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식曹植칠보시七步詩

 

 

 

조조의 아들 조식曹植(192~232)은 시문을 잘 지어 아버지 조조와 형 조비와 함께 삼조三曹로 불린다. 조식의칠보시七步詩는 초등학교 때에 알았다. 그런데 시의 내용은 계속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조식의 시라는 걸 최근에서야 알았다. 한 가문에서 한꺼번에 세 명의 문인이 출현하는 일은 드물어 조조 삼부자에 대한 관심은 있었음에도 정작칠보시가 조식이 지었다는 걸 이제야 안 것이다. 그 내용이 절절했다는 기억은 어려서부터 있었다. 헌데 그 시를 일곱 걸음을 걸을 동안에 쓴 정황을 알고 나니 그의 심정이 더욱더 절절이 느쪄진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던 아들이 아버지가 죽자 형의 미움을 노골적으로 받기 시작하는 운명은 가혹하다. 울화병으로 마흔의 생애를 마감해야 한 건 문재文才를 지닌 사람에게는 여간 아까운 일이 아니다.

조비의 자는 자건子建으로 일찍부터 조숙했고, 문재文才가 있었다. 어린 나이로 조조의 사랑을 받아 건안建安 16(211) 평원후平原侯에 봉해지고, 19(214) 임치후臨淄侯로 옮겨 봉해졌다. 한 차례 황태자로 올리려 했지만 성격대로 행동하여 총애를 잃고 말았다. 형 조비가 황제가 되자 황초黃初 3(222) 견성왕鄄城王에 봉해지고, 다음 해 옹구왕雍丘王으로 옮겨 봉해졌지만, 재주와 인품을 싫어한 문제가 시기하여 해마다 새 봉지封地에 옮겨 살도록 강요했다. 엄격한 감시 아래 신변의 위험을 느끼며 불우한 나날을 보냈다.

조비와 조식 모두 조조의 처 변태후의 소생이었다. 조식은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여 많은 책을 읽고 글도 빼어났다. 조조는 평소 문학을 즐겼으며, 문객들을 아꼈다. 그는 조식의 출중한 글을 보고 처음에는 남이 대신 써주지 않았나 의심했다. 그래서 앞에서 글을 써보게 했는데 글재간이 보통이 아니었다. 조조는 조식을 매우 총애하여 왕태자로 삼으려고 했지만 많은 대신들이 강하게 반대해서 포기하고 말았다. 조식 때문에 자신의 지위가 위협받자 조비는 아버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애썼다. 하루는 조조가 전쟁터로 나가는데 조비와 조식이 전송을 했다. 조식은 그 자리에서 조조의 공덕을 찬송하는 시를 지어 읊어 뭇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그러자 누군가가 조비한테 이렇게 조언했다. “대왕님께서 떠나실 때 태자님은 그저 얼굴에 슬픈 빛만 가득 보이십시오.”

그 말에 따라 조비는 아버지가 떠날 때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것을 본 조조는 조비의 효성이 진정이라고 생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조조가 살아 있을 때, 조비는 동생 조식이 술을 좋아한다는 약점을 이용하여 여러 번 망신을 주었다. 조식에 대한 아버지 조조의 신임을 없애려는 목적에서였다.

 

건안 25(220)에 삼국시대의 영웅 조조曹操는 뤄양洛陽에서 병으로 65세의 생애를 마감했다. 그의 자리를 태자 조비曹丕(187~226)가 물려받아서 위나라 왕이자 승상이 되었다. 조비는 조조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지만, 유씨劉氏씨가 낳은 조앙曹昻과 조삭曹鑠이 모두 일찍 죽고, 그의 어머니인 변씨卞氏가 황후皇后가 되어 조조의 적장자嫡長子가 되었다. 조비가 조조의 뒤를 이어 후한後漢의 헌제獻帝에게서 양위받는 형식으로 황제가 되었으므로 실질적으로 위나라의 초대 황제 문제文帝(220-226 재위)가 되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조비의 동생인 조식이 늘 술에 취하여 조정을 욕하고, 조정에서 보낸 사신을 가두고 놓아주지 않는다고 고해 바쳤다. 조비는 즉시 조식을 업성으로 잡아 올려 심문했다. 조비는 이번 일을 핑계로 조식을 아예 죽이려고 작심했다. 그런데 어머니 변태후가 이를 알고 조비를 불러다가, 조식이 아무리 잘못했어도 한 어미의 소생인데 형제의 정을 봐서라도 죽여서는 안 된다고 꾸지람했다. 조비는 어머니의 말을 거역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작은 일로 동생을 죽인다는 것도 체통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대로 놔둘 수는 없어서 낮은 작위로 강등시켰다. 그런 다음 조식을 불러 네가 글을 잘 짓는다고 늘 뻐기는데 그렇다면 일곱 걸음을 걸을 동안 시를 하나 지어보아라, 그렇게만 한다면 죽을죄를 벗겨주겠다고 했다.

 

조식은 잠깐 궁리하더니 걸음을 떼며 시를 지어 읊었다.

 

煮豆燃豆萁자두연두기: 콩대를 태워서 콩을 삶으니

豆在釜中泣두재부중읍: 가마 속에 있는 콩이 우는구나.

本是同根生본시동근생: 본디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건만

相煎何太急상전하태급: 어찌하여 이다지도 급히 삶아대는가.

 

그 시를 듣고 조비는 가책을 느꼈다. 그래서 조식을 죽이지 않고 도로 봉읍지로 돌려보냈다. 조식은 그 후 경성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군에 있다가 울화병으로 죽었다.

조식은 마지막 봉지인 진에서 죽었으며, 시호는 사이다. 그리하여 진사왕陳思王으로 불린다. 시문을 잘 지어 조조, 조비와 함께 삼조三曹로 불린다. 80여 수의 시가 전하고, 사부辭賦나 산문도 40여 편 남아 있다.칠보시七步詩가 유명하다. 송나라 때 조자건집(曹子建集)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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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맹姜希孟의 훈자오설訓子五說(등산설登山說)

 

 

훈자오설訓子五說이란 자식을 훈계한 다섯 가지 이야기로 도자설盜子說(도둑의 아들), 담사설膽巳說(뱀을 잡아먹음), 등산설登山說(높은 산에 오름), 삼치설三雉說(꿩을 잡는 이야기), 요통설曜通說(오줌통의 이야기)을 말한다.

등산설登山說을 승목설昇木說이라고도 한다.

갑과 을은 늘 함께 산에 가서 나무를 했다. 을은 약빠른 원숭이처럼 나무를 타 언제나 좋은 나무를 많이 했다. 그러나 갑은 성격이 나약하고 나무를 타지 못하여 묵은 풀이나 긁어모아 겨우 밥 지을 거리나 할 뿐이었다. 어느 날 을이 으스대며 갑에게 말했다. “자네는 나무할 줄도 모르는가. 좋은 땔감이란 평지에는 없다네. 나도 전에는 종일 죽도록 힘을 들여도 한 짐도 하지 못 하였네. 그래서 나무하는 일은 제쳐두고 나무 타는 법을 배웠다네. 처음 나무에 오를 때는 발이 떨리고 가슴이 두근거려서 내려다보면 떨어질 것같이 아찔하였지만, 얼마 지나자 조금씩 자신이 생겼고 한 달 뒤에는 높은 나무 꼭대기도 평지 같았네. 이렇게 하여 다른 사람이 가지 못한 곳에 오를 수가 있었고 높이 올라갈수록 좋은 땔감을 많이 할 수 있었지 이 일로 나는 평범한 일만 하는 사람은 남보다 앞설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네.”

이 말을 들은 갑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하기를 “나는 땅바닥에 있고 자네는 나무 꼭대기에 있어 서로의 거리가 몇 길이나 되지만, 나의 위치에서 본다면 나에게서 멀리 떨어진 것이 낮은 것이 아님을 누가 알겠는가. 낮은 것이 낮지 않을 수도 있고 높은 것이 높지 않을 수도 있으니, 높은 것과 낮은 것은 자네와 내가 정한 바가 아니라네. 대개 많은 이익을 얻으면 화禍의 근원도 깊고 빨리 공을 얻으면 잃는 것도 빠른 법이네. 그만 두게나 나는 자네 말을 따르지 않겠네” 하니 을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 후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을이 벼랑 위에 있는 높은 소나무에 올라가 가지를 치다가 그만 실족하여 땅에 떨어져 기절했는데, 그 아버지가 들것으로 실어와 치료를 한 지 한 참 만에 소생하였고 몇 달이 지나서야 음식을 먹을 수 있었지만 두 다리는 부러지고 두 눈도 멀었으므로 마치 시체와 같았다. 을이 아버지를 갑에게 보내 높고 낮음에 관해 묻게 하니, 갑은 이렇게 말했다.

“대개 위와 아래는 정해진 위치가 없고, 낮고 높음도 정해진 이름이 없습니다. 아래가 있으면 반드시 위가 있게 되고 낮은 것이 없다면 높은 것도 있을 수 없습니다. 아래로 인해서 위가 되고 높은 데를 오르자면 낮은 데서 시작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높은 것은 낮은 것이 모인 것이며 아래는 위가 되는 시작입니다. 항상 높은 곳에 있으며 낮아지기 쉽고 위만을 즐거워하면 금방 아래로 떨어지게 됩니다. 높은 곳에서 그 높음을 잃게 되면 낮은 데서 편안하고자 해도 될 수 없고, 위에서 그 위를 잃어버리면 아래에서 머물고자 해도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낮은 것이 높은 것보다 아래가 위보다 낫지 않겠습니까?

을이 나무할 적에 높은 꼭대기를 좋아하고 낮은 평지는 싫어했으니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사람은 모두 좋은 나무를 하고 싶어 하지만 좋은 나무란 위험이 도사린 높은 곳에 있습니다. 이익에 눈이 멀면 위험한지를 모르게 되며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더욱더 위험해지는 법입니다. 따라서 땅에서 멀어질수록 목숨을 가벼이 여기게 되는 셈인데 이것을 도리어 남에게 자랑하니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제가 을과 함께 오랫동안 산에서 나무를 했는데 언제나 을의 반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조금도 불만스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앞으로 얼마든지 나무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을은 매우 위험한 곳에서 나무를 하였기 때문에 지금 젊은 나이에 폐인이 되었으니 아무리 계속 나무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되었고, 저는 비록 평범하게 나무를 하지만 이렇게 건강하니 늙어 죽을 때까지 나무를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보면 어느 것이 많고 적으며, 어느 것이 높고 어느 것이 낮은 것이 되겠습니까?”

을의 아버지가 돌아와서 을에게 이 말을 전하고는 서로 부둥켜안고 한바탕 통곡하였다. 을은 그제 서야 전에 갑이 한 말이 옳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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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나학推拿學이 무엇입니까?

 

 

추나학推拿學은 중의학中醫學 이론체계의 형성에 대량의 의료실적과 당시 철학사상을 기본으로 하여 체계화 되었다. 추나학은 일류 최초의 치료법 중 하나로서 가장 일찍부터 건립된 풍부한 임상 경험들을 중의학의 이론을 체계화 시키는데 중대한 공헌을 했다.《황제내경皇帝內經》과《황제기백안마십권皇帝岐伯按摩十卷》은 중국 의학 역사상 독보적인 의학서적의 걸작 중 하나다. 그리고 안마는 이 서적들에서 점유하는 비중이 지대하다.《황제기백안마십권》은 이미 1500년 전에 실전失傳했지만, 현존하는《황제내경》중에는 명확하게 추나요법의 비중이 적지 않음을 알 수가 있다. 이런 기초 위에서 추나이론은 중의학 기초이론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황제내경》총 36권, 162편 중‘소문素問’에서 9편과 ‘영추靈樞’에서 5편에 걸쳐 추나에 관하여 논하고 있다.

원래 음양오행상 오행귀류五行歸類(모든 사물을 그 특성에 따라 다섯 가지 상象으로 분류하되, 기본적으로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라는 추상적 속성으로 개괄하여 귀속시킨 것)에 맞춘 침, 뜸, 약, 안마, 폄석砭石(돌로 만든 침) 중의 한 분야로서 의학 분야가 침과 뜸, 약에 치중함으로서 물리적 성질을 이용한 치료방법을 오히려 소외 받은 일반인에 의해 이론체계를 정립했다고 볼 수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추나요법이라 칭하고 있으나 중국 등지에서는 추나의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 수단으로서는 손가락 또는 손바닥, 주먹, 팔꿈치 등의 힘을 이용하여 방향과 강약을 조절한다. 이론상 특징은 서양에서 비롯된 증상을 위주로 치료하는 카이로프랙틱과 달리 오장육부의 허실을 따지고 경락과 경혈을 중시하는 데 있다.

추나요법은 기본적으로 여섯 종류로 나눈다. 가볍게 문지르는 경찰법輕擦法, 꼬집어 문지르는 날유법, 눌러 문지르는 안유법, 가볍게 두드리는 고타법敲打法, 손바닥을 오므려 가볍게 두드리는 박타법拍打法 등이 있다. 그 밖에도 권타법拳打法, 측타법側打法, 지고법指敲法, 진전법震顫法 등이 있다. 추나요법은 두통, 요통, 식욕부진, 고혈압, 당뇨 등과 각종 신경성 스트레스 및 질병의 예방과 치료에 생리적 조화를 시켜줌으로써 가능하다.

추나요법은 비뚤어진 뼈와 관절, 근육 등을 밀고 당겨 교정하여 정상위치로 환원케 하는 치료법이다. 한마디로 정상을 벗어난 뼈를 바르게 정렬시켜주는 수기 치료법이다. 추나요법에는 관절을 대상으로 하는 교정치료, 굳어진 근육을 풀어주어 기혈순환을 도와주는 침구치료 그리고 어혈을 제거하고 근육과 인대를 강화시켜 주는 약물요법 등 일련의 치료법이 포함되며, 통증을 없애줌과 동시에 모든 기능을 정상적으로 회복시켜 원활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치료법이다.

특히 어린이에 적용하는 추나요법은 그 효과가 체표에서부터 장부까지 미치며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인체의 기를 왕성하게 하여 면역력과 저항력을 증강시켜서 질병을 예방하며 신체를 건강하게 유지시키는 효과도 가지고 있다.

어린이에게 가장 많이 사용하고 가정에서 쉽게 시행할 수 있는 추나요법으로 날척요법捏脊療法이 있다. 어린이의 건강 증진을 위해 폭넓게 사용되며 특히 감기를 달고 살고 면역력이 떨어진 경우에 효과가 좋다.

시술방법은 먼저 어린이를 엎드리게 한 후 방광경(등에 위치하는데 가운데 척추를 중심으로 좌우 3cm 떨어진 부위로 목 아래에서 엉덩이까지 이어진다)을 엄지와 검지로 가볍게 꼬집듯이 목 부위에서 엉덩이 부위를 향하여 내려가면서 자극을 주게 되는데 보통 1일 20회 이상 시행하고 매일 시행해주면 효과적이다. 꼬집는 것에 민감한 경우 엄지로 가볍게 누르면서 내려오는 방법도 사용할 수 있다.

눈을 비롯한 오관은 신체구조상 턱관절과 경추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턱이나 경추 배열상태가 좋지 못한 아이에게 근시나 약시 등의 시력저하 증상이 더욱 쉽게 올 수 있다고 한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가 발견될 경우 추나요법으로 턱이나 경추를 교정해 주어 짧은 기간에 시력개선 효과를 크게 얻고 있다고 한다. 이런 교정술은 통증이 없고 안전해 어린 아이들에게 적합한 것이 큰 장점이다. 구조적인 문제를 예방하거나 개선하려면 평소에 자세를 바르게 하는 습관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그 밖에 생활요법으로서 추천하는 눈 운동법은 의사의 처방에 따라 눈 호흡법과 안구주변 마사지massage 등을 다른 치료법과 병행한다면 시력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금기 사항이 있는데 아이의 피부가 연약하기 때문에 너무 강한 자극이 되지 않게 해준다. 보통 피부가 약간 붉게 될 정도가 가장 좋다. 그리고 시술하는 사람이 화가 났거나 속이 많이 상했을 때는 시술을 피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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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주의와 민주주의

 

 

 

 

이슬람주의가 민주주의와 화합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이슬람주의 찬성파와 반대파가 뜨거운 논쟁을 벌였다. 3장에서 이슬람주의식 반유대주의를 분석했지만 희망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반유대주의를 포함한 모든 이데올로기가 전체주의라고 주장한 한나 아렌트의 논리에 수긍한다면, 이슬람주의는 분명 전체주의적인 속성이 있으므로 비민주적인 이데올로기로 볼 수 있다.2 지금까지는 이슬람주의에 대해 간접적으로 설명했으나 앞으로는 이슬람주의 이데올로기의 창안자와 그들의 후손이 민주주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들에게서 직접 들어볼까 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이슬람주의 지도자가 직접 쓴 문헌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문헌을 읽지 않은 학자들은 이슬람주의자가 서방세계의 청중을 의식한 진술과, 그들의 속내를 진솔하게 밝힌 것의 차이를 구분할 수 없다.
이슬람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는 열띤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2008년 『민주주의 저널』지에도 논쟁이 게재되었다. 그때 나는 “왜 그들은 민주주의자가 될 수 없는가” 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한 바 있다.3 논객들 가운데 앤드류 마치는 “종교적 신념이 동기가 된” 평화주의적 이슬람주의자는 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반면, 마크 린치는 민주주의를 도입하려는 이슬람주의자들의 의지를 의심한다면 무슬림의 “신앙과 정체성”에 “엄청난 모욕” 을 준 것으로 몰릴 수 있음을 역설했다. 내가 강조한 바와 같이, 이들의 주장은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의 차이를 간과하고 있다. 논쟁의 핵심은 신앙이 아니라 종교화된 정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제도적 이슬람주의와 지하디스트의 차이도 논쟁의 중심에 있다. 두 집단의 경계가 얼마나 모호한지는 잠시 접어두기로 하자. 지하디스트가 비민주적이라는 점은 쉽게 알 수 있으나, 제도적 이슬람주의는 민주적인 의사결정 절차에 참여하고 이를 지지할 때가 더러 있으니 어느 편인지 분간하기란 좀 어려울 것이다. 나는 민주주의를 지지한다는 이슬람주의자들은 믿지 않지만, 참여하는 정치는 찬성하고 비폭력 이슬람주의자를 범법자로 치부하는 건 반대한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참여와 위임의 차이는 최근 중동과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와도 관계가 깊다. 4장 후반에서 이를 좀 더 살펴보기로 하자. 린치는 『포린 어페어스』지에서 폴 버먼이 이슬람주의를 조명한 책 『지성인들의 비상The Flight of the Intellectuals』을 비평하는 가운데 제도적 이슬람주의와 지하디스트의 연결고리를 “이슬람주의 집단을 한 덩어리로 묶는 것” 으로 규정했다. 그는 “민주정치 제도 안에서 제 역할을 할 의지는 있지만 정작 진보적인 자유와 평등 및 관용과는 대립되는 가치관을 장려한다” 며 비폭력 이슬람주의자들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자들은 이 같은 딜레마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서방세계6와 아랍 무슬림세계에서 이 주제에 대한 토론회에 참여해온 나는 민주주의가 두 가지 기둥에 기반을 둔다고 역설했다. 첫째는 가치관과 민주주의의 정치 문화이고, 둘째는 선거정치인데, 린치는 분리하고 싶어 할지도 모르지만 누구도 이 둘을 분리해선 안 된다. 그는 이슬람주의식 민주주의 비전을 가리켜 “진보적이라 규정할 수는 없지만 무슬림이… 진보적이자 민주적인 제도에 참여할 수 있는 적절한 지침은 될 것” 이라고 주장했다. 때문에 린치는 이슬람주의 지도자 유세프 알카라다위를 “민주정치 참여를 열렬히 지지하는… 비폭력 이슬람주의자들의 우상” 이라고 소개한 것이다. 알카라다위가 이슬람주의의 “우상” 이라는 점을 두고는 이견이 없으나, 과연 알카라다위나 그의 추종자가 민주정치의 의지력도 겸비할 수 있느냐는 따져봐야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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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신성함’에 대한 비평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인간 완성도의 기준을 따를 때 제기되는 한 가지 문제점은 그 ‘합격선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이다. 태아가 발달해가는 과정에서 정확히 어느 지점부터 생명의 권리를 누리기 시작할까? 이것이 정해진다면 생명의 권리가 있는지 없는지를 명백히 가릴 수 있겠지만, 어중간한 발달 단계에서는 어떻게 할까? 바로 이 점이 논의의 해법을 찾는 데 중요하다. 이 문제에서 파생된 한 가지 주장이 바로 ‘합격선이 너무 높다’는 주장이다. 육식의 권리나 동물실험의 권리를 옹호하려는 논자는 높은 수준으로 발달하지 못한 존재는 오로지 사용 가치만 있을 뿐이어서, 함부로 낭비할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중요한 목적을 위해 쓰일 수 있다고 주장하려 할 것이다. 문제는(싱어가 지적한) 수많은 인간, 예컨대 심각한 지적 장애인들도 그러한 발달 수준에는 이르
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앞서 열거한 능력에 비추어, 수많은 형태의 ‘고등’ 동물들을 특정 부류의 인간보다 가치 있는 존재로 간주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러한 주장에 따라 심각한 지적 장애인들을 먹을거리나 실험대상으로 삼을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면 이번에는 동물의 권리를 보호하려는 논자들이 들고 일어설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따르려는 논리를 가리켜, 아무런 합리적 근거 없이 다른 종에 비해 자신이 속한 종만을 우대하려는 노골적인 편견이라고 비난할 것이다.
이런 식의 비난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은 논리로 발전한다. 인간 완성도의 기준이란 인간중심적인 발상임이 틀림없다. 이러한 발상은 인간을 도덕적 우주의 한가운데에, 그리고 발달과정의 맨 꼭대기에 놓는다. 또한, 이러한 발상은 인간 이외의 모든 만물을 인간의 능력에 미치지 못한다 하여 ‘더 낮은’ 존재로 치부한다. 이렇듯 인간에 중심을 두는 관점은 예컨대, 신이 인간을 창조하면서 자신의 이미지를 닮도록 했다고 믿는 유대 기독교 신앙에 깃들어 있다. 그리하여 이 신앙은 인간이 도덕적 우주의 가장 특별한 자리에 놓인다는 믿음을 강화한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적 관점이나 신화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인간에게 특별한 가치와 품위를 부여하고 성스럽고도 도덕적으로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인간의 뛰어난 특징과 능력 때문이라고 믿어야 할까? 신이 인간에게 세상의 ‘지배권’을 부여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면, 동식물에는 사용 가치가 있을 뿐이고 인간에게는 내재적 가치가 있다는 생각에 만족하며 살아야 할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 존재를 특별히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인간에게는 동물과 구별되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이다(비단 그것만이 아니라, 마치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The Name of the Rose』에서처럼, 웃는 능력을 비롯한 수많은 인간의 특징을 내세울 수 있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잠시 인간이 아닌 사자가 그 자리에 있다고 상상해보자. 사자는 특별한 대우를 받을 자격기준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내세우지 않을까?
그런데 여기서 잠시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생명의 신성함을 내세우는 사상 또는 각각의 개인이 성스러운 존재라 하여 개개인 사이에 장벽을 세워 놓는 사상이다. 회의론자는 이러한 사상이 주로 신이 인간을 사랑하되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듯이 조건 없이, 그리고 각 개인 하나하나를 구별하여 사랑한다는 기독교 사상에 젖은 서구문화에서 나왔
다고 지적할 것이다. 이러한 기독교 전통을 부정한다면, 회의론적 비평가는 모든 사물을 합리적으로 봐야 한다고 또다시 지적할 것이다. 지금까지 보아왔듯이 인간 생명의 신성함을 내세우는 사상은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방식과 선택할 수 있는 행위의 형태에 일정한 한계를 설정한다. 총 잡은 사내 이야기에서 이러한 예를 살펴보았다. 빚을 갚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빚을 졌다는 사실이 빚을 벗어나는 방식에 대하여 어떤 한계를 설정했다. 빚을 청산하려고 채권자를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생명이 신성하다고 믿는다면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에도 마땅히 한계가 있어야 한다. 한편 회의론자는 생명이 신성하다고 믿는 사람은 모든 일마다 해도 좋을지 아닐지를 물어야 하느냐고 다시 반문할 법하다. 우리는 모두 빚을 없애려고 채권자를 죽여도 된다는 생각에 반론을 제기하겠지만, 생명을 성스러운 것으로 볼 때 오히려 끔찍한 결과를 불러오는 사례도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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