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언명령

이 물음에 답하여, 칸트는 인간이란 존재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도덕의 권위를 설명한다. 그는 도덕이 인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말한다. 합리성의 요건 또한 인간과의 불가분성이 있다. 그래서 칸트는 도덕의 요건이 합리성의 요건을 보여주는 예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보자. 칸트에 의하면, 도덕의 요건이란 우리에게 요구되는 규칙 또는 명령이다. ‘약속을 지켜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고 돕는 것이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면 그 사람을 도우라’, ‘거짓말하지 마라’, ‘훔치지 마라’, ‘살인하지 마라’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칸트는 이러한 명령을 가언적假言的인 것과 정언적定言的인 것, 두 종류로 구분한다. 가언명령hypothetical imperatives은 명령을 받는 행위자가 그 이상의 어떤 욕구나 목적이 있고, 그러한 욕구나 목적에 따라 그 명령의 권위가 결정되는 것을 말한다. 조금 기술적인 설명처럼 들리겠지만, 몇 가지 사례를 들어 이 개념을 밝혀보려고 한다. 예를 들어, ‘옷을 적시고 싶지 않거든 우산을 갖고 나가라’, ‘12시 45분 열차를 타려면 정오까지는 집을 나서라’ 또는 ‘좋은 대접을 받고 싶거든 좋게 대우하라’ 같은 것들이다. 각 명령마다 해야 할 것(우산을 가지고 가라, 정오까지는 집을 나서라, 또는 좋게 대우하라 등)이 있는데 이러한 지시는 오직 내가 옷을 적시고 싶지 않거나, 12시 45분 열차를 타고 싶거나, 좋은 대우를 받으려 할 경우에만 적용되는 내용이다. 각각의 경우 지시를 받은 사람은 옷을 적시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는 식으로 지시를 거부할 수 있다. 그런데 도덕적 요건은 이처럼 가언명령적일 수 없다고 칸트는 추론한다. 누구도 자신이 욕구나 목적을 갖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자신에게 도덕적 요건이 적용되는
것을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도덕적 요건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며 누구도 이 요건을 벗어날 수 없다. 도덕적 요건은 정언명령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도덕에 관해 이런 주장을 편 칸트는 영국 경험주의자들과는 반대 관점에 선다. 경험주의자들은 인간이 지닌 정서와 감각에 비추어 도덕을 설명하려 하는데, 여기에는 다시 두 가지 조류가 있다. 첫째,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더불어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공감과 연대의 감정이 있고 이것이 도덕적 사상의 기초가 된다는 점이다. 둘째는 좀 냉소적인 말로 들리기도 하지만, 모든 사람이 좋은 평판을 얻으려는 욕망이 있기에 도덕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어떻건 간에 칸트는 그러한 인간의 정서와 감성이 도덕적 규칙의 권위나 불가분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관심을 둔다. 대부분의 인간은 인간 전체의 복지를 향상하려는 어느 정도의 욕구가 있고,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의 평판을 향상하려는 욕구가 있다. 이런 사람들은 ‘쓸데없이 고생하지 않으려면 살인하지 마라’거나 ‘믿을 만한 사람이란 소리를 듣고 싶거든 거짓말하지 마라’ 같은 가언명령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욕구를 지니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도덕적인 존재로 살아가려는 동기가 부족하기 쉽다(철학적 논의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무도덕주의자amoralist라 한다). 경험주의자들은 괴로움을 방지하거나 높은 평판을 얻는 따위의 일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도덕적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 않을까? 한편, 칸트주의자들은 도덕적 규칙이란 모든 사람에게 고르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을까? 그러므로 도덕적 요건은 정언명령일 수밖에 없다. 인간의 행위는 한 묶음의 이러저러한 감정 따위에 바탕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칸트가 도덕적 요건은 마땅히 합리성의 요건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인간과 도덕의 불가분성에 대한 강력한 직관을 옹호하려 하기 때문이다. 도덕적 요건이 인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듯이 합리성의 요건 또한 인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러므로 누구라도 자신은 도덕적 요건이 필요하지 않으므로 그것이 자신의 행위에 적용되지 않는
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