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비둘기

<기독교 동물 상징사전>(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 ‘산비둘기turtur’는 주로 고독한 삶에 대한 비유로 사용되었으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처음으로 산비둘기가 가진 일부일처의 습성에 대해서 기록하였다.
이후 중세와 근대에 와서 산비둘기는 ‘정절’과 ‘신실한 사랑’, ‘고독한 기도’를 의미하게 되었다.
그리스 어로 ‘산비둘기trygon’와 ‘비둘기peristera’는 분명히 다르지만, 문학전승에서는 두 명칭이 구분 없이 뒤섞이거나 혼동되는 일이 많았다.

1 아가 2: 12
공동번역에서는 “비둘기 꾸르륵 우는 우리 세상이 되었소”라고 옮겼다.
‘산비둘기turtur’를 ‘비둘기columba’와 혼동하였다.

2 마태오 17: 5
베드로의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더니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마르코 9: 7
바로 그 때에 구름이 일며 그들을 덮더니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잘 들어라” 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루가 9: 35
이 때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아들, 내가 택한 아들이니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마태오·마르코·루가 복음서의 기록이 ‘filius meus dilectus내가 기뻐하는 아들’, ‘filius meus carissimus가장 사랑하는 아들’, ‘filius meus electus내가 택한 아들’로 제각기 다르게 되어 있다.

3 이사야 38: 14
라틴 성서의 “Sicut pullus hirundinis sic clamabo meditabor ut colomba”는 “나는 검정색 제비처럼 우짖고 비둘기처럼 구루룩거립니다”라고 옮길 수 있다.
여기서는 제비와 비둘기의 울음소리가 구슬픈 심정을 가리키기보다는 수다스러운 성질을 가리키기 위해서 인용되었다.

4 아가 2: 14

5 I 베드로 2: 22
그리스도는 죄를 지으신 일이 없고 그 말씀에도 아무런 거짓이 없었습니다.

이사야 53: 9
폭행을 저지른 일도 없었고
입에 거짓을 담은 적도 없었지만
그는 죄인들과 함께 처형당하고,
불의한 자들과 함께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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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기독교 동물 상징사전>(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 올챙이가 성장하면서 물에서 나와 뭍으로 서식환경을 바꾸는 개구리로 변신하는 특성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찰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전의 자연과학적 관찰을 아리스토텔레스가 정리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곡 <개구리>를 비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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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

<기독교 동물 상징사전>(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 플리니우스는 사슴이 어떻게 뱀을 굴에서 몰아내는지 설명한다.
물을 들이켰다가 뱉는 것이 아니라 입김을 불어넣어서 뱀을 굴 밖으로 유인한다는 설명은 피지올로구스와 다르다( N.H. 8. 118).
또 플리니우스는 사슴의 뿔을 태운 연기로 뱀의 접근을 막을 수 있다고 하였지만, 피지올로구스는 이 일화를 본문 제43장 ‘코끼리’ 편에서 뜻을 바꾸어 인용하였다.
피지올로구스의 여러 판본 가운데 사슴이 악룡을 삼킨다는 내용으로 줄거리를 전개한 경우도 있다.

1 시편 42: 1
공동번역에는 ‘암사슴’으로 되어 있는데, ‘사슴’ 또는 ‘수사슴’으로 옮겨야 옳다.
라틴 성서에는 시편 42: 2에 나와 있으며, “ Quemadmodum desiderat cervus ad fontes aquarum ita desiderat anima mea ad te”에서 ‘cervus’는 ‘암사슴’이 아닌 ‘사슴’이고, ‘ad fontes aquarum’은 ‘시냇물’이 아니라 ‘물이 솟는 샘들’이라고 옮길 수 있다.

2 신명기 5: 18-19
간음하지 못한다.
도둑질하지 못한다.

마태오 19: 18-19
그 젊은이가 “어느 계명입니까?” 하고 묻자 예수께서는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 하는 계명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마르코 10: 19
“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남을 속이지 말라’, ‘부모를 공경하라’고 한 계명들을 너는 알고 있을 것이다.”

3 I 고린토 3: 16
여러분은 자신이 하느님의 성전이며 하느님의 성령께서 자기 안에 살아 계시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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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만더

<기독교 동물 상징사전>(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 근대에 이르기까지 살라만더가 불 속에서 견디어 내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의심받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 H.A. 552 b 15 )와 테오프라스트가 살라만더의 이러한 특성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플리니우스는 이와 달리 살라만더가 맹독을 지닌 동물이라고 주장한다( N.H. 29. 4. 76).
살라만더의 두 가지 특징이 중세기에 다양하게 출간된 피지올로구스의 판본들에 반영되었다.

1 이사야 43: 2
네가 물결을 헤치고 건너갈 때 내가 너를 보살피리니
그 강물이 너를 휩쓸어가지 못하리라.
네가 불 속을 걸어가더라도 그 불길에 너는 그을리지도
타버리지도 아니하리라.

2 다니엘 3: 24-25
“꽁꽁 묶어서 화덕에 집어넣은 것이 세 명 아니었더냐?” 그들이 대답했다.
“임금님, 그렇습니다.”
“그런데 세 사람이 아무 탈 없이 화덕 속에서 거닐고 있으니, 어찌된 일이냐? 저 넷째 사람의 모습은 신의 모습을 닮았구나.”

3 히브리 11: 33-34
그들은 믿음을 가지고 여러 나라를 정복하였고 정의를 실천하였고
약속해 주신 것을 받았고 사자의 입을 막았으며
맹렬한 불을 껐고 칼날을 피하였고 약했지만 강해졌고
전쟁에서 용맹을 떨쳤고 외국 군대를 물리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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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석

<기독교 동물 상징사전>(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 금강석에 해당하는 아다마스adamas를 ‘무엇으로도 당할 것이 없는’이라는 뜻으로 풀이한 것은 플리니우스이다(37. 47 ).
피지올로구스가 소개한 일화의 뿌리는 티베리우스 황제 치하에서 활동하였던 세노크라테스Xenokrates의 기록으로, 이후에 성 히에로니무스가 아모스 서 주해를 쓰면서 이를 다시 인용하기도 하였다.
금강석이 염소의 피에 닿으면 용해된다는 피지올로구스의 설명도 세노크라테스에게서 가져왔다.
금강석이나 홍옥석을 밤에만 채광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고전 문헌에서 자주 등장한다.
율리아누스 아포스타타 황제가 쓴 귀금속의 상징에 관한 기록을 비교하면 좋다.

1 I 고린토 2: 15
영적인 사람은 무엇이나 판단할 수 있지만 그 사람 자신은 아무에게서도 판단 받지 않습니다.

라틴 성서의 “Spiritalis autem iudicat omnia et ipse a nemine iudicatur”는 “영에 속한 이는 모두를 심판하지만 그 자신은 누구에 의해서도 심판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2 요한 8: 46
“너희 가운데 누가 나에게 죄가 있다고 증명할 수 있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는데도 왜 나를 믿지 않느냐?”

3 즈가리야 6: 12
공동번역에서는 “이 사람을 보라. 그 이름은 새싹이니”라고 옮겨졌다.
그러나 라틴 성서의 “ecce vir oriens nomen eius”에서 ‘ vir oriens’는 ‘떠오르는 사람’ 또는 ‘동방의 사람’이라는 뜻이므로,
“보라. 그의 이름은 떠오르는 사람이니” 혹은 “보라. 그의 이름은 동방의 사람이니”라고 옮겨야 한다.

루터 성서에서 “Siehe, es ist ein Mann, der hei쬽 Spro㎕구?“보라, 그는 사내요, 이름은 새싹이니”라고 옮긴 것은 지나친 의역이다.
본문에서는 금강석이 해가 떠오르는 동방국에서 난다는 사실과 연관지었다.

4 민수기 24: 17
이 눈에 한 모습이 떠오르는구나.
그러나 당장 있을 일은 아니다.
그 모습이 환히 보이는구나.
그러나 눈앞에 다가 온 일은 아니다.
야곱에게서 한 별이 솟는구나.
이스라엘에게서 한 왕권이 일어나는구나.
그가 모압 사람들의 관자놀이를 부수고
셋의 후손의 정수리를 모조리 부수리라.

5 마태오 4: 16
어둠 속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겠고
죽음의 그늘진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치리라.

이사야 9: 2
어둠 속을 헤매는 백성이 큰 빛을 볼 것입니다.
캄캄한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쳐 올 것입니다.

피지올로구스가 금강석의 특성을 설명하다가 갑자기 민수기 24: 17과 마태 4: 16의 구절을 인용하면서 예수 탄생의 비밀과 연관 지은 것은 성서의 본디 의미맥락과 상관없이 금강석의 상징해석을 종교적으로 확장하려는 의도에서 그랬을 것이다.
이른바 ‘첸토cento 기법’으로 불리는 ‘인용문 이어붙이기’는 베르길리우스의 첸토 이후 고대의 문학적 전통으로 자리잡았다.

6 돌의 두 가지 성질을 음미함으로써 신앙의 내적 갈등을 해소하는 유비적 해결책으로 제안되었다.

7 아모스 7: 8
공동번역에는 “나 이제 다림줄을 내 백성 이스라엘의 한가운데 드리웠다”로 옮겨졌다.
라틴 성서의 “ Ecce ego ponam trullam in medio populi mei Israhel”에서 ‘trullam’은 아모스의 대답 ‘ trullam cementarii’를 반복한 말로 ‘담의 기울기를 측정하는 납추’를 뜻한다.
루터 성서에는 ‘ 납끈Bleischnur ’으로 옮겨졌다. 여기서 금강석 혹은 아다마스를 드리웠다는 본문의 내용은 피지올로구스가 알려지지 않은 다른 문헌 전거를 인용하였거나 오역일 가능성이 크다.

8 마르코 10: 35-38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께 가까이 와서 “선생님, 소원이 있습니다. 꼭 들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선생님께서 영광의 자리에 앉으실 때 저희를 하나는 선생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 주십시오” 하고 부탁하였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너희가 청하는 것이 무엇인지나 알고 있느냐? 내가 마시게 될 잔을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을 고난의 세례를 받을 수 있단 말이냐?” 하고 물으셨다.

마태오 20: 20-22와 비교할 수 있다.

9 히브리서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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