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 돌로로사
<성지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라틴어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는 ‘슬픔의 길’ 또는 ‘수난의 길’이란 뜻이다.
예수께서 무거운 십자가를 어깨에 메고 골고타 언덕을 향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이다.
십자가의 길은 시대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헤로데 궁전은 십자가의 길에 포함된 적이 없었고 안토니아 성은 13세기에 비로소 십자가의 길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에 반해 하스모니아 궁전 근처에 위치했던 소피아 성당은 이미 비잔틴 시대부터 순례자들이 관심을 가졌다.
오늘날 순례자들이 걸어가는 십자가의 길은 1294년 리칼두스 신부에 의해서 처음으로 그 위치가 대략 정해진 것이다.
안토니아 성에서부터 골고타까지, 그 사이에 일곱 개의 장소를 적절하게 만들어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도록 했다.
그 후 1540년경 프란체스코 수도자들에 의해서 지금과 같은 십자가의 길이 확정되었다.
오늘날 순례자들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면서 십자가의 길을 걷는다.
예수님께서 직접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셨던 바로 그 길이라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예수님의 수난을 소중하게 여기고 기억하고자 하는 상징적인 길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 길을 가신 것은 금요일 아침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빌라도의 법정에서 군인들로부터 채찍질을 당하시고, 가시로 만든 면류관을 쓰시고, 갖은 조롱을 다 당하신 후 70Kg이나 되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로 가셨다.
예수님께서 재판을 받으신 곳에서부터 예수님의 무덤까지 십자가의 길은 모두 열네 곳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자리에 건물이 들어섰으므로 지금은 일곱 군데만 남아 있다.
길 양 옆에는 상점들이 늘어서 있어 서울의 남대문 시장을 방불케 한다.
예루살렘 성 밖, 스테판 문 옆에 웅장한 석조건물이 있는데 바닥에 돌이 깔려 있다.
그곳이 예수님께서 재판을 받았다는 ‘본디오 빌라도 법정’이라고 안내원이 말해준다.
첫 번째 장소에는 마리아의 어머니 이름을 딴 ‘성 안네(St. Anne) 교회’가 있다.
그 교회는 십자군 볼드윈 1세(Baldwin I)의 부인의 요청에 따라 건립되었다고 하며, 그녀의 생가가 있던 곳이라고 한다.
두 번째 장소는 다음 구절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그들에게 내어주었다.
예수께서는 마침내 그들의 손에 넘어가 몸소 십자가를 지시고 성 밖을 나가 히브리말로 골고타라는 곳으로 향하셨다.
골고타라는 말은 해골산이란 뜻이다. 【요한의 복음서 19:16-17】
세 번째 장소는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쓰러지신 곳이며, 네 번째 장소는 예수님께서 어머니를 만나신 곳이다.
다섯 번째 장소는 키레네(지금의 리비아) 사람 시몬이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지고 갔다는 곳이다.
그들이 나가다가 시몬이라는 키레네 사람을 만나자 그를 붙들어 억지로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하였다. 【마태오의 복음서 27:32】
여섯 번째 장소는 베로니카라는 여인과 연관이 있다.
예수님께서 기진한 상태로 땀을 흘리면서 그곳을 지나가실 때 베로니카가 예수님께 손수건을 드려서 땀을 닦게 했다고 한다.
예수님께서 땀을 닦고 손수건을 그녀에게 돌려주자 손수건에는 예수님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복음서의 기록이 아니라 전설로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일곱 번째 장소는 예수님께서 두 번째로 쓰러지신 곳이다.
여덟 번째 장소에서 예수님께서는 여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그 여자들을 돌아보시며 “예루살렘의 여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와 네 자녀들을 위하여 울어라.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자들과, 아기를 낳아보지 못하고, 젖을 빨려보지 못한 여자들이 행복하다’고 말할 때가 이제 올 것이다.
그때 사람들은 산을 보고 ‘우리 위에 무너져내려라’ 할 것이며, 언덕을 보고 ‘우리를 가리워 달라’ 할 것이다.
생나무가 이런 일을 당하거든 마른 나무야 오죽하겠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루가의 복음서 23:28-31】
열 번째 장소부터 열세 번째 장소까지는 예수님께서 골고타 언덕에 도착하신 후 일어난 일들과 관련이 있다.
열 번째 장소에서 로마 군인 스테숀이 예수님의 옷을 벗겼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단 병사들은 예수의 옷가지를 가져다가 네 몫으로 나누어서 한 몫씩 차지하였다.
그러나 속옷은 위에서 아래까지 혼솔 없이 통으로 짠 것이었으므로 그들은 의논 끝에 “이것은 찢지 말고 누구든 제비를 뽑아 차지하기로 하자” 하여 그대로 하였다.
이리하여 “그들은 내 겉옷을 나누어 가지며 내 속옷을 놓고는 제비를 뽑았다” 하신 성서의 말씀이 이루어졌다. 【요한의 복음서 19:23-24】
열한 번째 장소에서 군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으며 죄수 두 사람도 함께 못 박았다.
여기서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리고 다른 두 사람도 십자가에 달아 예수를 가운데로 하여 그 양쪽에 하나씩 세워놓았다. 【요한의 복음서 19:18】
열두 번째 장소는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신 곳이다.
예수께서 다시 한 번 큰소리를 지르시고 숨을 거두셨다. 【마태오의 복음서 27:50】
열세 번째 장소는 예수님의 시신을 내린 곳이고, 마지막으로 열네 번째 장소는 예수님의 시신이 묻힌 동굴 무덤이다.
날이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태아 사람인 부자 요셉이라는 사람이 왔는데 그도 역시 예수의 제자였다.
이 사람이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내어달라고 청하자 빌라도는 쾌히 승낙하여 내어주라고 명령했다.
그래서 요셉은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깨끗한 고운 베로 싸서 바위를 파서 만든 자기의 새 무덤에 모신 다음 큰 돌을 굴려 무덤 입구를 막아놓고 갔다. 【마태오의 복음서 27:57-60】
예수님의 시신이 묻혔다고 짐작되는 바위 위에 ‘성묘 교회(The Church of the Holy Sepulchre)’가 웅장한 모습으로 서 있다.
교회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골고타 언덕 일부도 포함되었다.
교회가 처음 세워진 것은 335년으로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어머니 헬레나의 요청에 따라 건립했다.
흥미로운 점은 성묘 교회의 열쇠를 그리스도교도가 아닌 이슬람교도가 13세기부터 오늘날까지 약 800년 동안 대대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된 골고타(Golgotha)는 아람어이고 라틴어로는 ‘갈보리(Calvary)’라고 한다.
골고타는 ‘해골’이란 뜻인데 바위가 해골처럼 생겨 그렇게 부른 것이다.
예수님의 시신을 안장한 동굴 무덤으로 추정되는 곳은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이 제공한 무덤과 올리브 산에 있는 정원 무덤, 두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