”

그러자 맹자는 이렇게 답했다.
“이윤과 같은 생각으로라면 괜찮지만, 이윤과 같은 생각이 없다면 찬탈이다.”
●『맹자』, 「만장 상(萬章 上)」편

이윤은 은(殷)나라의 밭 가는 농부였다. 의(義)가 아니고 도(道)가 아니면 천하를 녹(祿)으로 준다 해도 돌아보지 않았고, 의와 도가 아니면 한 오라기 풀도 주고받지 않았다.
탕(湯)왕이 세 번이나 사람을 보내어 그를 초빙하니 그제서야 마음을 바꾸었다.

‘내가 밭 갈며 요순(堯舜)의 도를 즐기는 것이 어찌 요임금이나 순임금과 같이 만드는 것만 하겠는가.
하늘이 이 백성을 내시어 먼저 아는 자를 시켜서 뒤늦게 아는 자를 알게 하시고, 먼저 깨달은 자를 시켜서 뒤늦게 깨닫는 자를 일깨워주셨다.
나는 하늘이 낸 백성 중 먼저 깨달은 자이다.
나는 도를 가지고 이 백성들을 일깨워주겠다.
내가 아니면 누가 하겠는가?’

이윤은 이러한 사명감에서 탕왕의 부르심을 받았다.
이때 하(夏)의 걸(桀)왕이 포악무도하여 민심은 도탄에 빠지고 정국은 문란하여 혼란에 빠졌다.

이윤은 탕왕을 도와서 대혁명을 수행했다. 탕왕이 죽은 후, 이윤은 선왕의 부탁으로 태자 태갑을 도와서 재상이 되었다.
태갑은 즉위하자 불의한 행동을 자행함으로써 나쁜 습성으로 되돌아갔다.
이윤이 아무리 간하여도 왕은 듣지 않았다.
이윤은 “왕이 깨닫지 못한다면 신(臣)은 선왕의 명을 받아 뒤에 오는 왕에게 잘못이 없도록 부탁을 받았으니 도에 어긋난 행실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고 하며, 곧 동궁이라는 궁궐을 새로 건축하여 왕을 거기에 옮겼다.
그곳은 선왕의 묘와 가까운 곳이다.
이는 언제나 부왕의 능묘를 눈앞에 두고 보게 함으로써 선왕의 교훈을 생각하여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게 하기 위함이었다.
또 탕왕의 능 근처에 동궁을 짓고 꾸준히 간하여 매사에 미혹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왕이 왕궁에 있으면 아첨하는 많은 무리가 왕의 행실에 잘못이 있어도 오히려 그것을 칭찬했다.
그래서 이윤은 미혹한 왕을 왕궁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옮겨 스스로 반성할 기`회를 준 것이었다.
그리하여 왕은 별궁에서 3년 동안 외롭게 지냈다.
이러한 상황에서 누구도 이윤이 왕위를 찬탈하려 한다고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윤이 말하기를, 왕이 여전히 변치 않으시므로 불의는 습성이 되었으니 나는 의를 행치 않는 자는 따를 수 없다.
동(桐) 땅에 궁을 세우고 선왕을 가까이 모시어 교훈을 받음으로써 평생토록 미혹되지 않게 하리라.
왕이 동궁(桐宮)으로 가서 부왕의 묘(廟)에 복상(服喪)하고 계셨으니 마침내 진실 된 덕을 닦을 수 있게 되었다.

王未克變 伊尹曰 玆乃不義 習與性成 予弗狎于弗順 營于桐宮 密邇先王其訓 無碑世迷 王緖桐宮居憂 克終允德
●『서경』, 「태갑(太甲)」1편

주> 1 『서경』에는 「이훈(伊訓)」, 「태갑(太甲)」, 「함유일덕(咸有一德)」 세 편이 있는데, 이 중에서 이윤이 왕 태갑에게 올린 글은 오늘까지도 우리에게 좋은 교훈을 주고 있다.

태갑은 원래 현명했으므로 매일 부왕의 묘 곁에서 조용히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탕왕이 나라를 세울 때의 노고를 생각하며 행실을 삼가고 덕을 닦게 되었다.
이에 이윤은 대단히 기뻐하여 다시 왕을 영접하고 복위시켰다.

왕이 겸허한 태도로 절하고 머리를 조아려 이르시되,
소자는 덕에 밝지 못하여 스스로 불초에 이르러 욕심으로 법도를 어기며 방탕하여 예를 폐하고 허물을 몸에 부르니
하늘이 내리신 재앙은 오히려 피하려니와 스스로 지은 재앙에서 가히 도망하지 못하니
과거 스승의 훈계를 등져 그 처음에는 미치지 못하나
그대의 덕을 힘입어 그 마침을 도모하나이다.

이윤이 공손히 절하고 머리를 조아려 이르되, 그 몸을 닦으며 미쁜 덕이 아래와 화합하는 밝은 임금인 것입니다.
선왕이 곤궁한 백성들을 자식같이 사랑하셨으므로 백성이 그 명령을 복종하여 기뻐하지 않은 이가 없었고 이웃나라까지도 우리 임금을 기다리고 있으니 임금님이 오시면 벌을 받지 않게 된다고 했습니다. ●『서경』, 「태갑」편

이윤이 임금에게 정사를 다시 맡긴 후에 은퇴하면서 덕으로 훈계를 하였다.
슬프도다!
하늘은 믿을 수 없고 명은 일정치 않으니 그 덕이 떳떳하면 자리를 보전하고, 그 덕이 떳떳하지 못하면 구주(九州)가 이로써 망할 것입니다. ●『서경』, 「함유일덕」편

번지가 공자에게 “인(仁)이 무엇입니까?” 하고 묻자 “인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니라”라고 답했다.
다시 번지가 “지(知)는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지(知)는 사람을 아는 것이니라. 옛날에 탕 임금이 백성 가운데서 이윤을 천거하여 재상을 삼으니 불인(不仁)한 자가 멀어졌다”고 하며 이윤의 사람됨을 찬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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