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소식蘇軾의 춘야행春夜行을 읽다
春宵一刻直千金춘소일각치천금: 봄날, 달밤의 한때는 천금의 값어치가 있구나.
花有淸香月有陰화유청향월유음: 꽃에는 맑은 향기가 있고, 달은 흐려져
歌管樓臺聲寂寂가관누대성적적: 노래하고 피리 불던 누대도 소리가 없어 적적하고
鞦韆院落夜沈沈추천원낙야침침: 그네만 걸려 있는 안뜰에 밤만 깊어간다.
요즘은 새벽에 일어나 우리나라와 중국 고전을 읽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고전을 가까이 하다보면 옛 사람들도 동시대인처럼 생각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진솔한 삶에 있어서는 그 생각이나 이상이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제 지인들과 꽃박람회에 간 뒤 토종닭에 누룩막걸리를 먹으면서 내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상은 고요한데 변덕스러운 내 마음만 있을 뿐이라고.
세상을 바라보는 순간의 내 마음에 따라서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는 뜻으로 한 말이었습니다.
노자의 도덕경도, 장자도, 공자와 맹자도 그리고 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읽는 순간의 마음에 따라서 달리 해석됩니다.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장도 미술품도 물 자체로 변함이 없지만, 읽는 이, 보는 이의 마음의 변덕에 따라서 달리 해석되고 달리 느껴집니다.
금년에는 유난히 봄을 즐기고 있습니다.
다양한 많은 꽃을 구입하여 아침저녁으로 바라보면서 생명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우아하고 화려한 장미로부터 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 작은 야생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명의 모습은 그야말로 신기롭기만 합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소동파의 춘야행을 읽으며 그가 어디에서 무슨 마음으로 이 시를 썼는지 가늠이 됩니다.
물론 술을 마시고 기분이 한창 고조된 가운데 썼겠지요.
술을 마시고 귀가하던 중에 누대를 지나 안뜰을 걸으면서 봄밤의 분위기가 너무 좋아 과장해서 천금을 주어도 못 살만큼 아름답고 값어치가 있다고 노래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시간을 묶어둘 수 없어 봄의 순간을 천금에 비유한 것입니다.
소식을 머리에 떠올릴 때에는 삼국시대의 영웅 조조 3부자가 생각납니다.
소씨와 조씨 집안에서는 한꺼번에 명문가가 셋이나 출현한 것입니다.
한 집안에서 한꺼번에 두 사람의 문장가가 출현하는 건 우리나라에도 종종 있는 일입니다.
조선 중기 선조 때의 허난설헌許蘭雪軒과 그녀의 동생 허균許筠도 그러합니다.
많은 문장가들이 불운한 시대를 살았듯이 허씨 남매도 불운한 시대에 살았고, 허난설헌은 27세에 요절했습니다.
허균은 소동파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 분은 텅 빈듯하면서도 한없이 넓은 마음씨로서 사람들과 경계를 다투지 않으셨다. 현명하거나 어리석거나, 귀하거나 천하거나를 막론하고 모두 즐겁게 어울렸으니 유하혜의 화광동진和光同塵의 풍모를 갖춘 분이었다. 나는 그분을 본받고 싶지만 역부족이다.”
허균이 본받고 싶어 했던 송宋나라의 문장가 소식蘇軾(1037~1101)의 자는 자첨子瞻, 호는 동파거사東坡居士로 소동파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아버지 순洵, 아우 철轍과 함께 3소三蘇라 불리며, 모두 당송8대가의 영광스러운 반열에 올랐습니다.
소식은 시, 사, 문, 음악, 서법 등에 깊은 조예가 있었고, 정치에도 높은 견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21세 때 진사가 되어 벼슬길에 들어섰으나, 북송 때의 격렬한 변법운동變法運動 및 신구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몇 차례 좌천당하는 등 정치적으로는 불운을 겪었습니다.혁신 정치세력에 밀려 항주杭州, 밀주密州(지금의 산동성山東省 제성諸城), 서주徐州(지금의 강소江蘇), 호주湖州(지금의 절강浙江) 등의 지방관을 주로 역임했습니다.
휘종徽宗이 왕위를 이은 뒤에 귀양으로부터 풀려나 수도로 돌아가는 도중 상주常州에서 병사했습니다.
소동파는 그네만 걸려 있는 조용한 안뜰을 바라보며 춘야행을 썼는데, 그의 시를 나는 어둠 속에 침잠한 밤섬을 바라보며 읽습니다.
쓴 이나 읽는 이나 봄날, 달밤의 한때를 천금의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