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식曹植칠보시七步詩

 

 

 

조조의 아들 조식曹植(192~232)은 시문을 잘 지어 아버지 조조와 형 조비와 함께 삼조三曹로 불린다. 조식의칠보시七步詩는 초등학교 때에 알았다. 그런데 시의 내용은 계속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조식의 시라는 걸 최근에서야 알았다. 한 가문에서 한꺼번에 세 명의 문인이 출현하는 일은 드물어 조조 삼부자에 대한 관심은 있었음에도 정작칠보시가 조식이 지었다는 걸 이제야 안 것이다. 그 내용이 절절했다는 기억은 어려서부터 있었다. 헌데 그 시를 일곱 걸음을 걸을 동안에 쓴 정황을 알고 나니 그의 심정이 더욱더 절절이 느쪄진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던 아들이 아버지가 죽자 형의 미움을 노골적으로 받기 시작하는 운명은 가혹하다. 울화병으로 마흔의 생애를 마감해야 한 건 문재文才를 지닌 사람에게는 여간 아까운 일이 아니다.

조비의 자는 자건子建으로 일찍부터 조숙했고, 문재文才가 있었다. 어린 나이로 조조의 사랑을 받아 건안建安 16(211) 평원후平原侯에 봉해지고, 19(214) 임치후臨淄侯로 옮겨 봉해졌다. 한 차례 황태자로 올리려 했지만 성격대로 행동하여 총애를 잃고 말았다. 형 조비가 황제가 되자 황초黃初 3(222) 견성왕鄄城王에 봉해지고, 다음 해 옹구왕雍丘王으로 옮겨 봉해졌지만, 재주와 인품을 싫어한 문제가 시기하여 해마다 새 봉지封地에 옮겨 살도록 강요했다. 엄격한 감시 아래 신변의 위험을 느끼며 불우한 나날을 보냈다.

조비와 조식 모두 조조의 처 변태후의 소생이었다. 조식은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여 많은 책을 읽고 글도 빼어났다. 조조는 평소 문학을 즐겼으며, 문객들을 아꼈다. 그는 조식의 출중한 글을 보고 처음에는 남이 대신 써주지 않았나 의심했다. 그래서 앞에서 글을 써보게 했는데 글재간이 보통이 아니었다. 조조는 조식을 매우 총애하여 왕태자로 삼으려고 했지만 많은 대신들이 강하게 반대해서 포기하고 말았다. 조식 때문에 자신의 지위가 위협받자 조비는 아버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애썼다. 하루는 조조가 전쟁터로 나가는데 조비와 조식이 전송을 했다. 조식은 그 자리에서 조조의 공덕을 찬송하는 시를 지어 읊어 뭇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그러자 누군가가 조비한테 이렇게 조언했다. “대왕님께서 떠나실 때 태자님은 그저 얼굴에 슬픈 빛만 가득 보이십시오.”

그 말에 따라 조비는 아버지가 떠날 때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것을 본 조조는 조비의 효성이 진정이라고 생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조조가 살아 있을 때, 조비는 동생 조식이 술을 좋아한다는 약점을 이용하여 여러 번 망신을 주었다. 조식에 대한 아버지 조조의 신임을 없애려는 목적에서였다.

 

건안 25(220)에 삼국시대의 영웅 조조曹操는 뤄양洛陽에서 병으로 65세의 생애를 마감했다. 그의 자리를 태자 조비曹丕(187~226)가 물려받아서 위나라 왕이자 승상이 되었다. 조비는 조조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지만, 유씨劉氏씨가 낳은 조앙曹昻과 조삭曹鑠이 모두 일찍 죽고, 그의 어머니인 변씨卞氏가 황후皇后가 되어 조조의 적장자嫡長子가 되었다. 조비가 조조의 뒤를 이어 후한後漢의 헌제獻帝에게서 양위받는 형식으로 황제가 되었으므로 실질적으로 위나라의 초대 황제 문제文帝(220-226 재위)가 되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조비의 동생인 조식이 늘 술에 취하여 조정을 욕하고, 조정에서 보낸 사신을 가두고 놓아주지 않는다고 고해 바쳤다. 조비는 즉시 조식을 업성으로 잡아 올려 심문했다. 조비는 이번 일을 핑계로 조식을 아예 죽이려고 작심했다. 그런데 어머니 변태후가 이를 알고 조비를 불러다가, 조식이 아무리 잘못했어도 한 어미의 소생인데 형제의 정을 봐서라도 죽여서는 안 된다고 꾸지람했다. 조비는 어머니의 말을 거역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작은 일로 동생을 죽인다는 것도 체통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대로 놔둘 수는 없어서 낮은 작위로 강등시켰다. 그런 다음 조식을 불러 네가 글을 잘 짓는다고 늘 뻐기는데 그렇다면 일곱 걸음을 걸을 동안 시를 하나 지어보아라, 그렇게만 한다면 죽을죄를 벗겨주겠다고 했다.

 

조식은 잠깐 궁리하더니 걸음을 떼며 시를 지어 읊었다.

 

煮豆燃豆萁자두연두기: 콩대를 태워서 콩을 삶으니

豆在釜中泣두재부중읍: 가마 속에 있는 콩이 우는구나.

本是同根生본시동근생: 본디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건만

相煎何太急상전하태급: 어찌하여 이다지도 급히 삶아대는가.

 

그 시를 듣고 조비는 가책을 느꼈다. 그래서 조식을 죽이지 않고 도로 봉읍지로 돌려보냈다. 조식은 그 후 경성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군에 있다가 울화병으로 죽었다.

조식은 마지막 봉지인 진에서 죽었으며, 시호는 사이다. 그리하여 진사왕陳思王으로 불린다. 시문을 잘 지어 조조, 조비와 함께 삼조三曹로 불린다. 80여 수의 시가 전하고, 사부辭賦나 산문도 40여 편 남아 있다.칠보시七步詩가 유명하다. 송나라 때 조자건집(曹子建集)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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