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 돌로로사

<성지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라틴어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는 ‘슬픔의 길’ 또는 ‘수난의 길’이란 뜻이다.
예수께서 무거운 십자가를 어깨에 메고 골고타 언덕을 향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이다.
십자가의 길은 시대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헤로데 궁전은 십자가의 길에 포함된 적이 없었고 안토니아 성은 13세기에 비로소 십자가의 길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에 반해 하스모니아 궁전 근처에 위치했던 소피아 성당은 이미 비잔틴 시대부터 순례자들이 관심을 가졌다.
오늘날 순례자들이 걸어가는 십자가의 길은 1294년 리칼두스 신부에 의해서 처음으로 그 위치가 대략 정해진 것이다.
안토니아 성에서부터 골고타까지, 그 사이에 일곱 개의 장소를 적절하게 만들어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도록 했다.
그 후 1540년경 프란체스코 수도자들에 의해서 지금과 같은 십자가의 길이 확정되었다.

오늘날 순례자들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면서 십자가의 길을 걷는다.
예수님께서 직접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셨던 바로 그 길이라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예수님의 수난을 소중하게 여기고 기억하고자 하는 상징적인 길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 길을 가신 것은 금요일 아침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빌라도의 법정에서 군인들로부터 채찍질을 당하시고, 가시로 만든 면류관을 쓰시고, 갖은 조롱을 다 당하신 후 70Kg이나 되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로 가셨다.
예수님께서 재판을 받으신 곳에서부터 예수님의 무덤까지 십자가의 길은 모두 열네 곳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자리에 건물이 들어섰으므로 지금은 일곱 군데만 남아 있다.
길 양 옆에는 상점들이 늘어서 있어 서울의 남대문 시장을 방불케 한다.

예루살렘 성 밖, 스테판 문 옆에 웅장한 석조건물이 있는데 바닥에 돌이 깔려 있다.
그곳이 예수님께서 재판을 받았다는 ‘본디오 빌라도 법정’이라고 안내원이 말해준다.

첫 번째 장소에는 마리아의 어머니 이름을 딴 ‘성 안네(St. Anne) 교회’가 있다.
그 교회는 십자군 볼드윈 1세(Baldwin I)의 부인의 요청에 따라 건립되었다고 하며, 그녀의 생가가 있던 곳이라고 한다.
두 번째 장소는 다음 구절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그들에게 내어주었다.
예수께서는 마침내 그들의 손에 넘어가 몸소 십자가를 지시고 성 밖을 나가 히브리말로 골고타라는 곳으로 향하셨다.
골고타라는 말은 해골산이란 뜻이다. 【요한의 복음서 19:16-17】

세 번째 장소는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쓰러지신 곳이며, 네 번째 장소는 예수님께서 어머니를 만나신 곳이다.
다섯 번째 장소는 키레네(지금의 리비아) 사람 시몬이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지고 갔다는 곳이다.

그들이 나가다가 시몬이라는 키레네 사람을 만나자 그를 붙들어 억지로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하였다. 【마태오의 복음서 27:32】

여섯 번째 장소는 베로니카라는 여인과 연관이 있다.
예수님께서 기진한 상태로 땀을 흘리면서 그곳을 지나가실 때 베로니카가 예수님께 손수건을 드려서 땀을 닦게 했다고 한다.
예수님께서 땀을 닦고 손수건을 그녀에게 돌려주자 손수건에는 예수님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복음서의 기록이 아니라 전설로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일곱 번째 장소는 예수님께서 두 번째로 쓰러지신 곳이다.
여덟 번째 장소에서 예수님께서는 여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그 여자들을 돌아보시며 “예루살렘의 여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와 네 자녀들을 위하여 울어라.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자들과, 아기를 낳아보지 못하고, 젖을 빨려보지 못한 여자들이 행복하다’고 말할 때가 이제 올 것이다.
그때 사람들은 산을 보고 ‘우리 위에 무너져내려라’ 할 것이며, 언덕을 보고 ‘우리를 가리워 달라’ 할 것이다.
생나무가 이런 일을 당하거든 마른 나무야 오죽하겠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루가의 복음서 23:28-31】

열 번째 장소부터 열세 번째 장소까지는 예수님께서 골고타 언덕에 도착하신 후 일어난 일들과 관련이 있다.
열 번째 장소에서 로마 군인 스테숀이 예수님의 옷을 벗겼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단 병사들은 예수의 옷가지를 가져다가 네 몫으로 나누어서 한 몫씩 차지하였다.
그러나 속옷은 위에서 아래까지 혼솔 없이 통으로 짠 것이었으므로 그들은 의논 끝에 “이것은 찢지 말고 누구든 제비를 뽑아 차지하기로 하자” 하여 그대로 하였다.
이리하여 “그들은 내 겉옷을 나누어 가지며 내 속옷을 놓고는 제비를 뽑았다” 하신 성서의 말씀이 이루어졌다. 【요한의 복음서 19:23-24】

열한 번째 장소에서 군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으며 죄수 두 사람도 함께 못 박았다.

여기서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리고 다른 두 사람도 십자가에 달아 예수를 가운데로 하여 그 양쪽에 하나씩 세워놓았다. 【요한의 복음서 19:18】

열두 번째 장소는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신 곳이다.

예수께서 다시 한 번 큰소리를 지르시고 숨을 거두셨다. 【마태오의 복음서 27:50】
열세 번째 장소는 예수님의 시신을 내린 곳이고, 마지막으로 열네 번째 장소는 예수님의 시신이 묻힌 동굴 무덤이다.


날이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태아 사람인 부자 요셉이라는 사람이 왔는데 그도 역시 예수의 제자였다.
이 사람이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내어달라고 청하자 빌라도는 쾌히 승낙하여 내어주라고 명령했다.
그래서 요셉은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깨끗한 고운 베로 싸서 바위를 파서 만든 자기의 새 무덤에 모신 다음 큰 돌을 굴려 무덤 입구를 막아놓고 갔다. 【마태오의 복음서 27:57-60】

예수님의 시신이 묻혔다고 짐작되는 바위 위에 ‘성묘 교회(The Church of the Holy Sepulchre)’가 웅장한 모습으로 서 있다.
교회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골고타 언덕 일부도 포함되었다.
교회가 처음 세워진 것은 335년으로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어머니 헬레나의 요청에 따라 건립했다.
흥미로운 점은 성묘 교회의 열쇠를 그리스도교도가 아닌 이슬람교도가 13세기부터 오늘날까지 약 800년 동안 대대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된 골고타(Golgotha)는 아람어이고 라틴어로는 ‘갈보리(Calvary)’라고 한다.
골고타는 ‘해골’이란 뜻인데 바위가 해골처럼 생겨 그렇게 부른 것이다.
예수님의 시신을 안장한 동굴 무덤으로 추정되는 곳은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이 제공한 무덤과 올리브 산에 있는 정원 무덤, 두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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벳세메스

<성지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우리는 예언자 사무엘의 무덤을 경유해서 ‘해의 집’이라는 뜻을 가진 벳세메스로 갔다.
벳세메스는 하느님의 궤를 만진 아비나답의 아들 우짜가 즉사한 곳이다.

다윗은 이스라엘에서 정병 삼만 명을 소집했다.
다윗은 이 전군을 거느리고 유다 바알라에 가서 하느님의 궤를 옮겨오려는 것이었다.
그 궤는 거룹을 타고 계시는 만군의 야훼의 이름으로 불리는 궤였다.
그들이 언덕 위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하느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나올 때, 아비나답의 아들 우짜와 아효가 그 새 수레를 몰았다.
우짜는 궤 옆에서 따르고, 아효는 궤 앞에서 인도했다.
다윗과 온 이스라엘 백성은 수금과 거문고를 뜯고 소구와 땡땡이와 바라를 치면서 마음껏 노래 부르며 춤을 추었다.
그들이 나곤이라는 사람의 타작마당을 지날 때였다.
소가 뛰는 바람에 하느님의 궤가 떨어지려고 하자 우짜가 손을 대어 붙들었는데 야훼 하느님께서 우짜의 잘못을 보시고 진노하여 그를 치셨다.
우짜는 하느님의 궤 옆에서 죽었다. 다윗은 야훼께서 우짜를 치신 일이 몹시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그곳을 베레스우짜라 불렀는데 그 이름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사무엘하 6:1-8】

왜 하느님의 궤를 석 달도 보관하지 않았던 오베데돔과 그의 온 집안은 복을 내려주시고, 쓰러질 궤를 붙들었던 우짜에게는 죽음의 벌을 내리셨는지 그 점을 의문으로 남기고 우리는 광야 남쪽 엘라 골짜기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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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라 골짜기

<성지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엘라 골짜기(Elah Valley)는 목동 다윗이 돌팔매로 불레셋 장수 골리앗을 죽인 곳이다.

불레셋 장수도 방패당번을 앞세우고 한 걸음 한 걸음 다윗에게 다가왔다.
불레셋 장수는 다윗을 건너다보고 볼이 붉은 잘생긴 어린아이라는 것을 알고는 우습게 여겨, “막대기는 왜 가지고 나왔느냐? 내가 개란 말이냐?” 하고는 자기 신의 이름을 부르며 다윗을 저주하였다.
그리고 불레셋 장수는 다윗에게 을러메었다.
“어서 나오너라. 네 살점을 하늘의 새와 들짐승의 밥으로 만들어주마.”
그러나 다윗은 불레셋 장수에게 이렇게 응수하였다.
“네가 칼을 차고 창과 표창을 잡고 나왔다만, 나는 만군의 야훼의 이름을 믿고 나왔다.
네가 욕지거리를 퍼붓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느님의 이름을 믿고 나왔다.
오늘 야훼께서 너를 내 손아귀에 넣어주셨다.
나야말로 네놈을 쳐서 목을 떨어뜨리고 네 시체와 불레셋 전군의 시체를 하늘의 새와 들짐승의 밥으로 만들어 주리라.
그리하여 이스라엘이 모시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천하에 알리리라.
여기 모인 모든 사람은 이제 야훼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를 써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리라.
야훼께서 몸소 싸우시어 네놈들을 우리 손에 넘겨주실 것이다.”

불레셋 장수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자, 다윗은 재빨리 대열에서 벗어나 뛰쳐나가다가 주머니에서 돌 하나를 꺼내어 팔매질을 하여 그 불레셋 장수의 이마를 맞혔다.
돌이 이마에 박히자 그는 땅바닥에 쓰러졌다. 【사무엘상 17:41-49】

시냇가에 가보니 둥글고 매끄러운 돌이 많이 있어 다윗이 골리앗의 이마를 명중시킨 돌이 그러한 돌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했다.
우리는 기념으로 시냇가에서 돌을 한 개씩 주워가지고 돌아왔다.
근처에 베잇 기브린(Beit Gibrin) 동굴이 있어 갔는데 그곳의 석회암은 진흙처럼 부드러워 건축 재료로 사용된다고 한다.
석회암 진흙은 접착제 역할도 하기 때문에 돌로 성벽을 쌓을 때 시멘트처럼 사용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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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엘세바

<성지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브엘세바는 이스라엘 남쪽에 위치해 있으므로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라고 하면 이스라엘 전지역을 가리킨다(단은 이스라엘 최북단을 일컫는다).
아브라함이 우물을 판 곳이며 그가 불레셋 그랄 왕 아비멜렉과 언약을 맺은 곳이기도 하다.

그(아브라함)는 “이 어린 암양 일곱을 받으시고 이 우물은 내가 팠다는 것을 인정해달라는 것이오” 하고 대답하였다.
이렇게 두 사람이 거기에서 서로 맹세했다고 해서 그곳을 브엘세바라고 하였다. 【창세기 21:30-31】

브엘은 우물이고 세바는 약속이란 말이므로 브엘세바는 ‘약속한 우물’이란 뜻이다.
브엘세바는 중요한 성소였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그곳에서 영원하신 하느님 야훼의 이름을 불러 예배하였다”(창세기 21:33).
그곳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쫓겨난 하갈과 이스마엘이 정처 없이 헤매고 다닌 곳이자 하느님께서 그들을 돌보신 곳이기도 하다.
이스마엘은 이슬람교도들에게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양식 얼마와 물 한 부대를 하갈에게 메어주며 아이를 데리고 나가게 하였다.
하갈은 길을 떠나 얼마쯤 가다가 브엘세바 빈 들을 헤매게 되었다.
부대의 물이 떨어지자 하갈은 덤불 한구석에 아들을 내려놓고 “자식이 죽는 것을 어찌 눈 뜨고 보랴”고 탄식하며 화살이 날아가는 거리만큼 떨어져서 주저앉아 이스마엘을 바라보았다.
하갈은 이스마엘이 소리 내어 우는데도 주저앉아 그저 바라만 보았다.
하느님께서 그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으시고 당신의 천사를 시켜 하늘에서 하갈을 불러 이르셨다.
“하갈아, 어찌 된 일이냐? 걱정하지 말아라. 하느님께서 저기서 네 아들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셨다. 어서 가서 아이를 안아 일으켜주어라. 내가 그를 큰 민족이 되게 하리라.”
하느님께서 하갈의 눈을 열어주시니, 그의 눈에 샘이 보였다.
하갈은 큰 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아이에게 먹였다.
하느님께서 그와 함께해주셨다.
그는 자라서 사막에서 살며 활을 쏘는 사냥꾼이 되었다. 【창세기 21:14-20】

브엘세바는 이사악이 제단을 쌓고 하느님께 예배를 드린 곳이기도 하다.

그는 거기에서 브엘세바로 올라갔는데, 그날 밤 야훼께서 그에게 나타나시어 말씀하셨다.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느님이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나의 심복 아브라함을 보아
너에게 복을 내려 네 자손이 불어나게 하리라.”

그는 거기에 제단을 쌓아 야훼의 이름을 불러 예배하고 그곳에 천막을 쳤다.
그의 종들은 거기에서도 우물을 팠다. 【창세기 26:23-25】

한편 야곱은 형 에사오(에서)를 피하여 그곳으로부터 하란으로 떠났다.

야곱은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을 향하여 가다가 한 곳에 이르러 밤을 지내게 되었다.
해는 이미 서산으로 넘어간 뒤였다.
그는 그곳에서 돌을 하나 주워 베개 삼고 그 자리에 누워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다. 【창세기 28:10-11】

야곱이 가족을 데리고 이집트로 이주할 때 하느님께서 나타나신 곳도 브엘세바였다.

마침내 이스라엘은 모든 식구를 거느리고 재물을 챙겨 길을 떠났다.
브엘세바에 이르러 아버지 이사악의 하느님께 제사를 올리는데 그날 밤 하느님께서 환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셨다.
“야곱아, 야곱아.”
“저를 부르셨습니까?” 하고 야곱이 대답하자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느님, 네 아비를 보살피던 하느님이다.” 【창세기 46:1-3】

예언자 엘리야는 이세벨을 피해 호렙 산(시나이 산)으로 가던 중 브엘세바에서 잠시 피하기도 했다.

이세벨은 엘리야에게 전갈을 보내었다.
“네가 예언자들을 죽였으니 이번에는 내가 너를 내일 이맘때까지 반드시 죽이리라. 그렇지 아니하면 천벌 아니라 그 이상이라도 내가 받으리라.”
엘리야는 두려워 떨며 목숨을 구하여 급히 도망쳤다.
그는 유다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곳에 시종을 남겨두고…. 【열왕기상 19: 2-3】

예언자 아모스는 브엘세바를 베델과 길갈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성소로 여겼다.

베델을 찾지 말고
길갈로도 가지 말고
브엘세바로도 건너가지 말라.
길갈 주민은 끝내 잡혀가고
베델은 빈터만 남으리라. 【아모스 5: 5】

브엘세바는 보루로 된 요새이고, 아브라함의 우물은 샘물이 아니라 빗물을 받아 저수할 수 있는 우물이다.
중동지방은 건조하기 때문에 빗물을 오래 저장해두어도 썩지 않는다.
자외선이 강해 미생물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브엘세바에서 남쪽으로 얼마를 가니 집단농장 키부츠였다.
그곳은 이스라엘의 초대 총리 데이비드 벤 구리온이 살던 생가다.
벤 구리온은 광야를 옥토로 만들고 말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그곳에 집단농장을 만들어서 농장에서 농민들과 함께 살았으며, 총리직에서 은퇴한 후에도 거기에 여생을 보내다가 타계하였다.
그가 살던 집은 여느 농가와 마찬가지로 후생주택처럼 생겼고, 집 안에 들어서니 그가 생전에 사용하던 물건들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유물들을 보면 그가 검소한 생활을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생가 근처에 그의 무덤이 있다.
이스라엘 국민은 벤 구리온을 국부로 존경한다.

데비드 벤 구리온의 무덤으로부터 남쪽으로 펼쳐져 있는 분지가 네게브(Negev) 사막이다.
우리는 네게브 사막을 통과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방랑했다는 바란(Paran) 광야를 지나 홍해 해변 일라트(Eilat) 항구로 가서 여장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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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과 꿀이 흐르는 땅

<성지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야훼께서 계속 말씀하셨다.
“나는 내 백성이 이집트에서 고생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억압을 받으며 괴로워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나 이제 내려가서 그들을 이집트인들의 손아귀에서 빼내어 그 땅에서 이끌고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답고 넓은 땅, 가나안족과 헷족과 아모리족과 브리즈족과 히위족과 여부스족이 사는 땅으로 데려가고자 한다. 【출애굽기 3:7-8】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나안, 즉 팔레스타인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그 땅을 야훼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해 준비해 놓은 약속하신 땅이라고 믿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유목민들의 언어로서 그들의 이상향을 뜻한다.
만일 이스라엘 사람들이 유목민들이 아니라 농경민들이었다면 그들은 ‘오곡이 무르익는 땅’이라는 말을 썼을 것이다.
후세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야훼께 이렇게 감사드렸다.

야훼께서는 억센 손으로 치시며 팔을 뻗으시어 온갖 표적과 기적을 행하심으로써 모두 두려워 떨게 하시고는 우리를 이집트에서 구출해내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이곳으로 데려오시어 젖과 꿀이 흐르는 이 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신명기 26:8-9】

막상 성지를 순례하는 사람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대해 의아해 하게 된다.
팔레스타인에서 옥토라고 할 만한 땅은 예리고와 갈릴래아 호수 주변지역, 요르단 강 유역, 그리고 북쪽 지중해변 갈멜 산 부근으로 요빠에 이르기까지 펼쳐져 있는 사론 평야가 고작이다.
그나마도 자갈밭이나 바위로 된 산들이 많아서 옥토의 면적을 헤아려보면 그리 많지 않다.
예루살렘 남쪽 유다 광야와 사해 주변, 네게브 사막과 바란 광야는 비가 전혀 내리지 않는 사막과 황야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3대 불가사의라고 칭하는 것이 있다.
첫째는 황무지 광야의 바위틈에서 자란 마른 풀만을 찾아 뜯어먹는 양들이 살찌고 젖을 잘 낸다는 것이다.
둘째는 비도 제대로 오지 않는 자갈밭에서 자라는 포도송이가 굵고 맛이 일품이라는 것이다.
포도뿐 아니라 대추도 잘 자라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대추로 사탕을 만들어 먹었으며, 오렌지와 무화과 또한 꿀맛이다.
마지막으로, 팔레스타인에는 여름에 비가 오지 않는 대신 동트기 전에 이슬이 많이 내린다.
양들은 풀잎에 맺힌 이슬을 먹고 자라며 농작물에도 이슬은 여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곡식과 포도를 자라게 하는 이슬에 대해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렇게 노래했다.

이제 이스라엘은 태평성대를 누리게 되며,
야곱의 샘에는 아무도 근접하지 못하리라.
오곡과 술이 나는 땅에는
그 위의 하늘이 이슬비를 내려 주리라. 【신명기 33:28】

모세를 따라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조상들은 40년을 광야에서 지냈다.
그들은 천막을 치고 방랑생활을 하다가 광야에서 최후를 맞아야 했다.
다음 세대의 지도자 여호수아가 기원전 1230년경에 유랑민을 이끌고 사해 동쪽으로부터 요르단 강을 건너 예리고 성을 함락하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예리고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리고 성을 함락시키던 날의 흥분이 구약성서에 기록되어 있다.

이렛날이 되어 새벽 동이 트자 그들은 일찍 일어나 전과 같은 방식으로 성을 일곱 바퀴 돌았다.
그날만 성을 일곱 바퀴 돈 것이다.
일곱 번째 사제들이 나팔을 불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외쳤다.
“고함을 질러라.
야훼께서 저 성을 너희에게 주셨다.
저 성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야훼께 바쳐 없애버려라.
다만 창녀 라합의 목숨과 그의 집에 있는 사람만은 살려두어라.
그 여자는 우리의 사명을 띠고 갔던 사람들을 숨겨주었다.” 【여호수아 6:15-17】

그러나 예리고는 60만 명의 유랑민 모두가 살기에는 충분치 못한 면적이었다.
구약성서에는 “아름답고 광대한 땅”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그것은 직경 5km의 초원에 불과한 예리고를 지칭한 것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전 지역을 통칭하는 표현이다.
팔레스타인은 농경민들이 살기에는 부적합하지만 유목민들에게는 아름답고 광대한 땅, 즉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농경 문화권에서 살아온 우리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유랑민에게 그곳은 갈망의 땅이었다.
유랑민은 요르단 강 유역에서 양과 소에게 물을 먹여 우유를 짤 수 있었고, 꿀맛 나는 과일들도 먹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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